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엄마! 나 통장 만들었어!"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의 대답이 나의 귓구멍에 파고 들었다.
"이번에는 제발 좀.. 저금 좀 해라.. 응?"
"..-_-네."
그랬다.
사실 나는 통장을 많이 만들어봤다.
초등학교 때 한개-_- 중학교 때 한개.. 고등학교때 한개-_-;
푸하하. 세개 씩이나 만든거단 말이다. 푸헤헹.
문제는.
통장만 만들고 돈은 하나도 넣지 않았다는 거다.
그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_-;;;
그..글쎄..
-_-;; 기억안난다.
분명.. 오락실 가거나 피씨방 가거나.. 뭐. 그랬겠지.
-_-
이제 돈을 벌어야 할 차례였다.
아버지 한테 가서 싹싹 빌어야 겠다.
***
미칠듯한 스피드로 피씨방에 도착한 나.
"아부지!!"
카운터에 계셔야 할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카운터와 제일 가까운 곳에서
연신 마우스를 클릭하고 계신 아버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음.. 역시.
"아부지."
"지금 바뻐!! 말시키지마! 보스몹 잡는단 말이닷!!"
"...-_-;"
한참 뒤에야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용건이 뭐여?"
"나, 여기서 아르바이트 할께."
"공부는 어쩌고?"
"돈이 좀 필요해서. 오래는 안할꺼야."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시는 듯 하더니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고는 말했다.
"그래. 시간당 1500원."
"...소비자보호센터에 신고한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하는 아버지.
"..가족끼리 자비심이없구만."
"아버지야 말로!-_- 시간당 2천원만 받을께!"
백번 양보한 금액이었다.
요즘 시간당 2천원 짜리 아르바이트가 어딧다고.. 적어도 2500원은.. 줘야지..
뭐, 그래도 집안일 한다고 생각하고 하는 거니깐 뭐.
"뭐, 그래 좋다. 시간은?"
"아버지가 게임에 몰두하느라 새벽에 잠을 못자니까 내가 아침까지 콜할께. 4시 부터. 9시까지.."
"오오오.. 역시 내 아들. 대단해!"
"응. 그럼 내일 새벽부터 출근할께."
역시 우리 아부지는 화끈하시다니깐. 크흘흘.
시간당 2천원에 하루에 만원.
좋았어. 그래. 하루에 만원만 저금 하는거야.
근데.. 새벽 4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_-
내가 이 시간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8시 30분에 문여는 은행.
9시에 일을 마치는 나.
하루 일당으로 챙겨 받은 뒤에 그대로 그 돈을 들고
바로 은행에 입금해버리는거닷.. 캬하하.
그러면 은별씨 얼굴도 보고~ 돈도 저금하고!! 이런걸 바로 사자성어로 일석이조! 라고 하는 것이지!
푸하하하.
-_-
첫쨋날.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는 은행으로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폐인 스러운 몰골인데.. 밤셈 덕분인지 더욱 폐인이 되어버렸다 -_-
난 익숙한 솜씨로 번호표를 뽑아들고서 은별씨 앞으로 다가갔다.
"꺄아아악!"
"헉. 왜그러심니까!"
"얼굴이 왜 그래요!?"
"-_-;;;;; .....그..그런 식으로 질문하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참 난감합니다...-_-"
"..아.. 죄송해요."
"일하느라.. 이렇게 됐어요. 자요. 여기 만원!"
"아..네.."
이제 어느정도 은별씨와 대화도 가능하다. 감격. ㅠ_ㅠ
그래.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는거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난 그날도 퇴근을 하고서 곧장 은행으로 향했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은행문이 닫혀있는게 아닌가!
알고보니 일요일이었다.-_-
이런.
아버지한테 말해야겠다.
토일은 그냥 쉬겠다고.-_-;;;
그러길 한달이 흘렀다.
이제 어느덧 은별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내가 찍접대는 대사를 날리지만 않으면 그녀와의 대하는 손쉬웠다.
그냥 일반적인 대화로는 말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가기만했다.
그날도 퇴근(?)을 한 뒤에 곧 장 은행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하기 때문에 신호등이 파란불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이라 차들도 별로 없고, 오늘따라 높기만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최근, 내 생활패턴은 많이 달라졌다.
게다가 매일 새벽 같이 일어나서 피씨방에 들러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
아침 시간대엔 손님이 별로 없다.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공부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능률도 오르는게 아닌가?
머리도 식히면서 가끔 인터넷도 할 수 있었고.
왜 진작에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이윽고 파란불로 바뀌고 난 뒤에, 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옴겼는데..
갑자기 옆에서 달려오는 검은색 승용차.
파란불이니까 당연히 멈추겠거니 했는데..
이 차가 멈추지 않은거다. 그냥 무작정 달려오는 자동차.
그리고 어쩔 줄 몰라 이리저리 주춤하는 사이..
'으아아악!!!!'
쾅!!!!!!!1
차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서 크게 다치진 않을 것 같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이라 그런지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여보세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여보세요!
주위의 웅성되는 소리와 '여보세요'라고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
처..천사?
하얀색 옷을 입은 아릿따운 천사가 날 깨우고 있었다.
헉.. 죽어버린건가?
... 아.. 근데 천사는 정말 이쁘구나...?
그런데 천사가 말했다.
"여보세요!!"
나는 무심결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_-;;"
잠깐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더니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정신 좀 들어요??"
응? 이 사람은 뭐라는거지..? 괜찮냐고? 정신?..
아..!!!
.......자..잠깐. 나 교통사고 났었지 참-_-;;
갑자기 아픈척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왜 티비보니까 사고나면 막 아프다고 난리치고 그러더만??-_-
"아아아! 아파요 아파요!~!"
"...병원가요 우리!"
"누구세요-_-?"
"...제 차에 부딪히셨잖아요."
"...네?"
뭐야-0- 이 여자 천사가 아니었구나.
병원.. 차... 아.. 아직 죽은게 아니구나.
갑자기 기뻐서 눈물이 흘렀다-_-;
그러자 이 천사...아니 이 여자가 안절부절 못 하면서 날 일으키려고 애썼다.
"에에?? 왜 울고 그래요? 아악ㅠ_ㅠ!!"
"..-_-;;아.. 저 괜찮아요. 안 죽어서 기뻐서 흘린 눈물이라구요."
"네..? 지금 당신 몸에서 피나요."
"네?-0-.... 아 뭐.. 괜찮아요?... 이정도 쯤이야..."
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난 뭔가 잘 못 됐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여 주질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이 생긴 것만 같았다.
08.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0-..."
멍한 표정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나.
문을 열어재끼고 호들갑떨며 찾아오신 어머니.
그리고...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의 그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거지..
난.. 저금하러가야되는데...
...
"아이고! 우리 아들!! 괜찮아??"
"응. 나는 괜찮.........
지 않아! 아파뒈지겠어 ㅠ_ㅠ."
나의 어리광에 엄마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날 꼭 끌어 안으셨다.
그리고 고개를 홱~! 돌리며 전설의 고향에 구미호처럼-_-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당신이 뭔데 우리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놨어!!"
그녀가 당황하며 말했다.
"우..운전자예요.."
순간 더 당황한 우리 엄마-_-;
"-_-....누..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이 아가씨야? 남의 소중한 아들 어쩔꺼여!!"
난 우리 엄마가 이렇게 흥분하는건 처음봤다ㅠ_ㅠ
평소에 하는거 봐서는 우리엄마 아닌 줄 알았는데.. 역시.
엄마는 엄마구나...
난 세삼스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책임질께요."
....?
책임지다니 뭘 책임져??
내 생각을 읽은 듯 엄마가 그 아가씨에게 물었다.
"아가씨가 뭘 어떻게 책임진다는거야?"
"병원비며 위자료까지.. 얼마면.. 될까요?"
...? 돈으로.. 책임지겠다고?
"...허, 참 아가씨 당돌하네... 아가씨 돈 많아? 응?"
"네.."
"-_-..아 그렇구나. 그럼 병원비는 그쪽에서 알아서하구 위자료는..."
"어..엄마!!!!! 이건아니잖아~!"
"-_-;;;"
엄마의 사랑은 무슨-_-;;
엄마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괜히 크게 걱정하면서 위자료를 더 뜯어내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0-!!
"엄마! 나 하나도 안 아퍼!! 돈 같은거 받을 생각하지마!!"
"...-_-.... 몬난 것. 니 맘대로 해라."
그 말을 남기고 사라지시는 어머니.
-_-
삐..삐진건가;;
엄마도 참..
우리 엄마 삐지면 일주일간다..
일주일 동안 된장국만 나온다-_-;;;
게다가 엄청 짜다....-_-;;;;
그런 밥은 먹기 싫었음으로;;;
엄마의 화를 풀어들이기 위해 엄마를 따라가야만 했다.
그런데..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찰라..
허리 상태가 좋지 못한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바닥에 그대로 쓰러...
질 뻔했다.
-_-
그녀가 날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마찰. 내곁에 다가서 나를 부축하고 있는 그녀.
내 코를 자극하는 샴푸 내음.
그녀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 내 눈앞에서 찰랑 거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마음만은 천사구나.ㅠ_ㅠ
아니 생긴 것도-_- 조낸 천사구나. ㅠ_ㅠ.
그 순간 만큼은 은별씨 생각이 안났다-_-;;;
나도 어쩔 수 없는 늑대인가보다ㅠ_ㅠ.
은별씨 미안해요. 흑흑.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여기.. 제 전화번호에요.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시면 연락 주세요."
"..네."
그녀는 작은 메모지에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놓았다.
[김도희. 010 7439 5689]
(실제로 전화해보는 사람 없겠죠..-_-;;)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고, 낮에는 엄마가.
저녁에는 동생이 날 간호해주었다.
그날, 저녁에 동생녀석이 교복을 입고 찾아와서는 가방을 던져놓고
보조석 의자에 아무렇게나 털썩 앉았다.
날 가만히 바라보던 동생이 말했다.
"형."
"왜."
살며시 웃으며 말하는 내 동생-_-
"그여자 조낸 이쁘다며."
"그래서-_-..."
"꼬셔봐!!"
"-_-.. 내 주제에 무슨..."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칭하며 중얼거린다.
"크.. 형은 왜 주위 사람들을 이용할 줄 몰라? 바보같이. 내가 있잖아!!"
"-_-......"
그말에 솔깃한 나.-_-
"뭘 어떻게 하면되는데?"
"일단 그여자는 형에게 신세를 졌으니까.. 형이 부탁하는건 들어줄꺼란 말이야."
"그..그런가?"
"일단 밥이나 사달라구 해. 그리고 술도 사달라고 하고.. 흐흐. 더 이상 말해줘야되나?"
"응.-_-.. 그런 다음엔?"
나의 말에 한숨을 쉬며 동생은 말을 이었다.
"어휴. 그런 만남을 유도하는거지. 그리고 이야기를 해서 공통점을 찾는거야.
그녀와 형의 공통점을."
"한번 만났는데?.."
동생은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_-;;; 말했다.
"아휴. 정말 바보같으니라고. 왜 그걸 모르는거야?"
"뭘 말이야-0-.."
"첫번째 데이트때 형이 얻어먹을꺼잖아. 보답한다고
밥을 사겠다고 그러는거야. 그럼 일단 기본으로 2번은 만나게 되겠지.
그 두번 안에 형의 매력을 보여줘야해. 그래야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할 수 있을테니까."
동생은 생각보다 앞뒤가 잘 맞아 떨어지는 말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밥을 사줬으니, 보답을 위해 사준다고 하면... 별 호감이 없더라도
일단은 응하게 될 것이 아닌가? 난 왜 지금까지 그런걸 몰랐던거지?-_-;
동생은 날 가만히 보더니 중얼거렸다.
"근데... 형 한테는 좀 어렵겠다.."
그 말에 발끈 한 나.
"뭐야 임마-_-?"
"근데 그여자 그렇게 이뻐?"
"-_-...그래도 내 타입은 아니다 뭐."
"푸하하. 자기 주제를 알라.. 라고 누가 그랬더라.."
"-_-......"
자기 주제라..
내가 그런거알면 이러고 있겠냐.
아무튼 동생의 말은 깊게 생각해볼때였다.
일주일 뒤에 무사히 퇴원할 수 있게 된 나.
그리고 퇴원 하는 날 그녀가 찾아왔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아..네.."
"영화 보러갈래요?"
"네? 왠 영화요-_-?"
"미안한 것두 있고.. 영화도 보고싶어서요."
"혹시 같이볼 사람이 없는건 아니구요?"
그녀는 그런건 아니라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영화를 한편 보았다.
그 뒤로 집에 가려고 그랬더니 그녀가 나의 손을 이끌며 말했다.
"가요. 배고프죠? 몸보신 해야죠."
"-0-...."
엥?
내가 밥 사달라는 말도 안했는데 이건 어찌 돌아가는 시츄에이션인가-0-.
이상하게 그녀에게 끌려다니는 것만 같았다.
일단, 사준다는거 마다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차에 올라타고 근처 보양식 식당으로 향했다.
"삼계탕 드실래요?"
"아무거나 다 잘먹어요."
"네. 잘먹게 생기셨어요."
"-_-;; 치..칭찬이죠?"
"그럼요!"
오랜만에 먹는 삼계탕이었다.
그동안 집에서 당했던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난다.
재수생이라고 인간 취급은 물론이거니와 아들 취급까지 안해주면서
라면이나 끓여주면 다행이지...
밥은 뭐 알아서 해먹으라나 뭐라나..
굶기 일쑤 였던 나에게 삼계탕을 사주다니!!!
역시 그녀는 천사였다-_-;
(이럴때만..;;)
먹을꺼 사주면 좋아한다고 날 단순하게 생각하진 말아달라.
-_-...
"무슨일 하세요?"
그녀가 물어왔고, 난 꺼릿김 없이 대답했다.
"피씨방 아르바이트요."
"그래요? 하루에 얼마 받는데요?"
"만원이요."
"그럼 저 때문에 일주일 손해보셨으니까.. 7만원.. 드리면 될까요?"
이 여자가 지금 무슨소릴 하는건가..?
"네?..."
"저 때문에 손해 보셨잖아요. 저는 남 손해보는 꼴 못 봐요. 특히나 저 때문이라면.."
난 그녀의 말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이봐요 아가씨."
"네..?"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요.
세상살이 그렇게 돈으로 해결하려하지마요. 누가 돈달랬어요? 허 참나.."
"...."
사실이었다.
그 여자는 돈이 많았다.
얼핏 봐도 20살 밖에 안보이는 외모에다가 엄청난 고급 승용차.
그 나이에 그런 차를 몰고 다닌다는건.. 집안에 돈이 많다는 얘기다.
이 여자 순진한건지 돈이 많다고 자랑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비위를 건드린거 하나는 확실하다.
착한건 알겠는데...
이런 식으로 날 대하면 섭하지!!
09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다가...
남아있는 삼계탕을 보는 순간.. 다시 제 자리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_-;;
자고로 음식을 남기는건 죄악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옥가면 남긴 음식을 죄다 비벼서 준다고 그러더라구..-_-
물론.. 나처럼 착한 사람이 지옥갈리는 없.............-_-
겠지만;;;
호..혹시 모르니까..인간 세상사란-_-
난 허겁지겁 삼계탕을 위장으로 쑤셔넣구서는 주머니에서 만원짜리를 꺼냈다.
사고나던 날 내가 벌었던 돈이었다.
"이건 제 삼계탕 값 입니다. 그리고 저 이제 몸도 괜찮으니까 신경안쓰셔도 되고요.
돈이야 다시 일해서 벌면 되거든요. 손해본거 없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비어있는 내 삼계탕 그릇을 바라보고있었다.
난 가게 입구를 나서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돈으로 뭐든걸 해결하려하지 마요. 기분나빠요. 특히 저 같이 자존심밖에 없는 놈한테는."
속으로 너무한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에게 더이상 미련이 없었다.
동생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자기 주제를 알라고.
나 주제에 저런 부잣집 딸래미.. 감당 할 능력 없다. 게다가 현재는
은별씨를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순식간에 마음이 변하는 그런놈은 아니었기에 미련 없이 그 자릴 벗어났다.
식당을 나와 집 쪽으로 한 참을 걸었다.
괜시리 하늘도 올려다 보고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매료되어 한참을 서서 음악을 감상하기도 했다.
전혀 움직임이 없는 구름들 중에서 왠지 은별씨와 닮은 구름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은별씨가 보고 싶어졌다. 나의 발걸음은 무의식중에 은행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로.
***
"어서오십시오."
"하이-_-)/"
은행에 들어서자,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나에게 인사를 건냈다.
난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매일 들리다 보니 사람들과 친해졌다.- 은별씨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장휴고객님! 그 동안 왜 안오셨어요?"
은별씨가 나에게 안부를 물어왔다. 하긴..매일 같이 오던 사람이 일주일 씩이나 안왔으니..
아무리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궁금 할 것이다.
난 괜히 사고 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혹시.. 그녀가 걱정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럴리는 없겠지만?...
"바빠서 그랬죠. 제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 크흐흐."
"근데.. 번호표 뽑아 오셔야죠."
"-_-.. 저 지금 돈이 없어요."
"그럼 어쩐 일루...?"
"은별씨 보고 싶어서왔어요.^^"
"...."
그녀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내 앞에서 저렇게 웃고 있다니...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는데?
왠지 좋은 느낌에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은별씨. 영화보러 안갈래요? 퇴근하고.."
"....좋아요."
응?
방금 뭐라그랬어?"
"네?"
"좋다구요. 퇴근하구 옷 갈아 입고 그러면 5시쯤 되겠네요. 그때 뵈요."
"아싸! 자. 지금까지 저금한 돈 인출하겠습니다."
"-_-;;;;;"
일단 수중에 가진 돈이 없었으므로 그녀와의 데이트를 위해서 돈을 인출했다.
푸하하하.
역시 들이대는 자에게 기쁨이 있을지어니...
결국엔 그녀와 내가 데이트를 하게되는구나.
그러가 뇌릿속에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으니...
바로 동생인 장비가 말해준 수법이 떠 올랐다.
일단 첫 만남에 얻어먹고, 다음번에 사주겠다고 해라. 그렇다면 2번은 만나게 될 것이다.
하는 것.
푸하하. 바로 그거야.
뭐 동생이 은별씨에게 써먹어라고 가르쳐 준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한테 써 먹는거니깐 뭐. 푸하하.
난 머릿속에 그녀를 즐겁게 해줄 방법을 떠올리며, 집으로 향했다.
***
"은별씨!!! 저 왔어요."
난 은행 밖의 창문에서 그녀가 가장 잘보이는 방향에 얼굴을 기대어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얼굴이 붉어지도록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그녀가 자주 웃는거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리에 눌려진 내 얼굴이 찐빵이 되어-_-;;; 모든 이들이 웃고 있었지만
건물 밖에 있어서 그들의 웃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말끔한 사복을 갈아입고 은행을 나왔다.
"장휴씨! 은행 창문에 그렇게 얼굴을 들이대면 어떻게 해요!"
"-0- 왜요?"
"사람들이 다 웃잖아요. 쪽팔리게."
"...그럼 아까 은별씨가 웃은게...?-_-...."
가늘게 실눈을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더니 그녀가 어쩔 줄 몰라했다.
"-_-;;;"
"-0-...아악 내 이미지~!"
난 오버하며 내 머리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_-;
그러나 들려오는 매정한 말.
"원래 그런거 없었어요."
"-_-.......너무해요. 아참! 저녁 안드셨죠? 일단 뭐 드시고 싶은거 있으세요?"
데이트때는 남자가 리드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내 성격상 맞지 않았고,
여자가 먹고 싶은걸 먼저 물어보았다. 일종의 매너라고할까.
물론, 그냥 터프하게 '이거 묵자.' 라고 하는 남자한테 뿅가는 여자도 있겠지만.
나의 질문에 그녀가 말하길..
"삼계탕 먹고싶어요."
"네-0-?.."
"삼계탕이요. 먹은지 오래됐죠? 그거 먹으러 갈래요?"
"...넵.-0- 가요."
점심때도 삼계탕 먹었는데..
저녁도 삼계탕이라니-_-..
하지만 내색 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중간에 뛰쳐나오는 거였는데..
괜히 아깝다고 다 먹고 왔다.. 국물까지 다 원샷했는데 말이다.
-_-
괜시리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건 왜 일까.-_-
그녀와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극장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뭐가 보고싶냐고 물었더니 저녁 메뉴 고를때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골랐다.
....
하필-_- 그녀랑 본 영화잖아!
덜덜.
왠지 양다리를 걸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쿨 운명이라는 노래 중에 가사에도 나오지 않은가..
봤던 영화 같이 또 보고~ 했던 얘기 다시 또 하고~~♪
뭐, 하지만 나는 둘다 사귀는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양다리라고할 수 없지 않은가.
같은 영화를 두번보게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극장에서 보고 집에서 다운받아 보거나, 비디오로 빌려보거나, 티비에서 해줄때 본적은 있었지만..
극장에서 7천원 씩이나 내고... 두번을 보다니..
하지만 처음에 봤을때 못보던 장면들이 많이 있었다. 어째서-_-
내가 그 만큼 영화를 대충 본다는 뜻이란 말인가. 아무튼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은별씨와의 데이트란... 아까 돈많은 부잣집 아가씨와는 뭔가 차원이 달랐다.
그녀와 있을때는 왠지 불편한 감이 있었는데.. 은별씨는 이렇게 편안하지 않은가..
....
너무 편하다 보니 잠이 들어버렸다.-_-;;
사실.. 그다지 재미 있지도 않은 영화를 한번 더 본 영화를 본다는건...
피곤한 일이다.-_-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땐 왠지 은별씨의 눈치가 느껴졌지만... 이미 벌어져버린 일 아니던가.
난 그 일을 애써 무마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했다.
"저 은별씨. 이대로 들어가면 뭔가 아쉽지 않을까요?"
"네? 뭐가요?"
"술을 마셔줘야.. 독자들이 더 기대한다구요."
"-_-네? 무슨 말씀이세요?"
"ㅡ_ㅡ.. 음.. 작가와 저만 아는 비밀입니다. 술 한잔 하러가면 어때요."
"...네.. 좋아요."
그렇게 그녀와 가까운 술집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은별씨와 처음 가지는 술자리라니.. 덜덜덜.
기대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