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platform)이란 단어가 많이 쓰이는 것은 IT(Information Technology)분야 입니다. 원래 플랫폼이란 뜻은 철로 옆에 조금 높게 평평하게 지어서 열차를 타고 내리도록 시설해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IT 분야에서 자주 쓰다보니 특정 목적의 불특정 다수가 공유하며 다양한 접속 루트를 가진 자동화된 공정 정도의 의미라고 짧게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적 생산 환경을 점유하고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유무형적 기반시설 의미로 이해 될 수 있습니다.
유투브는 근래 IT 분야에서 견고한 플랫폼을 구축한 사례가 되겠습니다. 요즘에는 유투브가 검색 도구로도 계속해서 점유율이 높아져간다 합니다. 실제로 저같은 경우도 구글을 통해서 정보 검색을 주로 해왔는데 실체에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유투브 검색바를 이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동 임팩트 드릴"이라고 유투브 검색바에 써 넣으면 [인기순]과 [최신날짜] 또는 기타 방식으로 우선 정열된 동영상 순으로 콘텐트가 주욱 따라 나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이 제작한 임팩트 드릴 제조사별 장단점, 가격, 가성비 등등의 각종 리뷰가 담긴 동영상을 선택해서 볼 수 있습니다.
1. 유투브 플랫폼
유투브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고 많은 사회물리적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흡입력 또한 대단합니다. 요즘에는 "실시간" 방송 전파의 도구로도 자주 활용되며 각종 공영방송이나 케이블TV들이 앞다투어 유투브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유투브의 흡입력을 보여주는 현상이죠.
유투브는 한편에서 1인 방송국 시대를 열었습니다. 아프리카, 팟캐스트, Vimeo, 요우쿠(중국)등도 동영상 공유 플랫폼들이지만 유투브는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으로써 굳건한 지위를 확립했습니다.
유트브는 방송, 엔터테인먼트, 뉴스, 지식전파, 홍보, 기타등등의 목적을 흡수하여 현대인들에게 생활의 한 요소로써 사랑받는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2. 유대교 플랫폼
유투브가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소셜 플랫폼이었다면 예배당은 지금까지 종교적 목적을 충족시키는 신앙 플랫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개혁을 희망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추구하는 신앙과 그것을 담는 플랫폼간의 괴리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유대교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유대교, 그러나 어떤 면에서보면 유대교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유대인)의 필요에 따라 가꾸어지고 정제되고 발전되어진 플랫폼이었습니다. 유대교의 근간은 모세의 율법을 기본 뼈대로 하며 이스라엘 나라는 종교와 정치가 통합된 사회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교의 틀 안에서 신앙을 표현하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의도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종래는 종교지도자들(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과 공의회의 사람들 등등)의 편리만 추구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창조 목적)들이 실현되지 못하고 점점 잊혀지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3. 하나님나라 플랫폼
유대교가 사람의 필요에 따라 발전해 왔다면 하나님나라는 전격적으로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점에서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모세의 율법이 유대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법이었다면 하나님나라에서는 성령의 법인 산상수훈적 강령이 그 뼈대를 이룹니다.
유대교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출발했지만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결정지어지고 예수님의 요청에 때라 이 땅에 오게 되었습니다(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게 하옵소서). 그러면서 유대인에 한정되었던 하나님의 백성 되는 자격이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방인을 막론하고 그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였으며 이스라엘이라는 제한적 영역을 벗어나 지구 전체로 확대되었습니다(물리적 영토 폐기).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 '새 옷 조각을 떼어내 헌 옷에 붙이지 아니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을 담는 폼(FORM)이 바꼈음을 선언하는 것이죠. 옷이 낡아져 너덜너덜 헤어지면 하나님의 본질을 더이상 담을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 된다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언급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 플랫폼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제시된 것이므로 교회개혁의 궁극은 결국 그리로 가야만 합니다.
4. 예배당이라는 플랫폼
한국의 독특한 신앙정서는 조선말기에 실학자들의 활약과 한일합방 이후의 암울한 일제 압제 시절 그리고 육이오 이후의 전후 복구와 군사독재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내세에서나 맛볼 수 있는 낙원에 대한 환상이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개개인이 혼자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정치 문화적 현실과 끼니조차 위협받는 절대적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 삶의 희망이었던 시절에 기독교는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양적 팽창 가운데 개신교 내부에 지독한 독소로 자리잡은 것은 샤면적 신앙 정서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필요에 의해 예배당의 정서가 바뀌어져 갔음을 관찰 할 수 있습니다. 배고픔, 출세, 사업의 번창, 좀 더 많은 돈,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의식주의 염원) 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경고는 무시되었지요. 그 독소는 종래 개신교 전체에 누룩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기복신앙은 많은 사람들이 경고해왔지만 결국 그것이 개신교를 삼켰습니다.
기복신앙의 중심에 자리잡은 샤먼(무당,주술사,사제)은 섬김의 도를 실천하기보다는 권력의 맛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서서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사자인 자신들이 오염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들의 양심 깊이 이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 - 샤먼 - 신당은 전형적인 종교의 프레임입니다. 원래 하나님나라 프레임은 종교적 영역이 성령의 오심으로 내면에서 충족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사제나 신당이 필요없습니다(만인 제사장, 하나님 존재의 임마누엘).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 종교적 틀을 만들고 그것을 다듬어 왔습니다. 그것이 1600년이 넘게 고도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그 속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위기의식이 없습니다. 예배당이 모든것을 충족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하나님나라'라는 것을 제시하면 불편해 합니다.
5. 계시록의 지침
앞에서 하나님의 필요와 사람의 필요에 의한 플랫폼 간의 차이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과거 IT 분야를 예로 들자면 인터넷이 활성화 되던 단계에서 한국은 야후, 네이버, 다음, 구글, 라이코스, 파란 등등 여러 검색 플랫폼을 사용했는데 결국 살아남은 것은 다음, 네이버, 구글 뿐입니다. 저는 원래 IT 분야에 종사했기 때문에 주로 구글을 애용해 왔습니다.
구글의 특징은 감추어진 광고키워드를 활용하여 인터넷 페이지를 항해할 때 사용자가 검색한 단어와 관련된 키워드를 여백 페이지에 관련 광고를 노출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올립니다. 그러나 메인페이지는 한개의 광고도 없는 단순한 검색바 하나밖에 없죠.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그 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네이버가 검색포털로 부동의 1위를 하리라 믿었겠지만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구글이 잠식해 들어가고 여기에 유투브가 가세했습니다. 어느날엔가 네이버는 결국 검색포털의 권좌에서 물려날겁니다. 현재는 다음+카카오가 이미 네이버 접속 숫자를 앞질렀습니다. 그 뒤안길에서 사라진 검색포털들은 우리들 머리속에서 흔적조차 없이 잊혀졌습니다.
계시록은 분명하게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개혁이 무엇을 향해야 할지를 뚜렷하게 가리키고 있다고 봅니다. 현재는 예배당 플랫폼이 가진 단점들이 더 이상은 내부로 부터 개혁되지 못하는 한계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교회사에서는 교회가 내부로부터 개혁된 사례는 없음).
만약 지금의 교회 현상이 계시록 3장에서 언급된 라오디게아 교회시대라면 교회개혁의 해법을 거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계시록 1,2,3장은 각 교회에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보여주기 위해 편지를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각 사람이 교회 되었다는 측면에서 관찰하면 일곱가지 신앙형태 중에 어느 하나는 자신이 속해 있는 유형을 알게 해줄 것입니다(어떤 해석자들은 이것을 교회의 시대적 흐름으로 보기도 합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언급된 일곱 종류의 교회중에 마지막에 위치하는데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차갑지도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 ▷입에서 벹어낸다(버려진다).
- 스스로 부요하다 하나 벌거벗음을 알지 못한다 ▷ 흰 옷을 사서 입어 수치를 면하라. 안약을 사서 수치를 바로 보라.
- 예수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 ▷ 예수님이 교회 밖에 계신다(교회 안에 예수 없다).
계시록에서 초반부에서 경고하는 것은 비록 교회라 할지라도 '사단의 회'로 변질될 수도 있고, 버려지기도 하며, 행음과 우상(샤먼)에 빠질 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들을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라고 충고합니다. 즉, 우리의 귀는 민감하게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끝으로 계시록은 더이상 교회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계시록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세상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된 사람들이 교회 내부에서 비 신앙적인 요소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계시록의 주된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된 사람들 VS [적그리스도,음녀,거짓선지자,짐승]의 전쟁이 계시록의 주 내용이며 그 진행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된 사람들이 승리하게 됩니다(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계 17:4). 계시록은 교회 내부의 영적전쟁에 대한 예언서 입니다(잘못된 해석자들은 교회와 세상의 싸움으로 호도함).
교회개혁의 극점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며, 이미 지나쳐온 역(플랫폼)은 과거로 흘러갈 뿐입니다. 지나쳐온 역으로 되돌아 가는 것을 교회개혁이라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우리가 머무르던 플랫폼인 예배당이라는 형태를 심각하게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해야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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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협•동•조•합 - iDea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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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습니다 이제는 기독교 안에서 보는 판단과 기독교라는 것을 기독교 밖에서도 관찰할 시점은 이미 시작되었죠
주술적 행위 - 신비론 - 기적론 - 능력론 -의료행위 - 심령수법 - 이런것들은 진짜 성도들이 나아가야할 참 된길을 현혹시키며
본질을 방해하는 헛된것일 뿐이지요 ~~ 성도들의 바른 길 플랫폼을 찾을것이라 봅니다
성령의 작용하심에 따라 나타나는 기적이나 이벤트들은 순전히 예수를 증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생합니다.
지적하신 것처럼 오컬트적인 요소들은 성령의 작용과 구별될 필요가 있는 샤먼적 행태들도 적지 않게
만연되어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요즘에는 교회개혁의 출구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하나님 나라를
언급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감지됩니다. 매우 다행이죠.
@iDeaRush ㅎㅎ 바람직 하네요 ~~그리고 저는 교회에서 의사외에 의료행위 자체를 해서는 안된다고 보거든요 위험한 행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