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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정계 개편
삼하 8:13-18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삼하 8:13-18 / 다윗은 이제 이웃 나라에도 점점 그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는 북쪽에서 아람 족속들을 치고 돌아온 다음에도 염곡에서 에돔 족속들을 1만 8천 명이나 더 죽였다. 14) 다윗은 에돔 전지역에 주둔군과 총독을 배치하여 그 백성을 자기의 통치권 밑에 예속시켜 놓았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다윗편에 서 계셨기 때문에 다윗은 어디에 가든지 승리하게 되었다. 15) [다윗 왕궁의 주역들(1)]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릴 때에 온 백성을 언제나 법에 따라 올바르게 다스렸다. 16) 그 당시 군대 총사령관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맡고 있었으며, 왕에게 내정 문제를 보고하며 왕의 성명을 발표하던 사관은 아히룻의 아들인 여호사밧이 맡고 있었다.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었다. 외교 문서를 포함한 국가의 모든 문서를 처리하던 서기관은 스라야였다.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다윗의 경호대장이 되었는데, 블레셋 남부에 살던 그렛 족속과 블렛 족속으로 구성된 용병 부대가 다윗의 경호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들도 제사장으로 봉직하였다.
다윗은 이어서 모압을 정복합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를 통해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며 나라의 중요인물들이 세워집니다.
에돔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니라(13-14)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일만 팔천 명을 쳐 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며(13) 에돔에 군대를 주둔시켜 완전히 에돔을 장악해 버립니다(14). 왜 다윗이 유독 에돔 지역을 이렇게 강하게 통치하려 하는 것일까요? 전략적으로 에돔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는데, 남쪽 아카바만의 에시온게벨 항구를 통해서 아랍과 아프리카로 통하는 바닷길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에돔을 통해 보유한 바닷길은 솔로몬 시대에 활발한 무역으로 경제적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왕상 9:26-28).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15-18)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왕이 세워지면 어떤 나라가 되는지를 시편 72편(공의)과 101편(정의)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72편에서는 가난한 자,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왕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01편에서는 사람을 분별할 줄 아는 통치자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왕이었고, 왕에게 아첨하는 무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사람을 분별할 줄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정의와 공의를 행할 수 있는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합니다. 다윗 시대의 국가를 이끌어가는 내각의 역할이 어떤 역할이었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직의 이름들로 어느 정도 추정은 해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군대장관을 배치한 것은 계속해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다윗 시대의 특성상 군대를 통솔하는 장관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사관이 배치됩니다. 사관의 역할은 왕의 명령을 문서로 기록하고 보관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왕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비서실장과 같은 역할로 추정됩니다(16).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 배치되고 서기관이 배치되는데(17) 여기서 말하는 서기관은 율법을 기록하는 서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행정기관을 총괄하는 국무총리와 같은 역할로 추정됩니다. 마지막 18절에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도 용병으로 구성된 다윗의 친위대장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18). 이어서 등장하는 대신으로 다윗의 아들들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대신은 국가의 직을 맡아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왕에게 조언을 하는 조언자의 역할이었을 것입니다(18). 다윗의 내각의 특징을 살펴보면 국가를 운영하는 주요 내각에 제사장이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중심에 신앙이 있었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나라를 다스린다는 다윗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 입니다.
적 용 : 우리가 있는 삶에 자리 어딘가에서 우리는 분명히 리더로 서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공의와 정의로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보아햄의 책에 기록된 네 가지 고기 잡는 비결은 우리가 사람 낚는 일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 첫째, 해를 마주보고 서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마주설 때 그 사람의 그림자는 앞으로 드리워지지 않고 뒤로 숨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둘째, 물고기들의 습성을 연구하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힘듭니다. 셋째, 우리 몸을 숨기라고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인내하라고 가르칩니다. 조급함이 없이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 구하는 바가 끌어 올려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호크마 주석
=====8:13
염곡 - 즉 '소금 계곡'(the valley of salt)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논란이 있다. (1)혹자는 이곳이브엘세바 동쪽의 '와디 엘 밀'(Wady el-Milh)이라고 주장한다. (2)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이보다 더 신빙성있는 곳으로 사해 남쪽의 '에스 셉카'(es-Sebkha)를 제시하고있다. 이곳은 사해 남쪽 아라바 광야의 소금 지역이다. 이 중 (1)번의 견해보다 (2)번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 그 까닭은 다윗이 그의 전성 시기에 이스라엘 지경 내에있는 '와디 엘 밀' 보다 이스라엘 지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에돔을 정벌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Leon Wood).
명예를 얻으니라 - 다윗의 훌륭한 통치력이 그의 군사적인 승리로 말미암아 더욱인정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혹자는 다윗이 정복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이를기념하여 승전 기념비를 세운 것을 의미한다고도 주장하는데 온당치 못한 견해이다(Lange). 왜냐하면 승전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에 주력했던 다윗(11절)이 스스로를높여 그 같은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8:14
수비대 - 이는 속국의 군사적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적 요새, 또는 기지를가리킨다. 6절 주석 참조.
다윗의 종이 되니라 - 이는 에돔이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음을 의미한다(6절). 그런데 이 같은 사건은 장차 에돔이 이스라엘을 섬기게 되리라는 이삭(창 27:39)과 발람의 예언(민 24:18)이 성취된 것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결단코 변개(變改)됨이 없이 때가 되면 온전히 성취됨을 볼 수 있다(삼상 15:29).
=====8:15
공과 의를 행할 새 - '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 )는 공정한재판을 의미한다. 또한 '의'에 해당하는 '체다카'(* )는 하나님의 율법에일치된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두 용어는 다윗이 율법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백성들에게 베푼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즉 다윗은 신정 왕국(theocracy)의 왕답게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과 공의에 입각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이다. 이는 곧 장차메시야로 말미암아 이룩될 그의 나라와 의로운 통치를 예표해 준다(시 45:6, 7).
=====8:16
사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즈킬'(* )은 '기억하게 하는 자'란뜻이다. 아마도 이는 왕의 명령은 물론 기타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중요 사건들을 기록하여 문서화하고 이를 관리하는 직무자를 가리키는 듯하다(Keil & DelitzschCommentary, Vol. II, p.365). 공동 번역은 이를 '공보 대신'으로 번역하고 있다.
=====8:17
사독과...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 다윗 당시에는 대제사장이 두 명 있었다. 곧기브온의 제사장인 사독(Zadok)과(대상 16:39) 예루살렘의 제사장인 아히멜렉(Ahimelech)이다. 이 중 사독은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의 자손이었으며 아히멜렉은 아론의 넷째 아들 이다말의 자손이었다(대상 24:3). 한편, 본절이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삼상 22:20의 내용과 배치되는 듯하다. 왜냐하면 거기에 본절과는 달리 아비아달이 아히멜렉의 아들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자들은 본절의 기록을 필사자(筆寫者)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한다(Movers, Ewald). 그러나 우리는 두 상이한 내용의 기록을 조화시키기 위해 이들의 주장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같은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 두 기록을 조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우리는 아비아달의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모두 아히멜렉이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Keil, Lange, Oehler, Bertheau). 다시 말해서 삼상 22:20에 나오는 아히멜렉과 본절의 아히멜렉은 할아버지와 손자간으로서 동명 이인(同名異人)인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삼상 22:20에 나오는 아히멜렉의 아버지가 아히둡(Ahitub)으로 밝혀져 있는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삼상 22:9, 20).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 '스라야'(Seraiah)는 성경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고있다. 즉 20:25에서는 '스와'(Sheva)로, 왕상 4:3에서는 '시사'(Shisha)로 그리고 대상 18:16에서는 '사워사'(Shavsha)로 각기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같은 현상은 어느 한 단어의 축약형이거나 아니면 각기 다른 필사자에 따른 기록상의 차이일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한편 여기서 '서기관'에 해당하는 '사페르'(* )는 '기록하다', '열거하다', '말하다'는 뜻의 '사파르'(* )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따라서 이는 혹자가 추정하듯 국무장관(Pulpit Commentary)이나 군사 모집자(Oehler)가 아니라 각 행정 부서간의 서신 연락 사무를 담당하던 비서관을 가리키는 듯하다(공동번역, Keil & Delitzsch, Lange).
=====8:18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다만 학자들간에서는 상반된 견해가 되고 있을 뿐인데 곧 다음과 같다. (1)이들을 블레셋의 두 족속으로 보는 견해이다(Ewald, Movers). 이 견해가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은 성경 몇 군데에서 블레셋 남서쪽에 위치한 블레셋 지파를 '그렛'(Cherethites)이라불렀기 때문이다(삼상 30:14;스 2:5;겔 25:16). 그런데 23:23에 의하면 브나야(Benaiah)는 다윗의 시위대 장관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브나야는 블레셋 두 족속으로다윗의 시위대를 조직하고 관할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지나친 모순이다. 왜냐하면신정 국가의 왕인 다윗이 이방인 시위병들에게 들러싸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Thenius). (2)'그렛'과 '블렛'을 다윗의 시위병을 의미하는 단어로 해석하는견해이다(Keil, Lange). 즉, '그렛 사람'(the Cherethites)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크레티'(* )는 '칼로 베다', '죽이다'는 뜻의 '카라트'(* )에서 파생된말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왕의 명령에 따라 중죄인을 처벌하는 사형 집행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브나야가 실제로 이런 일을 집행한 일이 있었던 사실에 의거할 때 이 해석은 비교적 타당하다(왕상 2:25). 또한 '블렛 사람'(the Pelethites)에해당하는 히브리어 '플레티'(* )는 '도망하다', '경주하다'는 뜻의 '팔라트'(* )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왕의 급한 엄명을 받고 먼 지방에 속히 전달하는 보발군(步撥軍), 곧 왕명 수행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대하 30:6).이러한 해석은 고대 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아무튼 이들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은 다윗 왕조를 위해 헌신적으로 충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그들은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유랑길에 나선 다윗을 호위하였을 뿐 아니라(15:18)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에서부터 솔로몬을 보호, 그를 다윗을 잇는 차기(次期)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하였던 것이다(왕상 1:38, 39).
대신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헨'(* )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다. (1)대부분 이 말은 제사장을 뜻한다(창 14:18;출 2:16;레 21:10;민25:25 등). 그러나 여기에서 이 말은 제사장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의 아들들은 유다 지파의 자손들이었으니 아론의 자손이어야 하는 제사장이 될 수는없었기 때문이다. (2)이 말은 '신실한 고문'이란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 즉, 왕상4:5에서 이 말은 '왕의 벗'이란 말과 병행하여 사용되었다. 아마 본절에서도 이 말은백성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왕에게 충성되이 직고(直告)하는 자란 의미로 사용되었을것이다(Keil, Baker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Lange).
< 설 교 >
정의와 공의의 동역자들
사무엘하 8:15-18 / 유관지목사
여러분, 우리나라 역사에서 제일 훌륭한 왕을 들라고 하면 어떤 왕을 들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을 듭니다. 중국 사람들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말할 것 없이 다윗 왕을 듭니다. 다윗 왕은 성경에 그 이름이 제일 많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룻기에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 다윗의 이름이 골고루 나옵니다.
각 나라 국기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기는 태극기, 미국 국기는 성조기, 중국 국기는 오성홍기, 이렇게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기는 이름이 ‘다윗의 별’입니다. ‘다윗의 방패’라고도 합니다. 정삼각형 두 개가 육각형을 이루고 있는 모양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삼각형 하나는 하나님, 세계, 인간을 나타내고 하나는 창조, 계시, 구속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국기에 다윗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만 보아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얼마나 이상적인 통치자로 여기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통치는 어떤 통치였습니까?
15절은 다윗의 통치가 어떤 통치였는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 새
다윗의 통치는 정의와 공의의 통치였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백성을 공평무사하게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새번역성경」은 15절을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백성 모두를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다스렸다.”고 번역했습니다.
일부 백성에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백성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 그래서 다윗은 백성에게 원망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신실하고 진실한 통치였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를 때 할 수 있는 통치입니다.
본문 앞에 있는 7장 18절 이하, 다윗의 기도를 보세요. 대표적으로 28절 앞부분,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이 한 말씀을 보아도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 위해 얼마나 겸손하게, 진지하게 기도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이 때 꼭 필요한 통치였습니다.
사무엘하 8장 앞부분은 다윗이 승승장구하며 영토를 확장하는 이야기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항복을 받았습니다(1절).
모압을 쳐서 그들을 종으로 삼았습니다(2절).
소바 왕과 싸워 그의 군대 대부분을 사로잡았습니다(3, 4절).
아람 사람들에게 조공을 받았습니다(5, 6절).
하닷에셀을 무찔렀습니다(7, 8절).
하맛 왕 도이에게서 은 그릇, 금 그릇, 놋 그릇을 받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9절~12절).
에돔 사람들을 종으로 삼았습니다(13절~14절).
이제 이스라엘은 유랑하던 부족, 굴러들어온 부족에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이 때 꼭 필요한 것이 정의요, 공의입니다.
강한 힘을 갖게 되었는데 정의와 공의가 따르지 않으면 그 힘은 폭력이 됩니다.
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는데 정의와 공의가 따르지 않으면 그 권력은 독재가 됩니다.
경제적인 풍요를 갖게 되었는데 정의와 공의가 따르지 않으면 향락풍조와 사치에 빠집니다.
강한 힘을 갖게 되었을 때 절제하지 않으면 독선과 오만에 빠집니다.
폭력, 독재, 사치. 특히 독선과 오만의 결과는 언제나 비참한 파멸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나라가 넘치는 힘을 갖게 되었을 때 다윗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통치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마6: 33) 통치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다윗은 혼자의 힘으로 이런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군사, 종교, 행정, 각 분야에 적임자들을 임명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들이 자기의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 하는 것으로 다윗을 잘 도왔기 때문에 다윗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군대 문제는 어느 시대나 중요합니다.
다윗 때는 태평성대가 아니었습니다. 밖으로는 이방부족들과 늘 싸웠습니다.
안에서도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유능한 군 시령관이 필요했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군 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요압은 용맹스럽고 유능한 군인이었습니다.
다윗 시대에 적과 싸워 이긴 기록에는 요압의 이름이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요압은 문제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중요한 인물들을 살해했습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때 그의 용맹이 필요해서 참습니다. 그를 계속 중용합니다.
다윗은 세상을 떠날 때 솔로몬에게 여러 가지 유언을 합니다.
그때 ‘요압은 이런 문제가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처리해라.’ 하는 것을 알려 줍니다(왕상2: 5~6) 우리는 다윗이 요압에게 행한 일에서 다윗의 지혜와 인내와 사람을 활용하는 법을 볼 수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죽은 다음에 솔로몬에게 대적하다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16절에 “사관”이라는 직책 이름이 나옵니다.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사관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조에도 사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의 옆에서 왕이 매일 하는 일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의 왕은 그 기록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기록으로 남아서 후대에 전해진다.’ 하면 왕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사관은 또 고문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임금님,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이렇게 하시는 것을 좋을 것 같습니다.’ 임금님에게 이렇게 조언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사관들의 이야기가 여러 군데 나옵니다(왕하 18:18, 37 대하 34:8, 사 36:3, 11, 22).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독과 아히멜렉을 제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사독은 그 이름의 뜻이 “의로운”입니다. 사독의 집안은 제사장의 가문 가운데 가장 명문이 되었습니다. 신구약 중간 시대까지는 대제사장이 사독의 가문에서 선출되었습니다.
17절 뒷부분에 “서기관”이라는 직책 이름이 나옵니다.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우리는 서기관이라고 하면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괴롭힌 사람들이 생각나서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여기의 서기관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라 안팎의 서신 연락을 담당하고, 행정을 담당하고, 문서를 관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성경주석은 ‘서기관은 비서실장과 같은 직책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서기관의 이름이 여럿 나오고 이들이 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기록을 보관하고(렘 36:25-26), 나라 일에 대해 조언하고(대상 27:32),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기록하고(삼하 8:17), 성전 수리도 맡았습니다(대하 34:18).
성전의 헌물을 계수했고(왕하 12:10), 왕의 조서를 작성했고(에 3:12), 유사 시 왕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왕하 18:18). 인구조사의 기록도 서기관들이 기록했습니다(왕하 25:19). 서기관이 왕을 잘 도와야 나라의 일들이 질서 있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소수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소수민족 문제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국에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우리 동포들, 조선족도 중요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국은 소수민족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소수민족우대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는 단일민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소수민족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 앞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지혜로운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윗은 브나야를 시켜 그렛 족속, 블렛 족속 같은 소수민족들을 잘 관할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해 정의와 공의의 통치가 가능했습니다. 다윗의 통치는 독창이나 독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합창이나 교향악단의 연주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지휘자였습니다. 여기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동명이인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사밧이 사관을 맡았는데 구약성경에는 열 명의 여호사밧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맡은 일을 잘 하고 힘을 합했기 때문에 그 시대는 정의와 공의가 행해진 시대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면, 큰 일을 한 사람의 뒤에는 언제나 그를 정성껏 도운 사람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시야 왕,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야기가 열왕기하 22장과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는데서 시작이 됩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그것을 왕의 측근인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습니다.
사반은 그것을 읽고 그것을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그 책의 말을 들은 요시아 왕은 옷을 찢었습니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회개와 애통함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기록된 말씀에 대해 여호와께 물으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사반의 아들 아히감, 악볼, 왕의 시종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여선지자가 훌다가 날카로운 해석을 했습니다.
요시아 왕은 이방예배를 폐지합니다.
이방신들을 위해 만든 모든 그릇을 태워 재가 되게 하고, 이방신들을 섬기던 제사장들을 폐하고, 아세라 상을 불살라 그것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서 평민의 묘에 뿌립니다.
당시 성전에는 몸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남창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집을 헐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유다 왕국의 후반부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밝은 불빛이었습니다.
만일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을 가볍게 여기고 한구석에 놓아두거나 아니면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렸다면 이런 종교개혁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기관 사반이 그 책을 읽고 ‘왕에게 이 책에 대해 보고했다가는 왕의 성격에 틀림없이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테니 보고하지 말아야겠다.’ 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사반의 아들 아히감, 악볼, 왕의 시종 아사야, 여선지 훌다, 이들이 자기가 할 일을 정성껏, 성실하게 했기 때문에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이 아름다운 일이 가능했습니다.
느헤미야,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을 보면 그 일을 도운 사람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누가 어느 문을 중수했고, 누가 어떤 일을 했고, 모두 75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느헤미야 때에도 좋은 사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자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윗과 대조되는 것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 때는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제사장, 서기관, 사관, 군사령관, 궁내대신, 노동 감독관, 열두 지방 관장, 지방관장의 두령(왕상 4:1-6), 왕권이 안정되고 나라가 확장되니 직제가 분화되고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이들이 솔로몬을 도와 나라의 번영을 이룬 것은 좋은 일인데, 성전을 건축한 것은 좋은 일인데 솔로몬이 그렇게 심한 사치와 향락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왜 막지 못했나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 때는 왜 나단과 같이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했을 때 나단은 다윗을 혹독하게 질책했습니다. 다윗은 크게 회개했습니다. 이 회개가 없었더라면 다윗의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다윗이 죽자 다윗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도니아가 선수를 쳐서 ‘내가 왕이다.’하고 즉위식을 했습니다. 이때 나단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솔로몬을 도와 그가 왕이 되게 했습니다.
나단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납니다. 아마 노쇠해서 활동을 못했거나 세상을 떠난 모양입니다. 솔로몬은 나단의 아들 하나는 지방관장의 두령으로 삼았고 하나는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나단이 자기를 도와준 것을 갚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나단의 아들로 제사장이 된 사봇은 왕과 아주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열왕기상 4장 5절을 보면 그는 왕의 벗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버지와 달라서 바른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의 신하들이 바른말을 했더라면 솔로몬이 그렇게 심한 사치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백성들이 무거운 부역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라가 갈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후궁을 칠백 명이고 첩을 삼백 명 두었습니다(왕상 11: 3). 이것이 나라를 기울게 하는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신하들은 왕이 이렇게 여색에 탐닉하는 것을 왜 그대로 두었는지 안타깝습니다.
조선왕조 연산군 때 임금에게 아름다운 여인들을 뽑아 바치는 벼슬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을 채홍사(彩紅使)라고 불렀는데 전라도 쪽으로는 누가 나갔고, 경상도 쪽으로는 누가 나갔고, 이렇게 이들의 이름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솔로몬 때도 틀림없이 이런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하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것이 솔로몬 통치의 오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큰 일은 지도자, 책임자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돕는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좋은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데 한 걸음 더 나가서 동역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다윗은 좋은 동역자들이 있어서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목사가 좋은 교인들, 좋은 교회를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교인들이 좋은 목사를 만듭니다. 좋은 속장이 좋은 속회를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서 우리 모두 좋은 동역자들이 됩시다. ㅜ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통치는 장차 있을 예수님의 통치를 미리 보여주는 모형이라고, 예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어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이루게 했던 것처럼, 교회의 일에 좋은 동역자들이 되어 교회를 부흥시키고, 이 교회가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하고, 나가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일에 동참하는 임원들이 되고, 성도들이 되기를,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백성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린 다윗 (삼하 8:15-18)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오늘 본문은 다윗의 치세에 대한 기록입니다.
1. 먼저 15절에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정의’는 ‘법률적인 의’를 뜻하고, ‘공의’는 ‘도덕적인 의’를 뜻하는데, 이는 다윗의 통치는 모든 백성들에게 율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흠결이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통치는 아모스 5:24에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힘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 정의와 공의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나라들은 사회를 정의롭고 공의롭게 만들기 위해 법을 제정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감옥에 보내기도 하고 벌금을 내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강력한 법을 제정하고 여론을 만들고 한다고 해서 정의와 공의로운 사회가 되었습니까? 오히려 법이 강력할수록 그 틈새를 타고 악이 성장하고, 이리저리 법망을 피하는 요령을 가진 자들만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정의와 공의는 지키려고 결심하고 또 지키라고 강요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살 때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이 정의가 있고 공의가 있는 땅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수백 년 동안 불법과 편법이 지배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이 통치를 하니 드디어 그 땅에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졌음을 기억하고, 여러분들도 다윗의 믿음을 본받아 여러분들이 계신 곳을 정의와 공의가 물같이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는 곳으로 변화시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던 이상적인 왕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꿈꾸던 이상적인 왕은 외적으로는 대적들의 침입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내고, 내적으로는 공의로 통치하는 정의로운 국가를 수립하는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주위의 모든 대적을 정복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냈고, 평안이 도래한 후에는 정의와 공의로 나라를 통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꿈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특히, 16-18절에는 다윗이 ‘군사’ ‘경제’ ‘신앙’ 세 부분이 조화를 이루도록 조직을 구성했음을 보여줍니다. 군사력에만 치중하지 않고, 경제력에만 치중하지 않고, 신앙에만 치중하지 않고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나라 밖의 일과 나라 안의 일, 그리고 신앙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완벽한 조직을 구성했습니다. 물론,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다윗 왕국을 장차 임할 메시아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하는 나라로 그리고 있습니다(사 11:1-16).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성도로서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에서 받은 성령 충만한 은혜와 받은 사명으로 부패한 사회 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신앙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의 예표로 세웠듯이, 우리도 교회 안과 교회 밖에서의 삶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우리가 거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신실한 믿음으로 여러분이 거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영광을 체험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고 오늘 본문에 ‘모든 백성’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다윗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되 모든 백성에게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모든 백성은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12:38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 ‘수많은 잡족들이 함께 동행’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후에도 하나님의 품으로 귀의한 자들은 다 백성으로 받아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라는 표현은 다윗이 왕으로 통치하면서 백성들을 혈통이나 출신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인간적인 기준을 내세우지 않고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일례로,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인정받는 초대교회에도 이미 출신지에 따라 성도들을 차별함으로써 헬라파 유대인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행 6:1). 뿐만아니라, 빈부귀천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일까지 있어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로부터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라는 책망을 듣기까지 했습니다(약 2:1). 그리고 이러한 일은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이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통치하니 이러한 차별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공의와 정의를 몸으로 체험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한 곳에 차별이 사라지고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참 복음의 일꾼으로 우뚝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수백 년 동안 불법과 편법이 지배하던 이스라엘을 다윗이 오직 믿음 하나로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땅으로 변화시켰음을 알아, 저희도 오직 믿음으로 이 나라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 곳으로 변화시키게 하여 주옵소서. 정치 경제 신앙이 균형을 이루며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없는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 사회로 세워져가는 이 나라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정의와 공의를 행하다
삼하 8:13-18 / 푸른교회
다윗이 계속 적들을 물리치고 <명성을 떨쳤다>(13절)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후렴처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그를 이기게 하셨다>(14절)고 합니다. 이렇듯 다윗은 적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응징자였지만 백성들에게는 <정의와 공의>(15절)의 치리자였습니다. 특히 <공의>라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공정한 재판>의 의미합니다. <정의> 또한 <체다카>로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된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어휘는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백성들을 공정하게 다스리고 공평하게 재판하므로 백성들의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돌게 했다는 것입니다. 나라 전반에 기쁨과 즐거움이 조성됨으로써 분위기의 대대적인 일신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모든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는 말씀 속에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그게 때로 고난이 예견되는 하나님의 부르심일지라도 다윗처럼 누구나 선뜻 나서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환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사랑을 위해서라면 손해도 마다하지 않고 그 길이 바로 새로운 시작을 보장하는 생명의 길목임을 고백하는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인간에 대한 정죄행위를 중단하며 그에게는 무한한 용서가 가져다주는 생명의 가능성을 믿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정죄함이란 생명의 기운을 꺾고 대립과 반목을 부르며 결국은 모두를 죽이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모든 대립을 뛰어넘어 오직 남을 축복하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과 같이 <정의와 공의>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덤으로 받은 자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을 압니다. 그런 사람은 욕망과 본능을 충족시키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을 깨닫는 삶이 되고,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다운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의 가치의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다윗처럼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손실이었을까 하고 평가받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서 새로운 존재방식이 무엇인지를 깨우치는 기쁨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적용>
-다윗은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고 했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21세기 현재 이 세상의 <정의와 공의>에 대해 말씀해 보십시오.
-삼하 8장 당시 다윗 군대의 사령관은 누구였습니까(16절)?
-삼하 8장 당시 제사장은 누구였습니까?
<기도>
주님, 다윗은 계속 명성을 떨치며 공을 쌓았고,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 이기게 하셨다고 합니다. 또 다윗은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나라가 더욱 안정되고 대외적으로 이스라엘의 지위가 공고해져 나라의 기틀이 더욱 든든해졌다고 했습니다. 한편 다윗은 나라의 모든 행정조직도 개편하여 새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윗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축복하사 이기게도 하시고 정의와 공의로 치리하게도 하신 것입니다. 저희로 하여금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간섭을 다윗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바르게 배우고 또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다윗이 에돔을 치고 명성을 얻고 어디로가든 형통했다
삼하 8:13~14 / 헵시바
13절.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소금”은 히브리어로“멜라흐”인데, 쉽게 부서지고 용해되는 것으로“소금 가루”을 말한다, 그러나 그 맛은 변하지 않는다,“골짜기”는 히브리어로“가이”인데“높음”을 뜻하는“게바”와 동일한 어원에서”협곡, 계곡, 평평한곳, 저지대“을 뜻한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해 남쪽의“에스 셉카”(es-Sebkha)를 제시하고있다. 이곳은 사해 남쪽 아라바 광야의 소금 지역이다. 그 까닭은 다윗이 그의 전성 시기에 이스라엘 지경 내에있는 “와디 엘 밀”보다 이스라엘 지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에돔을 정벌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Leon Wood).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에돔 사람”은 히브리어로“에도미”인데“붉은”은 뜻하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에돔 곧, 야곱의 아들 에서의 별명이며, 에돔사람이란 그의 후손들”을 뜻한다. 에돔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당시 모세가 에돔 땅을 통과하고자 했을 때 그들은 그 제안을 거부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개입으로 멸망을 면했다(민20:14~21:4, 신2:4~6). 사울(삼상14:47)과,다윗(삼하8:14, 왕상11:14~16, 시60:8~9, 108:9~10) 시대 이곳을 정복했고, 솔로몬은 에돔 땅 에시온 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다(왕상9:26). 분열 왕국 시대에 에돔은 기회 있을 때마다 유다를 배신하거나 괴롭혔다(대하20:10~11, 20~23, 21:8~10, 28:17, 시137:7, 겔35:5, 암1:9~11).특히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앞장서서 침공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형제 나라 유다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대적하고 압제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을 선고받았다(겔32:29, 35:7~9, 15, 36:5, 욥1:8~10, 18). 더욱이 대언서에서 에돔은 미래의 대심판 장소로 예언되기도 했고(사34:5~6, 63:1), 이스라엘 인접 국가들 중 유일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약속받지 못했던 민족이다.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는“평판이 높아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을 의미한다. 히브리어로는“셈”인데“유명해진 이름, 유명한 사람, 영광스러운, 아름다운 이름, 소문난 이름”을 뜻한다. 이것은 다윗의 훌륭한 통치력이 그의 군사적인 승리로 말미암아 더욱 인정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14절.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은 히브리어로“네치브”인데“두다, 자리잡다”을 뜻하는“나차브”에서 유래한 것으로“군 주둔지, 수비대”을 둔 것을 뜻한다.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이것은 속국의 군사적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적 요새, 또는 진영을 둔 것을 가리킨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은 히브리어로“에베드”인데“노동하다, 일하다”을 뜻하는“아바드”에서 유래한 것으로 히브리인 중에서 쓰일 때는“종, 노예”을 말하며, 종들 가운데 가장 신분이 낮은“종들의 종”을 말한다, 또한 속국이나, 조공을 바치는 전체 국민의 낮은 신분을 뜻한다. 그이것은 에돔이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음을 의미하며(6절). 그런데 이 같은 사건은“에돔이 이스라엘(아우)을 섬기게 되리라는 이삭의 대언과(창27:39~40), 발람의 대언(민24:18)이 성취된 것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라는 말씀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삼상15:29).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는 히브리어로“야샤”인데“자유롭게되다, 해방되다, 도움을 받다, 구원하다. 안전하게되다, 보존하다”을 뜻한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승리함
삼하 8:13-14절, 135.367.398장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에 가장 활발한 정복 전쟁의 명수였습니다. 그는 억울하게도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에 의해 10년이 넘는 도피 생활을 한 일이 있으나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그는 탁월한 군사 전력가로서 또는 지휘관으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이후 그는 여러 곳에서 쟁취하는 용맹의 왕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지역을 다 회복하는 축복을 받음으로 그가 확보한 영토는 남으로 이집트 북으로 유브라데까지 이스라엘 역사상 황금 시기를,
이루었던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부와 명예의 기반이 되었습니다.(창15:18절). 우리는 이러한 전쟁의 승패를 단순히 우리 인간의 의지와 또 운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이상의 어떤 섭리 즉 하나님의 도우심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다윗의 생애는 전쟁의 생애로 점철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그가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한 후 대외적으로 국력을 신장하기 위하여 이웃의 대적들과 싸워 이기는 전승의 기록입니다.
1. 이기게 하신 이는 여호와이십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싸워 이겼습니다. 8:1절에 "다윗은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압도 쳐서 이기었습니다.(8:2절). 그래서 모압을 이스라엘에 복속(服屬)시켰습니다. 이것은 예언 성취이기도 합니다.(민 24:17절).
그는 소바왕을 이겼습니다.(8:3-4절). 소바왕 하닷셀이 자기 세력 확장을 꾀하러 가는 길을 다윗이 가로막아 이겼습니다. 그는 아람과 싸워 이겼습니다. 5-8절 중에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왕 하닷셀을 도우러 가는 사실을 알고 저들을 쳐 물리침으로 이방의 세력들이
감히 동맹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에돔과 싸워 이겼습니다.(13-14절). 다윗이 염곡에서 에돔을 쳐 물리치고 명예를 얻고 그들을 다윗의 종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의 승패(勝敗)의 판가름을 하시는 이가 곧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명하신 분이시요.(출17:16; 민31:1-2; 신1:2절),
전쟁의 기술을 가르치신 이시요(삼하22:35절)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는 신이요(민21:3; 신 2:33절). 전쟁을 그치게도 하십니다.(시46:9절). 그러므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한 말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이기는 비결은 무기가 좋거나 무술이 특출하거나 병력이,
많아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하나님을 붙드느냐 즉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싸우는 자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승패는 결코 우연이나 인간의 특출한 재능과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삶의 전쟁에서는 하나님께서 매우 깊이 관여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승과 패를 좌우하시는 것입니다.(대상29:11절). 하지만 불신자들은 어리석게도 자신의 힘으로 승리하는 삶을 꾸려 가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가능치 않습니다. 그들은 활짝 피었다 순식간에 지는 벚꽃과 같은 인생이 될 뿐입니다. 반면에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인식한 사람들은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를 보장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5:4절)고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승리의 모든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반드시 성공하고 형통합니다. 14절에 "다윗 어디를 가든지 여 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였습니다. 다윗은 훌륭한 성군으로 이스라엘의 전무후무한 대 영토를 점령하여 확장하는,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백성에게 환영을 받는 신앙의 왕이 되었으며 온 백성을 평안하게 잘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함께 계실 때 다윗의 번영이 따라 왔다는 말씀입니다. 성공과 실패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임시적인 성공과 또 하나는 항구적인 성공이 있습니다.
한 때는 성공을 했는데 얼마의 세월이 흘러가 버리면 성공이 아닌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한 때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나 세월이 흘러가면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점점 빛이 발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는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까? 바로 하나님의 동사자(同事者)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같이 일하는 자의 일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빛을 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같이 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6:9-10절에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라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했습니다.
3. 다윗은 상승(常勝)자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줄곧 전쟁터 에서 살아온 셈입니다. 다윗이 싸운 대상자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내부적 대적이니 곧 사울입니다. 그러나 사울과의 싸움은 언제나 피하여 도망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감히 대적할 수 없어서 항상 일부러 피하였던 것입니다. 대적하여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어도 무력으로 대항하여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어도 일부러 져 주었으니 지는 자가 이기는 진리대로 다윗은 사울에게 항상 승리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대적은 외부에서 내침하는 이웃 나라를 항상 대적하여 승리하였습니다. 그의 전승 기록을 발기(勃起)하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삼상17:17-54; 18:27), 아말렉과의 싸움에서(삼상27:30), 여부스 사람과의 싸움(삼하5:6), 모압 소바왕 에돔 등 실로 허다한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신 까닭입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전쟁을 하였고 그 결과는 항상 승리하였습니다. 이처럼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전쟁은 늘 승리로 끝맺게 됩니다. 여기서 "이기게 하셨더라"는 소극적으로,
승리한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옮겨지거나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적극적인 의미로 승리는 세상의 근심과 사단의 유혹을 파괴하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승리자는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절)고 선포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다윗이 에돔을 무찌르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사단과 늘 싸워야 하는 성도들의 신앙 생활은 그리스도의 힘을 힘입어 승리하여야 하겠습니다.
4.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원인은 의지와 순종입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얻은 것은 명예입 니다. 여기서 명예는 명성과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추앙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려면 위대한 업적이나 모범이 되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다윗은 에돔 사람 일만 팔천을 죽여서,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이 승리를 기뻐한 것으로 에돔 사람이 악한 자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명예란 이렇게 정당한 일을 하였을 때 주어집니다. 또한 이 명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신26:19절).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성은 사단을 놀라게 하고,
원수를 흩어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 승리로 하나님의 성호와 더불어 성도의 명성이 더욱 높아져서 두려운 존재로 이 세상에 나타나게 합니다. 앞에서 승리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그것을 인정할 때 승리하는 삶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승리의 삶이,
도래하였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을 보면 다윗은 싸움에서이긴 후 획득한 말의 발 힘줄을 끊었다고 했습니다.(4절). 이는 모든 전쟁을 군마(軍馬)에 의지하지 않고 오르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는(신17:16) 다윗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5. 다윗의 전승은 하나님 자신의 힘이었습니다. 6절에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저 유명한 다윗 왕국의 기초였습니다. 다윗 왕국의 힘이었습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실로 다윗 왕국의 자존심이었습니다.
"이기게 하심"은 전혀 자기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위기의 상태에서 전적인 타력에 의지하여 도움을 받고 극적인 구출을 받는 사태를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 단어의 의미를 세기면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는 성경을 볼 때
우리에게 오는 영감의 뜻이 새로워짐을 느낍니다. 다윗의 생애와 걸음은 어디를 가든지 전쟁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의 생애는 어디로 가든지 죽음의 상황이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처한 생존의 상황이 전혀 자기 힘으로이기거나 살아 나올 수 없는 막다른 코너였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더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 다윗과 싸웠던 블레셋이나 모압이나 소바왕이나 아람 사람이나 에돔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이들의 힘과 세력들은 다윗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하였습니다. 거기에다 저들은 다윗을 대적하고 죽이려고,
믿음을 동맹하고 힘을 동맹하는 전술을 썼습니다. 이런 경우는 모두 다윗의 죽음을 만나는 끝장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마치 쏜 화살처럼 적진에 선재 공격을 가하는 용맹으로 접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술로 싸웠습니다. 그 마음의 힘과 육체의 힘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었고, 하나님이 구원하심을 믿었고, 하나님의 선택을 믿었고,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그의 삶의 전 자존심은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저들 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는 권능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약속에 능하신 진실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처럼 죽음과 바꾸는 여러 전쟁 중에 용맹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는 엄청난 자기 승리의 에너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6. 다윗은 전승의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11절에 "다윗이 그것도 하나님께 드리되 저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을…여호와께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전리품 중에는 1)물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금과 은, 놋과 여러 보석 등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조공으로 받은 것도 있었습니다. 2)전승자의 명예도 있습니다. 다윗의 명예는 실로 하늘에 치솟을 정도였습니다. 패전국들에게도 그 이름이 떨쳤고 더욱이 자국민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가 옛날 무명의 시절에도 백성들로부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하는 절대적인 인정을 받은 바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것까지도 그는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떻게 이 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더라"는 사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7. 모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을 경험했을 때 그 승리를 주 신 하나님께 반드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본문이 다윗은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렸다고(12절) 했습니다. 이는 승리를 감사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하는 삶을 주시는 목적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벧전4:11절)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승리의 영광을 먼저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그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승리하는 삶으로 인해 스스로가 교만하게 되고 그 결과 사단의 덫에 걸리게 될 뿐 아니라 나아가 성령님을 무시하고 소멸하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를 경험할 때마다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 인해 지속적인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8. 말씀을 정리합니다. 다윗의 싸움은 곧 하나님의 싸움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삶도 하 나님의 삶이 되도록 그분을 인정합시다.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합시다. 신앙 제일주의의 각오로 삶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돈이나 권력을 의지하지 말고 전정 승리의,
근원 자이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께만 그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어디서나 무엇을 하거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십니다. 아울러 자기 중심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손상된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것은 다윗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여호와께 아뢰었습니다. 올라 가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올라가라 하시면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지 마라 하면 아멘 하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계획을 세우기 전에,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실행하기 전에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진행 중에도 기도. 끝나고 나서도 기도로 마무리하여야 합니다. 여호와께 아뢰고 감사 기도로 마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항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삼하 8:13-18 / 송원영 목사(동은교회)
인생은 게임과도 같습니다.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습니다. 요즘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들려오는 승전보로 인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외에서 금메달을 따 낸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500m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에서 남녀 두 선수가 나란히 금메달을 따내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50M 종목은 육상으로 말하면 100M 달리기와 같은 스테이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종목입니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유럽 선수들과 같이 체력조건이 좋아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종목은 스포츠 선진국 국가들의 독무대였습니다. 특히 미국이 이 경기에 강해서 이제까지 석권했던 종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계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500m 종목에서 남녀가 동반 우승을 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흔히 88올림픽 이후 세대들이 한국으로서는 깰 수 없는 더 나아가 아시아인들로서는 깰 수 없는 불리한 종목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고 있다면서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고 희망석인 전망을 합니다.
88올림픽 이후 세대는 가난하게 자란 세대와는 달리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고 코치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이며 또 체격조건들이 서구인들을 능히 따라 잡을 만한 단계로 좋아졌기 때문이고 한국인들의 특이한 근면성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수영의 박태환 선수나 피겨의 여왕 김연아, 이번에 금메달을 목에 달은 모태범이나 이상화 선수, 3000M 은메달의 이승훈 선수 등은 20-22세의 젊은 88올림픽 세대입니다. 이제는 다른 운동 종목에서도 새로운 기대주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장벽을 뛰어 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믿는 우리도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불가능의 벽을 넘어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성신으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힘으로도 안 될 때, 능력으로도 안 될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1967년 6월 5일 새벽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가들과 힘겨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선재 공격을 했습니다. , 이스라엘의 기지에서 발진한 미라지III 전투기들이 4대씩 편대를 이루어 새벽의 여명에 반짝이는 지중해의 해면을 스칠 듯 날아 수평선 너머 압도적인 공군력의 우위를 자랑하던 이집트의 비행기지들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항공기가 전쟁에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완벽한 기습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작전은 체코 군 출신의 이스라엘 공군 사령관 호드 소장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습니다.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적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으면서, 광대한 사막에 수십 개로 분산된 비행장을 일시에 때려부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랍 공군과 60:1이라는 맞서기 힘든 전력을 가진 이스라엘 조종사들은 바다 위를 스치듯 날아 적의 레이더망을 피해 기습 공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리아와 요르단 공군도 똑같은 기습 공격을 당해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두 나라의 공군비행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데는 단지 25분이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승리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유일신 신앙과, 국론통일, 제공권 장악이 3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이스라엘이 1억이 넘는 아랍 국가들을 제압했습니다. 전쟁 초 이스라엘은 “우리는 공개할 수 없는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이에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과 미국의 정보당국은 극비리에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해 그 정체를 밝히려 했지만 어느 정보기관도 그 최신 병기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습니다.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밝힌 최신 무기는 그들의 신앙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신다면 어떤 싸움에서도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戰爭史(전쟁사) 중에 가장 극적인 전쟁은 기드온이 이끈 이스라엘 군대와 미디안의 수십만 군대와의 싸움입니다. 기드온은 불과 300명의 군병으로 수십만 명을 물리치는 큰 전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승리였습니다.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유명한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사는지, 우리 자신의 믿음을 다시 한번 정검해 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삶의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 계기를 삼아야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6절과 14절에 보면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일평생 동안 수만은 전쟁을 치른 군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윗은 적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진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편만 된다면 승리를 거두는 것은 그야말로 누어서 떡 먹는 것처럼 쉽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내편 되게 했을까? 그 비결을 우리는 다윗을 통해서 배워야겠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우선 순위로 두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편이 되고 하나님을 내편 삼으려면 모든 일에 하나님 섬기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보려고 하면서도 하나님 섬기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삼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 섬기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도 존중히 여기실 것이며 하나님을 경멸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 역시 우리를 경멸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섬기는 것을 우선 순위로 두었기 때문에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된 이후에 시골 오지에 방치해 두었던 하나님의 법궤를 그가 사는 궁궐로 모셔오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자신의 재능이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인하여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거장 골리앗을 쓸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러분들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갈 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고백하십니까? 믿음은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들고 나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술의 시인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보다 더 인기 있는 직업이 '변리사'입니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특허나 저작권, 상표권을 보호해주고 법적 분쟁관계를 해결해 주는 일을 변리사가 합니다.
직종이 이러다 보니 활동무대가 국내외를 망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현석 장로라는 신실한 변리사가 있습니다. 이 분이 평신도 시절에 변리사 사무실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국인 고객을 맞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고객을 대접하면서 상담하기 위해 음식점에 갔는데 그 날이 바로 수요일 인 것을 알았습니다. 조현식 변리사는 하나님께 약속하기를 모든 공적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할 것을 다짐한 일이 있었습니다.
변리사의 마음이 갈등으로 사로잡혔습니다. '이 고객을 놓치면 10억 정도가 손해를 보게 되는데 10억을 포기하고 수요 예배에 참석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는 갈등 끝에 언짢아하는 외국인 고객을 뒤로하고 헤어진 후에 급히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로 달려왔습니다. 조 변리사는 교회에서 엎드려 기도하자마자 크게 울었다고 합니다. 10억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돈을 비교했다는 가책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에 하나님께서 변리사 사무실에 크게 축복하셔서 많은 고객을 보내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조 변리사처럼 하나님을 언제나 우선순위로 두어 섬길 수 있습니까? 다윗이 크게 복을 받고 한번도 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섬기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변함없이 아침 일찍 이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살았습니다.
시57:8과 시108:2절에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섬기는 사람은 모든 일을 앞부분에는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 채워집니다.
모든 일의 앞 부분에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 채워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언제나 승리자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 둔 곳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성전을 사랑하여 하나님 성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기 위하여 자신의 궁궐에 성전 성막을 세웠습니다. 당시에는 건물로 된 성전이 없던 시기였고 하나님께서 건물로 된 성전 짓는 것을 허락지 않았기에 성막을 지었고 그 곳에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 모시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기 위하여 성전 짓는 것을 흡족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화려한 상아 궁전에서 지내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초라한 성막에 모시게 됨을 매우 가슴 아프게 여겨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아름다운 성전 건물 지을 것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을 받으셨으나 성전 짓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이유로는 다윗은 수만은 전쟁을 통하여 피를 많이 흘렸기에 피 흘린 손으로 성전 짓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손길로 성전 짓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성전 건축하는 것을 기피합니다. 많은 건축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성도를 주님은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성전 건축을 위하여 헌금하는 것은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투자로 여겨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성전을 건축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하나님 성전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크게 축복 받을 수 있는 성전 건축을 허락지 않으신 것입니다. 성전은 모든 사람의 손을 통하여 짓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내 일생에 성전 지을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지원지가 많아도 하나님은 엄선하여 성전 짓기에 마땅한 사람을 선택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 짓는 일을 허락지 않으신 또 하나의 이유는 다윗이 너무나 많은 복을 받았기에 다윗의 아들에게 성전 짓는 축복을 넘겨주시기 위하여 허락지 않으신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함으로 얼마나 큰 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까지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의 후손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시61: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셀라) 다윗이 얼마나 성전을 사랑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영원히 주의 장막(성전)에 거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멸망 당한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당했습니다. 성전을 사랑하지 안으니 성전은 외적의 침입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지금까지 그렇게 갈망하는 성전재건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전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학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후에 다시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몸을 바로 성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성전의 본체를 사랑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2000년 동안 여러 민족들에게 핍박과 멸시를 당하면서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 다녀야만 했습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성도에게 이김을 주십니다. 성전은 바로 하나님 집이자 내 집입니다. 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과 같은 곳입니다. 천국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인 성전을 지극히 사랑해야만 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의 위험을 무릎 쓰고 하루에 세 번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결국 다니엘도 그를 죽이려는 정적들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승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성전을 사랑하십시오.
믿음 좋은 처녀가 결혼을 하고 남편의 고향인 전주로 내려가 가정을 꾸몄습니다. 시어머니는 불교를 열심히 섬기는 보살이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처음에는 몰래 교회를 나갔는데 시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10년 만 참자. 그 후에는 어머니도 수그러질 것이니 그 때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속셈은 '10년쯤 지나면 신앙을 아주 포기하겠지'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는데 부인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부인은 몸만 교회에 안 나갈 뿐 교회의 구역장에게 부탁하여 매주 주보를 받아 가지고 혼자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 또 부인은 약방을 경영했는데, 구역장을 통하여 십일조를 꼬박꼬박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얼마 후 자녀를 삼남매 낳았는데 그 아이들을 모두 교회유치원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행사가 있을 때는 꼭 목사님이나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서 삼남매를 순서에 넣게 하고는 항상 시어머니를 학부형으로 가게 하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교회가 못마땅해 안 가려고 했는데 부인은 "저는 바빠서 못 가니 꼭 어머니가 가셔야지요. 아무도 안 가면 아이들이 얼마나 섭섭하겠어요."라고 하면서 시어머니가 교회에 발을 들여놓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손자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교회에 갔는데 처음에는 뒷자리에 앉아 있었으나 손자 손녀의 재롱에 점점 앞으로 나가 박수도 치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긴 세월이 흘러 10년째 되는 날 부인은 남편에게 정색을 하며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압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결혼기념일? 당신 생일?"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오늘이 바로 당신이 약속한 10년째 되는 날이에요. 그러니 이제 허락하세요. 이제는 교회에 나가겠어요. 그 동안 나는 혼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깜짝 놀라며 '10년 동안 신앙생활을 안 했으니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탄식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어머니 방에 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시어머니가 무릎을 탁 치며 하는 말이 "얘! 한 사람이 예수 믿는데도 이렇게 부자가 되고 집안이 잘되는데 이왕이면 우리 식구 다 예수 믿고 더 부자 되어 잘살아 보자꾸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인이 10년 동안 교회 나가지 않은 것이 썩 잘한 것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집에서 예배하고 십일조를 드린 것은 주님과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었기에 결국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엡6:17 "말씀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용 무기입니다. 예수님도 사탄이 세 번이나 시험 할 때 말씀을 가지고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다윗이 법궤를 모셔온 것도 말씀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했고 천금보다 더 나은 것이 말씀이라고 찬양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입 속으로 흥얼거리며 읊조린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말씀을 붙들지 않은 성도를 손쉬운 상대로 여겨 넘어드립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성도를 가장 무서워하여 슬슬 피해 갑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의 권세가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적지만 시험 풍파가 적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우리교회를 떠나간 성도들이 종종 큰 시험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말씀의 권세아래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이전 시대에는 말씀이 희귀하여 백성들이 외적의 침입을 받아 강탈을 당할 때가 많아 고통 중에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등장하여 말씀을 힘 있게 증거함으로 말씀에 힘을 얻어 백성들이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온갖 고난과 시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대적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말씀의 검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다윗은 언제나 승리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곧바로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두 번이나 불레셋의 침공을 받았는데 다윗은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삼하5:19,24)
다윗은 언제나 기도가 생활화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시편 중에 보면 기도의 시가 많이 나와있습니다.
시18:6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다윗은 일상생활 중에 늘 기도했지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더욱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기도의 위력과 기도의 체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기도의 체험을 많이 한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들이 연약할 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기회가 됩니다. 찬송을 받으실 그분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그분은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려고 더 가까이 오십니다. 우리들의 궁핍이 크면 클수록 그가 친히 우리의 친구이심을 믿을 수 있는 더 큰 근거를 우리는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70여 년을 살아오며 겪은 저의 체험입니다. "
간절한 기도 뒤에는 언제나 승리가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 유능한 사람이 되려하지 마시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힘쓰십시오. 기도의 보상은 바로 승리의 월계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내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 분의 도움을 힘입어 늘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의 승리
삼하 8:9-14 / by skd1
다윗의 승리, 우리 삶의 이정표가 되다 (삼하 8:9-14)
🌟 승리의 뒤에 숨은 비밀, 함께 찾아볼까요?
사무엘하 8장 9-14절은 다윗의 승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전쟁 승리 기록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영적 교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의 승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이정표를 발견해봅시다.신학 및 종교 연구
💪 어디로 가든지 주께서 이기게 하신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 8:14)
다윗의 승리 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은 바로 이것입니다. 다윗이 이룬 성공의 비결은 그의 뛰어난 전략이나 강한 군사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 삶의 승리는 어디서 오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을 쟁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는 진정한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용기로 전쟁에 임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참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승리하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불릴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이 원리는 변함없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할 때, 그분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승리로 이끄십니다. 직장에서의 어려움, 가정에서의 갈등, 개인적인 고민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승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 에돔 사람이 모두 다윗의 종이 되다
"또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삼하 8:14)
다윗의 승리는 단순한 전쟁의 승리를 넘어, 완전한 항복과 복종을 이끌어냈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권위와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에돔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적대국이었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대립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 에돔이 다윗에게 복종하게 된 것은 단순한 정치적, 군사적 승리를 넘어선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에돔'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지배하려는 죄의 습관, 부정적인 사고방식, 우리를 억누르는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에돔을 정복하셨듯이, 우리의 삶 속 '에돔'도 하나님의 권능 아래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다윗은 에돔에 수비대를 두어 그 땅을 관리했습니다. 이는 승리 후의 관리와 유지도 중요함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특정 영역에서 승리를 경험했다면, 그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비대'를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정기적인 말씀 묵상, 기도 생활, 신앙 공동체와의 교제는 우리 영혼의 수비대 역할을 합니다. 종교 및 신앙 에돔 사람들이 다윗의 종이 된 것처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 놓일 때 참된 평화와 안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승리의 모습입니다.
🎁 전리품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다
"다윗이 하맛 왕 도이의 아들 요람에게서 받은 은금과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을 여호와께 드리니라" (삼하 8:11-12)
다윗의 승리 이야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가 얻은 전리품의 처리 방식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귀중한 은금을 자신의 부와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그는 모든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기에, 그 열매의 가장 좋은 부분을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것은 여호와께 돌려드린다"는 원칙을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과 성공의 열매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오직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은 단순히 십일조의 개념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리품을 구별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우리의 시간, 재능,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의 일부를 다시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은 감사와 신뢰의 표현입니다.양육
다윗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분명히 했습니다. 그의 삶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첫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실 때, 진정한 축복과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다윗의 승리, 우리 삶에 적용하기
다윗의 승리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째, 모든 성공과 승리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인정합시다. 우리의 능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가는 모든 길에서 승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우리 입술에서 끊이지 않게 합시다.
둘째, 우리 삶의 '에돔'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우리를 지배하려는 죄의 습관, 두려움, 불안 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하고,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 두는 삶을 추구합시다. 완전한 승리는 적을 물리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열매를 구별하여 드립시다. 우리의 시간, 재능,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때, 우리는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 묵상과 적용을 위한 질문
내 삶에서 경험한 승리들을 되돌아보고, 그 승리의 진정한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나는 그 승리를 통해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나요?
현재 내 삶을 지배하려는 '에돔'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두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시간, 재능, 물질 등)을 어떻게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별하여 드릴 수 있을까요?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승리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에서 주님만을 의지하며, 우리를 지배하려는 모든 것들이 주님의 권세 아래 복종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신 모든 축복을 감사함으로 받고, 그 열매의 가장 좋은 부분을 다시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의 적용점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운 것을 적용하기 위해, 이번 주에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 저녁, 그날 경험한 '작은 승리'를 기록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인정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나를 지배하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습관을 하나 선택하여,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매일 드려봅시다.
이번 주 수입의 일부를 특별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일에 드리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사용해봅시다.
다윗의 승리 이야기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우리 삶의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셨듯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기억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