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아이들의 마음에 가장 강력한 작용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부모들의 감정 상태이죠.
언젠가 본 기억나지 않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을 좌지우지했던 것은,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화가 난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지, 웃고 있는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지
에 대한 문제였다.
정체성이 미약한 어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같이 지내는 어른들의 영향력 아래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영향력으로
집안의 재력이나 사회적 위치 등을 꼽는 견해가 대부분이지만,
그런 건 세파에 찌든 어른들의 생각일 뿐,
막상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감정 상태야말로 자신의 내적 상태에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입니다.
운명공동체 = 감정공동체
가족은 운명공동체입니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그 결속력은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아직 어린 아이일 때는, 운명의 대부분이 부모들과 반강제적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모가 선장, 자녀들은 선원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되죠.
이 사회에는 낙수 효과(위가 잘 돼야 아래가 잘 된다)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만연한데,
선원이나 자녀들처럼 조직의 구성원들이 그들의 리더를 바라볼 때,
리더가 강력한 힘을 지니고 부와 권력을 지녔는지가 얼마나 중요할까요?
리더가 잘 나간다고 해서, 과연 구성원들까지 높은 만족감을 지니게 될까?
실제로 조직 구성원들의 일상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포인트는
윗사람이 얼마나 공평하고 합리적인가? 윗사람의 정서적 안정성과 기분 관리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
와 같은 심리적 문제들이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즉, 팍팍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부자 부모보다는
긍정적이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보통의 부모가
아이들의 심리적 건강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상담가 A가 내담자 B와 만나고 있었다.
B는 굉장히 내향적이고 예민한 사람이다.
B : 선생님, 하루는 저희 일곱살짜리 딸이 저에게
아빠는 왜 이렇게 웃지 않아? 한 번도 나한테 웃어준 적이 없는 것 같아.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물론, 그렇진 않겠지만, 제가 평소에 얼마나 안 웃었으면 저런 소리를 할까 싶은 거죠.
A : 저런!!! 아이들의 감정선은 온전히 아이들 자신 것이라기보다는
부모와 강력하게 이어져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B : 제가 평생을 이렇게 감정 표현 없이 살아왔더니,
의식을 해도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구요.
그런데 어느날은 아내와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웃겨서 한 5분동안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거든요?
그랬더니 저희 사이에 있던 우리 딸이 자기도 5분동안 너무 해맑게 깔깔대며 웃는 거예요.
그 모습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제가 그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이렇게 웃기만 해도, 우리 아이가 이렇게나 행복해 하는구나.
나는 이제까지 왜 이렇게 아이에게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모습만 보여줬을까?
A : 굉장한 경험이네요.
때론 전문가들의 백마디 말보다 내가 겪은 한가지 사건이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죠.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돈과 능력이 사람에게 여유를 만들어 주는 건 한계가 있다.
한계에 부딪히면 오히려 돈과 능력에 매몰된 인생일수록 여유를 잃고 폭주하기 쉽다.
사람에게 내면의 여유를 가져다 주는 건 결국 그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내가 얼마나 감정 조절을 위해 애쓰는가?
평상시 나는 기분 관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들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비로소 인간에게 내면의 여유를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비록 성격적으로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ex. 내향형)
남들보다 더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일지라도,
(ex. 고 신경성, 초 예민성)
감정을 다스리고 내면의 자아를 성장시키는 일은 시간과 노력에 반드시 비례합니다.
노력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여유로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어요.
어린 자녀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싼 아파트를 사고 더 많은 돈을 버는 일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웃고, 한 번이라도 덜 짜증내며,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과 여유를 전해 주는 일인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대학을 결정한다.
요즘의 한국 사회를 참으로 잘 묘사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벌써 우리나라는 이런 식으로 수십년을 살아왔는데,
더 높은 GDP와 더 높은 생활수준을 갖췄으면서도 행복지수는 정작 개발도상국들과 다를 바 없어요.
정상적인 사회라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보다는
아빠의 웃음과 엄마의 따뜻한 품이 더 강조되야 마땅한 것 아닐까?
그렇게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청소년기를 보내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을 할 지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곧 올바른 성장기의 양태가 아닐까?
저도 압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어린 시절의 여유를
내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큰 변화는 오늘의 사소한 행동이 한가지씩 쌓여 이루어지는 법.
한 번의 미소와 한 번의 포옹, 한 번의 사랑한다는 표현.
여러분들의 가정에 감정적 여유와 풍요로움이 늘 가득하기를 응원합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내향인으로서 공감합니다. 알면서도 참 어렵네요. ㅎㅎ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는 진심 모두가 읽었으면 할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