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9/21, 제 3차 미시령힐클라임자전거대회 때 이야기입니다. 평소 형제간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A사장이 출전한다기에 응원 차 동행했습니다.
그 양반 차량편으로 이동하고 숙소는 진부령 넘어 거진 바닷가에 있는 저의 아파트를 이용했습니다.
대회 당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햇반 덮히고, 반찬이며, 과일이며 파워젤, 파워바, 우유 등 먹거리를 챙기노라니 제가 마치 감독이나 된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경기 광주에 사는 49세(나와 띠동갑 아우)의 A는 열혈 자전거 애호가로 전국대회에 자주 나가는 편입니다. 발군의 기량에 엄청난 괴력을 지녔지만 평일은 생업에 전념하고, 자전거출퇴근과 주말 라이딩 등 짧은 시간 혼자 훈련하기 때문에 기대만큼 실력 향상이 어렵습니다.
본디 뭘 피가 나게 하면 프로이고, 아마 이 정도겠지! 하고 대충하면 아마추어입니다. 대회에 나가려면 최소한 세미프로는 돼야 함에도 A를 가까이 지켜보면 피( 프로 )하곤 거리가 뭡니다. [ 아마도! ] 하면서 그냥 즐기면서 달립니다. 평소 성품도 온유하기만 합니다.
그런 연유인지 매 대회 마다 최상위권에 랭크되면서도 아직 3위 안에 들어 시상대 박스엔 서보질 못했습니다.
우린 친형제처럼 친밀했습니다. 단순히 같은 자전거 동호회에서 같이 활동하며 생긴 우정입니다.
저는 수년에 걸쳐 큰 관심을 갖고 그를 주시했습니다.
보디빌더였던 그가 입상대에 올라 강철 같은 두다리로 우뚝 서서 우람한 근육질 팔뚝을 활짝 펴 빛나는 영예의 상패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는 멋진 광경을 고대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가 이번 대회에서 꼭 3위 안에 들어주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그가 입상한다면 본인보다 옆에서 지켜본 저의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
대회 출전도 그렇지만 대회 참관 역시 수많은 동호인들과 함께 호흡함으로서 자전거에 대한 애정을 증폭시키기에 좋습니다.
천명 가까운 선수들이 미시령과 한계령이 나뉘는 민예품관광단지 휴게소를 출발하는 것을 지켜본 다음 부랴부랴 미시령 정상으로 이동하였습니다.
A의 지프차를 시작점인 휴게소 광장에 파킹하고 남양주에서 오셨다는 어느 동호인의 봉고차에 편승하여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A의 차인만큼 열쇠를 잘 간수해야겠다싶어 지고 간 베낭의 주머니에 안전하게 집어넣고, 확실하게 지퍼를 채웠습니다.
제가 미시령 정상에 도착하여 카메라를 꺼내자마자 A가 피니쉬 라인을 향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성난 코뿔소처럼 돌진하고 있었습니다. 입상 여부에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그의 격정적인 모습에서 진정한 스포츠맨의 정체성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아-! 하도 순식간에 다가오는 바람에 골인 장면을 못찍어 후회가 컸습니다.
대회 종료 후 즉시 나붙은 순위표를 보자 이번 대회도 입상과 무관한 8위입니다.
남자 마스터부의 선수층이 하도 두꺼워 25km를 60분에 주파한 기록으로도 동메달과 거리가 한참 멉니다. 그는 랩타임이 기대 이상이어서 만족한다며 순위가 쳐진 것쯤 별것 아니라며 파안대소하였습니다.
결과에 만족함은 결과를 얻기까지의 노력에 후회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날은 기실 저의 어머님 기일이었습니다. 오전에 대회가 끝나고 시상식까지 지켜보고 출발하더라도 오후 7시 전에 너끈히 집에 도착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A가 사정을 알고 일찍 출발하자고 권했습니다. 민예품 휴게소로 내려가기 전에 아까 베낭에 잘 넣어둔 키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웬걸! 키가 손에 안잡힙니다. 급기야 베낭의 내용물을 죄 꺼내고 거꾸로 들어 먼지까지 탈탈 털었습니다만 이것이 오리무중입니다. 분명히 베낭에 넣었음에도 온데 간데가 없으니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우릴 태워주려고 대기하던 어느 지인의 차량은 기다리다 못해 먼저 내려가 버렸습니다.
부랴부랴 아까 시작점에서 편승했던 봉고차를 찾아 차내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남양주 동호인들께서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쾌히 도움을 주셨습니다만 모두 헛수고였습니다. ( 이 봉고차를 타고 와 출전한 남양주 학생이 MTB 고등부 우승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품에서도 최고상인 자전거에 당첨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저는 신세진 것에 보답하기 위해 이 분들의 사진을 많이 촬영하여 E-MAIL로 보내주었습니다.)
천천히 다시 찾아보라는 A의 권유에 따라 몇 번을 더 베낭을 비우고 찾고 또 찾았으나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비키를 보내라고 광주에 연락하라 했더니 키가 달랑 그거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견인차를 부르자고 하자 어느 분께서 열쇠공인을 불러 새로 맞추는 것이 저렴하고 시간도 단축된다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어떻든 상당한 시간과 경비가 소요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무엇보담도 시간이 늦어져 어머님 제사를 못모시게 되는 불상사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기일임을 뻔히 알면서 대회 참관을 한 건데, 제주인 제가 제사에 빠지는건 말이 안됩니다. 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예기치 못한 실책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넋을 놓고 있는 저에게 한 동호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베낭에 넣은 것이 확실한가요?”
“ 그럼요. 지퍼 잠근 순간까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 그렇다면 그 키는 틀림없이 베낭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게 어디 가겠습니까? 다시 찬찬히 찾아보십시오.”
딴은 맞는 말이어서 다시 한 번 베낭의 내용물을 전부 꺼냈습니다. 그리고선 베낭 안을 1입방미리씩 차근차근 뒤져 나갔습니다. 속속들이 찾았지만 여전히 키는 부재중입니다. 거꾸로 세게 흔들어 봐도 열쇠끼리 마주치는 짤랑짤랑 쇳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베낭을 땅에 납짝 깔아놓고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차근차근 훑어 나갔습니다. 한 순간 묘한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습니다.
키는 베낭 안에 있었습니다. 베낭 포켓이 봉제 선에 의해 일정 카데고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베낭 전체에 걸쳐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태평양처럼 뺑 돌아 전부 터져 이어져 있었습니다. 키는 옆구리 쪽으로 저만큼 돌아가 좁고 단단한 틈새에 끼어 소리도 못내고 꼼작도 안한 것입니다. 하필 사들인 후 처음 매고 나왔던 베낭이라 포켓이 그리된 특성을 전혀 몰랐습니다. 포켓을 불량하게 만든 게 아니고, 아마도 어떤 특별한 목적에서 이렇게 디자인 했을 것입니다. 멀쩡한 키를 베낭에 두고, 속절없이 키를 또 맞추는 바보짓을 할뻔 했습니다. 하긴 여태 헤맨 것만 해도 엄청 어리석습니다.
키를 찾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데 시상식과 경품추첨을 마치고, 늑장을 부리던 같은 모임 동호인들께서 우릴 발견하고 속초 동명 항으로 물 회를 드시러 간다면서 강력하게 동행을 청했습니다. 출전했던 선수 여섯 분을 포함 전부 열분입니다. 어차피 키도 찾았고, 시간도 될 것 같고, 사양함이 예의가 아니어서 그들과 동행하였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모두 차량으로 이동않고 일부가 미시령 다운힐을 즐기겠다면서 자전거에 오릅니다.
하긴 속초꺼지 전구간 다운힐이라 차나 자전거나 엇비슷한 속도입니다. 뜻밖에도 자전거 부대가 속초를 지나, 고성 쪽으로 계속 북상하는 것입니다. 위치가 애매한 소문난 집을 찾기 위한 목적입니다. 결국 맛집 찾기는 실패하고 동명항으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자전거 속도가 워낙 빠르긴 하였습니다만 이로 인해 시간이 또 상당히 지체되었습니다. 마음이 바쁜 저로선 내심 초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회를 주린 창자를 채운 후 봉고차에 사람 열 분과 자전거 여섯 대를 싣고, 여섯시 쯤 귀로에 올랐습니다. 재차 자전거 라이딩으로 미시령을 올라채려면 시간이 엄청 소요될 터인데 모두 피곤했는지 그냥 차로 가자해서 시간에 쫒기는 저로선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TV에서 외국의 거구 대학생들이 공중전화박스 안에 차곡차곡 들어가는 게임을 하는 것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만 자그만 봉고차 안에도 열 명의 사람과 여섯 대의 자전거를 거뜬히 실을 수 있더군요. ( 루프캐리어 포함 ) 물론 여러분들이 극단적으로 신체를 구부려 표면적을 최소화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시간의 복병은 또 있었습니다.
한 회원님께서 핸폰을 식당에 두고 온 것입니다. 식당과 통화하여 오토바이 특송으로 미시령 터널 앞 만남의 광장으로 보내달라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시간이 또 지체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치고, 맞는데 또 맞는다고, 고약한 일은 반복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머피의 법칙이 바로 그렇습니다.
불과 15 ~ 20 분 남짓 걸릴 줄 알았는데 암만 기다려도 오토바이가 나타나질 않습니다. 한 시간도 더 기다렸습니다. 겨우 겨우 연락이 됐는데 엉뚱하게 한계령을 넘어 민예품 관광단지를 돌아 백담사 부근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또 하릴없이 기다립니다. 청문실착 ( 聽聞失錯 - 말하고 듣는 가운데 착오가 생김. )이 왕왕 있다는 건 알지만 어찌 이토록 지독한 상황이 생기는지 수긍이 잘 안됐습니다. 이윽고 시커먼 오토바이 헬멧이 휴게소 광장에 나타나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과연 제사를 모시는 밤 11시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입니다. 누차 시간이 지연되는 묘한 상황이 연속되었지만 제가 귀가한 시간은 대충 열시 반경이었습니다. 목욕재계하고, 옷 갈아입고, 지방 쓰고, 진설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온종일 혼자 제찬을 장만한 집사람의 볼이 약간 부었지만 돌아가신 분은 따로 책망이 없으셨습니다.
키 사건도 그렇고, 물 회 맛 집 찾기도 그렇고, 핸폰 두고 온 것도 그렇고, 오토바이 특송이 지체된 것도 그렇고, 누차 시간이 지연되었지만 제사 모시는 절대의 목적은 무사히 완수하였습니다.
시간은 돈도 황금도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귀하고 값나가는 것입니다. 시간은 바로 생명입니다. 시간이 많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많이 남았다는 말과 같고, 시간이 없다 함은 생명이 곧 끝난다는 말과 같습니다.
시간은 생명과 같은 즉 수명처럼 소중합니다. 1분 1초라도 낭비할 수 없습니다. 저 세상에 가면 가장 준엄하게 문책을 당하는 죄가 있는 바, 그것은 바로 시간을 낭비한 죄입니다. 왜 중죄일까요? 그야 물론 자기 수명을 깎아 먹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신이 사람에게 하사한 지고지순한 선물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평등하게 분배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후회 없이 향유하여야 합니다.
A를 만난지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아니 아예 뵐 수가 없습니다.
올해 벌써 그의 13주기입니다.
먼저 가서 좋은 자리 잡아놓고 기다리겠다며 2009년 10월 28일 먼길을 부랴부랴 떠났습니다.
그러고보니 임종 순간에도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었습니다.
자전거 타다말고 잠시 길가에 내려 쉬다가 순식간에 엄습한 심근경색에 휘말린 것입니다.
그는 퇴촌 양지바른 한적한 골짜기 천년 산다는 주목밑 유택에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오늘 그를 추모하는 친구 네명이 모여 올 가을 기일에 맞춰 추모 라이딩으로 산소로 찾아가자고 약속했습니다.
첫댓글 참 멋진 포즈입니다.
그것도 세월이 어디로 데려갛겠지요.
그런데 1 입팡미리미터가 아니라
1세제곱미리미터라고 해야 합니다.
아는 적 좀 했습니다.
그 친구가 간지 어언 13년입니다.
그와 함께하던 추억이 너무 생생해 13년이 찰나처럼 느껴집니다.
그가 항상 가슴속에 살아있어 금방이라도 만나자고 전화가 올 것 같은 기분입니다.
1제곱미리미터!
잘 알겠습니다.
아이구 참 대단 하십니다
제사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되는데 사건도 정말 많이 생기니 얼마나 간이 조리고 애가 탔을까 싶네요
그래도 제사를 모셨으니 할 일은 다 하셨네요
긴 글 서울 가는 차에서 봅니다
심근경색으로 떠나신 분 안되셨군요
너무 피곤해서 그런 일이 생긴것 같네요
쓸데없이 길고 장황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과거에 자전거 타면서 잡문을 많이 썼습니다.
좋았던 때의 추억을 되살리는 뜻에서 염치불구하고 가끔 자유방에 써 올리겠습니다.
어제 오늘 흐리긴 하지만 요즘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댓글 다 달고 나면 얼른 밖으로 나가야겠습니다.
감동적인글 입니다.
저도그와비숫한경험이 오래전에 번호키가 없을때 저는 베낭에 분명 집키를 넣고 술한잔을 하였는데 집에 들어갈려하니 아무리 베낭을뒤집어 털어도 키가 행방이 묘연
애먹은적이 있는데 키 전체를 갈고
한달이 지났나 ㅋㅋ 그베낭에서 키가 나오드라고여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여
사연이 담긴 글 잘보고갑니다
아하~!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하셨군요.
이도 동병상련의 범주에 들겠습니다.
누군가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하면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저는 겨우 한두시간 헤매다 그쳤지만 한달 동안이나 걸렸다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