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두꾼이 매기는 회심곡이 구슬프다.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하늘 길 가시는 고모할머니를 태운 상엿소리에 애절함이 묻어난다. 어느 죽음이 슬프지 않으랴만, 고모할머니의 죽음은 더욱 비감을 자아낸다. 산천에 울려 퍼지는 회심곡은 그녀의 이루지 못한 한이 있어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훑고 지나간다. '북망산천 멀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초성 좋은 사람이 선소리를 메기고 상여를 멘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는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 일러주오.' 불행을 등에 지고 태어나신 고모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겨우 아들 하나(아버지)만 달랑 얻고 손을 보지 못하자, 초조해지신 증조할아버지가 서둘러 여자를 보고 거기서 얻게 된 여식이 바로 그녀였다. 같이 자라면서 고모할머니와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왜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인지 나는 그 때도 몰랐고, 지금도 알고 싶지 않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대가족 속에서 어미 없이 혼자 자라는 동안 추위와 외로움이 항상 그녀를 따라다녔을 것이라는 것과, 아버지는 그녀의 그런 마음을 알아주었던 유일한 또래였다는 사실뿐이다. 고모할머니는 나를 등에 업고 가끔씩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했던 것 같고, 시집가기 싫다는 말을 한숨에 섞어 뱉어냈던 기억이 난다. 더 이상 결혼을 미룰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머나먼 밤섬으로 귀양시집을 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가마 속의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꽃가마 안을 들여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동네에 처음 등장하는 꽃가마가 보기 좋아서 졸졸졸 따라다니던 나는, 불현듯 가마 속이 궁금해졌다.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두 사람의 아픈 눈물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어린 내가 본 신부의 표정에서는 맞이해야 할 신랑에 대한 기대는 전혀 읽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여울목에서 손을 잡아주던 임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인생의 밤은 그녀에게 너무도 깊었으리라. 어렸을 때 저수지 근처에 가면 각시풀이 많았다. 지천으로 흔한 각시풀을 뜯어다가 고모할머니는 나에게 풀각시를 만들어 주었다. 나뭇가지에 엮기도 하고, 나무로 만든 젓가락에 각시풀을 묶어 놓으면 사람과 똑같은 여자 인형의 뒷머리가 된다. 만들어 주는 사람도 고모할머니이지만, 어쩌면 고모할머니는 자신이 곧 풀각시가 되어 버렸는가 싶엇다. 청승맞은 노래로 그녀는 풀각시의 영혼을 불러들이곤 했다. "채일 마당 달이 떴네. 신랑 방에 불을 켜라. 연지곤지 바르고 우수각시 따라서 직녀걸음 나오신다, 직녀걸음 나오신다. 감태같은 머리채를 치렁치렁 따 내리고 널 띄우고 놀던 일을 어찌 잊고 시집가나." 너는 신랑이 되고 나는 각시가 되자고 손가락을 걸었던 약속은 바람에 날려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흩어져 버렸다. 고모할머니의 풀각시 놀이는 항상 비극이었다. 동화속의 각시는 알 수 없는 모래섬으로 시집을 가야만 했고, 신랑은 족두리를 얹고 초롱꽃등 밝히는 새로운 각시를 맞이한다는 이야기이다. 가기 싫은 시집을 떠나온 소꿉 각시는 논두렁의 각시풀이 이슬에 젖도록 울었다. 각시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신랑을 찾아 홀로 이슬 젖은 논두렁을 헤맨다. 자신의 옆자리에는 흙 떡으로 빚어 만든, 이제는 남이 되어 버린 신랑의 모양을 앉혀놓는다. 다 타지 못해 가슴에 남은 불은 운명의 탓으로 묻어둔다. 사랑하는 사람과 족두리를 내리지 못한 한恨으로 풀각시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잉걸불에 자신을 던진다. 모질고 아프지만, 그것이 연기가 되어서라도 임에게 돌아가려는 그녀의 꿈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 풀각시의 애달픈 동화는 고모할머니의 슬픈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살던 삼현리에서는 두 번째로 보는 꽃가마였다. 한 번은 고모할머니가 시집갈 때 본 꽃가마였고, 또 한 번은 이제 다시 못 올 길로 떠나는 꽃상여였다. 고모할머니는 찬란하게 이승을 하직한다. 논두렁길이 바로 하늘 길이 되었다. 서른도 못 넘긴 젊은 나이다. 시집살이를 채우지 못하고 연기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그리운 사람을 찾아 되돌아왔다. 그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는 비련悲戀이었다. 북망산을 넘어가자는 상여, 그 찬란한 종이 꽃가마, 살아생전에는 무슨 좋은 마음으로 이 꽃가마에 올라 보았으랴. 이승의 끈을 놓아야 하는 질긴 애통함이 따라다닌다. 생전의 여한을 울긋불긋 온갖 색채로 치장하여 달래려는가. 화려함은 있으되 나비는 찾지 않는 적막의 꽃밭이다. 만장輓章 산기슭을 오르던 꽃가마도 아름다웠지만, 녹색 물 가득한 여름의 산길을 오르는 꽃상여는 그 색의 대비로 화려함이 더욱 두드러졌다. '친구 벗이 많다 한들 어느 누가 동행할까. 일가친척 많다 한들 어느 누가 대신 갈까.' '불쌍하다, 불상하다, 이 내 신세 불쌍하다….' 만가 소리가 들판을 가득 수놓았다.
(고윤자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