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셍을 몰던 대표적인 에이스에는 '애꾸눈의 킬러'로 알려진 하나인 사까이 사부로가 있다. 그는 개전당시부터 제로셍을 몰고 참가하여 종전시까지 미군기 총65기를 격추시킨 일본의 톱 에이스였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격추기록을 가진 일본 조종사들이 있으나 사까이는 전쟁중에 한쪽눈을 실명하고도 교관으로 조종사들을 훈련시키다가 조종사가 부족하게 되자 다시 전선에 부임하여 조국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였다. 그의 자서전 '대공의 사무라이'는 전후에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사까이는 일본공군의 흥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전쟁초기에 엄격한 훈련으로 최고의 기능을 연마하고 일본의 무적전투기 제로를 조종함으로써 떠오르는 태양 일본의 힘을 상징하는 조종사였다. 그러나 종전이 다가올 즈음 그는 반장님이 되 버린 모습으로 막강한 미군기들에게 필사의 사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진주만 기습이 있던날 필리핀에서 미군의 P-40을 격추시킨 이래 계속적인 격추의 행진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60번째의 격추를 기록하던날 그만 아벤저뇌격기를 와일드캣으로 오인하고 후방으로 근접하다가 아벤저의 후방석 기총사격에 한쪽눈을 실명당하고 간신히 귀환하게 된다. 그후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전황이 위급해지면서 다시 전선에 복귀한뒤 이제는 구식이 되 버린 제로의 조종석에 다시 앉아서 전투에 참가하고 추가로 4기의 격추기록을 더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일본은 저물어 가는 태양이었다. 1945년 8월 13일 최후의 출격을 한번더 하기로 한 그는 동료인 가와치와 함께 달도 없는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별빛의 도움으로 도꾜상공에 떠있는 B-29한대를 발견한 그는 B-29의 격렬한 기총 반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따라붙어 끝내 격추시켰다. 그가 자신의 65번째 격추기록을 장식한 이 B-29는 태평양전쟁에서 격추된 미군 최후의 폭격기였다.
아래의 글은 사까이 사부로의 격추기록에 대해서 Teufel 님께서 조사한 내용입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되서 같이 게제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먼저 홈페이지 일부 개편을 축하드립니다. 몇몇 페이지의 모양이 한결 산뜻해졌군요. ^^;
제가 아래 기술한 글은 이 홈페이지 "GREAT WAR PLANES" 가운데 A6M Zero기의 소개란에 등록된 사부로 사카이의 B-29기록과 관련이 있음을 밝힙니다.
'사부로 사카이가 과연 B-29를 격추시켰는가?' 하는데 대한 의문은 6.25때 공군기술장교로 참전하셨던 제 부친께서 들려주신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목격하신 실화입니다.
일본 패망이 가까워지던 시기에, 중국에서 날아온 B-29 폭격기가 서울 상공을 지나 일본을 폭격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를 요격하기 위해 서울 주변의 비행장에서 출격한 일본기들이 서울 상공에서 B-29들과 조우하는 장면이 종종 목격되었다는군요.
그런데 B-29는 30,000ft(약10,000m) 높이에서 비행하기 때문에 거대한 비행대형의 비행운 밖에는 잘 보이지 않았답니다. 물론 애국심에 불타는 일본기들이 이를 요격하려고 애를 쓰며 상승하겠지요. 그래서 B-29의 거대한 비행운 아래쪽으로 상승하는 몇줄기의 비행운이 보인답니다.
그런데 일본기에 장착된 2단 수퍼차저로도 B-29가 비행하는 고공으로 올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B-29에는 수퍼차저 말고도 엔진에 공급하기 위한 산소 발생장치가 별도로 있었다고 함) 어느 순간 아랫쪽에서 올라가던 가느다란 비행운이 갑자기 두꺼운 흰색 연기를 내뿜고는 아랫쪽으로 곤두박질 친답니다. 엔진 출력의 저하로 실속을 일으키는 거죠. 고도를 잃은 일본기는 다시 재상승하여 B-29를 요격하려고 어느 순간 상승하는 가느다란 비행운이 다시 나타나지만 결과는 똑같이 나타나곤 했다고 합니다.
결국 B-29 가 뿜어내는 거대한 구름은 유유히 흘러 사라지고 그 밑에 기를 쓰고 쫒아 가려는 일본 요격기들이 남긴 가느다란 구름들이 늘어진 전기줄마냥 남는다고 하더군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일본기들이 B-29를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잘라 말하시더군요. 그 이유로 일본기들의 부족한 수퍼차저의 성능과 낮는 옥탄가의 연료로 인한 고고도에서의 급격한 엔진 출력 저하,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 기체중에는 고고도로 상승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여압식 조종실(Pressureized Cabin)이 장치된 것이 없었다는 것이죠.
의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1. 첫번째 의문 : 그렇다면 B-29는 과연 무적이었는가?
인터넷을 뒤져 돌아다니며 수색을 해본 결과 B-29는 태평양전쟁중 약 1.9%의 손실율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유럽 전선에서 활약한 B-17이나 B-24등 다른 폭격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은 희생이지만, 그래도 손실율이 있다는 것은 격추 당할 수 있다는 증거죠.
2. 두번째 의문 : 그렇다면 아버지가 잘 못 알고 계셨나?
조사 결과 B-29는 당초부터 적국의 요격이 불가능한, 당시로서는 초고공의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도록 설계/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B-29를 요격하기 위해 Raiden(J2M3)을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B-29의 순항고도에서 자유자재로 요격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제 아버지가 알고 계신 내용도 틀린 바가 없었습니다.
3. 세번째 의문 : 사부로 사카이는 눈을 다쳤다고 하던데......
익히 알고 계시다시피 몸에 수술자국은 물론 상처 하나 없어야 조종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고고도로 올라 갔을 때 상처가 터져버리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부로 사카이가 아무리 사무라이 집안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과연 고고도 요격이 가능했을까요? 터져 오르는 한쪽 눈을 꽉 잡고?
제 생각엔 3만ft에서는 불가능합니다.
4. 네번째 의문 : 그렇다면 B-29는 왜 격추되었을까?
또 기록들을 뒤져보니, 실제로 지나치게 높은 고도에서 폭탄을 투하한 결과, 폭격 임무의 성공율이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다 보니 기류나 공기 밀도차의 영향을 받아 폭탄의 투하지점이 많이 흐트러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B-29는 저고도에서 폭격을 수행하기 위해, 야간 폭격 임무가 증가되었으며, 주간 폭격임무에서도 목표 지점에 가까워 오면 명중율을 높이기 위해 20,000ft 아래로 고도를 낮췄다고 하며, 손실된 B-29들은 대부분 이 때 발생했다고 추정됩니다.
5. 그렇다면 사부로 사카이의 B-29 격추 기록은 사실인가?
제 생각에는 신의를 중요시하는 사무라이 집안의 사카이 사부로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B-29를 격추시켰을 수도 있겠지만 20,000ft 역시 상처입은 눈을 가진 비행사에게는 여전히 힘든 고도였겠지요.
그래서 사카이 사부로의 격추기록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다녔습니다.
6. 결론 : 사카이 사부로는 B-29를 격추시키지 않았다.
결국 아래의 사이트에서 이를 확인하였습니다.
http://www.j-aircraft.com/books/grant-4-24-01.htm
여기에 글을 올린 Martin Grant에게, 사카이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벌인 공중전에서 B-29가 아닌 B-32 Dominator "Hobo Queen" 이었음을 직접 확인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 B-32 역시 격추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생각에는 사카이 사부로의 자서전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패전후 실추된 자국인들의 긍지(?)를 되살리기 위해 사카이의 공적을 과대포장하고자 조작한 거짓 무용담이라고 판단됩니다. 역사도 조작하는 놈들인데 뭐 자서전 쯤이야......
제가 가지고 있는 책중에는 일본에서 출판된 서적들도 꽤 많은데, 이 사실을 알고부터 이 책들에 쓰여있는 내용들이 믿을 수 없어졌습니다.
왜놈들...... 역시 섬나라 근성은 버리지 못하는군요.
|
첫댓글 졸작들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같아서는 전함 야마토의 최후(요시다 미츠루 지음)도 번역하고 싶은데... 아흑 ㅜㅜ
졸작이라뇨 밀리터리에대해 부정적인 풍토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이정도의 개념충만 번역을 해주신분만 있는것으로도 저는 좋습니다
좋은 자료를 찾아서 이렇게 설명을 해주시니 싶게 이해가 되는군요..
사실은 불타는하늘에 저글이 올라온건 2000년 6월쯤에 올라온겁니다 이미 대공의 사무라이를 번역하시기 전에도 논란거리가 되어있던거죠 보통같으면 무시했는데 친절하게도 이 논란까지 실어주셔서 독자들의 알권리를 지켜주셨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