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면서 제주도를 돌아다녀 보면 해안가에서 많은 동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해안가를 따라 수십 개의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은 단순한 천연동굴이 아닙니다. 이 모든 동굴은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결7호'작전을 제주도에서 수행하기 위해 만든 인공진지였습니다.
이런 동굴은 비단 해안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주 전역에 있는 수백 개의 오름 곳곳에도 이런 일본군 진지동굴이 수없이 있습니다.
군사용 땅굴 추정지역까지 포함하면 총 113곳으로 파악된다.
일본군이 일본 본토를 미군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제주도에 만든 동굴은 대략 79개에 달하며, 제주시 지역은 물론, 서귀포, 한림,모슬포,성산,표선,추자까지 제주도 전역에 산재해 있습니다.
사실 일본은 1926년부터 제주를 본격적으로 군사 기지화시켰고, 알뜨르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제주를 가미가제의 발진기지로 만들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에서 출격한 일본군 항공기는 중국의 난징을 연 600기의 항공기로 36회나 공습했으며 이때 투하된 폭탄만 300톤이 넘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에 있던 일본군 무기와 군사시설 출처:미국립문서보관소
일본군은 중국 공습 이후에는 제주도를 미군 항공기와 공중전을 위한 기지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런 항공기 중심 기지였던 제주를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최후의 요새로 만든 것은 44년 일본 해군이 전멸되고 45년 오끼나와가 미군에 점령됐던 시점입니다.
'결1호'부터 '결7호'까지 수립된 일본군 최후의 본토 사수 작전 중에서 '결7호'는 조선방면에서 일본 본토로 오는 연합군을 지키기 위한 최후 거점 지역을 제주도를 선택했습니다. 이에 따라 1945년 4월8일 사령관 나가츠사비주 중장을 사령관으로 하는 일본육군 58군이 제주도로 편성되어 진주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본군은 제주 지역을 군사 요새화 시켜놓기 위해 1945년 1월 1천명이었던 일본군 병력을 7만5천명까지 증강해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었습니다.
제주도에 주둔했던 일본58군 기지배치도 출처:한라일보
일본육군 58군은 초기에는 후방에 은폐했다가 상륙 후 타격을 가하는 전술을 구사하기 위해서 주저항진지와 후방 복곽진지를 잇는 하치마끼 병참도로를 개설했으나 나중에는 철저하게 해안가부터 막는 해안가 봉쇄작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일본군이 만든 진지동굴 중 가장 큰 규모는 북제주군 한경면 청수리의 가마오름에 있는 진지동굴로 총 길이가 2,000m가 넘고 출입구만 33곳이 넘는 총 3층 구조 미로형태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가마오름 진지 동굴은 일본군 58군 111사단이 주둔했던 군사적 요충지로 견고함과 군사학적으로 뛰어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제주의 수많은 동굴진지들을 누가 건설했느냐는 점입니다. 일본군은 당시 제주도민을 무차별적으로 차출하여 비좁은 갱도를 파서 산 전체를 방어할 수 있도록 혹독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비록 미군에 항복함으로 최후의 결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일본이 끝까지 전쟁을 벌였다면 아마 제주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지형과 제주도민 소수만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이야기했던 부분만 봐도 제주 전역에 있는 일본군 진지동굴은 군사 및 역사학적으로 매우 뜻깊은 유적인 동시에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아픈 역사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본군 진지동굴이나 유물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을까요?
제주에는 수많은 박물관들이 있지만 실제로 이런 유물을 제대로 지키는 박물관은 '제주 전쟁역사평화 박물관 (이하 평화박물관)'이 유일합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등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전쟁역사평화박물관 출처:평화박물관 홈페이지
가마오름 평화박물관은 겨우 한 두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통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통로를 가다보면 10평 내외의 방과 회의실, 숙소, 의무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가마오름이라는 오름 자체가 전체 요새로 되어 있을 정도로 촘촘하게 마치 우리가 월남전 영화에서 흔히 봤던 베트공 진지처럼 되어 있습니다.
일본군 진지동굴 건설을 위해 강제노역을 하는 조선인을 표현한 평화박물관 내부 출처:평화박물관
그런데 이 박물관에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강제 징용당해 진지동굴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조선인의 모습을 표현한 마네킹과 전시 장면들이 조금은 어색하고 약간은 조잡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 관람을 하다가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박물관이 약간 부실한 것은 이 박물관은 국립이나 도립이 아닌 순수한 개인 박물관이기 때문입니다.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관장 이영근 씨 출처:연합뉴스
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은 가마오름 진지동굴에 강제징용을 당한 부친의 생생한 증언을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해서 평화박물관을 건립했습니다. 이 관장은 관광버스 기사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가마오름의 땅을 조금씩 사기 시작했으며, 갖은 고생과 노력 끝에 2002년 부지를 확보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초창기부터 돈이 없이 시작한 탓에 공사는 겨우 2004년 3월에야 1차 완공을 했으며, 자금난에 이영근 관장이 혼자서 진지땅굴을 복원시키고 유물을 모아 박물관 내부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갖은 노력 끝에 나라에서 지원해주지 않고 유지하던 박물관이 일본에 매각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평화박물관은 개관과 운영, 시설 확장 등에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 개관초기부터 자금 압박이 심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의 모 단체에서 계속 매입 의사를 밝히며 매각 협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영근 관장은 자금 때문에 수십억 원의 빚이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한국 측 기업이나 한국인이 박물관을 매입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영근 관장은 '일본측이 박물관을 사들이고 나서 군국주의의 우월성을 내세우는데 이용할까 우려가 많다'라고 밝혔는데, 실제로 일본에서 자신들의 치부가 있는 일본군동굴 기지를 사들여 자신들의 역사적 잣대로 바꿀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즉, 태평양 전쟁의 정당성이나 그 당시 일본군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제주해녀를 독도로 끌고가 낮에는 물질을 밤에는 술시중과
부부관계를 강요했던 사실을 보도한 잡지 '사이포' 출처:제주의 소리
일제 강점기에 조선은 전역이 일본에 수탈과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제주는 일본으로 끌려간 강제징용자가 많았던 지역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까닭에 제주도는 재일교포 친인척이 유독 많은 지역)
여기에 일본이 최후까지 전쟁을 통해 군국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실상을 알 수 있었던 가마오름 동굴 진지는 참으로 귀중한 자료이지만, 국가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이영근 관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지만, 일본에 매각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제주평화박물관 관장 이영근입니다.
그동안 저희 박물관에 애정어린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신 분들께 너무나 죄송한 일이 생길 듯 하여 고민끝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향기로운 봄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는데 이곳 제주평화박물관에서는 아직 찬바람만 가득한 겨울입니다.
이곳 제주평화박물관은 아버지와 저 2대에 걸쳐 일본군 지하요새를 복원하고 각종 유물 및 자료를 수집하여 '04년 2월에 개관한 박물관입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박물관이 세워진지 2년 후인 '06년에 국가의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308호)로 지정받았고, 현재까지 일본군 지하땅굴을 지속 복원하고 박물관을 확장하며 오로지 역사교육의 장으로 청소년들의 나라사랑과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장소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램 하에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문화재를 개인이 관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자본이 필요하였기에 그동안 정부의 관계부서와 기관은 물론, 관련있는 기업과 독지가까지 찾아다니며 국가문화재인 제주평화박물관에 대한 지원과 도움을 호소하였으나, 그 어느 곳도 자금난을 해결 할 수 있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혹스럽게도 일본에서 수차례 매도를 요청해왔었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부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은행 빚이 점차 커져서 수십억에 이르게 되었고 여타 이유로 방문객들의 발걸음도 점차 줄어서 이자조차 갚지 못하여 집도 잃고 가족들이 모두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너무 고민한 나머지 제 윗치아도 모두 빠져버렸고, 아랫치아도 전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저는 우선 가족들을 살려야 하겠기에 일본으로의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의 현장인 문화재를 일본으로 매각한다는 죄의식으로 버티면서 일본으로 매각하지 않기 위해 뜻이 있는 분들의 기부금이나 정부나 지자체 및 기업에 매각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하여 노력하여 보겠지만, 이런 상황이면 그리 오래 견딜 수 없을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조만간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시더라도 이러한 저를 질타하시고 조금이나마 이해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거듭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빕니다.
죄송하며.... 감사합니다....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관장 이영근 올림.
일본군 강제징용자들의 증언을 보여주는 평화박물관 출처: 블로거 바람될래
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은 지금 제주도가 평화롭지만 불과 수십 년 전에만 해도 고통과 악몽의 땅이었기에 그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고 평화박물관을 보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제주에는 유독 일본 관광객들도 많이 옵니다. 귿들이 제주 평화박물관에 와서 제대로 된 역사를 보고 간다면 아무리 일본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한다고 해도, 그들은 일본의 만행과 그 실체를 기억할 것입니다.
일본인 학생들이 단체로 다녀가면서 적어 놓은 글들이 있는 평화박물관 출처:http://blog.daum.net/lavaguelette
실제로 평화박물관에 온 수많은 일본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벌인 만행을 실제 눈으로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은 평화박물관을 유지하기 위해 낮에는 관장으로 밤에는 골프클럽 버스 운전기사로 생계를 유지하면 살고 있습니다. 그가 일본에 평화박물관을 매각하는 것이 경제적 보상과 부를 위해서일까요? 보존은 하고 싶지만, 한계가 온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입니다.
수백억 원의 전화비를 '제주7대 자연경관 사기극'에 쏟아 붓는 제주도가 이런 역사의 현장을 망각한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역사를 잊을 것이고, 잊혀진 역사로 다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평화박물관 광목 방명록에 씌여진 글귀 출처:바람될래
대한민국 안보교육이라는 것이 어떤 일입니까? 그저 보수단체들의 말도 안 되는 궤변만 늘어놓는 자격 미달의 강사들이 강사료와 보수단체 지원금만 받아가고 있습니다.
말로만 안보와 평화를 지키자고 떠드는 자들에게는 수십억 원의 지원금을 주면서 평화박물관처럼 역사적,군사적 유물 가치가 있는 곳에는 지원금 한 푼 없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평화박물관을 지키기 위해 치아가 다 빠질 정도로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공무원도 역사학자도 아닌 일개 개인이었습니다.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닙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평화의 행복을 보여주는 평화박물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 개인의 눈물겨운 몸짓과 간절함을 부디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주 전쟁역사 평화박물관:http://www.peacemuseum.co.kr/
첫댓글 이많은자료는어디서구하나...대단하심....
감사합니다.
일본에팔리면 안되겠지요.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