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신 예수님은 당신도 여러 동네에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십니다(1). 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의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가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의 생각과는 달랐는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가 예수님이신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 제자들을 통해서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하시는 일을 보고 알려주라고 합니다.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 이것은 모두 구약성경에서 메시야가 오면 있게 될 것이라 예언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메시야로서 그 예언을 성취하고 계셨습니다(2-7).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요한 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를 예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말3:1).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요한 보다 클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구약의 율법과 메시야를 대망하고, 그분의 길을 예비했지만 예수님께서 앞으로 여실 새로운 시대는 경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한 이후의 사람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거나 읽을 것이며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곧 정말로 요한이 갈망했던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시대에 살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백성은 요한 보다 더 큰 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8-19). 하지만 이것은 옛 시대와 새 시대의 대조를 강화하는 수학적인 표현이지 천국에서도 지위가 있을 것이라고 이해되어서는 안됩니다.
또 예수님은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한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심판 날에 그 도시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그 도시들에 서기관과 율법에 대해서 정통한 사람들이 많았고,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과 기적들을 귀신을 힘입어 하는 것이라고 매도하며 사람들을 선동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로 이어지는 구절(25절이후)에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고 있기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슬기가 있다고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천국의 복음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자들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런 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짊어지게 한 율법의 멍에와 짐은 참으로 사람들에게 수고스러우며 무거운 짐입니다. 본문에서 무거운 짐은 인생을 살다가 겪는 힘든 일이라기보다는 율법의 짐입니다. 은혜가 아닌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을 의미합니다(20-30).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멍에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이 주시는 멍에는 우리가 홀로 짊어지고 가는 멍에가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짊어지시고 가는 멍에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멍에는 소 두 마리가 짊어지는 멍에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멍에는 예수님이 자신이 이미 메고 있는 멍에를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 멍에를 지신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과 함께 멍에를 맵시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안식을 얻습니다. 곧 구원을 얻게 됩니다.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멍에를 지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것과 달리 하나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그 백성들과 함께 멍에를 매고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멍에는 가볍고, 우리를 분명히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 주님은 당신의 멍에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인간적인 방식과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것과 죄와 두려움의 짐을 벗어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천국의 밭(구원)을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멍에를 매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그분과 함께 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