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 남이나 모두가 못살던 지난 60-70년대 시절에는 봄이되면 여기 저기서 심심치 않게 복쟁이국을 (복어국의 충청도 사투리)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죽은 사람들 거의가 중년의 남자들이었다. 물론 잘못 조리된 복어를 먹고 죽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나 요맇 할수 없고 쉽게 먹어서는 안되는 생선이라 잡은 후 일부러 버렸는데도 그걸 모르고 길가에 버려진 먹음직한 생선(복어)을 주워다가 요리해 먹고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피를 빼고 먹으면 된다, 요리할때 사기그릇 깨진 사금파리를 넣고 끓이면 된다, 또는 미나리를 많이 넣고 끓이면 괜찮다 등등 참으로 많은 얘기들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얼마나 엉터리 였는지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까지 이른 봄이면 해마다 내 고향 안면도에까지 들려오던 단골 소식이었고 그 사망소식의 대부분은 광천 독배나 대천, 또는 군산등 비교적 포구를 끼고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들려오곤 했다
새마을 운동과 산업발전으로 나라의 먹거리가 조금 나아지면서 적어도 길거리에서 주워다 먹는 음식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며 복어로 인한 사망사고가 급격히 줄어 들었고 이젠 하나의 전설이 되어 버렸다. 몇년 전 고급 일식집 주인장한테서 저녁을 초대받고 가니 싱싱한 생 복어에서 날 고니를 꺼내 뜨거운 정종에 섞어주며 1년 중 한 두달만 그것도 아주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정말 구하기 힘든 음식이니 먹어보란다. 진하고 끈끈한 우윳빛으로 가득한 먹음직한 정종잔을 앞에 놓고 같이 초청된 몇명의 지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데 모두의 표정들이 날로 먹어도 괞찮을까 하는 불안한 표정들이다..이를 눈치 챈 주인장이 자기가 먼저 한 잔을 훌쩍 마시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시원해 보일수가 없지만 그래도 아직 뭔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나 넘이나 초청받은 입장에서 안 마실수도 없는 분위기라, 속으로는 옛기억을 누르면서 겉으로는 일부러 담대한 표정을 지으며 시험 삼아(?) 한 모금을 마셔보니 아니...이게 웬 맛이란 말인가? 비린내는 하나도 없고 담백하면서도 약간 달콤하기도 한 입에 확 당기는 그 황홀한 맛에 나머지 정종을 그냥 마시기 시작한다...그렇게 시작한 정종을 큰 잔으로 9잔이나 마셨는데도 술이 안 취했다. 복어의 그 사람잡는 약효 때문인가? 아님 정종과 같이 나온 종잇장 처럼 얇지만 싫컷 먹은 복어회 때문일까? 지금도 겨울 바람이 불어오면 그 식은 땀 나면서도 기막히게 맛있었던 정종 생각이 간절한데 그 식당을 하던 양반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더 이상 구경을 못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