그가 용서받을 줄 아무도 몰랐다!
오늘 복음 말씀은 너무나도 유명한 되찾은 아들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너희도 빨리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그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한 번 느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모든 자산을 탕진하고 정신을 차려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는 오로지 자신의 죄에 대한 자책과 아버지께 받을 벌에 대한 두려움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표현에서 그의 마음 상태가 잘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달려가 틉湧�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라는 구절에서 그동안 매일 같이 애를 태우며 아들을 기다렸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다음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그 길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아들을기다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느님의 사랑을 잘못 이해합니다. 그분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의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는 전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잘못 이해했듯이, 하느님의 사랑 또한 우리가 머리로 계산하려 하면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식이 몸성히 돌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가 환대 받을 줄 몰랐고 큰 아들 역시 작은 아들이 환대 받을 줄 몰랐습니다. 죄지은 자신도 죄를 용서받을 줄 몰랐고 옆에서 지켜보던 이도 그 죄인이 용서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과 한계를 뛰어 넘고 있으며 아무런 조건 없이 무상으로 베풀어지는 것으로 그저 우리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있어 우리의 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식이 어떤 잘못을 했던 부모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세상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던 그저 당신의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의 죄를 뒤로 하시고, 오히려 따뜻하게 부둥켜 안아주시며 좋은 옷과 반지와 신발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죄 속에서 허덕이는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지만, 그 존재자체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사실입니까?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갑시다.
박병옥 바오로 신부 / 태장동
출처 : 원주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