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m 7시에 92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는 것 아닙니까? 92번 종점은 진벌리입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내려오는데 울타리마다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어요. 진광 전원교회에 볼 일 있는 사람처럼 어슬렁 어슬렁 진입했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것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교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대신 측 교단인데 대지가 5000평이면 땅값만 25*5=2.500억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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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여 전도회 회장 선거에 나갔다가 시험에 들었고, 이후 담임 목사 스캔들이 터지면서 출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러고 보면 막내도 욕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에예공! "존재의 지평으로부터 다가오는 그런 신"을 찾아 '신 넘어의 신'을 만나시라! 경복대 국기 게양대에 만국기가 펄럭거리고 있었고 내가 20년 동안 본 캠퍼스 풍경 중에 오늘이 가장 북적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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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경복대가 포천에 있던 것인데 지자체에서 판단 미스로 땅값 싼 진벌리에 간호학과가 이전을 했고, 그 덕에 오늘날 효자 대학이 됐다는 것 아닙니까? 트롯트 임영웅이 경복대 포천 캠퍼스 실용음악과를 졸업했을 것입니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가면 '한우 명가'가 존재감 뿜뿜입니다. '한우 명가'는 진접에 본점이 있고 이곳이 지점인데 매출은 진즉에 본점을 앞지른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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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대 통학 버스 지정 주차장에 부스가 생긴 것이 이제 도둑 주차는 물 건너 간 것 같아요. 바로 2번 버스 종점을 지나 좁은 골목길에 아직도 버스가 다니나 모르겠습니다. 어라, 주먹만 한 밤송이가 여물었을까요? 포도 덩굴입니다. 단내가 나서 다가갔는데 종이로 싸 있어서 짜증 내는 요나 얼굴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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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방 어디에 작고하신 막내 이모네 공장집이 있을 것입니다. 여왕 장미가 예쁘네요. 휴먼시아 뒤 담장이 여기에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정문 보다 후문이 훨씬 운치있어 보입니다. 개울 다리 건너 옷 가게도, 창고형 갈빗집도 야구 트레이닝 센터로 바뀌어 있었고 이 길 따라 진접 중학교-신안 인스빌로 이어질 것입니다. 신안 인스빌(34평)에 어머니와 막내가, 그리고 송이, 영삼이, 둘째 누나가 34평짜리 아파트를 세컨드 하우스로 살고 있는데 내 집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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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아파트 가격이 4억대가 있고, 뒤편 진벌리부터 75사단의 재개발 땅들을 잘 찾아보면 돈 되는 물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10년 전에 매일 광릉 네-신안 인스빌까지 트래킹을 하면서 절치부심했는데 빈손으로 안성을 내려갔을 것입니다. 아침을 뭘 먹을까 하는데 92번 버스가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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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탔습니다. 3시간을 걸었고 1시간을 차에 실려 이동했는데 배터리가 아직까지 쌩쌩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운천-포천-송우리-내촌-진벌리-광릉 네-진접-구리까지 남하한 것이 갈데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인생 같습니다. 800조 빛고을 광주로 떠나고 싶어집니다. 인생의 가나안은 언젠가 도착해야 할 땅인가, 아니면 소유와 상실을 지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삶의 방향인가?
2.
오전 7시, 92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진벌리까지 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버스는 종점에 도착했지만, 당신의 하루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며 울타리마다 가을을 재촉하는 풍경을 보고, 오래된 교회와 대학, 식당과 아파트를 지나 다시 버스를 타는 여정은 한 지역의 지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짚는 지도입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십 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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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광 전원교회 앞에서 느낀 적막은 한국 교회의 위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평일 아침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교회의 쇠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대지의 크기나 교인의 숫자가 아니라, 그 공간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입니다. 5,000평의 땅과 웅장한 건물이 있어도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지 못한다면 교회는 이미 자기 존재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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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틸리히의 ‘신 넘어의 신’이 떠오릅니다. 틸리히가 말한 신 넘어의 신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종교적 이미지와 제도적 확신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인간을 붙드는 궁극적 실재를 가리킵니다. 교회라는 제도와 하나님을 동일시할 때, 제도의 실패는 곧 신앙의 붕괴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 제도보다 더 깊은 차원을 향한다면, 교회의 위기는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이라고 믿어왔는지를 다시 묻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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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도를 넘어선다는 것이 공동체를 버리거나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 넘어의 신은 현실의 관계를 떠나는 초월이 아니라, 우상화된 확신을 넘어 다시 책임 있게 살아가게 하는 물음입니다. 막내의 여전도회 회장 선거와 목사 스캔들에 대한 기억도 이 지점에서 조심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선거에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욕심이 많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 관계에서 상처받은 경험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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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순수한 헌신이나 이기적인 야심 가운데 하나로만 분류되지 않습니다. 종교 공동체가 성숙하려면 권력과 인정, 상처와 책임의 문제를 정직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경복대의 만국기와 북적이는 캠퍼스는 또 다른 시간의 풍경입니다. 과거에는 한적했던 장소가 학생들로 가득 차고, 대학의 이전과 지역 개발은 주변 상권과 땅의 가치를 바꾸어 놓습니다. ‘한우 명가’의 존재감, 통학버스 주차장의 부스, 골목길의 변화는 도시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재편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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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인스빌 앞에서 글의 정서가 달라집니다. 어머니와 가족들의 집은 있는데 내 집은 없다는 문장은 단순한 부동산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이 평생 품고 살아가는 소속의 욕망을 드러냅니다. 집은 재산이면서 동시에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라는 질문의 물질적 형태입니다. 십 년 전 광릉내에서 신안 인스빌까지 걸으며 절치부심했던 기억과 빈손으로 안성을 내려갔던 시간이 오늘의 풍경 위에 겹쳐집니다. 그러나 빈손으로 떠났다는 사실이 곧 실패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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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관점에서 삶은 처음의 자리로 단순히 되돌아오는 원운동이 아니라, 상실과 부정을 통과하며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십 년 전에는 아파트와 땅이 미래의 가능성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오늘은 그 길을 걸어온 자신의 몸과 기억, 여전히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또 다른 자산으로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물질적 소유의 중요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집이 없는 현실의 불안과 경제적 필요는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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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그 결핍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대신, 소유가 인간의 존재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다시 나타난 92번 버스가 인상적입니다. 세 시간을 걷고 한 시간을 차로 이동했는데도 배터리가 쌩쌩하다는 기쁨은 삶의 가장 구체적인 긍정입니다. 니체가 말한 운명애를 떠올리게 합니다. 운명애는 주어진 현실을 무조건 좋다고 합리화하는 태도가 아니라, 지나온 실패와 상실까지 포함한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긍정하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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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후회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금 여기서 다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운천, 포천, 송우리, 내촌, 진벌리, 광릉내, 진접, 구리로 이어지는 남하의 길은 아브라함의 여정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반드시 부동산 등기부에 내 이름을 올리는 순간에만 도착하는 곳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의 아브라함도 약속을 받았지만 평생 나그네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약속은 소유의 완성이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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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아비는 오늘도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십 년 전에는 빈손으로 떠났던 길을 오늘은 두 다리로 다시 걸었다. 집도 땅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 아직 걸을 수 있고, 낯선 길을 발견할 수 있고, 지나온 시간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귀한 재산이다. 인생의 가나안은 어쩌면 도착해서 끝나는 장소가 아니라, 종점에서도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사람에게 열리는 지평인지도 모르지.
2026.9.9.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