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報復)의 계절"
"All human wisdom is summed up in two words; wait and hope."....Alexander Dumas (1802-1870, French dramatist) '인간의 모든 지혜를 단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으니 그것은 기다림과 희망이다.'
듀마와 Victor Hugo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두 작가로 최고 명예로운 프랑스인들만이 묻히는 파리의 Pantheon 에 둘이 나란히 묻혀있다.
듀마는 백인이면서도 흑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친할머니가 당시 불란서 식민지였던 아이티 출신의 흑인노예였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몽테크리스토 백작'(원제; The Count of Monte Cristo) 과 '삼총사'는 한번쯤은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누구나 친숙한 작품일 것이다.
본문의 대사는 주인공인 에드몽 단테(후에 백작으로 변신함)가 멀리 떠나면서 진실했던 두 젊은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말인데 이 문장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줄거리를 알아야겠기에 간추려 소개하기로 한다.
한 유명 선박회사의 유능한 선원인 주인공 단테는 이른 나이에 선장으로 승진을 하는데 그에게는 아름다운 연인 Mercedes 가 있다.
그의 승진을 시기하는 또 하나의 다른 선원과 그의 연인을 짝사랑 하고 있던 또 다른 인물 하나는 연합하여 단테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는데 부패한 검사 하나가 이 음모에 가담한다 (검사란 인간들은 옛부터 그런 모양) .
무고하게 법정으로 끌려나간 단테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14년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친 투옥생활을 한다.
그 와중에 자신을 시기한 자는 금융인이 되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은 적의 품에 안긴다.
어두운 감옥에서 비탄의 세월만을 보내던 단테의 운명은 한 사람에 의해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정부전복음모에 가담한 죄목으로 투옥된 神父 하나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된다.
신부는 당시 최고의 부자가문의 재정담당이었는데 죽음에 이르게 되자 단테에게 몽테크리스토 섬에 묻혀 있는 보물의 위치가 적힌 지도를 그에게 준다.
감옥에서 풀려난 단테는 섬으로 가서 막대한 재물을 취득하는데 재물로 신분세탁을 하여 그는 백작이 된다.
그 후 그의 처절한 복수극은 시작되는데 그를 모함했던 세 사람은 모두가 멸망에 이른다. 그리고 주인공단테의 옛 애인이었던 Mercedes 도 다른 배신자들의 부인과 자녀들과 함께 모두가 파멸에 이르게 된다.
복수를 완성한 단테는 그후 과연 행복했을까? 복수의 와중에 그는 죄없는 무고한 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몹시 괴로워한다.
복수의 과정에서 친하게 된 두 젊은이에게 자신의 남은 재산 모두를 물려주고 그는 새로 만난 여인 하이디와 함께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가며 두 젊은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본문이다.
Socrates 는 악을 악으로 갚을 때는 또 하나의 악을 행하는 것이라며 악은 오직 선으로만 정복될 수 있다고 했고 성경도 복수는 나의 것이니 너희는 절대로 복수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다.
나를 때린 자를 내가 다시 몽둥이로 때려 그가 피를 흘린다고 하자? 그 처참한 모습을 보며 복수가 되었으니 과연 마음이 기쁜가? 따라서 복수는 인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듀마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Tolstoy 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시간과 인내심을 말한 바 있는데 기대 속에서 기다린다는 점에서 두 문장은 맥락을 같이 한다.
인간의 삶에서 인내로 기다린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든 일에는 적합한 때가 있는 법인데 우리가 어떤 일의 성취를 위해서 적합한 때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내가 원하던 일에 딱 들어맞는 때는 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때가 이르매"라는 말이 바로 그말이 아닌가?
그들의 위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나 산발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넓은 만주벌판을 말을 달렸다고 해서 또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쏘았으며 또는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던졌다고 우리가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것은 아니다.
변하는 열강들의 역학구조와 원자폭탄 투하라는 극적인 사건으로 우리가 독립을 쟁취한 것이다
기다리는 것과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표현만 다를 뿐 둘은 같은 말이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버린 여인이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면 그 장구한 세월을 어찌 기다렸을 것인가?
이재명은 자신이 당선되면 정치보복 같은 행위는 없을 것이라고 기회만 있으면 말했다. 그리고 감사원을 향해 정책감사는 하지 말 것을 다시금 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여겨 내린 계엄령도 정책에 속하는 일이므로 탄핵의 대상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한때는 일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을 좁은 우리에 가둔 돼지 같이 취급하며 더하여 인간을 물리적으로 끌고 가려는 것이 정치보복이 아니면 무엇이 정치보복인가? 국민의 선택에 따라 대통령직을 역임한 사람 치고 너무 가혹한 형벌은 아닌가?
또 한때 여권인사였다는 이유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법절차도 보복의 성격이 짙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올 것이니 권력의 축은 돌고도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기만 하면 곤욕을 치르는 우리의 현실에서 심각한 후진성을 보고 있다. 이재명은 윤석렬을 보며 마치 자신의 운명은 보지 못하는 듯하다.
난세를 맞아 하나님께서는 오묘한 방법으로 실타래를 풀어나가실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His-Story'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8/8/2025 박인철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