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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단상.
열일곱 고등학교 일학년이였던 아들은,
호기심이 풍부한, 소년 이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종로에 단성사를 다녀와,
여자친구와 갔다는둥, 영화관에서 손도 잡아봤다는 둥, 하는 모습을 넌즈시 깔아보곤 했습니다.
주말이면, 이삿짐 아르바이트로 모은돈을 가지고,
종로 교보문고 옆, 후미진골목 안에, 자그맣게 자리잡은 책방 정신세계를 다니곤 했습니다.
짐짓, 깔아보는 시선으로 책들을 쭈욱 훝다가, 신간이라도
나온걸 보면, 네다섯권을 낙점한후에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서평부터 인사말을 읽고, 마음에 든다 싶으면,
손에는 두세권의 책을 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광명시 도덕산 달동네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막, 한때였습니다.
인천도 개발이 막 시작이 된 시기였고, 계산지구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말이 돌기 시작할때 였습니다.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정신의 향연은, 두해는 되었을겁니다.
1호선 지하철을 타고가며, 학교 안에서 볼수 없는 새로운 세계안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고즈녁한 정신세계의 동경을 간직한채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들 앞에 강단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평상시, 엄하시긴 하되, 늘 아들 앞에선 순풍바람이시던,
어머님이 오늘은, 엄숙함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마당에 서계셨습니다.
마당 한쪽에는 그동안 책방에서 모아놓은 책들이,
부모 잃은 새끼고양이들 마냥, 차곡히 작은 언덕마냥,
쌓여져 있었습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이책은 다 뭐구요!"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오늘 이 책에 불을 놓을테냐!"
"아니면, 이 어미가 타서 죽는 꼴을 보겠느냐!"
비장한 어머니의 눈은, 준비한 시간이 오래전부터 임을 나타내고 있었고, 전라도 어머님들의 강단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안꺽일 고집으로 서계셨다.
아들은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힘 없이 고개를 내린 순간, 어머님의 손에서 떨어진 불에
무엇이라도 뿌려 놓으셨는지, 휘발유 냄새가 휙~나며,
한순간에 책들은 집채만한 화염이 되었다.
ᆞ
고스란히 아무 의사표현도 없이,
활활 타들어가는 책들은, 그렇게 재로 변해갔다.
불길이 잦아들 무렵, 어머님은 아들의 손을 말없이 끌어 잡으며, 소리 안나는 울음으로, 아들을 끌어다 안아주셨다.
어머님은 "너 없인 안된다.이놈아.스님 될라카나"
"내가 니를 가슴으로 낳았고만..."
"이놈의 자슥,,, 이놈의 자슥,,,"
참, 오래도록 안고 있었나보다.
ᆞ
시간이 오래 지나고, 삼십해가 다 되간다.
오랜시간은, 그렇게 다독이시던 어머님도 모시고 가고,
아들은 희끗거리는 중년이 되어있다.
ᆞ
어머님 살아계실때,
착실하게 사회인으로 사는 모습이 어머님께 효도라고 생각했던 아들은, 그렇게 반대하시던 수행자의 삶대신,
사람 냄새 물씬거리는 사회에서, 수많은 전철을 밟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것은 산속 수행자의 삶도 있지만,
큰스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산이나 세속이나 맴이 중요하다는것을,
산경험으로 체득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ᆞ
일체유심조를 삶으로 체득시키신 어머님.
오늘은, 참 많이 그립습니다.
눈들어, 먼산 보니,
어머님이, 지긋히 웃고 계시네요.
희끗한 중년의 아들은, 마음으로 가만히 불러 봅니다.
어머니~~~,
ㅡㅡㅡㅡㅡㅡㅡㅡ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인거 아니야......어쩌구 ...하는 소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보고 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주먹 불끈쥔 손에서 피가 나는지도 모른체,으스러져라.. 쥐고 있을 뿐이였다.
(아! 어머니,,,,,)
ᆞ
어린 날.
동네 꼬마였던 시절.
나름, 골목대장 이였나 보다.
쪼로로~~따라 다니는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타동네로 원정을 다니며, 사고를 치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한번은, 겨울에 새로 이사온, 두형제와 눈싸움이 났는데,
양옥집에 살며, 으스대는 모습이 꼴보기 싫었는지,
짱돌에 눈을 감아 던진게, 다행히도 그집 첫째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다.
물론, 어머니께서 그집 부모에게 손을 싹싹 빌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사고뭉치였던 녀석이 그후론 착실하게 변했다.
아버님께서 중동을 세번이나 다녀오셔서,
집도 세채나 있던 우리집이
보증으로 한꺼번에 다 날라갔다.
아버님은 술로 나날을 보내셨고,
그런,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하신 아버님께서 날보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넌, 내 친아들이 아니다." 무슨 소리 이실까?
어린 마음에도, 아버님의 진한 눈빛이,
진실인것을 알았다.
ᆞ
늘 주위에선 나를보며, 크면 한자리 하겠다 했다.
어딜가도 어린녀석이 책을 끼고 살았던,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였던 어린시절.
정육점을 하는, 이모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이나, 세계인물전집은, 늘 내차지 였다.
ᆞ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남들은 힘들어서 하기 싫어하는,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땀 흘려 번, 소중한 돈들.
열일곱. 고등학교 일학년 이었다.
그 뒤로, 한번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얼마뒤 집을 나왔다.
아버님의 과한 행동에 반기를 들수는 없었기에,
자취를 시작했다.
그 뒤로, 많이 외로웠던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ᆞ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름 착실히 생활했다.
스물여덟에 사업을 시작했다.
이삿짐센타 였다.
사업은 열심히 한만큼 성과가 있었다.
ᆞ
어느 날, 아버님 돌아가시고 혼자 구미 쪽으로 내려가서
생활하시던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연락이 전해져 왔다.
급하게 내려간 병원에선, 낯선 이들의 눈빛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안 사실이지만, 아버님 돌아가시고 몇해동안 홀로 계시던 어머님은 재가를 하신 상태였다.
아주 멀리 떨어진, 구미로 내려가셔서 말이다.
ᆞ
눈빛이 없으셨다.
너무 희미해서,,,
그래도, 손을 잡은 두손에는 온기가 남아 계셨다.
늘 따뜻하기만 했던, 어머니의 온기.
어머니, 저 왔어요.
마주 잡은 두손 너머,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싶은, 어머니의 절절함 이었을까...
희미하게 이름을 부르셨다.
...아들, 잘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해....
잠시의 만남이 마지막 이셨다.
삼일도 지나기전 그렇게,
어머님은 한 많은 세월을 그리다 가셨다.
ᆞ
영정 사진 너머,저 집안 식구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그곳에서 일어나 슬프게 울어대는 이모들을
뒤로 한체,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왜였는지 모르지만, 그래야 한다는걸 인정하고 있었다.
어머님이 선택하신 마지막 삶에 부정을 해선 안된다는걸
알았다.
ᆞ
그때 알게 되었다.
눈물은, 그냥 흐른다는걸...
어떠한 이유도 묻지 않은체...
그저, 한없이, 한없이, 흐를뿐이라는걸...
ᆞ
어느덧, 마흔이 넘은 아들은, 중년에 노망이 났나보다.
글쟁이가 되려 하니 말이다.
진실한 글이 뭘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진실함이 곧, 글이라는걸, 생각해 내었다.
ᆞ
그래서, 가장 가슴 떨린 진실한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이글을 보시는 여러분,
어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두손잡고 바라본적이 언제였나요.
지금, 가만히 잡아 보세요.
뽀뽀도, 진하게 해드리구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요.
삶은, 진하게 흘러간답니다.
잡을수 없는 곳으로 말이에요.
사랑합니다.어머니.
ㅡㅡㅡㅡㅡㅡㅡㅡ
ㅡ고향/도선ㅡ
외갓댁에 대한 기억은,
중년이 된 외손자에게는, 가물 가물한 단상이 되어 있다.
ᆞ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 삼평리 000번지.
마흔이 넘은 지금도 외갓댁 주소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외갓집은 부농이였단,
원인 모를 자부심, 때문 이였는지 모른다.
전라선 기차, 그것도 늘, 입석으로 타고,
서울에서 내려가는 외가댁은, 어린 외손자에게는,멀기도 멀었나 보다.
멀미약을 미리 마셨어도, 늘 어머님이 주신 검정색 비닐봉투에 속을 다 게워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정읍역에 도착을 해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저만치, 끝없는 김제평야 한끄뜨머리에 모락모락 피는 연기가 보이면, 어린 육신에 칭얼댐이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뛰다시피 걸어간 외갓댁에선 외할머니께서 고무신 신으시고 마당으로 나오셨고 멀리서 온 장녀에게는
등 한번 툭툭~~ 치시는 걸로 반가움을 표현하셨다.
어린시절 늘 무섭기만 했던 막내삼촌은,
큰누나가 들고온 선물을 받아 툇마루에 올려 놓았다.
전라도 태권도 대표로 메달까지 받은 삼촌은,
어린 조카들에게 늘 주의대상 이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한글을 짧은시간에 깨우친건,
삼촌의 막강한 태권도 내공 이였음을 인정한다.
방학만 되면 외갓댁에 가는건 당연한 순례였고,
막힘없이 수평선이 보이는 외갓댁에서 이종사촌인 어린아이 세명이 모여 맘껏 뛰놀았던 기억이난다.
ᆞ
두 해전.
어린시절의 추억이 깃든, 외갓댁을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아무 계획도 없이 내려 갔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성공하겠노라고 열심히 사업을 벌려놓은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았고, 짖쳐 들어오는 세상의 물결에, 동사의 자세로 보낸 근, 일년은, 아파도 아픔을, 돌볼겨를이 없는 시기 였다.
ᆞ
새벽에 출발해서 미명이 깃드는 고향은,
나이든 외손자에게는 낯선 곳으로 변해 있었다.
고무신 신으신 외할머니도, 무서워도 한손으로 머리 쓰다듬어주시던 외삼촌도, 보이지 않는 낯선 땅.
분명히, 여기인것 같은데...그런데..
외갓댁 넓은 마당에 커다랗게 있던 원형으로 생긴 큰돌을
깃발삼은 미련함이라니...
삼십년이나 되는 세월의 기억을, 아름거리며 찾는 한심함이라니...
속으로 털털한 마음을 감추려는듯,
슬쩍, 담배 한개비에 불을 붙였다.
후~~하고 부는 연기에, 답답함을 실어서...
그때, "누굴 찾으슈~~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구수한 옷차림에 할머님 한분이 묻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네, 할머님. 혹시, 이 동네에 사시던 000를 아시는 지요." "그 집안 큰따님이 제 어머님이십니다."
낯선이가 동네에서 도는게 이상했던 할머님은 금세
얼굴이 밝아지신다.
"아! 그래, 어이구, 그래,그래."하시며,
"고향을 찾아온거구만"하신다.
"저쪽 초록색 지붕 보이지, 그집이 큰며느리 집이야"
"아! 네 할머님 감사합니다"
그래, 숙모님이 살고 계셨구나.
한달음에 달려가 열려 있는 대문사이로,
"숙모님, 계세요. 숙모님!"
잠시 후, 익숙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신 숙모님이 나오셨다.
"누구...아이구!, 000아녀, 아이구! 이눔아~"
반가움은 숙모님도 크셨나보다.
언 세월, 시누이만 일곱명에, 딴딴한 다섯도련님까지, 골도 많은 집으로 시집오셔서, 긴세월 견뎌내신, 강골한 의지가 내비치시는 숙모님.
강화도 경찰서장이셨던 아버님의 중매로,이곳 전라도 먼곳까지 시집 오셔서, 오랜시간이 지나 자식들 다,
서울 올려보내고, 무던히도 혼자 이곳을 지키고 계셨다.
왜, 왔는지도 묻지도 않으시고, 드시던 반찬에, 따뜻한 된장찌게 끊여 내어주시며, "많이 먹어라, 많이..."
연신, 많이 먹어라 하신다.
ᆞ
숙모님께서 손을 잡고 가신 곳은 어른들 묘소 앞이었다.
할아버지,할머니, 상할아버지,상할머니,고조할아버지,고조 할머니.그리고 외삼촌 두분.
한분한분, 잔을따라 인사를 드린다.
몇십년. 못 찾아뵌 죄송함에,
절 한번, 한번에 죄송함을 담아서...
그렇게, 돌아가신 어른들께 인사가 끝나갈 무렵,
한쪽에서 그모습을 바라보시던, 숙모님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계셨다.
절이 끝나고, 가만히 숙모님 손을 잡아 드렸다.
"죄송합니다.숙모님"
ㅡㅡㅡㅡㅡㅡㅡㅡ
작년 이맘 때쯤 썻던 글들입니다.
어느 분 덕분에 꺼내게 되네요.
첫댓글 선생님 가슴 절절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마도 쉬이 잠들지 못할 밤을 맞을것 같습니다.......
덕분에 고요히 공부할 참입니다.
감사 드립니다.
진솔한 글 눈물이 흐르지만 가슴 아픔 이전에 담담히 써 내려가는 마음이
보이기에 미소로 눈을 땝니다. 지금 여기 당신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_()_
담담하되 가끔은 물기가 콸콸~~거릴때도
있습니다.
국제시장 엔딩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가를 훔치게되는건
동병이 상련이 되었나봅니다.
하하하하하하하! 정말 훌륭한 어머님을 모셨군요!
위대한 모정입니다. 그 어머님에게 효도 하려하나 아니계시니 어찌합니까?
그래서 불효자는 오늘도 목이 메네요! 일체유심조! 하하하하하하하!
가끔 눈물로 읍소합니다.
네, 마음 하나 휘어잡는게 쉬이 되진 않네요.
마음도 내것이 아닌 것은 아니
그저 조읍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