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본인조차도 자신의 성격 정체성을 깨닫지 못할만큼 복잡다단한 내면을 지녔기 때문에,
연애 상대방이나 결혼 배우자가 그 속내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 입장에서 HSP를 대할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은
평상 시의 모습(매우 젠틀하고 배려하며 이타적인)과
갈등 시의 모습(입꾹닫, 냉담, 사람 분위기 자체가 달라짐) 사이에 괴리감이 너무 커서
이러한 불일치를 당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지극히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입니다.
좋을 땐 한없이 좋지만, 나쁠 땐 한없이 나빠질 수 있는 HSP와의 관계
자신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예민한 사람들의 속내는 과연 어떤 것일까?
목도리 도마뱀
예민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항상 똑같은 원리로 작동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쉽게 전염될만큼 감정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항상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선까지 고려해가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양태는 그 누구보다도 관계주의적이며 집단주의적인 사람들처럼 비춰지는 것이죠.
※ 주변 사람들의 감정들까지 모조리 다 느껴지므로,
내가 속한 집단 구성원들의 기분이 좋아야지만 내 기분도 좋게 유지될 수 있음.
따라서, 내 내면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친사회적이며 협동주의적인 행동을 하게될 수밖에 없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지만,
내가 예민성을 표출하면 결국 나만 힘들어지기에,
세상 무던한 사람처럼 행동하며 주변의 평화를 어떡해서든 유지하려는 사람들.
공적인 관계든, 사적인 관계든,
이런 식의 행동 패턴이 너무 오래된 관계로 HSP들에게는 일종의 "관성"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관성?
아무리 힘들고 짜증 나고 화가 나도, 목도리를 꽉 붙잡고 절대 펼치려 하지 않는 것이죠.
내가 여기서 갑자기 목도리를 확 펼치고 이상한 사람이 될 바에야,
차라리 입을 꾹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거나,
최악의 경우엔, 내가 목도리를 확 펼치기 전에,
즉, 내 예민함의 임계치가 넘어서기 전에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어느정도 예정된 결말입니다.
자신의 실체와 정반대의 이미지를 고수한다는 건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일입니다.
이 세상 99%의 사람들은 절대 끝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방어할 수 없어요.
인간의 정신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참고 참다 결국에는 폭발하는 수순이 필연적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내가 이 관계에서 평생을 무던한 도마뱀처럼 맞춰 주며 지내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더이상은 못하겠다, 나 사실은 목도리 도마뱀인데 내가 쭉 맞춰 오고 있었다
라고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면, 상대방 입장에서 이처럼 어이없는 일은 또 없을 겁니다.
갑자기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오히려 황당하고 배신감까지 들게 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이걸 HSP들도 전부 다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관성 때문만이 아니라, 더더욱 자신의 속내를 얘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도 관계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는데,
이제까지의 내 노력들을 모두 부정당한 채,
이상한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예민쟁이로는 전락하기 싫은 것이죠.
그런데 또 힘에 부쳐 더이상은 무던한 도마뱀처럼 연기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이러니 퓨즈가 나가 입꾹닫을 하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하면서 이 모든 불편감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이기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때때로 예민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최악의 엑스(Ex)로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그럼, 불편하더라도 꾹 참고 모든 관계에서 목도리를 펼쳐야 되는 건가요?"
자,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두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① 내가 끝까지 이미지를 고수할 수 있을 것 같은 관계에서는,
계속 도마뱀 행세를 하며 좋은 평판과 부드러운 분위기 챙기기
② 내가 끝까지 이미지를 고수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에서는,
최대한 일찍 나의 실체가 목도리 도마뱀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
보통, 전자는 공적인 관계나 가벼운 지인 사이이고,
후자는 절친이나 연인, 가족, 동업자처럼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 헤비한 관계에 해당됩니다.
가끔씩 예민한 분들께,
'직장 동료가 자꾸 목도리를 펼치게끔 만드는데 이걸 펼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란 주제로 고민 상담을 받곤 하는데,
저는 최대한 꾹 참고 목도리를 단단히 붙들어 메시라고 답변하곤 합니다.
왜냐?
공적인 관계나 가벼운 관계들에서는,
드러난 행동만으로 섣불리 단순한 평가를 내리기 십상이므로,
HSP들이 참지 못하고 흑화하는 순간만 캡쳐하고선, 온갖 뒷말이 무성해질 가능성이 굉장히 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내 목도리를 펼치게끔 강제한 상대가 육식 동물에 해당하는 나르시시스트 등의 포식자라면,
초식 동물에 해당하는 HSP들은 굉장히 허무하게 정치 싸움의 패배자가 될 수도 있어요.
따라서, 어떡해서든 꾹 참고 무던한 도마뱀의 이미지를 고수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부서를 옮기거나 이직하는 편이 HSP들의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 있습니다.
즉,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셈이죠.
연인이나 배우자처럼 헤비한 관계에서는,
최대한 일찍 목도리를 보여주는 게 베스트지만,
이미 보통 도마뱀처럼 행동한 지 꽤 된 커플이라면 현실적으로 이러한 변화의 시도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앞서 설명한 것처럼,
관성의 법칙이나 이상한 예민쟁이의 오명을 쓰기 싫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사실 HSP들이 그들의 파트너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조차 긍정도 수용도 못하겠는 내 이러한 괴상한 성질을
상대방 또한 당연히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물론, 상대방도 예민한 사람들의 속내를 알게 되면, 벙찌고 짜증나고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관계에서 때때로 서로에게 실망하고 분노하는 건 기본 옵션이에요.
누구나 이러한 갈등들을 겪으며 조심할 건 조심하고 고칠 건 고치면서 상생의 길을 모색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갈등을 봉합시켜 가며,
서서히 관계가 성숙하고 발전하는 건데,
예민한 사람들은 내가 숨겨 온 목도리를 상대방이 알게 되면,
내 연인이, 배우자가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큰 실망과 상처를 안은 채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습성이 있어요.
내가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하니,
당연히 상대방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말예요.
HSP의 파트너들이 정작 참지 못하는 건,
예민한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겠는데 자꾸 벽을 세우고 자기를 밀어내는 것이지,
오히려, 그 무엇보다도 예민한 사람들의 속내를, 진심을 알고 싶어 합니다.
평상시 그 누구보다도 배려심 있고, 잘 챙기고, 센스 있는 반려자이기 때문에,
예민한 사람들의 파트너는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을 때와 나쁠 때 간의 이 이해할 수 없는 괴리감으로 인해 HSP의 파트너들이 훨씬 더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뜻하고 센스 넘치던 사람이 도대체 왜 이처럼 차갑고 냉정하게 변했을까?
예민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나 스스로 내 성격 정체성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 중요한 과제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진정한 성격을 오픈하는 일이구요.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일입니다.
내가 지닌 Hyper-sensitivity 기질로 인해,
센스라는 장점과 예민이라는 단점이 동시에 생길 수밖에 없음을 수용하고,
내가 가진 센스 덕분에 이 관계가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인정하는만큼,
내가 가진 초예민성으로 인해 상대방과 언제든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해요.
많이 싸우고 봉합하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예민한 사람들의 파트너도 이 도마뱀이 언제 목도리를 확 펼치게 되는지 알게 되면서,
어떻게 해야 이 HSP들을 다룰 수 있는 지에 대한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조심할 것만 조심해 주면,
한없이 무던하고 이타적이며 센스 넘치는 배려를 보여줄 수 있는 종족이에요.
즉, 예민한 사람들의 파트너야말로 얼마든지 이들이 선사하는 센스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중한 사람들에게만큼은 더이상 여러분의 목도리 펼치는 일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그 센서티브한 목도리야말로, 여러분의 정체성 바로 그 자체니까요.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딱 제 이야기이고 글을 보며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목도리를 보여주지 못하고 살아오다보니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살아가고 남들의 이목과 생각에 관심없는 듯 살아가는 이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목도리를 펼쳐라 ^^
전 요즘 드는 느낌이 많이 둔감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거네요 ^^;
늘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글이 길어 어려워여 ㅎ
긍정적이지 못하게… ㅎㅎ
@둠키 아콩 ㅋ 눈이 불편하대서 ㅎㅎ
제 얘기라서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저에게 그게 딜레마이고 상처일때도 있었어요
예전에 장인어른이 저를 끝까지
밀어붙이셔서 잠깐 목도리를 보여드렸더니
그전에 잘 해드린건 싹 다 사라지고
’얘가 변했다‘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어서요.
다시 한번 정독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잘 정해야겠어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HSP이고, 아내도 HSP이고(연애할 때는 아닌 줄 알았는데...목도리를 보지 못했네요), 저희 아들들, 특히 둘째가 HSP인 것 같아요.
HSP 가족 구성원들끼리 무언가 함께 오래 하는 것이 매우 힘드네요.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흩어져서 각자 하고싶은 거 하면서 평화가 찾아오려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