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산에 올라
새해 첫날 월요일로 시작해 나흘째는 목요일이다. 첫날은 본포로 나가 학포로 건너는 다리에서 일출 서기를 받았다. 그 길로 학포 노리에서 임해진 벼랑길을 따라 부곡으로 가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왔다. 부곡까지 30리 길인데 도중에 인도가 확보되지 않은 차도를 걷는 노인이 안쓰럽다고 맞은편에서 가던 운전자가 차를 되돌려 나를 온천장까지 태워주어 실제 걸은 거리는 적다.
초이틀은 날씨가 따뜻함에도 도서관에서 독서삼매에 빠져 보냈다. 우천이거나 혹심한 더위나 추위가 닥치면 도서관을 찾았는데 새해 이튿날은 조용히 사색에 잠겨 책장을 넘겼다. 그동안 강둑으로나 산자락을 많이 누벼 불편을 느끼는 무릎과 다리에 휴식을 주려는 배려이기도 했다. 초사흘이었던 어제는 진해로 나가 소죽도 공원을 거닐다가 경화장 장터에서 생선과 버섯을 사 왔다.
불편을 느껴오던 다리를 치료받은 동네 병원에서 열흘 전 상급 병원으로 옮겨 엑스레이를 찍고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타 먹는 중이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기도 한 심인적 요인인지 통증이 조금 완화되는 듯해, 그 시험을 새해 벽두 목요일은 산행으로 검증해 볼 참으로 길을 나섰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정병산을 넘어 자여로 나가면서 무릎 상태를 살필 요량이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제과점에서 빵을 두 개 사 배낭에 챙겼다. 방학에 들지 않은 학생들의 등교와 직장인들의 출근이 마무리된 즈음 퇴촌삼거리에서 창원대학 앞으로 나갔다. 역세권 상가를 거쳐 창원중앙역에서 굴다리를 지나 길상사 입구에서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용추계곡 오른쪽 비음산 지하로 통과하는 열차 선로는 진례터널이고, 왼쪽 창원대학 뒤 25호 국도는 봉림터널이다.
용추저수지와 길상사가 자리한 산기슭 봉림터널 방향에서 오르니 소목고개 약수터에서 창원대학 뒤에서 산허리로 숲속 길은 용추계곡으로 돌아갔다. 십자형 갈림길에서 내정병봉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용추고개로 가는 길을 택했다.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오르자 용추계곡 건너편은 날개봉이 비음산으로 이어졌다. 산마루 십자형 산마루에서 곧장 우곡사로 넘으려다 마음이 바뀌었다.
종아리와 발바닥에 느낀 통증이 그리 심하지 않은 듯해 내정병봉을 거쳐 정병산으로 종주해 볼까 싶었다. 다리 불편 여부를 떠나 내가 그쪽으로 다녀보지 않은 지 십 년도 넘는 듯했다. 오래전 초등 남녀 동기들과 나선 산행 이후 가보질 않았는데 그땐 오십 대였다. 나는 고소 공포가 심해 피해 다녔고 봄철 산나물이나 여름은 영지버섯을 찾아다녀 거기는 채집 대상이 없어서였다.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전방으로 창원 시가지와 훤히 드러난 내정병봉이 나왔다. 돌아서니 자여 일대와 진례와 진영은 물론 한림과 낙동강 물줄기도 휘감아 흘렀다. 우리 지역 겨울 산행에서 설경까지 기대 못해도 나목이 된 나뭇가지 사이로 펼쳐지는 전방 풍경이었다. 그새 산을 오르지 못한 십여 년 사이 높이 솟은 아파트나 없던 차도도 널따랗게 뚫려 강산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등뼈처럼 드러난 암반 능선 따라 독수리 바위에서는 우회 등산로로 비켜 암릉 구간을 지났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기에 정병산 정상에 닿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9시 이전 집을 나와 정상에 서니 2시가 넘은 때였다. 제과점 빵 두 개로 허기를 달래고 물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우곡사로 가게 되면 샘물을 받아먹을 생각이었다가 도중에 진로를 바꾸어 정병산 능선을 탔다.
정병산 정상에서 마산 일대와 낙남정맥 산세를 굽어봤다. 고개를 돌리니 동읍과 주남저수지는 은행잎을 한 장 펼쳐 놓은 듯 대산 들녘과 맞닿은 지면을 차지했다. 초소를 지키는 산불감시원의 길 안내를 받아 촛대봉을 거쳐 용정사로 내려와 용잠에서 시내로 가는 7번 마을버스를 탔다. 39사가 떠난 상가 족발집에서 지난날 연이 닿는 관리자와 친구를 만나 새해 안부를 나누고 왔다. 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