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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오든(W. H. Auden, 1907-1973)/후고(後考) 옮김
그는 목적지를 향하여 항해하여
잔잔하기만 한 그의 집에 닻을 내리고 아내에게로 갔다.
그는 자신이 마치 다른 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처소로 갔다.
그는 선(善)이신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고는
두려움을 버리고 선(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를 혼 곶(Cape Horn)에서 파선시킨 것은
‘이 바위가 에덴의 바위이고 배가 여기서 파선했다.’고
주장하는 바로 폭풍(暴風)의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둥으로 귀가 먹게 되었고
번갯불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는 보석을 찾아 헤매는 미친 영웅처럼
희귀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자신의 성(性)을 속였다.
그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끊임없이 돌아다니던 소문에도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은 밝혀지지도 않았고 거짓이었다. 진실은 간단하다.
악마는 보통 평범한 모습이며 항상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잠을 자며, 우리와 함께 밥도 먹지만,
우리는 매일 하느님께 인도된다.
졸작들만 있는 화실(畵室)에서도
그는 빌리(Billy Budd)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장기(長技)인양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이 만날 때마다 같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연인처럼 보였던 악마는 속수무책이 되고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말다툼은 끊임이 없었으며
우리의 눈에는 싸우는 두 사람 모두 패배자였다.
이제 그는 깨어나서 꿈속이 아니면
아무도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악몽은 인간은 벌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엄청난 폭풍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현존을 만날 때마다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를 당신의 품에서
사뿐히 내려놓으시고는 떠나가버리셨다.
그는 좁은 발코니에 서서
어릴 때처럼 그의 머리 위에 있는 모든 별들이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옛날과 같은 감동은 없었다.
이제 산들의 고요함처럼
“나타나엘은 이기적인 사랑을 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였다.”는 말씀이 내려 왔다.
그는 다시 태어나서 기뻐하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외쳤다.
“하느님께서는 빵처럼 쪼개어지셨다. 우리 모두 빵 조각들이다.”
그런 다음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자서전을 써내려 갔다.
<Herman Melville>
Towards
the end he sailed into an extraordinary mildness.
And anchored in his home and reached his wife
And rode within the harbour of her hand,
And went across each morning to an office
As though his occupation were another island.
Goodness existed: that was the new knowledge.
His terror had to blow itself quite out
To let him see it; but it was the gale had blown him
Past the Cape Horn of sensible success
Which cries: 'This rock is Eden. Shipwreck here.'
But deafened him with thunder and confused with lightning:
– The maniac hero hunting like a jewel
The rare ambiguous monster that had maimed his sex.
Hatred for hatred ending in a scream,
The unexplained survivor breaking off the nightmare -
All that was intricate and false; the truth was simple.
Evil is unspectacular and always human,
And shares our bed and eats at our own table,
And we are introduced to Goodness every day,
Even in drawing-rooms among a crowd of faults;
He has a name like Billy and is almost perfect,
But wears a stammer like a decoration:
And every time they meet the same thing has to happen;
It is the Evil that is helpless like a lover
And has to pick a quarrel and succeeds,
And both are openly destroyed before our eyes.
For now he was awake and knew
No one is ever spared except in dreams;
But there was something else the nightmare had distorted –
Even the punishment was human and a form of love:
The howling storm had been his father's presence
And all the time he had been carried on his father's breast.
Who now had set him gently down and left him.
He stood upon the narrow balcony and listened:
And all the stars above him sang as in his childhood
'All, all is vanity,' but it was not the same;
For now the words descended like the calm of mountains –
– Nathaniel had been shy because his love was selfish –
Reborn, he cried in exultation and surrender
'The Godhead is broken like bread. We are the pieces.'
And sat down at his desk and wrote a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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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인 오든은 ‘그’가 되어 아담이 하와의 유혹에 빠져들었듯이
동성애의 유혹에 빠져 방황하며 살다가 회개하고는
결국 아내에게로 돌아갔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든은 허먼 멜빌의 소설 『빌리 버드(Billy Budd)』의 주인공
빌리 버드를 이용하여 자신이 동성애자였음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이 시(詩)를 썼습니다.
빌리 버드는 ‘힘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추었으며,
입을 열지 않아도 주변의 사람들을 달래는 덕성이 풍겨져 나오고
모두가 그를 사랑하여 누구나 빌리 버드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체적 힘, 아름다움, 그리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역량에 이르기까지
빌리 버드는 문자 그대로 ‘덕성의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덕성에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
즉 거의 ‘때 묻지 않은’ 순진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절을 교육받은 적이 없었으며’
‘자연 그대로의 표정의 순수함’을 잃지 않은 존재로
‘시골에서 자라 옮겨 심어진 소박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자연인으로서의 성격과 이어지는 특징으로,
‘그는 글을 모르는’ ‘순진무구함’의 결정체였으며
의심할 줄 모르기에 타인의 말과 행위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극심한 말더듬이가 된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빌리 버드는 사실상 언어를 통해서는
어떠한 소통도 나눌 수 없는 ‘야만인’인 셈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항상 표층의, 혹은 제스처와 같이 ‘투명한’ 형태의 의사소통만이 가능하기에
‘문제의 지식의 사과’를 따먹을, 혹은 ‘타락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절대 타락하지 않았던 야만인
즉 덕성의 인간이었던 빌리 버드를 아담과 연계시키고
오든 자신과 같은 동성애자와 결부시켰습니다.
소설에서는 선원들을 감찰하는 역할을 맡은 선임 위병 하사관인
동성애자 존 클래거트(John Claggart)가 빌리 버드에게 동성애를 요구하자
빌리 버드가 거부하고 클래거트가 모함을 하자
빌리 버드가 그만 크래거트를 죽이고 맙니다.
자신이 동성애를 끝낸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천국에 가는 티켓을 받아 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 밖에 선한 사람이 없으므로'
우리 인간이 '의롭다'는 것은 '거룩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과연 우리들은 거룩할까요?
기복 신앙에 빠져 잇는 우리를 두고
본 훼퍼(Dietrich Bonhöeffer)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敵)이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 은혜,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聖晩餐)이다.
그것은 교회의 무진장한 저장고에서 몰지각한 손으로
생각 없이 무한정 쏟아내는 은혜다.
그것은 대가나 값을 치르지 않고 받은 은혜다.
죄를 뉘우치지도 않고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세상은 자신의 죄를 덮어줄 값싼 덮개를 값싼 교회에서 얻는다.
값싼 은혜는 하느님의 생생한 말씀을 부정하고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값싼 은혜는 죄인을 의롭다[義認] 하지 않고 죄를 의롭다고 한다.
은혜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
모든 것이 케케묵은 상태로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값싼 은혜는 우리가 스스로 취한 은혜에 불과하다.
싸구려 은혜는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없는 은혜,
십자가가 없는 은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곧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은혜에 불과하다.”
마틴 루터는 “대담하게 죄를 지어라!” 고 했습니다.
“죄를 지으라고 촉구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더라도
언제나 하느님께서 도우실 수 있는 자리에 있어라!
즉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상태에 있어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모르고 있는 우리들에게
깨달아 자신의 죄를 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한 것은 죄가 아니나
깨닫지 않으면 죄를 지어도 모르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언제나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축복의 좋은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