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尋伺(Vitakka-Vicāra)의 구조와 전환
- 욕계와 색계 초선에서의 有對色을 매개로 한 口行(내면 언어)의 기능적 전환 -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尋(vitakka)과 伺(vicāra)가 욕계와 색계 초선에서 각각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규명한다. 특히 尋·伺는 공통적으로 有對色(地大, paṭigha-rūpa)을 대상으로 하는 '口行(내면적 언어 작용)'임을 밝히고, 그 대상에 대한 마음의 태도(감각적 갈애 vs 안정된 삼매)에 따라 기능이 전환되는 '가변적 구조'임을 제안한다.
욕계에서의 尋·伺는 外인 6境의 有對色에 대해 감각적 욕망에 기초한 생각이며,
색계 초선에서의 尋·伺는 內인 자신의 有對色에 대해 안정된 삼매 상태에서의 생각이다.
두 경우 모두 有對色을 매개로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이는 口行(vacīsaṅkhāra)의 한계가 색계 초선까지이며, 세기 경(DN 27)이 제시하는 地大(有對)의 출현 한계와 상응한다.
Ⅰ. 서론: 尋伺의 본질에 대한 질문
尋(vitakka)과 伺(vicāra)는 흔히 '일으킨 생각(거친 생각)'과 '지속적 고찰(미세한 가다듬음)'이라는 고정된 심소(cetasika)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尋·伺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
그리고 욕계와 색계 초선에서 어떻게 다르게 기능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본고의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다.
尋·伺는 욕계와 색계 초선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有對色(地大)을 대상으로 하는 口行(내면적 언어 작용)이다.
- 욕계에서의 尋·伺: 外인 6境(감각적 대상)에 대한 감각적 욕망에 기초한 생각.
尋은 유대색에 대한 갈애적 접근, 伺는 유지와 그에 따른 희론적 확산(papañca).
- 색계 초선에서의 尋·伺: 內인 자신의 有對色에 대해 안정된 삼매 상태에서의 생각.
尋은 유대색을 고통으로 읽지 않는 안정된 조율, 伺는 그 안정된 상태의 지속적 유지.
이 논지를 입증하기 위해 본고는 다음의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대인연 경(DN 15)의 명색-촉 상호관계, 비구니거처 경(SN 47.10)의 지향(paṇidahati) 구조, 개미집 경(MN 23)의 '밤의 연기' - '낮의 불길' 비유, DN 27의 우주론적 지대 출현, 밀린다왕문 경(KN 19)의 두 비유, Cousins(1992)의 문헌학적 분석을 종합하여 이 가설을 논증한다.
Ⅱ. 有對(paṭigha)
2.1 paṭigha는 다음과 같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① 윤리적·심리적 측면 (거치적거림, 정신적 저항, 분노, 악의)
`paṭighasaṃyojana`(有對結)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정신적 '밀어냄' 또는 '거부감'으로서 초선에서 이미 소멸되는 대상이다.
② 물질적·감각적 측면 (감각 반응, 저항, 충돌, 반향)
`bāhirānaṃ paṭighātāya`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외부의 공격을 물리치는 방어적 벽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밀린다왕문 경의 `ākoṭitaṃ pacchā anuravati`(두드린 뒤 여운이 일어남)에서 보듯, 이는 내부의 두드림(尋의 타격)에 대해 반향(여운, 伺)을 일으키는 공명판으로서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
즉, paṭigha(특히 有對色로서의 地大)는 '외부 자극을 막는 수동적 벽'이거나,
'내부 진동을 증폭하여 순환시키는 능동적 벽'으로서,
욕계와 초선에서 尋·伺의 순환적 피드백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물질적·존재론적 조건이 되는 벽이 되는 反射面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핫타까 경 (AN 3.128)에 의하면 色界 四禪天인 無煩天(avihā devā)의 핫타까(Hattaka)는 세존 앞에 서려 했으나, 마치 모래 위에 부은 기름처럼 땅 위에 설 수 없었다(na saṇṭhāti). 이는 그가 지닌 미세한 몸(sukhuma-attabhāva)에는 有對色(地大, 견고성)이 없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거친 몸(oḷārikaṃ attabhāvaṃ)을 만들어라"고 하시자, 핫타까는 거친 몸을 만들어 비로소 설 수 있었다.
이와 같이 有對色(地大)은 단순한 인식 대상이 아니라 '서 있음(standing)'이라는 물리적·존재론적 조건 자체임을 보여준다. 지대(반발력)가 없으면 땅 위에 설 수 없으며, 이는 제2선천에서 地大가 소멸하면 口行(尋伺)뿐만 아니라 물리적 '서 있음' 자체도 성립할 수 없는 존재 양식과 평행한다.
그래서 제2선천 이상의 선정이나 그 곳에 태어난 유정은 그 세상에 걸맞게 자신에게도 지대(반발력)가 없으며 그 결과 생각(尋伺)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有對色의 소멸과 口行의 소멸이 동일한 존재론적 경계(초선→제2선)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본고의 논지이다.
2.2 尋·伺는 有對色(地大, paṭigha-rūpa)을 대상으로 하는 '口行(내면적 언어 작용)'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2.2.1 思惟-尋(생각)은 名色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난다.
2.2.2 名色은 受, 想, 思, 觸, 作意(변행심소)인 名과 四大(지수화풍)와 所造色인 色이다.
여기에서 色은 6境의 色(외부 감각 대상)이 아니라, 유정(개체)에게 속하는 色(신체적·물질적 구성)을 의미하고, 이는 연기에서 識-名色-六入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2.2.3 有對色(地大)으로의 전환: DN 15의 증언
名色을 緣한 觸에 대한 설명에서, 色身 중에서도 특히 有對色(地大)과 名身 사이의 상호 정보 교환을 설명한다.
2.2.4 DN 27에 따르면
- 세간이 파괴되고 재편될 때, 초선천(初禪天)까지는 地大가 존재한다.
- 제2선천(二禪天)은 水大(āpo-dhātu)로 된 세상이며, 地大는 소멸한다.
이와 평행하게, MN 44는 수행적 차원에서 口行(尋·伺)이 제2선(二禪)에서 소멸한다고 한다.
이 두 층위는 '초선→제2선'이라는 동일한 경계에서 地大/有對色과 口行이 함께 소멸한다는 점에서 유비적 상응(structural homology)을 보인다.
III. 尋伺는 口行이다 : 소방등 경(MN 44)
"pubbe kho, āvuso visākha, vitakketvā vicāretvā pacchā vācaṃ bhindati,
tasmā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發話이전의 口行(내면의 언어활동)을 尋-伺라고 한다.
내면의 언어활동을 우리말에서는 念(생각)이라고 한다.
우리말 사전에 의하면 생각이라는 표현도
" ①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②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
③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관심을 가짐. 또는 그런 일.
念: 생각, 기억, 암송 …
念자는 ‘생각하다’나 ‘외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念자는 今(이제 금)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今자는 입을 거꾸로 그린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입안에 머금다’였다."
범주가 단일하지 않아서 앞뒤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정확히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입안에 머금다’는 의미는 경문의 發話이전의 口行과 동일하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①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 尋(vitakka)와 상당히 상응하고
③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관심을 가짐 : 思惟(saṅkappa)에 상응하며
②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 : sati(기억)이다.
思惟(saṅkappa)의 동의어 내지 유의어인 尋(vitakka)은
색신(특히 지대인 有對)에 대한 논리적 생각(①)이라고 범부는 여기지만
욕계 애지 연기(60법)의 마지막 6尋-6伺는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힌 비논리적인 생각이고,
6伺(vicāra)는 6尋(vitakka)의 여운 내지 反響이라는 측면에서의 구행이다.
여운이라 하면 무엇인가 점점 줄여드는 느낌이 들지만 오히려 망상(papañca)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욕계에서의 尋은 감각적 욕망에 기반한 지대(유대)에 대한 비논리적으로 조합하는 생각이고, 伺는 희론 망상으로 진행되는 생각이다.
색계 초선에서의 심사의 尋은 삼매의 표상(정합적 조율, 出離에 대한 생각 등)이고 伺는 이어지는 餘韻-反響이다.
생각-여운(/餘震)을 본 논문에서는 생각-숙고 혹은 尋-伺로 표기한다.
IV. 口行의 대상: 名色과 有對色
4.1.1 尋伺는 名色을 대상으로 한다 : 사밋디 경(AN 9.14)
생각은 名色을 대상으로 하며, 그 방향은 念(sati)에 의해 주도된다.
"Nāmarūpārammaṇā purisassa saṅkappavitakkā uppajjanti."
(사람의 思惟-尋은 名色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난다.)
"te pana, samiddhi, kiṃadhipateyyā"ti? "satādhipateyyā, bhante"ti.
(그것들은 무엇이 영도하는가? 세존이시여, 기억(念)이 영도합니다.)
4.1.2 念(Sati)과 尋·伺의 분업 구조
MN 44은 네 가지 念處(토대에 대한 기억)가 곧 삼매의 표상이라고 한다.
("Cattāro satipaṭṭhānā samādhinimittanti")
- 念(Sati): 신·수·심·법이라는 기억의 토대(paṭṭhāna)를 잊지 않는 불망(不忘)의 기능.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삼매의 표상)를 결정한다.
- 尋·伺(Vitakka-Vicāra): 念에 의해 형성된 삼매의 표상으로 마음을 지향(paṇidahati)시키고 유지(伺)하는 실행 도구.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지향과 유지)를 담당한다.
- 제2선(無尋無伺)에서도 "ajjhattaṃ satimā"(안으로 기억을 지닌 자)라고 하여, 念(sati)은 여전히 작동함을 보여준다.
4.2 有對色과 두 종류의 접촉, 그리고 名稱/言表의 길
4.2.1 DN 15의 명색-촉 상호관계
DN 15는 名色을 緣한 觸에 대한 설명에서, 色身 중에서도 有對色(地大)의 色과 名身 사이에서 상호 이중 접촉을 통해 相(nimitta) 등의 정보를 교환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본고는 이 구조를 尋·伺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으로, 그리고 名色에서 구행의 토대가 되는 色이 유대색인 지대라는 해석적 모델로 제안한다.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nām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asati api nu kho rūpakāye adhivacanasamphasso paññāyethā?"
(아난다여, 명신의 드러남을 가능하게 하는 표지들이 없다면,
색신에서 名稱(言表)觸이 드러날 수 있겠는가?)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rūp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 asati api nu kho nāmakāye paṭighasamphasso paññāyethā?"
(아난다여, 색신의 드러남을 가능하게 하는 표지들이 없다면,
명신에서 有對觸이 드러날 수 있겠는가?)
"…
Ettāvatā adhivacanapatho, ettāvatā niruttipatho,
ettāvatā paññattipatho, ettāvatā paññāvacaraṃ,"
(이 정도까지가 名稱(言表)의 길이며, 이 정도까지가 어원의 길이며,
이 정도까지가 개념의 길이며, 이 정도까지가 지혜의 영역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면:
| 관계 방향 | 조건 | 결과 |
| 名身 → 色身 | 名身의 nimitta 등의 표지 |
→ adhivacana-samphassa(名稱觸)가 色身에 드러남 |
| 色身 → 名身 | 色身의 nimitta 등의 표지 |
→ paṭigha-samphassa(有對觸)가 名身에 드러남 |
즉, 名身과 色身(특히 有對色인 地大) 사이에는 두 종류의 접촉을 통한 상호 정보 교환이 존재하며, 이는 尋·伺가 작동하는 명색의 조건적 장을 보여준다.
4.2.2. 名稱/言表(adhivacana) : '생각'의 매개로서의 名稱/言表
DN 15의 "ettāvatā adhivacanapatho"(이 정도까지가 名稱/言表의 길이다)는
언표 형식의 경 (SN 22.62)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규정된다.
이 경은 adhivacana·nirutti·paññatti라는 표현이 DN 15와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문이다.
"yaṃ viññāṇaṃ jātaṃ pātubhūtaṃ, ‘atthī’ti tassa saṅkhā, ‘atthī’ti tassa samaññā,
‘atthī’ti tassa paññatti; na tassa saṅkhā ‘ahosī’ti, na tassa saṅkhā ‘bhavissatī’”ti.
(어떤 의식(識)이 생겨나고 나타난 것이라면, '있다'는 것이 그것의 '헤아림'이며,
'있다'는 것이 그것의 '통칭(通稱)'이며, '있다'는 것이 그것의 '개념(施設)'이다.
그것에게 '있었다'는 헤아림은 없으며,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ime kho, bhikkhave, tayo niruttipathā adhivacanapathā paññattipathā
asaṅkiṇṇā asaṅkiṇṇapubbā, na saṅkīyanti, na saṅkīyissanti,
appaṭikuṭṭhā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名稱/言表는 '생각(尋伺)'이 대상을 향해 나아갈 때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며, 개념화하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尋·伺(口行)는 名稱/言表를 통해 有對色을 대상으로 삼아 작동하는 내면적 언어이며, 그 한계는 言表의 길이 작동하는 색계 초선까지이다.
4.3. 有對色의 정의와 범주
DN 33은 물질(rūpa)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tividhena rūpasaṅgaho — sanidassanasappaṭighaṃ rūpaṃ,
anidassanasappaṭighaṃ rūpaṃ, anidassanāppaṭighaṃ rūpaṃ."
(물질의 포괄은 세 가지이다 — 有見有對色, 無見有對色, 無見無對色.)
한역 『잡아함경(제13권 322 眼內入處經)』은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眼은 內入處로서 四大所造淨色이며, 不可見而有對이다. 耳·鼻·舌·身도 그러하다."
"意內入處는 心·意·識으로서 非色이며, 不可見而無對이다."
이에 따르면:
| 구분 | 眼·耳·鼻·舌·身 (전5근) | 意根 | 色·聲·香·味·触 (5境) | 法境 |
| 성질 | 四大所造淨色 -------| 非色 (心·意·識) | 四大造 | (十一入所不攝) |
| 有對 | 有對-------------- | 無對-------- | 有對-- | (無對)/有對 |
여기서 有對色(sappaṭigha-rūpa)이란 물질적 저항·충돌·장애의 성질을 가진 것을 의미하며, 특히 地大(pathavī-dhātu)가 그 핵심이다.
尋·伺는 바로 이 有對色을 대상으로 하는 口行이다.
4.4. 有對色으로서의 地大와 尋伺 대상의 연관성
AN 9.14는 尋·伺가 名色을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名色 중 色은 DN 33에 따라 有對色과 無對色으로 구분된다. 이례적 순서 경(SN 48.40)은 초선에서 有對色(지대)에 의한 신체적 고통(dukkhindriya)이 소멸하지만 有對色 자체는 존속함을 시사한다.
DN 15의 명칭(언표)촉과 유대촉의 정보교환에 의한 언어의 길에서도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尋·伺의 대상이 有對色, 특히 지대임을 제안한다.
"…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ettha cuppannaṃ dukkhindriyaṃ aparisesaṃ nirujjhati.
…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ettha cuppannaṃ domanassindriyaṃ aparisesaṃ nirujjhati."
V. 口行의 한계와 地大의 출현: DN 27의 증언
5.1 口行의 한계는 색계 초선이다
尋·伺(口行)는 MN 44에 따르면 제2선(二禪)에서 소멸한다.
즉, 口行은 색계 초선(初禪)까지가 한계이다.
DN 33은 삼매의 발달을 유심유사 → 무심유사 → 무심무사로 단계화한다.
"savitakkasavicāro samādhi, avitakkavicāramatto samādhi, avitakkāvicāro samādhi."
[ 초선 (有尋有伺) ] → [ 과도기 (無尋有伺) ] → [ 제2선 (無尋無伺) ]
조준(尋) + 순환(伺)...... 조준(尋) 정지 .......... 모든 내면 구행(尋伺) 정지
(시동과 유지 모두)....... 관성적 순환(伺) 유지 (단일한 통일장: ekodibhāva)
무심유사의 과도기: 적용·조준(尋)의 의식적 타격은 멈추었으나, 이미 축적된 피드백 관성에 의해 팽이가 스스로 회전하듯 순환 회로(伺)가 유지되는 상태이다.
제2선으로의 이행: SN 48.40에 따르면 제2선 진입 시 정신적 불만족(domanassindriya)마저 완전 소멸한다. 이는 명칭촉을 통해 색신(지대)에 고요함을 인위적으로 투사하거나 유대촉의 신호를 조율할 필요가 종식되었음을 뜻한다. 尋·伺가 정지하고, 의식은 단일 통일장(ekodibhāva)으로 침잠한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尋·伺의 가라앉음으로써, 내로 안주하며 마음이 하나로 모인, 尋·伺가 없는, 삼매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SN 47.10의 표현을 빌리면: "avitakkomhi avicāro, ajjhattaṃ satimā sukhamasmī"
(생각하지 않고 숙고하지 않는 나는 안으로 기억을 지닌 자로 행복하다.)
5.2 地大의 출현 한계도 색계 초선이다
DN 27은 우주론적 전개 과정에서 地大(pathavī)의 출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세간이 파괴되고 재편될 때, 초선천(初禪天)까지는 地大가 존재한다.
- 제2선천(二禪天)은 水大(āpo-dhātu)로 된 세상이며, 地大는 소멸한다.
그러나 오직 水大만으로 이루진 것은 아니며, 火大와 風大는 존속한다.
火大 소멸에 대해서는 경문에 나타나지 않지만 風大는 색계4선에서 소멸한다.
즉, 地大(有對色)의 출현 한계와 口行(尋·伺)의 한계는 모두 색계 초선과 상응한다.
5.3 '맛(味)'의 출현과 욕계로의 전환
세기경은 地大의 출현 이후 맛(味, rasa)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이는 색계에서 맛을 본다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이 시점은 이미 욕계로 전환된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地大의 출현이 욕계와 색계 초선의 공통 조건임을 알 수 있다.
口行(尋·伺)과 地大(有對色)는 모두 색계 초선까지 공통적으로 존재하며, 제2선에서 함께 소멸한다. 이는 尋·伺가 有對色(地大)을 대상으로 삼는 口行임을 시사한다.
5.4 우주론과 개인 명상 단계의 유비적 상응
DN 27의 地大 출현/소멸은 우주론적 서술이고, MN 44의 尋伺 소멸은 개인 수행자의 심리적 사건이다.
그러나 두 층위 모두 '초선'이라는 경계에서 地大/有對色와 口行이 존속하며, 제2선에서 함께 소멸한다는 점에서 유비적 상응을 보인다. 이는 구조적 유사성에 기초한 제안이다.
VI. 욕계와 색계 초선에서의 尋伺: 대상과 기능의 차이
6.1. 욕계에서의 6尋·6伺 – 外의 6境에 대한 갈애적 생각
욕계(欲界)의 인식·사유 과정에서 尋·伺가 갈애와 결합하여 번뇌의 지속에 기여하는 구조를 검토한다.
대념처 경(DN 22)의 法念處-苦集聖諦/苦滅聖締에 나열되어 있는 욕계 애지 연기의 법수들(60법: 6內處-6外處-6內識-6內觸-6內受-6外想-6外思-6外愛-6外尋-6外伺)의 마지막 항목인 6尋·6伺도 갈애(taṇhā)가 일어나거나 사라지는 곳으로 나타난다.
6尋·6伺의 위상은 MN 23에서 욕계에서 尋·伺가 갈애와 번뇌를 증폭시키고 실체적 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밤의 연기'와 '낮의 불길'로 명확히 제시한다.
여기서 '밤(rattiṃ)'은 識-名色의 호연(互緣)에서 識住處(viññāṇaṭṭhiti)인 [5온이 取·有(upādāna-bhava)를 통해 이미 '됨(becoming)'으로 전환된 업유(業有, kamma-bhava)로서의] 名色을 의미하며, '낮(divā)'은 그렇게 저장된 업이 욕계 일상에서 현행(現行)으로 드러나는 6처(六處)의 활동을 가리킨다.
이처럼 욕계의 6尋·6伺는 저장된 업(밤)을 현행하는 업(낮)으로 전환시키는 고리이며, 이러한 현행은 다시 미래의 생유(生有, upapatti-bhava)를 조건 짓는 순환적 피드백을 형성한다.
"yaṃ kho, bhikkhu, divā kammante ārabbha rattiṃ anuvitakketi anuvicāreti
— ayaṃ rattiṃ dhūmāyanā.
yaṃ kho, bhikkhu, rattiṃ anuvitakketvā anuvicāretvā divā kammante payojeti
kāyena vācāya manasā — ayaṃ divā pajjalanā."
6尋·6伺는 욕계 애지 연기(60법)의 마지막 항목에 나타나며, 外인 6境(감각적 대상)에 대한 감각적 욕망에 기초한 생각이다.
꿀 덩어리 경 (MN 18): 根·境·識-觸-受-想-尋-희론
"cakkhuñcāvuso,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yaṃ vedeti taṃ sañjānāti, yaṃ sañjānāti taṃ vitakketi,
yaṃ vitakketi taṃ papañceti,"
| 구성 요소 | 욕계에서의 실체 및 작동 |
| 대상 | 6외처(色·聲·香·味·觸·法) – 감각적 욕망과 호오의 번뇌가 투영된 有對色 |
| 尋 (Vitakka) | 감각적 대상에 대해 "이것은 좋다/나쁘다"라고 분별하며 마음을 적용·겨냥함. 有對色에 대한 갈애적 접근. |
| 伺 (Vicāra) | 겨냥된 감각적 대상을 계속 되새기고 붙들어 둠으로써 욕망적 상상을 지속시킴. 갈애의 희론적 확산(papañca). |
| 결과 | 갈애 증폭 → 업 축적 → 윤회적 고통 가중. |
6.2. 尋·伺의 '지향(paṇidahati)' 구조
SN 47.10은 4념처 수행 중에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 그 대처로 제시된 방법이 초선에서의 尋·伺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정밀하게 보여준다.
"… kāyasmiṃ pariḷāho, cetaso vā līnattaṃ, bahiddhā vā cittaṃ vikkhipati."
(몸(身)에서 열기가 생기거나, 마음(心)의 해이함이, 혹은 마음(心)이 밖으로 흩어진다.)
6.2.1 삼매의 표상으로의 지향 (paṇidahati)
"tenānanda, bhikkhunā kismiñcideva pasādanīye nimitte cittaṃ paṇidahitabbaṃ."
(아난다여, 그러므로 비구는 어떤 안정(安住)되게 할 표상(相)에 대해 마음(心)을 기울여야[지향해야] 한다.)
- pasādanīya: `pa-`(강조) + `√sad`(앉다, 가라앉다)에서 파생된 미래수동분사로, "가라앉혀야 할, 안정되게 할"이라는 의미. 이는 수행자의 마음을 산란에서 벗어나 안정시키고 가라앉혀 평온하게 하는 표상을 뜻한다.
- paṇidahati: `pa-`(강조) + `ni-`(아래로) + `√dhā`(놓다) → "앞으로 내밀어 놓다, 지향하다, 기울이다".
- nimitta: 표상, 相. 여기서는 삼매의 표상(samādhi-nimitta)을 의미한다.
[제2선의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
- sampasādanaṃ: `saṃ-` + `pa-` + `√sad` →
동사 sampasīdati (완전히 가라앉다, 안주하다)의 명사형 sampasādana (중성명사, 대격)]
尋·伺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삼매의 표상으로 마음을 능동적으로 지향(paṇidahati)시키는 의도적·목적적 작용이다. 이는 욕계의 尋·伺가 갈애의 대상을 향해 마음을 지향하는 것과 형식(지향 작용)은 동일하나, 그 대상이 삼매의 표상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6.2.2 지향의 결과: 환희→희열→경안→행복→삼매의 정형적 흐름
"tassa kismiñcideva pasādanīye nimitte cittaṃ paṇidahat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ayati.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그와 같이 어떤 안정되게 할 표상으로 마음을 기울인 자에게 환희가 생겨난다.
환희가 생겨난 자에게 희열이 생겨난다. 희열의 마음을 지닌 자에게 몸이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이 정형적 흐름은 尋·伺(지향 작용)가 직접적으로 삼매의 조건을 형성함을 보여준다. 특히 "행복한 자가 삼매에 든다"는 구절은, 尋·伺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삼매로 이끄는 정서적·신체적 변환의 첫 번째 방아쇠임을 지시한다.
6.2.3 목적 성취와 거둠(paṭisaṃ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 'yassa khvāhaṃ atthāya cittaṃ paṇidahiṃ,
so me attho abhinipphanno. handa, dāni paṭisaṃharāmī'ti.
so paṭisaṃharati ceva na ca vitakketi na ca vicāreti."
(그는 다음과 같이 반조한다. - '참으로 나는 어떤 목적(attha)을 위하여 마음을 지향했는데, 나에 의해 그 목적은 성취되었다.'라고.
그는 거두어 들여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na vitakketi] 숙고하지 않는다[na vicāreti].)
- paṭisaṃharati: `paṭi-`(되돌아) + `saṃ-`(함께) + `√hṛ`(취하다, 가져가다) → "되돌아 취하다, 거두어들이다".
- 이는 尋·伺를 적극적으로 중단하는 의식적 행위이다.
- 즉, 초선의 尋·伺는 삼매의 표상으로 마음을 지향(paṇidahati)하는 능동적 작용이며, 목적(삼매 성취)이 완성되면 이를 거두어들임(paṭisaṃharati)으로써 제2선으로 이행한다.
6.3. 색계 초선에서의 尋·伺 – 內의 有對色에 대한 삼매적 생각
색계 초선에서의 尋·伺는 內인 자신의 有對色(신체적 물질성)에 대해 안정된 삼매 상태에서의 생각이다.
| 구성 요소 | 색계 초선에서의 실체 및 작동 |
| 대상 | 자신의 有對色(地大) – 신체적 물질성이 존재하나, SN 48.40에 의하면 신체적 고통(dukkhindriya)은 이미 소멸됨 |
| 尋 (Vitakka) | 有對色의 신호를 수신하되, 그것을 고통이 아닌 삼매의 표상(samādhi-nimitta)으로 안정되게 조율함 (appanā). 有對色에 대한 고통 없는 안정적 접근. |
| 伺 (Vicāra) | 조준된 삼매상의 고요함을 명색 전체에 지속적으로 투사하여 순환적 피드백을 가하고 삼매를 유지함 (anuravana). 삼매 상태의 지속적 유지. |
| 결과 | 갈애 없이 환희→희열→경안→행복→삼매로 이어짐 → 제2선으로 나아가는 디딤돌. |
6.4 공통점과 차이점의 종합
| 비교 항목 | 욕계의 尋·伺 | 색계 초선의 尋·伺 |
| 대상 | 有對色(地大) – 外의 6境 | 有對色(地大) – 內의 자신의 色身 |
| 尋의 태도 | 감각적 갈애(欲愛)에 기반한 접근 | 육체적 괴로움으로 대하지 않는 안정된 삼매적 접근 |
| 伺의 작동 | 갈애의 희론적 확산(papañca) | 삼매 상태의 지속적 유지(refinement) |
| 결과 | 욕계 갈애 증폭 → 욕계로 윤회 | 환희·희열·경안·행복→삼매→색계/해탈 |
尋·伺는 욕계와 색계 초선 모두에서 有對色을 대상으로 하는 口行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그 대상이 外의 6境인지 內의 자신의 色身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마음의 태도가 감각적 갈애인지 안정된 삼매인지에 따라 기능과 결과가 전환된다.
VII. Cousins(1992)의 문헌학적 분석과의 정합성 :
尋·伺는 가치중립적 인지 작용이다.
L. S. Cousins(1992)는 『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i)』의 우데사(dhammuddesa) 분석을 통해, vitakka와 vicāra가 선악을 전제하지 않는 '가치중립적 인지 작용 일반'임을 밝혔다.
대사십 경(MN 117)과 같이 尋(vitakka) 계열의 열거가 담마상가니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동의어라는 의미는 아니다.(vitakka =/ sammā-saṅkappa)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vitakka의 7항목 우데사(takka → vitakka → saṅkappa → appanā → vyappanā → cetaso abhiniropanā → sammā-saṅkappa) :
하나의 인지 작용이 미발달 상태에서 발달된 상태로 심화되는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 vicāra의 6항목 우데사(cāra → vicāra → anuvicāra → upavicāra → cittassa anusandhanatā → anupekkhanatā) :
여러 대상 사이의 '배회'가 아니라, vitakka가 고정한 동일한 하나의 대상 둘레를 도는 작용임을 보여준다.
이는 본고의 논지 — 尋·伺가 형식(form)은 동일하고, 대상(object)과 태도(attitude)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가변적 구조 — 를 문헌학적으로 입증한다.
VIII. 비유 전통의 일관된 증언
Cousins는 두 비유 전통(Milindapañha의 목수·종 비유 등)이 시대 순으로 어떻게 계승·변형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추적한다:
Peṭakopadesa(최고층) → Milindapañha → Vimuttimagga → 붓다고사 저작(청정도론 등)
| 비유 | 출처 | vitakka | vicāra |
| 새 |Peṭakopadesa| 이륙을 위한 힘찬 날갯짓 |같은 비행 궤적 안에서 날개 펴고 활공|
| 벌 |붓다고사 계열| 연꽃으로 곧장 날아감 |그 연꽃 위에서 배회함|
| 목수 |Milindapañha| 나무 조각을 이음매에 끼워 맞춤(appanā) | —
| 징 |Milindapañha| 징을 침 |같은 진동원에서 퍼지는 여운(anuravana)|
세 비유 모두 vicāra가 vitakka의 대상을 떠나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지 않고, 그 하나의 대상을 중심으로 계속 맴돌거나 그 여파가 이어지는 것임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 계보 추적을 통해, 오늘날 통용되는 "初禪=거친 사고, 二禪 이후=고요"라는 식의 이해가 실제로는 여러 층위의 텍스트가 누적되며 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vitakkayato vicārayato vitakkavipphārasaddaṃ sutvā"
(尋·伺를 행하는 자의, 尋으로부터 발산되어 퍼져나가는 여운(반향, 伺)의 소리를 듣고서)
이와 같이 상가라와 경 (AN 3.61)과 같은 맥락의 설명이 『Mil 2.3.13』과 이어지는 『Mil 2.3.14』에 나타난다.
8.1 尋 – 목수의 끼워 맞춤 (組合, appanā-lakkhaṇa)
尋은 대상(有對色)에 마음을 끼워 맞추는 적용·안착(appanā)의 작용이다.
"yathā, mahārāja, vaḍḍhakī suparikammakataṃ dāruṃ sandhismiṃ appeti,
evameva kho, mahārāja, appanālakkhaṇo vitakko." (Mil 2.3.13)
(대왕이시여, 마치 목수가 잘 다듬어진 나무 조각을 이음매에 끼워 맞추듯,
尋은 appanā를 특징으로 합니다.)
8.2 伺 – 종의 여운 (anuravana)
伺는 尋의 타격(적용)에 뒤따르는 지속적·순환적 여운이다.
"yathā, mahārāja, kaṃsathālaṃ ākoṭitaṃ pacchā anuravati anusandahati ...
yathā anuravanā, evaṃ vicāro." (Mil 2.3.14)
(대왕이시여, 마치 놋쇠 그릇을 두드린 뒤 여운이 이어지듯,
伺는 그 지속적인 여운(anuravana)과 같습니다.)
이 비유들은 尋·伺가 동일한 대상을 중심으로 한 적용과 그 지속이라는 형식을 가지며,
대상(有對色)에 대한 태도(갈애 vs 삼매)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짐을 시사한다.
IX. 결론: 尋伺는 有對色을 대상으로 하는 口行이다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尋·伺는 口行이다
2. 尋·伺의 대상은 有對色(地大)이다
3. 口行의 한계와 地大의 출현은 색계 초선과 상응한다
4. 욕계와 색계 초선의 차이는 대상과 태도에 있다
| 구분 | 욕계의 尋·伺 | 색계 초선의 尋·伺 |
| 대상 | 外의 6境(有對色) | 內의 자신의 色身(有對色) |
| 태도 | 감각적 갈애(欲愛) | 안정된 삼매(dukkhindriya 소멸) |
| 결과 | 갈애 증폭 → 윤회 | 환희→희열→경안→행복→삼매 |
5. 통합적 정의
尋伺(Vitakka-Vicāra)는 有對色(地大)을 대상으로 하며, 尋은 그 대상을 향한 적용·안착(appanā)으로, 伺는 그 적용에 뒤따르는 지속적 여운(anuravana)으로 작동하는 口行이다.
* 욕계에서의 尋伺: 外의 6境(有對色)을 향해 감각적 갈애로 작동 → 희론 확산(papañca)
* 초선에서의 尋伺: 內의 자신의 色身(有對色)을 향해 안정된 삼매로 작동 → 환희→희열→경안→행복→삼매
* 제2선으로의 이행: 有對色(地大)이 소멸하면 尋伺가 작동할 수 없고, 또한 尋伺도 함께 가라앉음(vūpasama)
【참고 문헌】
1차 문헌
- Dīgha Nikāya (DN 15, DN 22, DN 27, DN 33)
- Majjhima Nikāya (MN 18, MN 23, MN 44, MN 117)
- Saṃyutta Nikāya (SN 22.62, SN 47.10, SN 48.40)
- Aṅguttara Nikāya (AN 3.61, AN 3.128, AN 9.14)
- Khuddaka Nikāya – Milindapañha (Mil 2.3.13/14)
- 『잡아함경』 (T. 99, vol. 2, p. 91c) – 眼內入處經
2차 문헌
- Cousins, L. S. (1992). "Vitakka/Vitarka and Vicāra:
Stages of Samādhi in Buddhism and Yoga." Indo-Iranian Journal 35(2–3): 137–157.

첫댓글
Re: 尋伺(Vitakka-Vicāra) - AI.는 삭제했지만.....
먼저 올린 글은 공부 차원에서 그냥 두었습니다.
논지는 동일하지만 세세하게 보면 오타도 있고 강조할 것과 사소한 것이 섞여 있어
정리한다고 했는데 의미가 전달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MN43과 MN44를 계속해서 햇갈려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