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 - 돌을 삶는 두 노인
산 중턱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원두막 아래 두 개의 솥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까비가 너무 배가 고파 내리고
음식이 있을 줄 알고 열어 보았는데
차돌이 들어있었죠
그때 두 노인이 올라오고
파란색 옷 노인
(편의상 옷 색깔로 지칭하겠습니다)
두 돌이 나란히 익어야 할 텐데
갈색 옷 노인
맞아 불을 좀 더 지펴보세
갈색 노인
어릴 적 코흘리개 시절
우리 둘이 언덕에서 장난치며 놀던 때가
엊그제인데
파란색 노인
어느새 허리 굽어 이 자리에서
저승길 닦음을 하게 됐으니
인생무상이라는 옛말 뜻을 알 것 같네그려
은비
까비야 저승길 닦음이 뭐야?
까비
저승길을 대비하여 마음의 길일 잘 닦아 놓자는
우리의 옛 풍습이야
은비
어떻게 닦는 건데?
까비
단단한 차돌을 삶아서 무르게 익히는 거야
인적이 없는 곳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100일 동안 정성을 들이는 거야
파란 노인
100일 치성도 그럭저럭 끝나가는 구만
갈색 노인
세월 참 빠르군
파란 노인
두 돌이 나란히 익으면 사이좋게
저승길을 가야지
갈색 노인
암 우리는 어릴 때부터 단짝인 걸
저승길도 단짝 되어 가세나
파란 노인
자자 그만 요기부터 하고
일을 시작해야지
왼쪽(파란 노인 밥), 오른쪽(갈색 노인 밥)
갈색 노인
아이고 거 자네 밥은 언제나 부실하군
자네 아들도 형편이 펴야 할 텐데
파란 노인
괜찮네 세끼 밥을 찾아 먹는 것만도
감사해야지
밥 냄새 때문인지 동물들이 모여들고
고수레!! 고수레!
밥을 던져주는 두 노인
고수레 : 들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조금 떼어
‘고수레’하면서 허공에 던지는 민간신앙 행위.
갈색 노인
아이고 이거 맛있겠는 걸
읏차 자 들게
파란 노인
하하 왜 또 이러나
갈색 노인
왜 또 이러다니
자네와 난 저승길 동무라네
뭐든 똑같이 나누어야지
파란 노인
고맙네 길동무
갈색 노인
자네 돌은 얼마나 익었나
이 제법 깊이 들어가는구만 그래
파란 노인
자네 것도 좀 보게나
갈색 노인
어디 볼까
아! 이럴 수가 있나?? 똑같구만!!
파란 노인
우리들의 우정처럼 나란히 익어가는구만
갈색 노인
그러게나 말일세 하하하
두 노인은 계속해서
나무와 물을 길어와
돌을 삶았습니다
갈색 노인
이보게 이제 3일 밤만 지나면
우리의 정성도 끝이 나네
파란 노인
암.. 길 닦음이 끝나면
우리도 사이좋게 극락으로 가는 걸세
갈색 노인
그만 가서 자게
새벽에 교대로 불을 봐야 하니까
파란 노인
이 사람아 자네 아궁이에 불을 더 넣도록 하게나
갈색 노인
예끼! 이 사람 농담도
조심해 노려가게나 하하하
시간이 지나 혼자 남은 갈색 노인 주변에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노인은 무슨 영문인지 모른 체
안갯속 길을 따라갑니다
안개 끝에는 두 명의 도인이 있었는데
도인
누구 돌이 먼저 익을꼬
도인 2
같은 날 같은 시에 길닦음 했으니
두 돌이 동시에 익지 않으면
어찌할꼬
도인
먼저 익는 돌 임자는 극락행이요
도인 2
나중에 익는 돌 임자는 행적이 묘연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여.. 여보시오 도인네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여.. 여보시오 도인네들
그게 무슨 소리오!!
무슨 뜻입니까!!
여보시오 도인네들
여보시오!!!!!!
현실로 돌아왔지만 갈색노인의 머릿속에는
도인들의 이야기가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갈색 노인의 고함 소리에 파란 노인이 올라와
무슨 일이냐 물어도
갈색 노인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합니다
두 노인은 교대를 하고
갈색 노인은 산을 내려갑니다
파란 노인
하룻밤만 더 세우면은
100일 정성도 끝나는구나
헌데 저 친구 왜 저러지?
점점 흐려지는 날씨
다음날 식사를 하는 두 노인
파란 노인은 늘 하던 대로
동물들에게 밥을 나눠줬지만
갈색 노인은 동물에게도
친구인 파란 노인에게도
밥을 나눠주지 않습니다
파란 노인이 갈색 노인이
어젯밤부터 정말 이상해졌다고 합니다
파란 노인
여보게 내 한짐 만들어 가지고 올테니
자넨 불 지키고 있게
비가 한바탕 퍼붓겠는데?
아궁이 앞에서도 도인들의
말이 떠오르는 갈색 노인
먼저 익는 돌 임자는 극락행이요
나중에 익는 돌 임자는 행적이 묘연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갈색 노인은 본인의 왼쪽 아궁이에
큰 땔감을 넣고
갈색 노인
할 수 없지
극락은 먼저 익는 돌 임자가 간다니
미안하이..
파란 노인의 아궁이에는
작은 나뭇 가지를 넣어주는데
이상하게도
작은 땔감을 넣은 아궁이의 불이
더 커지고 본인 아궁이 불은
더 작아졌습니다
갈색 노인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어
난 극락으로 가야 돼!!
자신의 아궁이에 땔감을 더 넣어보지만
오히려 파란 노인 아궁이
불만 더 커졌죠
그때 나무를 해서 올라온 파란 노인
(비가 오는 중입니다)
파란 노인
아니 이 사람아
자네 아궁이에 불을 더 많이 넣어서
자네 돌이 먼저 익도록 해야지
날 생각해서 내 아궁이에
불을 더 넣으면 어쩌나
자네 우정은 변함이 없구먼
파란 노인
헌데 이렇게 비가 내리니
불씨라도 꺼지면 안 되는데
아 그렇지 자네 불 좀 보고 있게나
내 내려가서 장작 덮을
가마니 좀 구해오겠네
갈색 노인은 파란 노인이
내려간 사이 돌을 찔러보는데
내.. 내 것이 덜 익었어
덜 익었어..!!
또다시 도인들의 목소리가
갈색 노인의 머릿속에 스치고
그래 퍼부어라 퍼부어!!
내 아궁이에 불만 남기고
다 꺼버려라!!
그래그래 잘한다 잘해!!
내 불만 남기고, 내 불만 남기고..
빗물이 고여 흐르면서
갈색 노인 아궁이로 들어갑니다
갈색 노인
아이고아이고 그건 내 아궁이야!!
내 거란 말이야!!
안돼!! 내 거란 말이야!!
안돼! 안돼!
파란 노인 아궁이 쪽으로
물길을 만드는데
거의 폭발하듯이 커지는 불과
강한 비바람과 때문에
원두막 기둥이 무너져 내립니다
다급하게 올라온 파란 노인
파란 노인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갈색 노인
안돼 어서 여길 피하게 어서!!
기둥이 무너져 내릴 거야 빨리!!
원두막 기둥이 무너지며
두 노인을 덮칩니다
비가 그치고 정신을 차린 두 노인
갈색 노인
여보게! 여보게! 여보게!
내..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나 때문에 자네가 이렇게..
파란 노인
(어찌)자네 때문인가?
비바람에 원두막이 넘어간 것을..
갈색 노인
아닐세 내가 자네 아궁이에
불을 끄려 했단 말일세
내가 미쳤나 봐
용서하게
파란 노인
친구 지간에 용서라니
원두막이 무너지고
비바람 때문에 불이 다 꺼진 아궁이
파란 노인
불이 꺼졌으니 날 잡아서
다시 길닦음을 시작해 보세나
갈색 노인
안돼 100일 정성 마지막 날인데
그럴 순 없어!!
갈색 노인은 파란 노인의 아궁이 불이라도
살려보려 노력하지만
불이 붙지 않습니다
갈색 노인은 자신을 용서해 달라며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을 합니다
갈색 노인의 눈물이 아궁이로 떨어지는데
그 눈물이 닿은 장작에 불이 붙습니다
활활 불이 타오르는 아궁이
그때 가마솥에서 불빛이 솟아오릅니다
불빛 사이로 길닦음 돌이 떠오르고
길닦음 돌이 갈색 노인이 보았던
두 도인으로 변합니다
인간의 심성은 원래 착한 것이거늘
늦게나마 깨우쳐 두 사람 모두
극락에 오르리
도인들은 불빛 사이로 사라지고
그 빛은 이제 두 노인에게로 향합니다
두 노인도 불빛과 함께 떠오르고
파란 노인
가세나
갈색 노인
그려 그려 하하하하
두 노인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올라갑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은비 까비
은비
정말 잘 됐다 그렇지?
까비
우정이란 정말 아름다워
은비
자 그럼 우린 또 가자!!
첫댓글 와 이건 첨보네요
인간의 심성이 원래 착하다는 공감이 안되네요
고수레만 기억이 났었는데
이건 기억이 하나도 안나네용
재밌내용
은비까비나 배추도사 무도사는 리메이크나 리마스터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