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녘 포구로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다는 새해 첫 절기 소한을 맞았다. ‘대한이 소한네 집에 와 얼어 죽었다.’는 속담도 무색하리만치 따뜻한 날씨다. 산책 행선지를 진해 갯가로 정해 아침 식후 현관을 나섰다. 원이대로나 나가니 버스노선 개편을 앞둔 차도 공사로 어수선했다. 진해로 가는 155번 시내버스를 타고 남산동 터미널을 거쳐 안민터널을 통과해 장천동을 지나 행암 종점에서 내렸다.
행암 들머리 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갯가에 모여든 물닭 떼들을 바라봤다. 물닭은 날씨가 추울수록 활기가 넘칠 텐데 제 기분을 모두 드러낼 여건이 아닌 듯했다. 아침 햇살이 비쳐 코발트 빛은 더욱 푸르게 보인 바다 위에는 몇 척의 화물선이 닻을 내려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원호를 크게 그린 속천항 앞에서부터 아파트단지와 함께 진해 시가지를 에워싼 장복산 능선이 둘러쳤다.
행암에서 예비군 관리대를 지나다 명동으로 가는 306번 버스가 다가와 탔다. 회사명을 stx에서 케이조선으로 바꾼 조선소 구간과 죽곡마을 앞에는 보도가 확보되지 않아 걷기가 불편해서였다. 버스를 탔더니 보행 위험 구간은 금세 통과해 명동 입구에서 내렸다. 마을 안길을 빠져나가니 바다 바깥은 거제 섬들이 에워싸고 포구엔 조업을 나가지 않은 고깃배와 낚싯배가 묶여 있었다.
명동 포구 모래가 드러난 갯가에 한 여인이 낚시꾼이 쓰는 간이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유심히 들여보고 있었다. 썰물이라 정박한 어선의 뱃전이 드러난 곁에 가방과 양말을 벗어두고 맨발로 모래톱을 디딘 채였는데 일광욕을 하는가 싶었다. 포구에 오가는 차량도 인적이 없어 조용하기만 했다. 음지교 건너 솔라타워는 높이만 자랑했지 엘리베이터 안전 점검으로 장기간 휴장 상태였다.
물길이 열리면 건널 수 있는 작은 섬으로는 물때가 아니었다. 폐교된 초등학교 앞에서 소쿠리섬으로 떠나는 도선은 출발 시각이 아니라 닻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낚시 장비를 준비한 태공 몇은 소형 낚싯배를 타려고 했다. 요트 계류장을 비롯한 대규모 항만 개발은 상당한 진척을 보여 완공을 앞둔 듯했다. 애기동백이 붉은 꽃을 피우는 해안선을 따라가니 삼포 포구가 내려다보였다.
마을을 돌아가는 노변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공원이 나왔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소설과는 배경을 달리하는 노래비다. 이은철이 불렀던 가요를 작사 작곡한 이혜민이 그곳 진해 삼포를 직접 답사하고 썼다는 근거는 다소 부족했다. 신발로 단추를 눌렀더니 귀에 익은 음색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다른 대중가요 단추까지 밟으니 ‘동백 아가씨’ 선율이 조용한 갯가에 울려 퍼졌다.
진해 바다 칠십 리와 남파랑 길 구간이 겹친 해안엔 사화랑산 봉수대가 있다. 진해에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봉수대인데 나는 지난해 초가을 무성한 검불을 헤쳐 올라가 본 적 있다. 봉수대 이정표를 지나 제덕만으로 가니 매립지는 신축 아파트가 층수를 높여 가고 있었다. 주말에도 공사가 진행 중이라 베트남과 중국에서 온 젊은 일꾼들과 함께 한식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후 괴정고개를 넘어 달성 서씨 지순 부부 쌍효각을 지났다. 효자비나 열녀비는 흔하나 부부의 효행이 빛나 기리는 비각은 드물어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왼쪽엔 달성 서씨 남편 지순을 기리고 오른쪽엔 경주 이씨인 아내를 기리는 편액에 걸린 사당이었다. 측면에는 작은 글씨로 부부가 실천한 효행을 새겨두었는데 자물쇠로 채워져 있어 살피지 못해 아쉬웠다.
웅천 읍성이 바라보인 남문 지구는 근래 신항만 배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학교도 옮겨와 개교했다. 임진왜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 고문으로 종군한 포루투칼인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린 공원을 지났다. 안골포에도 있지만 웅천에 임진왜란 때 왜구가 쌓은 견고한 석성은 마이너스 역사라도 잊지 않아야 한다. 웅천 왜성은 오르지 않고 웅천 읍성을 둘러보고 창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4.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