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머리를 머라고 써야할지. 암튼 잘못했다. 그때 네말대로 2만원을 받아서 갔더라면 난 9시쯤 수원에 도착해 일찍 씻고 네가사준 빅맥을 먹은후 달콤하게 잠을 청할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생긴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단지 2만원을 꿔서 가는것과 그렇게 하지 않은것, 그 단순한 결정에서 이렇게 다른 길이 있을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더이상 부산 지하철이라면 넌더리가 날만큼 복잡한 그 지하속 미로를 헤매고 다닐때만해도 예감할 수 없었다. 어렵게 부산역에 도착해 난 TMO시간표를 보았다. 음..11시10분, 12시몇분, 14시 20분...그리고 없었다. 혹시나 해서 노준호같은 병사가 거기서 업무를 보고있길래 물어보았는데, 그는 준호의 눈빛을 내며 '없어요'한마디를 꽤나 느리게 말했다. 난 다시 그 미로를 헤매 어렵게 창길에게로 왔고, 사우나에서 자고있는 그를 깨웠다. 창길은 '내가 세상에서 젤 싫어하는건 바로 날 귀찮게하는 것이야'라고 말하고 인생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돈까스와 맥주를 선사했다. '다 먹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을테야.'라며 우린 다시 마주 앉았다. 고마움은 둘째치고 난 너무 미안해서 웃음이 막 나왔다. 왜 미안한데 웃음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러고나서 그는 나에게 돈을 꿔주고 다시 경찰서로 향했다. '너땜에 잠이 다 깼어. 가서 또 근무서야하는데 젠장.'이라며 떠갔고, 난 그에게 상병정기때 또 올테니 그때 보자라며 웃음을 띈채로 말했다. 아마 그는 가는 택시안에서 맙소사를 연발했을것이다.
기차에서 난 쓰러지다시피해서 잠이 들었다. 도착시간은 23시30분이었고, 난 꿈까지꾸며 그 시간을 무조건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며 간간히 스포츠신문을 네종류나 보고 옆에 앉은 어느회사원과 얘기도 나누었다. 나를 군인아저씨라고 불렀지만, 물론 그가 더 아저씨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는 곧 자기가 결혼하는데 뭔가 정리가 안된것 같다며 그런 심각한 얘기를 나한테 마구 퍼부었다. 사랑이, 그리고 조건이 어쩌구저쩌구하며 말하는 그의 얼굴엔 슬픈 표정이 가득했다. 문득 그의 말중에서 귀에 꽂히는 것이 있었다. '아직 첫사랑을 사랑하는것 같아요.' 아니 그럼 이자식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얘긴가. 좀더 듣고 나니까 결국 조건을 보는건 그자식이었고, 그는 그런 자신이 꽤나 못마땅한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결혼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어쩔려고... 아니 근데 왜 이런얘기를 군바리한테 하는거지? 아니 왜 나한테 얘기하는거지? 생각해보니 그가 나한테 그런말을할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내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뭐라고 말해줄 이유도 전혀 없었다. 그치만 옆에서 계속 들어줘야 한다는게 여간 힘든것이 아니었다. 이젠 지 첫사랑얘기까지 할려고 하는데, 난 잠시만요라고 하구 담배를 피러 나갔다가 20분쯤후에 돌아왔다. 그새 그는 전화를 하고 있길래 속으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끊기전에 자야할것 같아서 눈을 감았다. 근데 잠은 안오고 전화통화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5분, 10분 지나도 그는 계속 통화했고, 너무나 즐거우면서도 차분한 톤으로 통화하기에 나는 그 소리에 맞춰 잠이 들려고 하고 있었다. 꿈에서 나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는데 옆의 여자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객들 역시 다 모르는 사람들만 득실거리고 있었고, 내 결혼식인데 나를 빼고 나를 아는사람이 없었다. 뭐 이딴꿈도 다 꾸는지...
얼마가 지났는지 나를 그가 깨우면서 수원이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방금까지 첫사랑과 통화를 했는데 어쩌구 저쩌구... 난 아직 잠결이라 잘 듣지 못하고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속으로 아뿔싸!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자식 기어코는 일을 저질렀구나. 결혼 며칠전에 첫사랑에게 전화를 해서 뭐 어쩌겠다는 거냐. 사랑했다라는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냐. '마지막엔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끊었어요.' 미친놈. 하건 말건 너랑나랑 무슨 상관이야. 난 기차가 서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렸는데, 창가에 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굉장히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한테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근데 그 얼굴이 내가 너무나 보고싶고 그리워하던 얼굴이어서 얼떨결에 나도 손을 흔들고 말았다.
수원역은 많이 바뀌어 있었고, 난 역에서 나와 찬바람을 마시고 있었다. 마치 기차안에서 무슨 영화한편을 본것같은 이상한 기분이 아까 꾸었던 씁쓸한 꿈과 맞물려 마치 이등병때 처음 전입온날 처럼 너무생소하고 긴장이 되었다. 한마디로 적응안되는 기분이었다. 담배 한대 피고 집에 오는길에(막차를 겨우탔다. 3개월사이 정류장이 바뀌어있었던 것이다. 너무 많은것들이 변해있었다. 젠장) 그자식 그 행복한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사실, 씨발 부러웠다. 그나이에 그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것도 그렇고, 그런 표정을 지을수 있다는것도 부러웠다.
이게 다 그 2만원을 애초에 받지 않아서 생긴 일들이다. 너무 걸어서 발 뒷꿈치엔 물집이 생겼고, 박창길과의 친밀도가 더욱 상승했고(상병정기때 또 보자.), 이상한 남자도 만났고, 피곤하고 그랬다. 이제 말좀 잘들어야겠다.
첫댓글 군바리 남광우씨의 하루
지금찜질방인데이글을내가쓴거냐?이제보니정말길구나누가보면할일존나없는줄알겠다이컴퓨터는스페이스도안되참짱나는군이런젠장-.-;;
첨에 넘 길어서 안읽으려고 햇다...ㅡㅡ 짐승새끼 나름대로글재주 잇네.. 잼잇게 봣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