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 조성을 시대적으로 보면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이 대부분이고,
발견된 지역을 보면 경주를 중심으로 남부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북쪽으로 갈수록 희소하다.
그나마 중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발견된 것은 대부분 마모와 파손이 더 심하다.
이는 아마도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 마모가 된 것도 있지만
관리보존이 어려웠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보물 제197호로 지정된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상 역시
마모가 심하고 파손이 많이 되어 복원한 석조마애불이다.
찾아 가는 길은 청양 초교 위쪽 우산공원 입구 한국전참전용사 무공기념비가 있는
충령사 우측에봉안사라는 사찰이있고 봉안사 아래쪽에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삼층석탑이 있다.
청양 읍내리 석조삼존입상은 이 보안각 안에 봉안되어 있고,보안각 아래에 삼층석탑이 있다.
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조성 시대: 고려문화재지정: 보물 제197호 조선 시대:
고려 초기크기: 본존 높이 3.10m, 좌협시 상 높이 2.23m,우협시 상 높이 2.25m
소재지: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칠갑산로9길 58(읍내리)
(본존불)청양 읍내리 석조여래삼존입상은 광배(光背)와 대좌(臺座)가 있는
독립된 삼존불상으로 절단되었던 것을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의 불상으로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고 머리카락은 소발(素髮)이다.
얼굴은 직사각형에 가까우며 강직한 인상을 준다.
바로 뜬 눈, 긴 코, 두툼한 입술 등의 묘사로 위엄이 있으면서도
얼굴 전체에는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을 풍기고 있어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법의 사이로 드러난 신체 역시 당당하다.
손 모양은 통인(通印)인데 오른손은 어깨까지 올려 시무외인(施無畏印)을 결하였고
왼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 허벅지 부근에 손바닥을 대고 있다.
통견의 법의는 가슴에서부터 발목 부근까지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면서 내려온다.
그 아래로 양다리에 두 줄의 군의(裙衣) 자락이 각각 표현되어 있다.
이 통견의 법의는 평행한 옷 주름 선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어
몸의 윤곽이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유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불상과 같은 재질의 암석에 조각된 광배는 주형(舟形)의 거신광(擧身光)으로 아무런 문양도 없다.
특히 왼쪽 어깨 윗부분의 광배는 크게 떨어져 나갔다.
대좌는 사각형으로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3개씩 새겨져 있으며,
윗부분에는 불신과 따로 발이 양각되어 있다.
이처럼 대좌 위에 발을 조각하는 수법은10세기에 제작된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좌협시>왼쪽 협시보살은 원래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 부근까지 절단되었던 것을 붙여 놓았다.
허리를 왼쪽으로 약간 틀어 몸의 중심을 본존 쪽으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