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 형제섬
갑진년 새해를 맞아 첫 한 주를 보내고 둘째 주 월요일을 맞았다. 그제 소한은 예년보다 포근했는데 모처럼 빙점 아래로 내려간 아침이다. 새벽녘 잠을 깨 평소 음용하는 약차를 달이면서 퇴직 후 귀촌한 친구가 지난가을 보내주어 말려 삶아둔 시래기 껍질을 벗겨 놓았다. 그 이후 찬이 되어 식탁으로 오르는 과정은 내 소관이 아니다. 아침 식후 동선이 제법 멀게 예상된 산책을 나섰다.
창원의 집 앞으로 나가 창원대학에서 장유로 넘나드는 770번 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창원터널을 빠져 장유 농협 앞에서 풍유동 차고지를 출발 하단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정류소에는 사상으로 출근하는 이들은 시외버스를 타려고 길게 줄지어 기다렸다. 내가 탄 220번 시내버스가 율하 아파트단지를 둘러 응달을 지난 조만포에서 경마장 앞을 거쳐 을숙도를 지날 때 내렸다.
연말이 다가오던 달포 전 십일월 중순 맥도강 생태공원을 찾아 철새 도래지를 둘러본 적 있었다. 올겨울 날씨가 따뜻해서였는지 그때는 강 언저리와 갈밭에는 철새 무리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이번에 내린 을숙도 남단과 북단 습지에는 겨울을 나려고 날아온 철새들은 다수 볼 수 있을 텐데 발길은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제철을 만난 기러기와 고니들이 많이 오글거리지 싶었다.
커다란 자연석에 ‘을숙도 철새 도래지’를 새겨둔 표지석에서 낙동강 하굿둑을 걸어서 지났다. 수문 바깥 저 멀리 을숙도대교가 방파제처럼 둘러 걸쳐 지났다. 꽤 긴 인도 보행 구간을 건너 하단에 닿아 다대포로 내려가는 강변도로와 나란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하굿둑 수문에서 멀지 않은 수심이 얕은 강변은 쇠오리와 청둥오리들이 모여 놀고, 깊은 곳은 가마우지가 자맥질해댔다.
산책로가 잘 정비된 강변을 따라가니 하류는 수위가 낮아져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가 드러났다. 다대포 바다와 맞닿은 기수역은 조수 차에 따른 사리와 조금의 물때에 따라 강물 수위도 달라졌다. 음력으로 그믐이 가까워지는 사리 물때여서 강물이 바다 바깥으로 밀려난 듯했다. 이런 사리 물때에는 낚시가 잘 되는지 태공이 몇 보였는데 무슨 어종을 낚느냐고 물었더니 숭어라 했다.
을숙도대교가 하단으로 건너온 지점을 지나니 바다가 펼쳐지면서 군데군데 모래톱이 드러났다. 사리 물때는 을숙도 남단 바깥 모래톱은 갈대가 더 많이 보인 듯해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겨울 철새들은 볼 수 없었다. 강폭이 넓어져 바다를 연상하게 했는데 건너편은 가덕도였고, 더 멀리는 국토 남단 거제였다. 내가 교직 말년을 그곳에 보내면서 수없이 다녔던 트레킹 코스였다.
다대포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가니 조업을 나선 어선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면서 포구로 귀환하고 있었다. 바다에는 아침 해가 중천으로 솟으면서 수면에 내리비친 햇살로 윤슬이 반짝였다. 을숙도 바깥은 점차 기수역을 벗어나 다대포가 가까워진 바다와 접했다. 몰운대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는 닻을 내린 화물선으로 착각할 듯 마주한 바위섬 두 개가 아스라했는데 형제섬이었다.
다대포에 이르니 해조음을 일으키며 다가온 물살이 만든 모래톱이 길게 펼쳐졌다. 겨울 한낮에 모래밭을 찾아온 몇몇 산책객은 정오가 지나는 때라 짧은 제 그림자를 발로 밟으려는 듯 파도가 밀려와 젖은 모래톱을 따라 걸었다. 산책로가 끝나면서 부산 지하철 1호선 종점 다대포역이 나왔다. 낙조 분수대 광장을 지난 몰운대 산책로 들머리에서 해물칼국수로 늦은 점심을 들었다.
식당을 나와 지하철을 탔더니 몇 구간 지나지 않아 하단역이었다. 아침에 탔던 김해 시내버스로 장유로 가는 차내에서 ‘다대포 형제섬’을 남겼다. “몰운대 절벽에서 저만치 거리 두고 / 알류산 한류 따라 대구가 선회하는 / 다대포 모래톱 바깥 마주 보는 바위섬 // 갈매기 둥지 틀까 풍란이 붙어 살까 / 유람선 뜨지 않고 낚싯배 타질 못해 / 발길이 닿고 싶어도 쳐다만 본 형제섬” 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