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왁자지껄한 술집의 분위기가 좋았다.
왠지 조용한 술집의 분위기는 슬픈것만 같아서 싫었기 때문이다.
뭐, 끽해야 올해 20살이 된 나였으니까 술집을 다녀봤으면 얼마나 다녀봤겠냐만..
"몇분이세요?"
"포항시 여러분입니다."
나의 황당한 말에 웨이터가 당황하며 물었다.
"네-_-?"
"아뇨. 두명입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웨이터(사실상 아르바이트 생이겠지만.)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에 앉은 그녀와 나.
으~ 사실 좋아하는 여자와 단 둘이 술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고 이리저리 망설이고 있자, 그녀가 말했다.
"뭐 드실꺼예요?"
"음... 우리 몸에 나쁜 세균을 강도 높은 알콜로 소독하기 위해 소주 어때요."
"-_-;; 네. 소주 먹어요."
"사실 맥주는 배만 부르잖아요. 그거 먹으면 화장실 간다고 볼 일 다 보더라구요."
"-_-;;;.."
농담삼아 한 말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의견을 물어봐야했다.
"은별씨는 뭐 드시고 싶은거 있으세요?"
"저두 소주 좋아해요."
"와.. 그럼 주량도 쎄요?"
"주량은 별로 안쎄요."
난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에이.. 그런데 남자 앞에서 '저두 소주 좋아해요.' 라고 하는게 어딨어요."
'저두 소주 좋아해요.' 라는 말에서는 그녀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말하자 그게 재미있는지 쿡쿡 거리는 은별씨.
"쿡쿡쿡. 따라하지 마요."
"쿡쿡쿡. 따라하지 마요."
"-_-..진짜 하지마."
"-_-..왜 반말이세요. 무섭게."
"그쪽 저보다 나이 어리잖아요."
"-ㅁ-. 은별씨는 몇살이신데요?"
"아직 제 나이도 몰라요?"
"안가르쳐 주셨잖아요-_-..."
"음.. 몇살일꺼 같아요? 맞춰보세요."
"글쎄요..외모는 저랑 동갑이지만.. 은행원인걸로 봐서는.. 24살?"
"땡?"
"와.그럼 더 어린건가?.. 서..설마 그 이상..?-_-;;;"
"-0-.. 호호. 더 이상은 비밀이랍니다. 틀렸으니까. 안가르쳐줄래요."
"아앗. 치사해요. 그런게 어딨어요?"
"후후. 여기있지요. 김치찌개에 소주 한병. 괜찮죠?"
"네."
그녀의 말대로 주문을 했고, 곧이어 안주와 술이 나왔다.
조심스레 서로의 잔을 채우고 잔을 부딪힌 뒤에 술을 들이켰다.
캬아~!!
그래. 이 맛이야.
고향에 맛. 창소주.
-_-
난 술을 마시면서 은별씨에 대해서 많은 걸 물어보았다.
하지만 뭐가 죄다 비밀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거다.
대충 알아낸건 25살이라는거.. 그거 뿐이다-_-
25살 주제에 저렇게 어리게 생겨도 되는거야? 지가 임수정도 아니고 ...
-_-
누나라고 불러야 마땅하지만, 왠지 내가 어려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냥 은별씨라고 부르고 있다.
나이가 무슨상관이랴.. 푸하하.
사실 내가 누나라고 부르면 주위 사람들이 이 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어딜 봐서나 액면가는 내가 더 높은데-_-...... 괜히 사람들 시선을 받을 필요는 없었으므로
누나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술을 다 마시고 난 뒤, 조심스레 집 앞에 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리고 에프터 신청 또한 잊지 않았다.
"이번엔 제가 얻어먹었으니까. 다음번엔 제가 쏠께요!"
네. 그럼 내일 뵈요.. 바래다 줘서 고마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들어가서 푹 주무세요."
아싸! 내일 보잔다!!
ㅠ0ㅠ
허락의 의미나 마찬가지지 않은가..푸하하
"저.. 술 마시면 늦잠자는 버릇이 있는데 내일 못 일어 날까봐, 걱정이네요.."
"앗.. 그럼 제가 모닝콜 해드릴께요."
"에..?"
어벙벙한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히죽 웃어주었다.
"그렇게 까지는 안해주셔도 되요. 6시까진 일어나야 하지만.. 하하. 저 들어가볼께요."
안해줘도 된다면서 시간 말해주는건 무슨 시츄에이션?..크크크. 귀엽기는. 캬캬.
"6시요? 네. 알겠습니다. 크크. 들어가셔요!"
그래. 집에가서 눈 좀 붙였다가.. 피씨방에 출근해야 했다.
하지만..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녀가 들어가고 나서 한참 동안 그녀의 집을 바라보았다.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그녀가 들어간 뒤, 1층에 불이 켜졌고,
30분이나 지난 뒤에야 불이 꺼졌다.
...
이미 전화번호는 받아놨으므로 그때서야 문자를 보냈다.
[잘자요. 오늘 재미있었어요.]
곧장 답장이 날아왔다.
[저 지금 막 자려고 누웠는데.. 타이밍 딱 맞추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느낌이 었는데요? 히히.]
[네? 신기하네. 저도 재미있었어요. 집에 도착했어요?]
[거의 다와갑니다. 생각보다 가깝네요.]
[...30분이나 지났는데요?]
[..아.. 아부지 가게 들렀다 가느라..아하핫.]
[그렇군요.. 전 이만 잘꼐요. 고마웠어요.]
[...넵. 잘자요. 좋은 꿈 꾸시구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왠지 연애 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집앞까지 바래다 주고서 문자로 안부인사까지 주고 받다니 말이다.
정말 이정도면 엄청난 발전이지 않은가? 이정도 상태의 진도라면 금방 손도 잡고..
금방 뽀뽀도 하고...
그....
응?-_-.. 미안..
난 들뜬 가슴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잠자리에 누웠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왠지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이런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난 흐믓한 미소를 짓고서는 잠이 들었다.
***
아하함.
피곤해 죽겠네 거참.
생각보다 많이 뒤 척이는 바람에 깊이 잠들지 못한 탓이었다.
게다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피씨방에 출근까지 했은... 온 몸이 피곤할 법도 했다.
그래도 새벽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기분만은 꽤나 상쾌했다.
"크흐~!!"
난 피씨방 입구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이 세상 공기를 모두 빨아드리겠다는 심보로 들이마셨건만 고작 내 가슴이 가득 찰 정도 밖에
마시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내 가슴엔 가득 차 있으니까.
마시는 공기 중에서는 자연 속에서 마시는 공기가 가장 좋고, 이런 도시에서는 새벽에 마시는
공기가 가장 맑고 상쾌했다.
낮에 무심코 들이마시는 공기와는 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 나까지 깨끗하고 맑아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새벽공기를 참 좋아했다.
피씨방 아르바를 하면서 부터 생긴 내 버릇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상쾌하게 새벽을 시작하면 뭔가 모르게 개운하다.
난 몇번 더 숨을 들이키고 내쉬고를 반복한 뒤에 피씨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부지!!"
"어랏? 아들? 이 시간에 어쩐일이여?"
"아르바이트 하러 왔지."
"아, 맞아. 너 입원한거 아니였냐?"
"아부지는.. 나 어제 퇴원했잖아."
"음..그렇군.. 요즘 공성전 준비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아부지는 나보다 공성전이 더 중요하신 모양이었다.
그런 아부지를 뒤로하고 카운터를 보기 시작했다.
잠을 못 잔 덕분인지 서서히 졸려오기 시작했다.
안돼!!
여기서 잠들면 안돼!!
아부지 한테 맞아 죽는단 말이야!!
-_-;
그랬다..
피씨방에 사장님으로 계신 우리 아부지..
아들인 날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했다.
내가 아들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지각한다거나, 일을 대충 처리한다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정도로 공과 사는 구분하실 줄 아신다는 말이다..
문제는..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신다는 거다. -_-
옆에서 아버지의 외침이 들려왔다.
"으아악!! 저색히 감히 날쳐? 아오! 조낸 아퍼!! 그래 오늘 카오한번 해보자. 뒈졌어!!"
.............
그러다 무심코 시계를 바라보았을땐 6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6시?.. 음.. 새벽 6시라... 뭔가가 있었던거 같은데..
앗!
생각해보니 그녀에게 모닝콜 해줄 시간이지 않은가!!
난 전화기를 열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흐른 뒤, 한참이 지나서야
수화기 넘어로 그녀의 걸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으...우우우.."
"....?? 여보세요? 은별씨 핸드폰 아닌가요?"
"누구야아아...."
".... 그쪽은 누구시죠? 왠 좀비가.."
"앗! 자..잠깐만요!!"
아직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금방 자고 일어났기 때문에 목이 잠긴 듯 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에겐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뿐이다.
"일어나셔야 될 시간입니다.. 푸헐헐."
11
"푸하하하!! 아침에 목소리!!! 전 리바이스 소떼 울음 소린줄 알았어요!!"
"-_-"
오늘도 무사히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사고나지 않게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리고 은행에 들러서 그녀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왠지 도도한 여자는 놀리면 놀릴 수록 재미있단 말이지.. 푸훕.
"고객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푸훕.. 여기 만원이요."
"입금하실껍니까?"
"에이, 한두번 오나요? 당연히 입금이죠."
그러자, 살짝 일어서더니 나에게 다가오는 은별씨.
나의 귓가에대고 속삭이는 그녀.
"좀 있다 혼날 줄 알아요!"
"-_-;;;"
이..이.. 이건 아니잖아~!
생각해보니.. 또 만나자는 말 아닌가? 하핫.
겉으로는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잘못했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외치는 나였다.
***
은행볼일을 마치고 수고하라며 커피까지 뽑아주고서는 집에와서 오전 공부를 하던 참이었다.
띵동이라는 문자소리에 폰을 꺼내보았다.
[뭐해요?-은별]
이젠 그녀에게 먼저 연락이온다.. 푸하핫.
[저, 공부하고 있어요.]
[거짓말하면 때찌합니다.]
그녀의 귀여운 문자체에 키득거리면서 문자를 보냈다.
[-_-; 지..진짠데요.]
[에이. 그 말을 저더러 믿으라구요?]
[음.. 제가 생각해도 차라리 변으로 메주를 쓰는게 더 믿음직 스럽군요.]
[쿠쿠쿡. 뭐하구있어요?]
[변으로 메주를 쓰고 있습니다.]
[-_-;; 점심 먹었어요?]
[아뇨. 아직.. 혼자 있으면 밥 잘 안먹어요.]
사실은 집에서 밥을 안준다..-_-;
[저 점심시간인데 같이 밥 먹을래요?]
[엇..은행 앞으로 가면되나요?]
[네.. ^^]
난 곧장 옷을 벗어 재끼고 샤워를 했다.
-_-
왠지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샤워를 마친 후, 쌈뽕하게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헉.
내가 봐도 놀랄만한 이 외모.. -_-
흠흠. 그래 그런대로 봐줄만 하군. 머리를 이리저리 손질하며 차분하게 빗으로 빗어내렸다.
깔끔한게 최고지!
자아 그럼 은행으로 출발!!
"어머니 소자. 밥먹으러 다녀오겠습니다."
"응."
-_-
다른 어머니들 같으면 집에서 먹고 가라고 할텐데..
우리 엄마 맞어?
나중에 디엔에이 검사해봐야되겠다.
......아니.. 돈이 없구나. -_-
일단 보류. 흐흐흐.
난 어머니의 마중(?)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어무니. 소자.. 부디 금의환향 하겠사옵니다.
-_-
***
룰루랄라!
나도 모르게 휘파람이 막 나온다. 즐겁기 때문이겠지.
한달 전만해도 말도 제대로 못 걸었는데.. 어느샌가 이렇게 친해져서.. 같이 밥도 먹고..
서로 문자도 주고 받고 모닝콜까지.. 캬.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런게... 행복인가?... 아핫핫..
그런 기분도 잠시...
은행에 거의다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그냥 밖에서 기다리는게 좋을꺼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색 승용차가 야외주차장 쪽으로 오더니 멈추서는게 아닌가.
어디서 많이 본거 같다?..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서 고개를 돌렸다.
"어머?"
놀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봤더니, 낯익은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있는게 아닌가?
그 사람은 바로...
날 차로 쳤던 돈 많은 여자였다.
"헐..?"
그녀가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냈다.
"어라..?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네. 오랜만이네요.."
"아, 참 이동네 사신다고 하셨죠?.."
"아..네.."
"이 은행엔 무슨 볼일이라도..? 혹시 약속 없으면 저랑 점심 먹을래요?"
"저 약속있어요."
이 여자가 왜 이럴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그럼 저녁은요?"
"...저녁은 약속 없는데.."
"그럼 저녁이나 한끼 먹어요. 사과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사과할 기회는 주실꺼죠?"
사과를 한다는데 안 받아 줄 수도 없었다. 난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찬성의 의사를 내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씨익 웃으며 은행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
이 여자두 이 은행 쓰나?.. 한번도 못 봤는데?... 으음.
하긴, 점심시간에 온건 처음이니까.. 엥?
근데 점심 시간엔 은행 안할텐데-_-?..
뭔가 이상함을 느끼면서 은행 입구에 서서 서성거리고 있기를 5분.
은별씨가 가방을 살피며 나오고 있었다.
"앗! 은별씨~!"
"어머, 벌써 기다리고 계셨네요? 연락하려구 폰 찾고 있었는데."
"히히히. 약속시간에 일찍 나오는건 남자의 기본 매너 아니겠습니까?"
"남자요?"
이렇게 질문하는건 무슨 뜻일까. 내가 진짜 남자 인지 몰라서 묻는 소리란 말인가?
"-_-..네."
"뭐 먹을까요 우리?"
그렇게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향했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뭐가 재미있었냐고?
모른다-_-..
그냥 그녀랑 있으면.. 뭐든게 즐겁고 재미있다..
이런게 사는거구나 싶기도 하고..
왜 이 사람을 지금 만났는지.. 이렇게 늦게 만나게 해준 하늘을 원망해볼까..도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거 같았고,
지금이라도.. 이 사람에게... 내 모든걸 걸 준비를.. 하고 싶었다.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때라고 했던가?..
아무튼.. 내 생각이 확실해 지면.. 그땐.. 망설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조금 더 빠르게 밥을 다 먹고서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잘 먹었어요."
"에?"
"제가 살께요. 흐흐흐."
"아니예요. 돈 버는 제가 살께요."
"...저도 돈 벌어요."
"만원....이요?"
"-_-;;; 지금 만원 무시하는거예요?"
"아, 아뇨. 그런게 아니라..."
"그럼 제가 계산할께요. 그렇게 하게 해줘요."
"하하.. 네. 잘 먹었어요."
"대신 담에 은별씨가 쏘는거예요."
"-_-네."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푸하핫.
그녀와 있으면 언제나 늘 즐겁구나..
그녀는 다시 일하러 가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던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인도로 걷고 있는데 옆에서 까만색 차가 빵빵거리는게 아닌가.
아까전에 은행 앞에서 봤던 그녀였다.
위이잉...
검은색 고급 승용차의 창문이 내려가더니
선글라스를 코에 살짝 걸친 채 날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약속 끝났나봐요? 점심 약속이었나 보네요? 소화도 시킬겸 드라이브나 할래요?"
12.
히터로 빵빵한 차안에 있으려니 조금 답답했다. 그래서 창문을 열었다.
위이이잉.
창문이 열림과 동시에 차가운 겨울 바람에 나의 얼굴을 강타했다.
"안 추워요?"
옆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도희씨가 말했다.
난 다시 창문을 올렸다. -_- 추웠단 말이다.
결국 난 그녀의 차에 타게 되었다.
왜 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드라이브 시켜준다는 말에 냉큼 타버렸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저녁에 시간 좀 내달라고 했었기에 지금 내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포항에 꽤나 운치 좋은 곳인 형산강.
현재 포항제철이라는 대형 공장 때문에 수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지긴했지만, 그 운치만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밤이 되면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과, 형산강다리에서 반짝이는 조명들이 분위기 잡기에는
딱 좋은 장소였다.
나중에 은별씨랑 꼭 와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낮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볼만한게 없었다.
그냥 그러고 있는데 주차장 쪽으로 차를 돌리는 도희씨.
"바람이나 쐬요."
"드라이브 하자매요-_-"
"...맞을래요?"
말 없이 따라 내렸다. -_-;;
"그때 죄송했어요."
"...뭐가요?"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던거요."
"...아뇨 뭐... 돈 많으면 그럴 수도 있죠."
"사실 처음이었어요."
"뭐가요-_-?"
"저한테 그렇게 뭐라고 한 사람이요."
"...."
가만히 강가를 바라보던 도희씨는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지금까지 외롭게 자라왔어요.. 가진건 돈 밖에 없었죠.
돈이면 뭐든지 가능했어요. 가지고 싶은건 다 가졌죠. 심지어 친구까지도..
그런데 제 돈 때문에 저와 놀아줬던거지.. 나중에 보니까 친구도 아니더라구요..
그러다보니 하나뿐인 오빠와 많이 친하게 지냈었죠.."
"..."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지?
그런 자기 자신을 이해해 달란 말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있다.
그 사람들끼리 얽히고 섥히는 사유가 있다.
난 그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인 것이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인데, 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 해버린 것..
좋지 못 한 습관임을 인정하고 다음 부터는 주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네-_-."
"-_-;;"
그녀는 씨익 웃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휘날리는 그녀의 긴머리를 보니 생각나는게 있어서 말을 걸었다.
"엘라스틴 하셨군요?"
"네?-_-"
이..이게아니고..
-_-
"늦 겨울 바람은 많이 차가워요. 감기 걸리실지도 몰라요."
"...네. 차안에 들어가죠."
다시 차안에 들어온 그녀와 나.
근데 다시 보니 이 차 정말 좋다.
의자까지 따뜻한 기능이 있다.-0-.. 이런 차는 처음타봤다.
"이 차..그쪽 차예요?"
"네."
"와.. 좋네요."
"...더 좋은 것도 많아요."
"안 좋은게 더 많을것 같은데요..?"
"그..그거야 그렇지만.."
순간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색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있는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거 같았다.
그녀와 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자체가 조금 어색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면 느끼는게 있다.
이 사람과 있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과는 잠깐이라도 침묵이 흐르면 어색해지는 사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게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당신의 오빠라는 분은 어떤 사람이죠?.."
"... 어떤 사람이냐구요?..."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오빠같아요.."
"네?"
이 여자가 뭐라고하는거야 -0-..
오빠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나는 오빠같다고?..
엥?.. 그럼 오빠는.. 나같다는 말인가...
헐.. 세상에 나처럼 개념 없는 인간이 또 있단 말이야?
-_-;;
이런 나의 장난스러운 생각과 달리 진지한 그녀의 말이 들려왔다.
"저희 오빠가.. 3년 전에 죽었거든요......"
"....아..."
왠지 지금까지 장난스럽게 대하던 내가 미워졌다.
언제나 이렇게 매사에 장난스럽다니..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천성이라지만..
그래도 이러면 너무 미안하잖아..
"죄송해요. 괜한걸 물었네요.."
"아뇨.. 괜찮아요..어짜피 하려던 이야기 였는걸요.."
"네-_-?"
이 여자는 가끔 못 알아 들을 말을 하는게 흠이다.
"저와..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당신은.. 저희 오빠와 많이 닮았어요...가지고 싶을 만큼.."
".......!!??"
***
집으로 돌아오게 된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펼쳤다.
.... 으으악!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았다.
도희씨가 한 말이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당신은 죽은 오빠와 닮았어요. 저와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처음 봤을때 많이 놀랐다는 말.
교통사고로 오빠가 죽었기 때문에 날 치고 나서 상당히 놀랬다고...
하지만 내가 빠르게 쾌유되는 걸 보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퇴원을하게 되어 성의 표시로 돈으로 하려던거였는데
내가 마치.. 옜날에 오빠처럼.. 돈에 대한 훈계때문에 오빠의 모습이 더욱 생각났었다고..
그렇지 않아도 연락해서 만나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서 참 다행이라고 그랬다.
그리고 번호를 주고 받았다.
김도희. 라는 이름이 저장되어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서 오빠의 모습을 찾겠단 말인가?..
.... 흐음..
난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다가 피곤함에 잠이 들었다.
***
띵동.
문자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문자를 확인했다.
은별씨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하루종일 뭐하길래 연락도 없어요? 저 이제 퇴근할때 다 됐어요!]
난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그래요? 오늘 하루도 수고 하셨어요! 피곤하죠?]
[아뇨. 괜찮아요. 매일 하는 일인데요. 뭘... 지금 뭐하세요?]
[지금이요? 그냥... 책펴놓구 멍하니 가만히있어요.]
[그러지 말구 나와요. 바람이나 쐬요.]
[네. 지금 나갈께요.]
[은행 앞에서 기다릴께요.]
난 서둘로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은행을 향해 가고 있는데 문자소리가 들렸다.
음? 은별씨도 참~ 지금 가고 있는데 성질도 급하시군. 클클
거리면서 문자를 확인했더니 은별씨 문자가 아니었다.
[저녁약속 한거 잊지 않고 계시죠? 은행 앞에서 만나요!-김도희]
헉.....!!
그..그러고보니....
그런 약속을 했었구나.
아까 만난걸로 끝난 건 줄 알았는데..아니었구나.. -ㅅ-
이..이런.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