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지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 서효인 '여수' 부분
사랑은 몸의 온기나 구체적인 말이 아니라 대개 풍경으로 기억된다. 그 남자가 가만히 바라봤던 끝 모를 수평선, 그 여자가 앉았던 골목 카페의 조명 같은 것으로 사랑은 남겨진다. 사랑은 '장소' 없인 불가능하다.
시간이 지나도 그 몇 개의 풍경만이 박제되고 모든 건 흩어진다. 이별 전의 도시와 이별 후의 도시는 다르다. 같은 장소여도, 우리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모든 것이 망각되지만 그런 날 보았던 거리의 기억만이 가슴에 멈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