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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안으로 들어선 김가영은 위축되었다. 그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안 된다. 미용실 안은 넓고 밝았다. 그리고 품격이 있다. 앉아있던 여자들이 일제히 시선을 주었다가 비껴났는데 그 짧은 순간의 눈빛이 칼날처럼 느껴졌다. 부드러운 표정, 웃는 얼굴인데도 그렇다. 압구정동의 미용실 ‘애나’는 김가영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이다. 비싼 미용실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관심도 없었던 곳이다. 그때 주춤거리는 김가영 앞으로 여자 하나가 다가왔다. 세련된 차림의 30대.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다.
“김가영 씨?”
“네, 제가.”
김가영은 자신의 목소리가 굳어져 있는 것을 듣는다. 거울 앞에 앉은 7,8명의 여자. 그리고 그 뒤쪽에서 조용히 작업하는 10여명의 여자들은 모두 외면하고 있었지만 이쪽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리 오세요.”
하고 여자가 말하면서 몸을 돌렸으므로 김가영은 발을 떼었다. 그렇다. 첫째로 내 머리는 미장원 출입을 안 해본 생머리다. 그냥 머리끈으로 묶어 올린 스타일이다. 이쪽 여자들이 보면 원시인으로 보이겠지. 그리고 내 차림. 2만 원짜리 바지에 3만 원짜리 자켓을 입었다. 발에는 만 원짜리 운동화를 신고. 김가영은 다리에 힘을 주고 여자의 뒤를 따른다.
미장원 안에 개인 휴게실이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 방으로 들어선 김가영이 소파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았다. 김가영이 들어서자 여자는 웃음 띤 얼굴로 일어서는 참이었다.
“어서 와.”
부드러운 목소리. 김가영은 숨을 들이켰다. 미인이다. 그리고 기품이 느껴진다. 이런 여자는 처음 보았다. 아, 이곳이 과연 귀족들이 모이는 동네구나.
“앉아.”
앞쪽 자리를 눈으로 가리킨 여자는 아직 이름도 모른다. 김가영이 자리에 앉았을 때 여자가 뒤쪽 선반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커피 끓여 놓았는데 줄까?”
“네, 감사합니다.”
“설탕 넣어?”
“아뇨, 그냥.”
여자는 곧 김가영의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 앞에 앉았다.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향수다. 이런 향수 냄새도 처음 맡는다. 커피 잔을 든 여자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김가영을 보았다.
“내가 말 내려도 되지?”
“네.”
그러자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여자가 말을 잇는다.
“내 이름은 이성희야. 이른바 텐프로 업소 마담이지. 내가 지금 여섯 명 데리고 있는데 가영이가 온다면 일곱 명이 되겠구나.”
김가영은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내는 이성희에 대해서 오히려 부담감이 덜어졌다. 이성희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띄워졌다.
“내가 처음 본 순간에 널 데려가겠다고 결정한 경우도 이번이 처음이란다. 네가 믿거나 말거나 말야.”
“....”
“네 이야기 들었어. 그 조부장이란 사람. 그런데 다니지만 나쁜 인간은 아냐. 남한테 사기 쳐서 제 잇속만 차리는 인간은 아니라는 뜻이야.”
“....”
“다 서로 이용하고 사는 거야.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그렇게 해서 맺어지는 것이란다. 어느 한쪽만 이득을 보면 그건 사기가 되지.”
“....”
“조부장은 네 가치를 보았고 그것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준 거야. 그 친구 역할은 끝났지. 선택은 네 몫이니까.”
다시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이성희가 지그시 김가영을 보았다.
“텐프로 클럽 이야기는 안 할란다. 넌 성인이고 짐작은 하고 있을 테니까. 다만 강제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해줄 수 있어.”
“....”
“네가 알아서 행동하는 거야.”
그리고는 이성희가 커피 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등을 붙였다.
“어때? 결정했니?”
“기분 나쁜 일 있어?”
강희나가 물었으므로 윤성일이 시선을 들었다. 오후 3시 반, 병실 안에는 둘뿐이다. 강희나가 오면 안성댁은 물론이고 간병인까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둘만의 시간을 주겠다는 배려를 핑계로 제 볼일들을 보기 때문이다.
“왜?”
“분위기가 그래. 말도 않고.”
다가앉은 강희나가 빤히 윤성일을 보았다. 검은 눈동자에 윤성일의 얼굴이 박혀져 있다. 윤성일이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김가영과 통신이 두절된 지 오늘까지 나흘째가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맞아. 내가 좀 예민하긴 해.”
천장을 바라보면서 윤성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희나는 팔짱을 끼었고 윤성일이 말을 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섹스를 안 해서 그래.”
“....”
“그러면 병 나는 거야.”
“....”
“너도 생각 좀 해봐라. 그게 말야. 안 해주면 24시간, 또는 48시간 동안이나 단단하게 선 채로...”
그때 강희나가 자리에서 일어섰으므로 윤성일이 말을 그쳤다. 강희나가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내가 나가있을게. 손으로 해결해.”
이번에는 윤성일이 입을 다물었고 발을 떼던 강희나가 말을 잇는다.
“그놈의 물건은 왜 다치지도 않은 거야? 붕대로 칭칭 감아 놓아야 되는데.”
“뭐야? 너 뭐라고 했어?”
강희나의 등에 대고 버럭 소리쳤지만 윤성일의 표정은 이미 가라앉아 있다. 지금까지 빈말을 했다는 증거 같다.
커피숍 안으로 들어선 전세희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있는 오경식을 보았다. 오후 4시 10분, 약속시간보다 10분 늦었다. 소공동의 지하상가 안이어서 관광객이 많다. 커피숍 안에서도 중국어, 일본어가 들리고 있다. 오경식에게 눈인사를 해보인 전세희가 앞쪽 자리에 앉는다. 전세희가 갑(甲)이고 오경식은 을(乙)이다. 오경식은 대명학원 이사장실 과장인 장명기를 통해 소개받은 용역회사 직원이다. 지난번에도 한번 일을 맡긴 터라 익숙한 사이인 것이다. 종업원에게 커피를 시킨 전세희가 시선을 주자 오경식이 가져온 서류봉투를 내밀면서 말했다.
“김가영씨 외삼촌이 자살을 했습니다.”
놀란 전세희가 눈만 크게 떴다. 오늘은 오경식이 김가영의 신변 자료를 가져오는 날이다. 지난번에는 김가영의 주변 상황과 전체적인 정보를 보고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외삼촌이 자살하다니. 오경식이 말을 이었다.
“사업하다가 사기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에서 동업자를 수배했는데 사기금액은 6천만 원이었습니다.”
“....”
“그런데 그 6천만 원은 김가영씨 아파트를 담보로 사채업자한테 빌린 것이더군요. 동업자가 사기로 말입니다.”
“....”
“그 죄책감으로 외삼촌이 자살을 한 것입니다. 김가영씨 아파트는 시가로 1억 2천쯤 나가는데 사채업자한테 이자까지 합해서 7천5백을 주지 않으면 경매로 날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
“김가영 씨 과거는 깨끗합니다. 남자관계는 없었고 주변에 평은 좋았습니다. 대학 동창 사이에 김가영 씨가 버진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버진?”
되물었던 전세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탁자위에 놓인 서류봉투를 보았다. 김가영의 자료다. 이번에는 신상에 대한 자료가 자세하게 수집되어 있을 것이었다. 전세희가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오경식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예, 감사합니다.”
냉큼 봉투를 받은 오경식이 안을 보지도 않고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전세희가 말했다.
“김가영 씨 조사를 계속해 주세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오경식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것으로 용역업무가 끝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집안에서 일어난 자살 사건이 오더를 추가하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오경식이 앉은 자리에서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무슨 일이 생기는 대로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보고는 곧 수입과 연결되는 것이다. 갑(甲)이 조사 대상의 죽음, 또는 집을 잃고 거지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그저 ‘궁금’하다고 표현한 마당에 을(乙)인 조사자 입장에서는 사건이 자주 일어날수록 이득이다.
“웬일이야?”
주춤거리고 다가온 정민옥이 김가영과 조기선의 사이에다 시선을 두고 물었다. 오후 6시 반, 이시간이면 아파트 놀이터는 텅 빈다. 아이들이 모두 집안으로 불려, 끌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가영은 벤치에 그냥 앉아 있었지만 옆쪽에 앉아있던 조기선이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꺾어 절을 했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정민옥은 김가영이 불러내었다. 김가영 혼자만 있는 줄 알고 나온 정민옥은 집에서 입던 원피스 차림이다.
“여기 앉아.”
김가영이 옆자리를 손으로 가리키자 정민옥이 주춤거리며 다가와 앉는다. 어두웠던 얼굴에 더 그늘이 졌고 한걸음 딛는 것이 다리에 쇳덩이를 매단 것 같다. 털썩 벤치에 앉은 정민옥이 먼저 앞쪽에 서있는 조기선부터 보았다.
“경매가 언제인가요?”
그렇게 물었는데 한자, 한자가 목구멍에서 억지로 끌어내는 것 같다.
“그것이.”
헛기침을 한 조기선이 힐끗 김가영의 눈치부터 보았다. 정민옥은 조기선을 본 순간 아파트 경매건 때문에 온 것으로 짐작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김가영이 머리를 끄덕이자 조기선이 말했다.
“사모님, 아파트 경매 건은 없는 것으로 처리 되었습니다.”
정민옥이 가만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기선의 말이 이어졌다.
“수배중인 박철수의 차명 통장을 압류했고 통장에 이번 아파트 대금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죠.”
이제 정민옥은 숨을 멈췄고 조기선은 제 말에 취해 머리까지 끄덕였다.
“검찰 동의 하에 1차로 사모님 아파트를 담보로 사기 쳐 대출받은 6천을 회수 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이제 사모님 아파트 압류는 풀렸습니다.”
그러더니 조기선이 가슴 안에서 접혀진 서류를 꺼내 정민옥에게 내밀었다.
“여기 저희 회사에 있던 서류올시다. 사모님이 찢어 버리시면 됩니다. 저희 회사하고는 인연이 끝나고 사모님 아파트는 담보가 없는 것이 되지요.”
“은행에 확인했어.”
이제는 김가영이 나섰다.
“조부장님의 일신상사에서 은행에서 대부받은 원금, 이자를 갚고 아파트 담보 풀린 것 확인했어. 엄마가 확인해도 돼.”
“그, 그게 정말이냐?”
마침내 정민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아직은 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다. 그러나 조기선과 김가영이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이 각본을 만든 것은 물론 조기선이다. 김가영의 머리가 이런 방면에서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조기선의 일신상사는 원금과 이자까지 합해서 7천5백은 받았고 그 돈으로 은행의 대출금을 갚은 것이다. 그리고 그 7천5백은 김가영이 마련했다.
“아이구, 봐라.”
정민옥이 초점이 멀어진 눈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았다.
“네 외삼촌이 도와준다고 내가 말했지? 네 외삼촌이 도와준 거다. 그놈 통장을 압류하게 해준 거야.”
김가영은 정민옥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보았지만 조기선은 외면했다.
“엄마, 나 대전에서 일자리가 생겼어.”
집에 돌아온 김가영이 말하자 정민옥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일자리?”
정민옥의 얼굴에서는 아직 흥분이 가셔지지 않았다. 웃음이야 떠오르지 않았지만 볼이 붉어져있고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정민옥의 시선을 받은 김가영이 숨을 고르고 나서 대답했다.
“응, 내 선배 언니가 대전에 유치원을 경영하는데 날더러 도와달래. 유치원 숙사도 있고 한달에 숙식 제공하고 2백씩 준다는 거야.”
“숙식 제공하고 2백?”
정민옥의 관심이 당장 그쪽으로 옮겨졌다. 머리를 끄덕인 김가영이 덧붙인다.
“수당까지 포함하면 2백5십은 받을 수 있다고 했어. 세금 다 제하고.”
“의료보험도 돼?”
“그럼. 유치원이 크대.”
“언제부터?”
“내일부터 오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김가영을 떠나보낼 생각이 들자 정민옥의 어깨가 다시 늘어졌다. 눈빛이 약해지면서 얼굴에 그늘이 덮인다. 김가영은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여기서 약해지면 안 된다.
“일주일에 한번 올라와 하루 종일 잘 테니까 알바 할 때보다 엄마 더 볼 거야.”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요
^^
감사~
즐감요~
감사히 잘봤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
잘 읽고 갑니다^^
이더넷에서 들어오고자 할때 문제있는 사이트 라고한다
체크 해주기바란다
늘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