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 가족 행사
소한이 지난 일월 첫째 일요일은 우리 집안 7남매 형제자매가 한자리 모이기로 한 날이다. 본래 고향 의령 큰형님 댁에서 얼굴을 뵈려다가 울산과 부산에서 합류하는 작은 형님 교통편이 수월할 창원으로 했다. 도청에 근무하는 큰조카가 승진 관문을 통과함을 축하하는 자리를 겸하는 기회였다. 부산에 사는 막내 여동생은 나라 밖 여행 일정으로 빠져 6남매 부부 12명이 모일 자리였다.
“가난 속에도 칠남매 맏이로 집안 살림을 잘 일구시고 동생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신 마음을 공경해 마지않습니다. 특히 주경야독 성취한 학문과 문장으로 존경받는 문인이 되어 자랑스럽고 큰조카 공직 수행의 밑거름이 되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동생들은 형님 내외분께서 베풀어 주신 한량없는 은혜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살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우 일동”
앞 단락은 행사를 앞두고 아우가 준비한 기념패 내용이고 식당 벽에 걸 현수막과 함께 꽃다발을 준비했다. 우리 집에서는 부부가 동시에 나들이하기는 드문 경우였다. 나는 술을 즐기는 진주 매제에게 건넬 담금주를 한 통 챙겨 나섰다. 재작년 여름 강가로 나가 돌복숭을 따 소주를 부어 두었는데 그새 나는 술을 끊어 쳐다보지 않아 유리병은 먼지가 쌓인 채 베란다에 보관 중이다.
형님 네 분 내외가 여덟 명이고 아래는 여동생 내외니까 나를 포함해 모두 열두 명이다. 1차 집결지 동정동 윤병원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북면 온천장 소고기 전문 식당으로 이동했다. 집안 행사면 으레 운전을 도맡는 이는 창원 작은형님과 진주 매제였는데 차량이 넓어 합승에 불편하지 않았다. 굴현고개를 넘어 나에겐 익숙한 산천을 달려 온천장에 예약된 식당으로 들었다.
종업원이 테이블의 밑반찬을 차리고 가스레인지 불을 켜는 내실에 형제들이 앉았다. 나는 준비한 현수막을 식당 벽면에 서둘러 걸었다. 깜짝 이벤트라 주인공 큰형님 내외와 다른 형제들도 모르는 일이다. ‘큰형님 내외분 축하합니다’ 였다. 진주 여동생 내외를 시켜 기념패와 꽃다발을 들게 해 주인공 큰형님 내외분을 앞으로 모셔서 내가 간략한 경위 소개와 기념패 문안을 낭독했다.
아우들의 박수 속에 큰형님께 기념패를 전하고 꽃다발을 받은 큰형수님의 짧은 인사말을 들었다. 이어 형제들은 조촐하게 차려진 점심상을 들었다. 한우 갈비찜과 떡갈비였는데 임플란트하느라 치아가 부실한 큰형님이 들기 좋은 차림이었다. 내가 즐기던 술을 끊어 술은 건배용 한 잔만으로 족해 뚜껑을 딴 술은 남겼다. 형제들과 외식은 작년 봄 거제로 떠난 가족 여행 후 처음이었다.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며 한 시간 남짓 걸려 식사를 마쳤다. 식후 이동한 찻집은 내봉촌으로 가는 고개 너머 강변 따라 창녕함안보 홍보관으로 향했다. 나는 그곳으로 트레킹을 자주 다녀 눈에 익은 산천이었다. 함안군 홍보관을 둘러보고 풍광 좋은 찻집에서 형제들은 취향에 따른 차를 시켜 들며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찻집에서 나와 차를 몰아 함안보 건너 창녕 길곡으로 갔다.
4대강 사업 희생자 위령비를 둘러 임해진 벼랑 개비리길 ‘개비’를 지나다가 차를 멈춰 내력을 소개했다. 강변 낭떠러지를 사이에 둔 마을의 암수 두 마리 개가 먼저 길을 틔운 이후 사람이 다닌 길이 생긴 유래였다. 학포에서는 구산으로 가 세종과 남매간인 정순공주와 부마 의산군 남휘 묘역을 살피면서 그의 손자 남이 장군 기념관도 둘러봤다. 이후 다음 행선지 주남저수로 이동했다.
봉강에서 용산을 거쳐 재두루미 쉼터를 찾아 저수지 둑으로 올랐다. 들녘에는 재두루미들이 먹이 활동에 여념 없고 넓은 저수지 수면은 몇 마리 오리들이 헤엄쳐 다녔다. 형제들은 저수지 둑 산책로를 따라 탐조관까지 걸으면서 남녘으로 날아와 겨울을 나는 철새들을 살폈다. 날이 저물기 전 감자옹심이로 이른 저녁을 먹고 차량에 분승해 시내로 들어와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2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