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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하남시에는 백제유물이 하나도 없다고?
똥깡 추천 0 조회 1,072 11.06.26 12:54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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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6.26 16:36

    첫댓글 1. 일연의 삼국유사에 한성백제의 도읍지가 "춘궁동 고골일대"라고 명시한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똥깡님이 쓴 글을 다 읽어 보았지만, 삼국유사를 근거로 그렇게 특정할 수 있다는 논증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삼국유사에서 그런 구절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거없이 사서의 내용을 확대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근거와 논증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2. 공주에서 발견되었다는 어떤 건물터를 臨流閣址라고 단정한 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데이팅을 통해 그 유적이 생성된 연대를 확정한 것인지, 아니면 臨流閣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와당이라도 발굴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11.06.26 16:45

    3. 일전에 똥깡님의 주장을 검토하고 반론을 써 보겠다고 했는데, 하루 정도 똥깡님의 글을 분석하다가 반론을 포기했습니다.
    똥깡님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타당해서가 아닙니다. 논리 전개가 엉터리고 비약이 너무 심해서 똥강님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모든 문장을 하나 하나 분해새서 따져 보기 전에는 반론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을 공부하는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볼 때,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는지 아닌지에 관련해서 구태여 논리도 없는 글을 분해하면서 토론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어 포기를 하고, 단순한 몇 가지의 팩트(삼국유사의 기록, 명문 기와의 출토)만 수용을 하였습니다.

  • 11.06.26 16:54

    다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관련해서는 명확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어, 똥깡님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4. 앞서 문화재연구소와 관련이 있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역사학/고고학 분야의 기관 또는 교수들과 개인적인 친분 관계라고 할 것은 없는 순수한 아마추어임을 밝혀드립니다.

    근거 요구가 다소 강하게 보일 수도 있을텐데, 아마추어가 아닌 전문가라면 그런 근거 요구에 대해 자신의 부족한 논리를 채울 수 있는 기회로 보아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제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근거 요구를 하였습니다.

  • 작성자 11.06.27 20:13

    자신이 순수한 아마추어라고 해놓고 논리전개가 엉터리라니요? 무엇이 엉터리라는 말입니까?

  • 11.06.26 17:04

    일단, 지금 궁금해 하고 있는 두 가지의 주장만을 가지고 토론을 해 보지요. 그마나 토론이 가능할 정도로 똥깡님의 주장이 명확하게 들어난 것만을 골랐으니까요.

  • 작성자 11.06.26 16:46

    1, 일연은 삼국유사에 백제의 하남위례성을 今廣州(지금의 광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연이 살았던 당시의 廣州의 치소는 지금의 하남시 춘궁동 일원입니다.

    2삼국사기 기록에 동성왕이 임류각지에서 연회를 했다는 기록과 그 위치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당시 발굴자들이 임류각지라고 확신했던것으로 알고 있고, 현장의 안내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의 견해가 아닙니다.

  • 11.06.26 17:05

    1-1. 일연이 삼국유사를 쓰던 당시의 廣州의 공간적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요?
    1-2. 삼국유사 어느 기록에 그 당시 광주의 치소가 하남 위례성이 있던 위치라고 나오는지요?
    1-3. 똥깡님이 주장하듯이 하남시 춘궁동 어디엔가 있는 광주의 치소에서 한성 백제기의 왕궁으로 볼 수 있는 유구가 발굴이 된 적이 있는지요?

    2-2. 그 말은 소위 임류각지로 알려진 그 건물의 초석을 가지고 한성 백제 시대의 건축 기술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이해해도 되는 것인지요? 그 초석이 한성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의 초석이라는 것을 똥강님이 명확히 입증한 다면, 그 이후에 그 부분에 관련하여 똥깡님의 주장을 존중하겠습니다.

  • 작성자 11.06.26 17:28

    하남시 춘궁동은 신라시대 진흥왕의 신주, 한주임은 황보경박사의 학위논문에서 밝혀졌고, 고려시대 왕규의 근거지임도 밝혀졌고, 고려시대 광주의 치소임도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일연이 今廣州라고 한것은 광주의 치소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남시 춘궁동을 지목한 것이지요.

  • 작성자 11.06.26 17:19

    하남시 춘궁동 일원은 풍납토성과 같이 아직 광범위하게 발굴되지 않아 유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신라신주,한주와 고려 광주, 조선의 광주(병자호란때 광주치소가 남한산성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조선시대 광주의 치소가 춘궁동 일대였슴)등과 겹쳐있어 더욱 유구찾기가 힘듭니다.

  • 작성자 11.06.26 17:30

    임류각지가 한성시대 건물지라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한성시대 마지막왕인 개로왕이 죽은 연도가 AD475년이고 동성왕이 임류각을 지은 연도가 AD500년이니(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조 참조하시길) 개로왕이 죽고 25년후 지어진 건물이니 백제 한성시대의 건물과 비교할 수 있는 건물이 아니겠는가라는 차원에서 제가 인용한 것입니다.

  • 11.06.26 17:38

    1. 학위 논문에서 어떤 주장을 했다는 것 하고, 그런 주장을 똥깡님이 어떤 근거를 채택하여 수용하는지 하고는 별도의 사건입니다. 똥깡님이 채택한 근거가 궁금합니다.
    2. 그 박사 학위 논문에서 진흥왕의 신주와 한주라는 공간 영역이 하남시의 춘궁동 지역으로 한정된다고 주장했나요?
    3. 고려 시대 광주의 치소가 이미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그곳이 어느 유적인지요? 그리고 그 유적이 똥깡님의 주장처럼 한성 백제의 왕궁 유적이라는 것이 밝혀 졌는지요?

    똥강님의 주장만 포커싱해서 근거를 제시했으면 좋겠습니다. 춘궁동 발굴 이력은 똥감님 주장의 근거 제시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 11.06.26 17:38

    今廣州는 문헌 해석의 문제고, 고고학에 관련해서는 똥깡님의 주장대로 춘궁동 어디엔가에 있는 광주의 치소에서 한성 백제기의 왕궁으로 볼 수 있는 유구가 발견되었음을 근거를 들어 입증하면 되는 것입니다. 똥깡님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연이 말한 당시 광주의 치소는 어느 유적인지를 널리 알려진 유적 명칭을 들어 제시를 하고, 이어서 그 유적에서 한성 백제 왕궁으로 볼 수 있는 유물이나 유구가 발견되었는지만 제시하면 됩니다.

  • 작성자 11.06.26 17:52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백제토기를 근거로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이성산성은 춘궁동 바로 옆에 있는 산성입니다.

  • 작성자 11.06.26 17:39

    세종대 박물관의 학예실장인 황보경박사는 저와 같이 10여년을 하남시 춘궁동 일대를 조사한후 <하남시의 문화유적>이라는 조사보고서를 출간하였고, 그를 근거로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저는 그것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남시 춘궁동 일대가 고려시대 광주의 치소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 작성자 11.06.26 17:52

    그렇다면 모단님은 백제왕도 한성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작성자 11.06.26 17:47

    하남시 교산동에서 거대한 건물지가 발견되어 발굴한 결과 나말여초의 건물지임이 밝혀졌습니다.

  • 11.06.26 18:06

    저는 한성 백제의 왕성이 어디라고 주장하거나 풍납토성의 성격에 대해서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똥깡님의 질문에 대해서 답변할 내용이 없습니다.

    똥강님의 주장 중에서 그나마 명확히 들어나는 부분에 대해서 근거 제시를 드렸는데, 왜 이렇게 서로 간에 글이 길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삼국유사 부분은 역사 해석에 관련되는 문제인데,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今廣州"라고 한 다음 그곳이 현재의 "춘궁동 고골일대"라고 특정한 문장을 찾아서 제시해 주면 되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일연이 그런 주장을 했다면 삼국유사에 예컨데, "今廣州, 其治所漢城百濟王宮也"라는 글귀가 나올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 당시 광주의 치소가

  • 11.06.26 18:11

    현재의 하남시 춘궁동 일대라는 것을 입증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 왜 이렇게 글이 길어지지요? 제가 말씀을 잘못 드렸나요?

    그리고, 그 당시 광주의 치소에 관련해서는 예컨데 "널리 알려진 교산동 건물터가 그 당시 광주의 치소다"라고 제시를 한 다음, 그곳에서 한성백제의 유물이나 유구가 발견되었음을 보이면 되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똥깡님이 주장하는 당시 광주의 치소가 널리 알려진 여러 유적들 중에 어느 유적을 말하는지 먼저 밝히면 되는 간단한 문제인데... 저는 똥강님이 어느 유적을 특정해서 말하는지 잘 모릅니다.

  • 작성자 11.06.27 00:42

    하남시춘궁동 일대가 고려시대 광주의 치소라는 것은 상식에 해당하는 문제인데 왜 제가 고고학적으로 증명을 해야 하죠?

  • 11.06.27 01:53

    1. 똥깡님은 일연이 한성백제 도읍지가 하남시 춘궁동 고골일대로 비정했다는 주장을 했는데, 반복적으로 그 문제를 추궁했음에도 지금까지 그런 주장에 대한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똥깡님의 주장을 기각하겠습니다.
    2. 공주에 있다는 임유각지 관련해서, 그 초석이 백한성 백제 시대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 주장도 기각하겠습니다.

    종합 정리를 하자면, 똥깡님이 지금까지 올린 주장은 중구난방 논리부족이라서 무슨 근거로 주장을 하는지 종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중에서 조금은 명확하게 쓰여진 주장에 대해

  • 11.06.27 01:59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런 주장을 하는지 알아 보기 위해 논리적으로 접근을 해 보고자 하였는데, 똥깡님은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명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론조차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는 단지 줏어들은 지식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전문가는 자신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스스로 알고, 자신의 주장이 어떤 근거 위에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런 근거의 한계는 무엇이며, 특히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겉멋을 부리더라도 전문가라고

  • 11.06.27 02:07

    할 수 없고, 그런 사람은 전문가로 대접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동안 똥강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11.06.27 14:42

    모단님. 청사죽백, 여휘님 代打인가요?

  • 작성자 11.06.27 10:03

    삼국유사 기사내용 제시하지 못하다니요? 삼국유사에 일연이 한 이야기는 찾아 보십시요. 그리고 제가 쓴 책 부터 읽어보고 이야기 합시다. 임류각지가 한성시대의 건물지가 아니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모단님의 심보를 알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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