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괴로워 센터에 찾아오시는 분들을 관찰해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혹한 자기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 분들께도 외적인 스트레스 요인들이 따로 존재합니다.
가령, 거지 같은 직장 상사라던가, 날 힘들게 하는 가족, 지인 등의 인간관계라던가
이렇게 직접적인 스트레서들이 일반적인 1차 가해 요인이라면,
혹독한 자기 비판에서부터 비롯되는 2차 가해야말로 인간의 내면을 무너뜨리는 치명타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비평가(Inner critic)는
초자아(Super-ego)가 지나치게 강력할수록 그 영향력이 세지게 되는데,
※ 슈퍼에고는 프로이트가 말한 마음의 3구조 가운데 "내면의 규율자"라고 통칭되며,
본능적 욕구인 이드와 대립함으로써 현실 자아인 에고를 통제하고 사회화시키는 역할을 맡게 된다.
양육 과정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지나치게 높은 허들(목표, 기준)을 요구한다거나,
빡센 경쟁이 만연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러한 승패주의가 당연하다는 듯 자라온 사람들의 경우,
그 내면이
이만하면 잘 했어라고 믿고 싶은 에고와
그 정도론 어림없어라고 호통치는 슈퍼에고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만성적인 긴장과 불안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세명보단 네명이 좋다.
우리나라처럼 완전경쟁주의에 대다수가 성공과 돈만을 쫓는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아이들의 내면에 높디 높은 허들, 강력한 초자아가 형성되고,
청소년기부터 자연스럽게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내달리는 인생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평균 올려치기 문화
한국의 젊은 세대에 만연하다고 알려져 있는 이 현상은
한국인들이 어린 시절부터 본인의 가혹한 초자아에게 얼마나 시달리며 살아오고 있는지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도나도 인서울 대학, 대기업, 아파트, 주식, 코인 대박 등을 외치며 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선 네가 잘해줘야 해. 성공해야 해!
라고 다그치는 초자아의 영향력이 강대해지고,
이렇게 높아진 내면의 허들로 인해 대한민국 평균의 삶이 과도하게 왜곡되어 버린 것이죠.
즉, 지금의 평균 올려치기 문화는
한국의 실상을 반영한다기보단, 한국인들의 과열된 내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등주의, 우열주의 → 초자아의 과도한 영향력 → 초자아에 세뇌된 한국인들의 평균 올려치기 문화
초자아가 주도하는 중앙집권체제 하에서는,
이처럼 평균에 대한 삶조차 왜곡되기 마련이므로,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한다한들, 좀처럼 초자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가 힘들어집니다.
초자아 뿐인가요?
주변의 가족이나 지인들조차,
은메달을 딴 날 축하해주기보다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선 어떡해야하는지 평가하고 조언하는 게
현재 한국 사회의 팍팍한 일면이에요.
이처럼 모두가 괴상한 평균 올려치기 문화에 물들어 있다 보니,
한국 사회에 내면의 비평가들이 득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그것밖에 안 돼?
한심하다 한심해.
남들이 널 뭐라고 생각하겠어?
주위를 봐, 저 사람들이 저렇게 성공할 때 넌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초자아에게 매번 채찍질당하는 삶
vs
본능에 이끌려 도파민 분출에만 몰두하는 삶
어느 쪽이든 현실 속 나에 대한 실망감에
만성적인 불안과 자존감 하락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전 이 내면의 불안정성을 제어하고자,
이드, 에고, 슈퍼에고 이외에 또 하나의 존재를 여러분께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이드처럼 날 욕구로만 밀어넣는 존재도 아니고,
슈퍼에고처럼 날 성공으로만 밀어넣는 존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원해주고 항상 나와 재잘재잘 대화하길 좋아하는 존재
바로, 버디(Buddy)입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친구 같은 존재이죠.
이드 : 야 됐어. 그냥 놀아. 인생 뭐 별 거 있냐?
슈퍼에고 : 너 그것밖에 안 돼? 한심하네 정말. 쪽팔리다 진짜.
버디 : 괜찮아. 내가 볼 땐 좋았어. 그이상 어떻게 잘해?
항상 내 편인 절친을 내 마음 속에 심상화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버디의 이름을 지어주고, 버디와 진짜 대화를 해야 해요. (혼잣말이지만)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가상의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그 대상을 진짜처럼 여기며 실제 인간관계와 유사한 수준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 골룸과 스미골 같은 다중인격, 즉 DID(해리성정체성장애) 또한 이러한 로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령, 지독한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후,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대화를 나눔으로써 불안감과 공포를 이겨내려 했던 아이들의 뇌 속에서
마음속 버디의 존재감이 과도하게 커짐으로써, 그게 또하나의 실제 인격체처럼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저 같은 경우에는,
버디의 이름을 지어주고(ex. 명자)
혼자 있을 때 (가상의 버디와) 혼잣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입니다.
혼잣말이라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는 게,
다들 머리속으로 상상하시잖아요.
상상 속 내용을 그저 가상의 존재와 실제 대화로 풀어내는 것 뿐입니다.
나 (에고)
: 야 나 오늘 어땠냐? 니가 봐도 별로였냐?
명자 (버디)
: 아냐 괜찮았어. 너 옛날엔 지금보다 훨씬 거지 같았잖아.
지금은 진짜 용 된거야. 초자아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어. 니 진짜 인생을 살란 말야.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자신에게 자비심을 가져라.
식의 동양철학적 마인드(self-compassion)를 가상의 관계로 풀어낸 것이 바로 오늘 설명한 자아의 4구조입니다.
이드, 에고, 슈퍼에고에 버디를 더함으로써,
나의 내면에 무조건적인 내 편을 심어놓는 것이죠.
절친을 자급자족하는 이 간단한 과정만으로도,
우리의 내면은 비판자와 유혹자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아가며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돼요.
에이, 그게 과연 될까요?
애도 아니고 내면의 친구를 만들어 노는 것이 내 정신건강을 좋아지게 만든다구요?
3인칭 타자화와 혼잣말, 일기 쓰기 등의 내적 활동이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고 내면을 안정화시킨다는 건,
이미 수없이 많은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버디를 만들어 절친으로 삼는 건 이 모든 내적 활동의 집약체인 셈인 거죠.
현실 세계에서 항상 내 편을 들어주는 절친의 존재가 여러분의 삶을 얼마나 안정시키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러한 존재가 내 안에 있다면, 우리의 내면은 얼마나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요?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무조건 내 편 새 친구 찰리를 들였습니다!!ㅎ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루 날잡고 정독해야 겠어요
정말 매번 감사 드립니다.
요즘 나를 만나려고 노력 중인데, 친구를 만들어야겠네요 ^^
늘 좋은 조언 감사 드립니다 ^^
이름을 어떻게 할 지 설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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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네요.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일기장을 버디삼아 속마음을 털어놓고 때로는 마음을 바로 잡는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