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어디로 가는가보다 누구와 가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왔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일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행을 망치고 만다. 날씨가 좋으면 금상첨화요, 여행지의 향토음식맛이 좋으면 행복배가다. 게다가 쇼핑할 내용이 마음에 들면 더더욱 재미까지 곁들여진다.
글밭에서 만난 10년지기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같이 하기 위해 아무리 벼르고 별러도 날이 잡히지 않아 고심하다가, 1박2일의 여행이라도 가보자고 한 것이 행선지가 산정호수가 되었다. 회원 5명의 자녀들 11명 중 6명이 결혼을 마쳤다. 아무리 돌봐줄 것이 많다 하여도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는 해방의 날을 맞을 것이다. 그 날을 다시 기다리기로 하고 떠난 여행은 만점이었다.
4명이 참석했으니 80% 출석이다. 그림과 글세계가 풍부한 일행들과 풍경 속을 달리며 던지는 한마디 말마다 세월이 배어있고 나이들며 겸허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모습도 역력했다.
오며가며 만나는 들녘은 가을걷이가 끝나 텅비어 있고 펼쳐지는 산은 봉우리마다 다른 색이다. 나뭇잎을 비워낸 덕으로 산등성이의 풍경이 달라졌다. 이부가리를 한 군인머리같기도 하고 거대한 짐승이 털을 세우고 누워있는 듯하기도 하다.
남한강변을 따라 달리며 보이는 강변의 풍경은 언제보아도 가슴 벅차다. 짐을 푼 우리는 먼저 빈 속을 달래고 산책길에 나섰다. 중간 지점쯤에서 허브식물과 야생화 농원을 만났다. 꽃이 불렀을까 향기가 유인했을까. 저절로 발길이 그곳을 향했다. 먼저 향을 실컷 마시고 그 다음에 꽃에 시선을 파묻었다.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려는 생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총무가 1만원씩 나누어주고 꽃을 사라고 했다. 느닷없이 용돈을 받은 어린아이들처럼 행복해졋다. 희귀 선인장이며 발레하듯 피어나는 붉은 빛 꽃화분도 하나둘씩 사들었다. 꽃 앞에 장사 없다. 그날 밤 우리는 사가지고 온 화분을 다 풀어 거실에 정원처럼 꾸며놓고 마냥 이야기를 풀어냈다.
2일째 새벽산책 길에 또 들렀다. 예쁘다고 생각한 화분을 딸네준다고 추가로 더 사서 채웠다. 오는 길에 산 배 몇개와 사과 한 상자는 값이며 맛이 성공적이었기에 사는 재미 또한 기가 막히다. 큰 돈 쓰지 않고 행복한 것은더 큰 행복같아서 오지다. 나는 냉이와 하얀 박나물도 샀다.
무엇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역시 먹는 일이다. 메기 매운탕의 수제비를 건져먹으며 얼마나 먹는 일에 열중하는지 수다스런 내가 조용하였다. 아니 모두 조용했던 것같다.
돌아오는 길에 신발백화점이라는 곳에 들러 욕실용 슬리퍼를 샀으니 그 또한 생필품 하나 사야 하는 일을 덜었다. 나를 즐겁게 한 일은 아울렛에 들러 딸의 재킷과 치마에 점버스커트까지 헐값에 골라들고 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것은 길을 잘못들어 친구가 맞춤식 여행처럼 우리집까지 데려다 준 일이다. 운전하기 고단한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나이들며 이 참견 저 참견으로 남편이 무엇만 사들고 가면 토를 달아서 불편했는데 출장 중이라 마음까지 편안했다.
아울렛에서 산 딸애의 옷을 입혀보니 맞춤옷처럼 예쁘다. 이 또한 싸서 좋고 예뻐서 좋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서 좋으니 쇼핑 삼매경의 결과 또한 성공이다.
나는 밤이 늦어서야 씀바귀 뿌리를 씻어 데쳐서 물에 쓴물이 우러나오라고 담가두었다. 내인생도 잠시 캐서 친구들과 지냈으니 오늘밤 꿈에는 쓴 물이 우러나면 버리려고 부지런히 정리하여 담가두었다. 쓴물 다 울궈지면 남은 쓴맛을 내 입맛으로 바꾸어 선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