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을 거닌 뒤
일월이 중순에 든 둘째 목요일이다. 오후에 불편을 겪는 무릎 진료가 예약되어 반나절 산행을 예정해 아침 식후 현관을 나섰다. 길을 멀게 떠나거나 산세가 험한 산은 나에겐 무리라 창원 근교 낮은 산자락만 오르내리고 있다. 봄날은 산나물 채집으로, 여름은 영지버섯을 찾아가느라 주제가 있는 산행을 다녔다. 가을 산행은 굳이 명분을 내세우자면 야생화 탐방이라 해도 될 듯하다.
겨울엔 눈 덮인 지리산이라 소백산은 마음속으로만 그려보고 집에서 가까운 야산을 찾아 나선다. 내게는 사람이 많이 찾지 않은 가랑잎이 쌓인 숲길이 알맞았다. 열흘 전 십여 년 만에 도청 뒤 창원대를 에워싼 정병산 능선을 종주했더랬다. 암반 구간 독수리바위는 우회 등산로를 택해 촛대바위에서 동읍 용정사로 내려섰다. 그날 이후 한 차례 더 자여마을에서 정병산 동쪽을 누볐다.
집 앞에서 동정동으로 나가 동읍 자여로 가는 7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를 지난 동읍 지구대 앞에서 내렸다. 어제 새벽녘 봄비 같은 겨울비가 살짝 내려 대기 중 습도가 높아진데다 밤과 낮 일교차 따라 겨울에도 아침 안개가 끼었다. 동읍 택지에서는 북향에 자리한 중학교 곁에서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자 두 곳 절로 가는 Y자 갈림길이 나왔다.
단감나무 과수원 언덕에서 오른쪽은 용정사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도덕정사로 가는 길이었다. 지난번 용정사에서 내려왔기에 이번엔 도덕정사로 향해 올랐다. 과수원이 끝난 산기슭 법당 곁 요사채에는 인기척은 없고 나무 땔감을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운치를 더했다. 삽짝에는 덩치가 큰 검둥이가 짖어대어 절집으로 들지 못하고 과수원을 가로지른 숲에서 등산로를 찾아냈다.
정병산은 도청 뒤 용추계곡이나 사림동 사격장을 지난 소목고개에서 오르는 이들이 다수다. 나도 여태 그쪽에서 올라 하산은 동읍 자여마을로 내려선 적 있고 촛대바위에서 용정사는 내려서기는 드물었다. 지난번 용정사로 하산하면서 가보지 않은 가랑잎 쌓인 오솔길 끝이 궁금해 다시 찾았다. 소나무보다 밤나무를 비롯한 낙엽 활엽수들은 나목이 되어 가지가 엉킨 숲길이 나왔다.
고도를 높여가는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산허리로 난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운동 기구가 설치된 쉼터에서 한 노인을 만나 소목마을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알려주어 고마웠다. 아침 해가 점차 중천으로 가니 안개는 걷혔는데 미세먼지와 나뭇가지에 가려 주남저수지는 뚜렷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에서 바퀴가 구르는 마찰음은 쉼 없이 들려 귀에 거슬렸다.
사람이 다니질 않고 짐승이 다녔을 법한 묵혀진 길을 헤쳐가다 눈앞에 쏜살처럼 달아나는 고라니를 봤다. 녀석은 평소 인적이 전혀 없는 숲에서 태평스레 늦잠을 자다가 의외의 외부 침입자를 만나 어디론가 달아났다. 정병산 북서 산자락 아주 넓은 단감 과수원에서 소목마을로 이어져 복잡한 도로망의 교각과 연결되었다. 마을 앞 들녘을 지날 때 기러기 한 무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남산리로 드는 마을 어귀 식당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봄날 구룡산으로 올라 산나물을 채집해 하산하던 길에 소진된 열량을 벌충하던 식당이었다. 점심 식후는 진료가 예약된 병원을 찾아 진료실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를 만났다. 2주간 처방전에 따른 약을 복용해도 이미 다녔던 동네 의원과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더니, MRA를 언급하기에 진료를 종료 지었다.
팔룡동 병원에서 창원천을 건너 대원동 레포츠파크로 드니 그라운드 골프 동호인들이 여가를 즐겼다. 창원수목원으로 올라 충혼탑 교차로에서 창원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잔디밭 바깥 트랙을 걸었다. 미끈하게 높이 자란 메타스퀘이아가 시야에 들어왔다. 반송시장 외과를 찾아 주치의를 만나 진통 소염제와 혈액 순환제를 처방받아 약을 탔다. 무릎과 종아리는 조심조심 아껴 쓰련다. 24.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