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상징, 영국 여왕 차,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설명할 때 붙는 단골 수식어다. 하지만 재규어와 랜드로버가 이처럼 `영국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았지만 회사 대주주는 영국이 아니다. 처음엔 미국 대표 자동차 업체인 포드가, 다음엔 인도 국민기업인 타타가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했기 때문. 재규어나 랜드로버와 같은 프리미엄 럭셔리 이미지 자동차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깐깐한 영국인들조차 타타라는 대주주가 있는 것을 두고 `영국의 기백을 지키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게 하는 최적의 파트너십`이라고 평가한다. 30년 가까이 재규어랜드로버에 몸담으며 역사를 지켜본 필 폽햄 재규어랜드로버 마케팅 총괄 사장은 최근 서울에서 매일경제 MBA팀과 인터뷰하면서 "기업에 있어 오너십 안정성,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고 말했다. 한때 위기에 처한 재규어랜드로버가 인도 기업 타타에 인수되면서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에 우뚝 선 이유를 그에게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재규어랜드로버에 몸담은 지 26년째다. 회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포드에서 타타로 대주주가 바뀐 것일 텐데.
▶2000년 포드, 2008년 타타가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했다. 타타가 2008년 회사를 인수한 시점은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였다. 프리미엄 자동차 업계엔 재앙과도 같았던 시기였다. 타타는 이때 오히려 재규어랜드로버를 믿고 더 많이 지원했다. 불황에도 제품 개발 비용을 전혀 줄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나서라고 독려했다. 그 결과 레인지로버 이보크나 뉴 디스커버리4 등과 같은 매력적인 제품이 쏟아져 나왔고 성장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했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격적인 투자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다. 올해 수치를 보면 제품에 투자한 비용이 27억5000만파운드(약 4조7693억원)다. 딜러 네트워크 확충에 지난 3년간 10억파운드(약 1조7000억원)를 썼다. 과거엔 더 썼으면 더 썼지 덜 쓰진 않았다. 제품 라인업은 다채로워졌고, 글로벌 딜러 네트워크는 단단해졌으며, 신흥시장과 선진국에서 모두 훌륭한 판매망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금액을 투자할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상징 같은 브랜드가 인도 기업 타타에 넘어간다는 것 때문에 말이 많았다.
▶인도 기업 타타가 재규어랜드로버를 인수했지만 재규어랜드로버는 가장 `영국스러운` 회사다. 모든 의사결정은 영국 코번트리 본사에서, 재규어랜드로버 이사회가 한다. 타타 임원들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과거 라탄 타타 회장도 그렇고, 현 사이러스 미스트리 회장도 그렇고 1년에 영국으로 3~4번 정도 와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보고를 받은 후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최종 점검을 하는 정도다. 타타는 우리 결정과 경영 방식을 100% 존중하고 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 우리가 브랜드 훼손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주로 세일즈 분야를 담당하다가 마케팅 총괄 사장이 됐다. 마케팅 수장으로서 목표는.
▶성장하는 기업의 마케팅이란 한정된 예산 내에서 효율적 지출을 통해 각 브랜드 특성을 살려 `아이코닉(Iconic)함`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제품 마케팅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함께해야 한다.
제품 마케팅은 시장을 분석하고, 반응을 듣고, 소비자 인식에 맞는 제품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이를 기술이나 제조 파트에 전달하는 것이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선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어느 국가에서든 사람들이 재규어랜드로버에 대해 같은 이미지와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어떤 국가에서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경험하더라도 `배신`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소비자 수요를 더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참 다른 두 브랜드다. 차이점을 설명한다면.
▶재규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Alive(살아 있음)`다. 사람이 만드는 것 중 가장 살아 있는 것에 가까운 것이 자동차고, 그런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보다 수준 높은 기술과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무장한 차를 선보이는 것이 재규어다.
랜드로버 키워드는 `Above and Beyond`다. 기존 자동차가 가진 모든 요소를 아우르면서, 이를 한 단계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기존 SUV가 가지고 있던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럭셔리함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다른 두 브랜드 DNA와 철학에 맞는 마케팅을 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만, 영국에 뿌리를 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라는 점에서 잘 아우를 수 있다고 본다. 또 재규어를 원하는 고객과 랜드로버를 원하는 고객이 속한 그룹의 성격이 비슷하다는 점도 우리에게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럭셔리 자동차 특징 중 하나가 `희소성`이다. 희소성 유지와 판매 증대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쓰나.
▶우리는 `볼륨 매뉴팩처(Volume Manufactureㆍ대량 생산 제조사)`가 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브랜드 내에서 제품 종류를 늘릴 생각은 언제나 한다.
랜드로버 소형 프리미엄 SUV인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좋은 예다.
이 시장은 럭셔리 세그먼트에선 `블루오션`이 아니라 아예 백지 상태인 `화이트 스페이스` 같은 곳이었지만, 개척에 성공했고 우리 뒤를 따라 많은 브랜드들이 이 시장에 진출 중이다. 우리는 수요에 비해 적은 양을 만드는 브랜드고, 앞으로 그런 기조는 유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