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기억
박미정
동네 골목길이다. 넝쿨장미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담장을 기웃거린다.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에서 보아도 꽃 대궐이다. 이곳에 서면 그리운 사람을 만날 것만 같다. 장미의 기억이 유년시절을 부른다. 대구 불로동 허름한 슬레이트집 토담 위에는 5월이면 줄장미가 아름다웠다. 그 옆에는 펌프가 있었다. 한 소녀는 물놀이를 좋아했다. 온몸을 실어 폴짝폴짝 뛰어올라 펌프 물을 퍼 올리면 소녀의 분홍치마도 살랑살랑 바람을 탔다.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 소년이 피리를 불며 천천히 다가왔다. 빨갛게 불타는 것은 줄장미만이 아니었다. 소녀는 부끄러워 무리 진 장미 속으로 얼굴을 가렸다. 감미로운 피리 소리가 쿵쾅대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피리 소리가 멈추었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넝쿨장미가 바람을 타고 춤을 추었다. 펌프 속으로 꽃잎이 자꾸만 떨어져 물 위를 맴돌았다. 담장 안에서 인기척이 난다. 줄장미가 황홀한 이곳에는 그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잠시 후 대문이 열린다. 중후한 노신사가 외출을 하려나 보다. 골목길을 걸어가는 그의 등 뒤로 햇살이 눈부시다. 산들바람이 꽃향기를 몰고 온다. 그 소년이 보고 싶다.
|
첫댓글 소녀의 설레임이 장미 속에 숨어
장미꽃잎 사이로 스며오는 피리소리
순수한 향기가 가득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