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재보궐선거의 판이 커졌다. 당초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전남 영광군수, 전남 곡성군수 등 4곳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자리를 두고 치러질 예정이었던 재보선에 서울시교육감 자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감의 상징성과 권한이 큰 만큼 이번 재보선에 정치적 관심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불어 이번 재보선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이 취임 후 처음 치르는 선거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4월 22대 총선에서 ‘지민비조(지역구 후보 투표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당)’를 내세우며 12개 의석을 확보했던 조국당이 민주당에 도전장을 내밀며 ‘호남대전’을 예고한 것 역시 재보선 관전 포인트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尹대통령 심판론’ 등장
“기초단체장 선거는 중앙의 큰 이슈가 되지 않는다. 지역마다 승패가 정해져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응원할 뿐이다. 문제는 서울시교육감 선거다.”
한 여당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앙당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는 선거는 4곳의 지자체장 재보궐선거가 아니라 서울시교육감 선거라는 뜻이다.
‘용산’에서도 지자체장 재보궐선거보다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여야가 직접 경쟁하지 않지만, 서울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선거인 만큼 지난 4월 총선 이후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을 향한 서울 민심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후보자가 당적을 가질 수 없고, 정당 또한 선거에 관여할 수 없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는 ‘정당은 교육감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할 수 없다’ ‘후보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반대하거나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추천받고 있음을 표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이미 ‘보수’ ‘진보’를 자처하며 뚜렷한 정치색을 드러내고 있다. 정당 공천 및 지원을 배제하는 취지는 무색해진 지 오래다.
진보 진영에서는 ‘2024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가, 보수 진영에서는 ‘바른교육국민연합’과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등 두 단체가 각 진영 후보의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14년과 2018년, 2022년 세 차례 단일화 실패로 진보 진영에 자리를 내어준 보수 진영에서는 교육감 탈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20%대(9일 1주 차 리얼미터 기준 29.9%)로 떨어진 데다, 정당 지지율도 야당에 밀리는 상황(국민의힘 34.6%, 민주당 40.1%)이라 긴장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12년 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시교육감직을 상실했던 진보 진영 곽노현의 재등판은 여야가 본격적으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곽노현은 지난 9월 5일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이번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는 무엇보다도 우리 교육을 검찰 권력으로부터 지키는 선거” “윤석열 정권에 대한 삼중 탄핵으로 가는 중간심판 선거”라며 윤석열 정권의 탄핵을 강조했다.
이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9월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곽씨가 혈세 30억원(국가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을 토해내지도 않고 다시 교육감 선거에 나선다”고 비판했다.
진성준 (민주당)도 지난 9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교육정책을 두고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할 보궐선거가 정쟁이 난무하는 정치판으로 전락하는 것도 시민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라며 곽노현에게 재고를 권고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9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본청 의장접견실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 겸 정기회 개회식 사전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조국.
공천권 시도당에 위임한 韓대표, 평가는?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자 지지세가 센 지역에 화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중앙당 차원에서 대응하는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이번 재보선의 공천권을 시도당에 위임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한 대표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은 친윤계가 공천을 주도하며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김태우 후보를 공천했으나 야당에 참패했고, 그 여파로 김기현 지도부가 물러났다.
이 같은 한 대표의 방침을 두고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겉으로 볼 때는 자유롭게 한다고 느껴지는 상향식 공천 같지만, 너무나 국민의힘을 모르고 정치 신인처럼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한 것”이라며 한 대표가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 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갈린다. 의료대란, 연금개혁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권한을 분산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평가와 2026년 지방선거의 전초전 격인 재보궐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대표의 방침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박 평론가는 “실험적인 길을 연 것이라 본다. 국회의원 선거가 아니라 기초단체장 선거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중앙당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며 “중앙당이 나서 구청장선거에 공천을 하고 뛰어들 만큼 우리 경제나 정치 상황이 녹록지 않다. 또 한 대표는 공천까지 개입할 만큼 당내 분위기와 상황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못하고 있다. 이럴 때에는 책임과 권한을 나눠 가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만일 부산에서 패배한다면 ‘책임을 회피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이후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부산은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해 손 놓고, 전남에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대표가 최근 정치개혁, 지구당 부활을 이야기했으니 그 맥락에서 분권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책임 면피성으로 공천권을 넘긴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현 국면에서는 후자로 보인다. 분권이 목적이라면 ‘한 대표의 정치개혁 큰그림 안에서 시도당에 공천권을 위임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텐데 분권화, 당내 민주화에 대한 플랜이 없다. 아직은 평가받을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봐야 한다.
조국당이나 개혁신당이 호남에 공들이고 있는데, 한 대표가 해야 할 일을 그들이 하고 있다.
호남에서 여당의 패배는 당연하겠지만 지난번 윤석열 대통령(20대 대선 광주 12.72%)보다 지지율을 더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로 임해야 한다.”
부산, 인천 지자체장 재보선의 경우 압도적 지지세 덕에 국민의힘은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다.
부산 금정에서 치러진 역대 여덟 번의 구청장선거에서 한 번(2018년 7회 지방선거)을 제외하고 언제나 보수 정당이 승리했고, 인천 강화 역시 역대 아홉 번의 군수 선거에서 모두 보수 정당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지역에서는 후보 난립, 공천 논란 등으로 상황이 쉽지 않아 중앙당 차원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텃밭 민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에는 국민의힘 공천신청자만 13명이 몰렸다.
인천시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컷오프에 따른 무소속 출마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검증 없이 모두에게 경선티켓을 쥐여줬다. 그러나 인천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무소속 출마를 시사했다.
6명의 공천신청자가 나타난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는 벌써 후보 공천에 대한 잡음이 일고 있다.
부산시당 공관위에 ‘공정경선’을 촉구하고 나선 최봉환 금정구청장 예비후보는 “텃밭이라곤 해도 지역 경제사정이 어려워 보수에 대한 지역 민심이 예전 같지 않다. 중앙에서 지역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공관위를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중앙당 차원에서 나서 정리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더욱이 부산 금정에서는 ‘연대와 단일화 없는 완주’를 약속한 개혁신당이 후보를 내놓기 위해 특정인사와 물밑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호남대전’으로 존재감 키우는 조국당
“호남은 사실상 민주당 일당 독점 상태입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흐르게 해야 합니다.”(지난 8월 26일 최고위원회의) “12명의 국회의원이 12명의 군수가 된다는 각오와 결의로 이번 선거를 뛸 것이고 그 뒤도 마찬가지라 말씀 드립니다.”(지난 9월 10일 광주시의회 기자회견)
조국당 조국은 호남 민심 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전남 곡성·영광에 월세집을 구해 숙식하며 ‘월세살이 선거운동’도 시작했다. 조국혁당은 이번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비교섭단체로 원내 활동에 제약이 있는 데다, 총선 이후 당 지지율이 내려앉은 만큼 재보궐선거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총선 당시 공약했던 국회 원내 교섭단체 요건 완화에 협조하지 않으며 ‘총선 청구서’를 외면하고 있는 것 역시 민주당과의 전면전을 택하고 자강에 힘쓰는 이유가 된다.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면 민주당은 내후년 지방선거까지 혁신당과의 협력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반면 이재명 2기 지도부 구성 과정에 호남홀대론이 제기된 상황에서 도전장을 건네받은 민주당은 조국혁당을 강력하게 견제 중이다.
지난 9월 8일에는 박지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어차피 영광·곡성은 민주당이 승리한다. 호남에서 경쟁하면 진보의 분화가 시작될 우려가 깊다”며 조국을 향해 ‘통 큰 결단’을 요구했다.
이에 김보협 (조국당)은 논평을 내고 “‘호남은 민주당 땅이니 후보를 낼 생각하지 말라’는 말 같다. 한창 후보 경선 중인데 접으라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이어 “곡성·영광 군수선거는 대선이 아니다. 조국당과 민주당이 경쟁한다고 해서 분열로 이어져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특히 곡성군수 선거는 민주당 귀책사유로 인해 다시 치러진다.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인천 강화’와 ‘부산 금정’을 주고받자는 조국혁당의 단일화 제안도 거부했다.
민주당은 지난 9월 9일 “정치공학적 야권 단일화는 안 된다”며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본선 후보로 김경지 전 금정구 지역위원장을 전략공천했다. 다만 양당 관계자에 따르면 조국당과 민주당의 부산 금정·인천 강화 단일화 논의는 추석 이후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부산 금정의 경우 민주당 내부에서도 중앙에서 김 전 위원장을 내리꽂은 과정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