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 사리암. 보리암 이 세 암자를 일러 우리나라 3대 기도처라고 하며 또 그만큼 영험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 있기로 유명하다.
시간도 있고 하니 바람도 쇨겸 해서 기회 될때 한 곳 한 곳 발길 가는 대로 가보자 해서 갓바위, 일전에 사리암 다녀오고 이번에는 보리암 다음은 또 어디가 될 수 없지만 짬짬이 어느 암자든 산행 삼아 댕겨볼 요량이다.
코로나 19의 엄중한 상황 이지만 개인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바램을 막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일까 이 암자는 요즘같은 코로나 19 에도 사람으로 넘쳐난다.
그렇다고 이절에서 사람을 오라는 것도 아니고 갈수 있는 길이 좋은 곳도 아니다.
이 암자의 특징은 암자의 고도가 해발 500m이상의 지역에 위치 해 있고 아무나 점깐 쉬러 가듯 가는 곳이 아니라 제법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위치 해 있기 때문이다
막상 3대 기도처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이름 난 암자나 잘도 많은 것이 사실이고 이만큼 높은 위치에 올라 앉은 암자도 적지는 않다.
다만 이 암자의 위치가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보니 그런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통한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없다고 가정을 할때 누가 이렇게 힘든 암자를 찾을 것인가를 생각 해보면 행여 누가 일부러 그런 입소문을 흘린것이 아닐까 실짝 의문을 가져 보기도 한다.
오래전 가야산 해인사의 말사인 어느 암자에서 진입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옛날 성철스님이 계실때는 오솔길이 전부 였으며 차량이 진입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스님 입적 하시고 나서 불가피하게 길을 넓힌단다.
공사를 관리 하던 분과 이야기 중 이런 말씀 하신다. 설철 스님 계실때는 워낙에 그분이 유명한 스님이시고 특히 그가 미래를 읽어내는 신통력 때문에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줄을 썻는데 스님 사후에는 차도 올 수 없고 와도 어떤 기대치를 충족할 수 없으니 오는 사람이 없다고한다.
그래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길을 넓히고 차가 올라 올 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븐 이다.
사람이 자신의 앞길을 다 알고 나면 살아가야할 존재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내 인생 정해진 대로 살게 되는데 굳이 무엇하러 노력을 할 것이며 무엇하러 이것저것 하랴 애쓰겠는가?
그러면 안되는 즐 알지만 앞 길이 긍금 한 건 어쩔 수 없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뭘 가리고 뭘 조심해야 하며 어떤것을 취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은 누구나의 일이다.
얼마전 올라온 유투브에 봉정암 가는 길이 올라 왔는데 참 대단 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의 모든 역경과 고난도 간절함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그 높고 힘든 길 차가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중국처럼 가마꾼이 있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내 성한 두 다리로 걸어 올라 가야 하는 곳이지만 발 디딜틈이 없이 사람으로 넘쳐나며 그렇게 시작된 어려음과 고통애 대해서는 누구 한사람 부정하거나 거부함이 없이 수용하는 긍정의 힘을 보여 주더라는 것이다.
특히나 봉정암은 낮에는 백담사를 출발 산을 오르고 밤에는 기도를 하거나 앉은 자세로 쪽잠을 자고 새벽에 하산을 시작하는 고행의 길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기꺼이 감수케 하는 힘의 원천이 내 간절함을 담은 기도일 것이다.
남해 보리암은 창원에서 가기는 가까운 길은 아니다. 어림잡아 절까지 가는 시간이 2시간 정도 소여되니 말이다.
보리암도 코로나 19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지 아니면 월요일 이라그런지 상부까지 차로 올라 가란다. 애초는 보리암 까지 가는 길이 좋지 않으니 셔틀 버스를 이용할까 생각 하고 갔지만 셔틀 버스는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하부 주차장에서 보리암이 있는 상부 주차장 까지 좁은 급경사의 길을 직접 운전을 해서 가는 길이 부담이 되었지만 운전을 해서 올라 가 보니 생각 보다 길이 좋다.
옛날 과는 달리 포장도 잘 되어 있고 내려 오는 차와의 교행에도 무리가 없어 걱정은 기우에 불과 했다.
그렇게 해서 상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대략 1km정도를 걸어 올라가 보리암에 도달 할 수 있었다. 남해 금산이 헌려 해상 국립공원이라 그랬겠지만 보리암 까지 가는 길은 잘 정비 되어 있었고 관리도 잘 되고 있는 듯 했다.
거대한 바위들이 앞도하는 남해 금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이곳 금산에서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소원을 이루면 금으로 온산을 감싸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단 금자를 써서 금산으로 불리게 했다는 전설의 주인공 남해 금산이다.
남으로는 상주 해수욕장을 비롯한 다도해 그리고 산정의 바위 아래 보리암이 자리하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기도 한 곳이다.
보리암에 오르면 바라 보는 것 만으로도 뭔가 이룰 것같은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함을 보증 이라도 하듯 산정에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군 들이다.
기암괴석의 깍아지듯 절벽에 틈을 내어 세운 보리암 오래 전에는 없었지만 대웅전 전각아래 작은 바위 마당 위에는 해수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어 안그래도 빼어난 절의 경관에 그림 하나를 더 추가한 느낌이 들기도 하여 이곳 보리암의 멋스러움은 전각하나 불상 하나 하나가 수려한 산수화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보리암에 가면 이곳저곳 갈곳이 더러 있지만 집사람이 고개를 흔든다.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다는 기도처도 정상의 봉수대도 다음 이라는 여운속에 남겨두고 돌린 발걸음 이다.
돌아오는 길 창선과 삼천포를 잇는 연육교를 지나 대교아래 맛집한 곳을 검색해서 해물탕 한그릇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