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에 소설가 장정일에 관한 짤막한 인터뷰 기사를 읽고 대충 쓴 것임. 시대 자료로서 가치가 있을 것 같음!.... --; 니그라토....
황소 개구리 멸종하다
1.
-이 거군요. 요즘 인기가 높다는 정력제가.
21살이지만 어릴 때부터 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덕에, 생화학 박사가 된 김은영이 말했다. 실업자가 만성으로 정체된 이 시대엔 거리마다 굴러다니는 시시껄렁한 박사가 아니라 세계 굴지의 생체 공학 연구소에서도 으뜸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는 여자다.
그런 김은영이 물었으면 대화 상대가 있어야지? 다행히도 그건 공주병용 거울도 나홀로용 컴퓨터도 인터넷도 아닌, 그녀 앞에 명쾌하게 버티고 선 체 번들거리는 붉은 살결을 교만하게 내민 박쾌남 반장이다. 53세인 박 반장은 190cm에 140kg으로 프로 레슬러래도 속을 근육질 겸 비만의 몸집을 지니고 있다.
-틀림없습니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한 것이죠. 이걸 얻기 위해서 악덕 상인들이며 어깨들이 결탁해서 길거리에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일이 커진 겁니다.
박쾌남이 대답했다. 선글라스를 왜 끼었지, 저 아저씨? 아줌마한테 두들겨 맞았나? 하긴 저 덩치면 견뎌 낼 여자가 없겠군. 박쾌남이 두툼한 선글라스 너머로 김은영을 은근슬쩍 훑어본다.
정말 예쁘군. 척 보아하니 174cm, 50kg에 35-24-36이로군. 하얀 웃옷을 벗겨 내고 고 야들야들한 몸을 만졌으면 좋겠어. 똑같은 영계의 몸이라도, 대중에 결코 공개되지 않는 게 더 맛있는 법이지. 이곳 저곳 염색된 저 머리카락을 입술에 물게 하곤, 내 거시기를 목구멍까지 처박아 싹싹 핥게 해야 하는데. 끄아악, 꼴린다. 초등학생이 나오는 스트립 쇼장에나 가야겠군. 그곳에 넘치듯 나오는 사람 같지도 않는 년들을 찟어죽일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해. 그거야말로 반칙이 아니지.
-이게 뭔지 꼭 분석해야 합니까? 딱 보면 너무나 명백하잖아요.
김은영이 말했다.
-국민들이 쉽사리 믿지를 않아요. 박사님 같이 높은 권위를 보여줘야 믿겠지요. 그 바보들은 우리 같은 엘리트가 아니면 절대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니까요. 그저 형식적인 검사만 해주시면 됩니다.
박쾌남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을 맺는다. 허허. 약간 앙칼진 표정까지도 너무 예쁘군. 젖퉁이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방사선을 찍은 다음 가시광선으로 바꾸어 주는 투시 카메라가 암시장에 많다던데 빨랑 구해서 기회 있으면 팡 찍어야겠어.
-전 제가 전문가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는데요.
김은영이 말했다.
박쾌남이 고개를 돌린다. 반장 얼굴이 모욕이라도 받은 것처럼 시뻘게진다. 괘씸한 년. 내 딸 같았으면 당장 혁대를 벗어서 후려갈겨 줄 텐데. 아니지. 저 년은 내 딸이 아니잖아. 홀딱 벗겨서 남극점에 동댕이쳐 버려야 돼.
2.
-황소 개구리, 전멸하다!
공중파 방송국들이 한꺼번에 입방아를 찧어 댄 말이다. 김은영은 목욕 타월을 가슴에만 두른 체 시쿤등한 얼굴로 방바닥에 앉아 있다. 불쌍한 황소 개구리들 같으니. 황소 개구리 등심이 정력엔 완빵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자마자 1년 만에 그들은 온 지구에서 멸종하였다. 동물원에 남아 있는 몇 마리 마저 한국 정치가, 군인, 재벌들이 남태평양의 섬들을 팔아먹으면서 몰래 사들여 고아 먹고 있어서 생사가 오락가락한다고 한다. 물론 꿀 먹은 매스컴은 그 졸부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김은영이 컴퓨터 앞에 앉더니 마우스를 몇 번 누른다. 동남아시아 소수 민족 부족들 가운데 상당수에서 최근 몇 주 사이 남자들이 어린애, 늙은이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죽어 나갔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 있다. 그녀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사이트로 간다. 아니 다를까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다.
그녀가 인터넷을 그만두더니, 옆방으로 가서 철해 놓은 종이들을 본다. 그녀의 친오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프린터로 뽑아 놓았던 것들이다. 질이 좋은 종이여서 색이 바래진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별 볼 일 없는 일본 만화 하나 때문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 몇몇 싸가지 없는 놈들이 일진회라는 폭력 서클을 조직하여 깡패 짓을 한다는 까닭으로 청소년 보호법이라는 게 만들어져 모든 청소년을 죄인으로 몰아대고 있다. 청소년 보호법? 기성세대의 우물 안 개구리식 편견을 청소년이 몰고 올 새로운 가치관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규다. 이건 기성세대의 이지메다. 이지메란 게 뭔가. 스스로의 약점을 보다 더 약한 자에게서 보았을 때, 스스로의 약점을 잊기 위해 약자를 괴롭히고 소외시키는 게 아닌가. 친일파를 정치및 경제의 중추로부터 몰아낸다는 과거 청산도 안 된 상태에서, 일본을 모델로 삼아 쫓아가는 바람에 수많은 일본 문화가 사회 각 분야에 녹아 들어가 있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낸 추악한 기성세대가 스스로의 모습을 청소년들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사실상 기성세대가 쫓는 가치는 일진회란 것 속에 투영되어 있다. 일진회는 친일파들이 권력이면 일제라도 좋다면서 만든 것이다. 권력만을 긍정하고 이에 아첨하여 끝없는 성공만을 지향하는 더러운 정신을, 짱이 되겠답시고 폭력만을 자행하는 몇몇 청소년에게서 보았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이를 잊기 위해 무의식의 구조에 따른 추잡한 정신의 방어 기제로서 청소년 보호법이란 것을 만들어 폭압을 더욱 깊게 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불필요하고 천박한 부당함은 언젠가는 역사가 반드시 올바르게 심판해 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다가 올 새로운 시대만이 우리에겐 희망이다.
김은영의 눈이 빛났다.
-그래. 난 천재 미소녀니까 얼마든지 그런 약을 만들 수 있을 거야.
3.
김은영은 하얀 가운을 입은 체 원숭이 수컷과 암컷에서 각각 주사 바늘을 꽂았다. 그리고는 멀찍이 물러났다.
수컷이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몸을 비비 꼬아 댄다. 김은영은 시뮬레이터로 얻어낸 결과와 실제 결과가 맞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더 선명하게 조작했다. 수컷이 거꾸러진다. 입엔 게거품이 물린다. 그것이 피로 바뀐다. 땀구멍에서조차 피가 스며 나온다.
김은영이 시쿤등하게 중얼댄다.
-이제 유전자및 세포질 변이가 일어날 차례군.
원숭이 수컷이 한낱 물컹으로 바뀌며 무너지듯 가라앉는다. 암컷은 겁을 내며 끽끽거리지만 그 뿐이다.
-성공이야.
김은영이 손바닥을 마주친다.
그녀가 박쾌남 반장을 통해 검찰의 높은 자리에서 거들먹거리는 인물과 만나서 작전 계획을 세운다. 작전 계획은 앞서 원숭이 수컷에겐 강력한 효능을 보였으나 암컷에겐 아무런 효과도 보이지 않은 약물을 쓰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그 약은 남성 유전자에만 작용하는 생화학 실체다.
약이 대량 생산된다. 매우 고농도로 희석된 약이 수많은 헬기를 통해 전 국토에 뿌려진다. 검찰에겐 이 약이, 요즘 인기가 높은 정력제를 먹은 사람을 식별해 내는 데에만 효능이 있다고 예쁜 얼굴이랑 멋진 몸을 무기 삼아 속여 두었다.
곧바로 막대한 수의 수컷들이 살해된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실체를 알아챈 검찰이 약물 살포를 멈추고, 김은영을 찾아 헤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김은영은 이미 잠적한 뒤이고, 그 약물은 메틸화가 아주 잘 된다. 그러니까 그 약물은 공기에 잘 스며들며, 그것에 더해 결코 분해되지 않는다는 가공할 속성을 지녔다.
마침내 전 지구의 수컷들이 전멸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김은영은 모든 암컷을 해방시킨 사람으로 길이길이 추앙된다. 암컷은 태초에 벌어진 유전자들끼리의 자리 싸움에서 이긴 유전자들의 조합을 이르는 말이다. 수컷이란, 기생충에 못 견딘 종이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낸 생존 기제에 지나지않는다. 필요악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없어져도 아무 상관없다. 암컷들만이 복제되기 비롯한다. 모든 목숨은 제대로 되고 안정되어 있으며 효율성도 높은 번식법, 무성 생식으로 되돌아갔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내 참,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계획부터가 성공하기 어려운 거지만, 세계 일주를 하겠답시고 집에 안 붙어있는 친오빠를 죽일 일 있냐. 깨끗하게 정리하고 있는 옆방은 본디 김은영의 친오빠 방이다. 그러다간 아빠도 애인도.... 음.
그녀가 기껏 만든 약물을 원심 분리기에 집어넣고 분해시키더니 하수구에 흘려 보낸다. 구조식은 CD에 복사해서 가지고 잇다가 다른 약 만들 때 참조하기로 했다.
김은영은 집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공중파 방송국의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김은영은 볼을 살짝 붉히고 말투가 조금 떨리는 등 다소 곤혹스러워 해 두어 번 NG가 났다. 겨우 이 말 한마디 한 것인데 말이다.
-그건 남성 생식기가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