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호, 자취(일상) 18-103, 트리 샀어요
1. 지난 주말, 통화 끝에 아저씨가 말했다.
“선생님, 트리요. 크리스마스 트리 샀어요.”
겨울에 들어서면서부터 사고 싶다고, 어디에 파냐고 물었던 트리였기에
기뻐하는 아저씨 목소리에 덩달아 설렜다.
2. 박현준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혹시 배종호 아저씨가 트리 이야기 하시던가요?”
“네, 아저씨가 계속 사고 싶어 하셨거든요.
자주 이야기하다가 주말에 드디어 사셨다네요.”
“아, 제가 들은 일이 있어서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선생님이 한번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 월평빌라에서 근무했던 선생님 한 분이
며칠 전 길에서 우연히 아저씨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고는 아저씨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단다.
선생님이 돈이 왜 필요하냐고 묻자 아저씨는 트리를 사야 한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아저씨를 모시고 가게를 찾았다.
그곳에서 파는 트리 가격은 5만 원.
사장님 말씀으로 아저씨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가게를 들러
트리가 있는지 보고 가격을 물었단다.
‘5만 원’. 가격을 듣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저씨는 트리를 샀다고 했고, 길에서 만난 선생님은 아저씨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지난 주말이면 이제 막 12월이 되었을 때고,
주말이라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체크카드에 생활비가 이체되지 않아 잔액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트리를 샀다니. 무슨 돈으로 사신 걸까.
물론 아저씨가 현금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그동안 현금으로 생활비를 드린 적은 없었다.
아저씨에게 현금을 드린 건 교회 헌금이 전부인데, 그럼 헌금을 내지 않고 그 돈으로…?
5만 원이면 적어도 몇 달치 헌금은 되는 돈인데….
괜히 아저씨를 의심하는 것 같고 마음이 불편해 직접 뵙고 여쭈기로 했다.
3. 댁으로 찾아가 퇴근한 아저씨를 만났다.
이 일을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로 꺼내야하나 마음이 무거웠다.
“아저씨,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깐 앉아도 될까요?”
말을 꺼내려는 순간, 옷장 앞에 놓인 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포장이 뜯기지 않은 박스에 담긴 상태 그대로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박스에 붙은 스티커. ‘₩5,000’.
다시 보아도 큰 글씨로 5천 원이라고 프린트되어 있었다.
‘아!’. 말 그대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안도,
표현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아저씨를 의심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감사 같은 여러 감정이 물밀듯이 차올랐다.
아저씨는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크리스마스 트리를 샀고, 전화로 샀다고 말했다.
몇 번이고 말을 꺼낼 정도로 갖고 싶었던 물건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아저씨의 하루를 늘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없기에 염려되는 일이 생기면 덜컥 겁이 난다.
누구보다 아저씨를 믿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그때는 성급히 판단하지 않아야겠다 다짐했다.
2018년 12월 3일 일지, 정진호
임우석(국장): 처음 자취 시작하면서 물건을 엄청(?) 사셨죠. 그간 시설에 살았던 것을 한풀이 하듯. 그러다가 점점 본인이 가진 돈에 맞게 생활하시더군요. 그럼에도 꼭 갖고 싶은 물건은 돈의 액수에 상관없이 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우리도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꼭 갖고 싶은 물건을 사고, 해보고 싶은 경험을 하지요. 그래야 열심히 일하는 보람이 있지 않겠어요? 만약 그 트리가 오만 원이라 하더라도 저는 아저씨에게 “잘하셨어요.” 했을 것 같아요. 물론 전담 직원이 아니라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아저씨의 하루를 늘 가까이 함께할 수 없기에 염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기에 아저씨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배종호 아저씨는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집니다.
월평: “실수·실패할 권리” 정진호 선생님이 몸으로 느끼고 겪으셨네요. 제 친구가 암호화폐로 천만 원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소주 한잔 털어넣고 씁쓸해 한 게 전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