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하드웨어에 관심이 있다면 ‘DRAM’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 ‘Dynamic Random Access Memory(동적 임의 접근 기억장치)’의 약자인 DRAM은 전원이 흐르고 있을 때만 데이터를 담고 있는 휘발성 메모리 소자다.
DRAM은 CPU와 캐시 메모리 보다는 느리지만 기타 다른 저장장치보다 빠른 저장속도를 내세워 보통 PC 운영체제의 핵심 요소와 각종 응용 프로그램을 미리 불러들여 실행하는 중간 저장장치 역할을 한다. 때문에 CPU와 메인보드와 함께 PC를 구성하는 필수 부품이기도 하다.
현재 PC시장에서 주력으로 쓰이고 있는 DRAM은 ‘DDR3’ 제품이다. 동기식 DRAM(SDRAM, Synchronous DRAM)에서 데이터 입출력 효율을 두 배로 높인 DDR(Double Data Rate) SDRAM의 3세대격인 제품이며, 지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채택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술 개발 사이클이 빠르게 돌아가는 첨단 IT 분야에서 DDR3 메모리는 무려 5년 넘게 장기집권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부터 차세대 제품인 ‘DDR4’를 지원하는 인텔의 X99과 이를 탑재한 메인보드 및 CPU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DDR3의 집권 체제는 흔들림이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인텔의 차기 CPU 로드맵에서도 DDR3와 DDR4를 함께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DDR3의 집권 기간은 더욱 길어지고, DDR4의 대중화는 더욱 늦어질 전망이다.
DDR SDRAM의 특징은 세대가 거듭될수록 데이터 처리성능은 배 가까이 증가하는 반면, 소비전력은 더욱 줄어드는데 있다. 당연히 차세대 메모리인 DDR4가 DDR3보다 더욱 빠르면서 소비전력도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DR4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비용’이다. 2015년 5월 현재 데스크톱 PC용 DDR3 메모리 모듈은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 기준으로 4GB 삼성 제품이 2만원대 중후반의 가격인데, DDR4 메모리 모듈은 같은 삼성의 4GB 제품이 4만원대 초반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나마 차세대 CPU의 등장을 앞두고 많이 저렴해진 편으로, 시장에 본격적으로 제품이 출시되기 시작한 작년 하반기에는 8만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올해 초만 하더라도 6만~7만원대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격이 어느 정도 떨어진 DDR4 메모리 모듈에 비해 이를 지원하는 CPU와 메인보드의 가격은 여전히 비싸다. (사진=다나와, 구글검색)
게다가 DDR4 메모리 모듈의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해도 DDR4 기반한 시스템을 구성하는데 들어가는 전체 비용은 여전히 비싸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DDR4 메모리를 정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인텔의 ‘하스웰-E’ 계열 프로세서와 X99 칩셋 뿐이다. 고성능 하이엔드 시장이 대상인 CPU와 칩셋으로, 출시된지 반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때문에 CPU와 메인보드, 메모리만으로도 합산 가격이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가뜩이나 PC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접근하기엔 여전히 비싸다.
DDR4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요소는 가격뿐만이 아니다. DDR4의 성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받쳐줄 SSD와 HDD같은 2차 저장장치의 속도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걸림돌이다.
사실 DDR3가 5년이 넘게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DRAM의 역할은 컴퓨터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작동하는 CPU 및 GPU와 가장 느린 저장장치인 HDD의 사이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미리 불러놓는 중간 저장장치다.
하지나 DRAM이 DDR3에 이르면서 최신 CPU까지 충분히 보조할 수 있는 성능을 확보한데 반해, HDD의 저장속도는 DDR3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5년여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이는 비유하면 제한 속도 200km/s의 고속도로를 뚫어놨건만, 막상 짐을 나르는 트럭의 최고속도가 50km/s 수준에 불과해 도로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5년여의 시간 동안 DDR3보다 빠른 메모리를 쓸 필요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HDD보다 평균 3배 이상 빠른 SSD가 최근 3년 사이에 대중화되면서 DDR3의 성능을 살릴 수 있게 됐지만, 더욱 빠른 DDR4 기준으로는 현재 SSD의 성능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즉 차세대 메모리인 DDR4가 제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현재 주력 SSD의 2배인 1GB/s급 전송속도의 저장장치가 대중화되어야 한다.
▲DDR4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SSD같은 2차 저장장치의 성능이 더욱 향상되어야 한다. 플렉스터의 M.2 기반 SSD 'M6e' 시리즈 (사진=컴포인트)
다만 가격문제의 경우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일 5세대 ‘스카이레이크’ 계열 프로세서가 DDR4를 지원할 예정이라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DDR4 기반 시스템을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또 2차 저장장치의 속도 문제도 현재 주력인 SATA3보다 배 이상 빠른 PCI익스프레스 기반 M.2(NGFF) 인터페이스가 본격 도입되면서 점차 나아지는 분위기다.
그래도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DDR4의 대중화는 올해 안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가격대비 성능’에서 여전히 DDR3가 장점이 있는데다, 전송속도 1GB/s급의 고성능 SSD 제품의 수는 아직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또 PC시장 차제가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도 변수다. 고사양 고성능의 PC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일부러 DDR4를 써야할 이유도 없어졌다. 적어도 DDR4가 지금의 DDR3의 위치를 대체할 시기는 플랫폼 자체가 또 한번 바뀔 2016년 이후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