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경화장터로
새해 사흘째로 수요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어제 용지호수 산책로에 본 애기동백으로 시조를 한 수 남기고 음용할 약차를 끓이면서 아내가 삶아둔 시래기 껍질을 벗겼다. 날이 밝아오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는지라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김정호의 ‘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를 펼쳤다. 전에는 역사나 환경에 관한 책을 자주 접하다가 근래 마음을 다스리는 책으로 옮겨 읽는다.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아파트단지와 인접한 농협 마트에서 알뜰 장터가 열러 고구마를 한 상자 사다 놓았다. 겨울철 간식으로 고구마가 가장 나은데 우리 집에서는 지난여름부터 가을을 보내면서 여러 차례 사다 나른 고구마다. 퇴직 첫해 연이 닿은 분한테 의뢰받은 텃밭을 가꾸어 푸성귀를 비롯해 고구마를 자급자족했으나 공한지 체육 시설물 공사로 텃밭 경작은 한 해만으로 그쳤다.
텃밭은 한시적 경작지라 한 해로 그쳤더니 여가는 온전히 생겨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산천을 주유하고 도서관도 찾는다. 집에서나 이웃과 나누던 채소는 자급되지 않아 시장에서 봐 사 나르나 봄에는 산을 찾아가면 산나물을 뜯어오기에 한 계절만이라도 손수 해결해 왔다. 생선은 마트나 대형 할인점이 선도가 좋은 줄 아나 오일장 장터가 가성비가 좋고 다양해 종종 구매하는 편이다.
3일과 8일은 진해 경화장이 서는 날인데 창원 근동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오일장이다. 다른 계절에도 오일장 장터를 찾기는 하나 겨울에는 산책 동선을 겸해 가끔 다니고 있다. 고구마는 무게가 나가기에 집 근처 마트 알뜰장터에서 사다 놓고 생선은 경화장에서 사려고 미뤄 놓았다. 고구마 상자를 집으로 옮겨 놓고 곧바로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 진해로 가는 151번 시내버스를 탔다.
안민터널을 통과한 시내버스가 태백동을 둘러 경화장 입구를 지날 때 내렸다. 홈플러스 맞은편부터 경화역에 이르기까지 주택지 가운데로 비스듬한 일자형 도로에 닷새마다 장이 섰다. 행암 탄약창으로 가는 경화동 철길 부근에도 노점이 빼곡해 근동에서 오일장으로는 규모가 컸다. 이른 아침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고 장터는 물건들이 가득 펼쳐져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가 시장을 봐 갈 생선을 중심으로 진열된 상품들을 둘러봤다. 전에는 맑은 술이나 곡차를 마시려 명태전을 구워 파는 박장대소 주점으로 들었으나 이제 술을 끊어 찾아갈 일이 없었다. 대신 할머니가 파는 도토리묵을 한 모 샀다. 도토리 전분만으로 빚은 순제품이 아닌 줄 알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도토리묵이 든 봉지를 들고 속천항과 바다가 바라보인 소죽도 공원으로 나갔다.
청청한 해송이 에워싼 정자로 올라 바닥의 나무판자에 퍼질러 앉았다. 집에서 준비한 과도로 도토리묵을 잘라 묵장을 끼얹어 젓가락을 들었다. 야외에서 특식으로 삼을 만한 점심을 요기하고 정자에서 내려와 장천 산업부두로 가는 방파제 따라 걸었다. 해안에는 아침에 일지 않던 바람이 일어 점차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산업부두를 앞두고 발길을 돌려 에너지 환경공원으로 왔다.
이동 단독 주택지 골목을 거쳐 다시 경화동 장터로 갔다. 저잣거리는 서너 시간 전보다 손님들이 늘어나 북적거려 활기가 넘쳤다. 아까 봐두었던 생선 좌판을 중심으로 시장을 구경했다. 겨울철인데 비닐하우스에서 키웠을 딸기도 보였다. 내가 사 갈 생선도 군데군데 펼쳐 놓아 선도가 가격을 살피면서 지났다. 중년 부부가 표고버섯을 팔아 최상품을 한 봉지 사서 배낭에 채워 담았다.
이제 생선을 골라 사는 시간이었다. 먼저 한 할머니가 정성 들여 손질해 반건조시킨 조기를 한 무더기 샀다. 다른 노점 아주머니한테 동태와 고등어를 샀더니 봉지가 묵직했다. 장터를 빠져나온 어디쯤에서 한 사내가 팔던 갈치까지 샀더니 손에 든 봉지가 무거워졌다. 구 경화역이 멀지 않을 찻길로 나와 창원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서 안민터널을 통과해 집 근처에 이르러 내렸다. 2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