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여러 가지 것들을
감당해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는 그러한 고통들을 벗어나
풍성하게 누릴 권리가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 감당해주셨다고
저절로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반응하고,
믿음으로 취해야 누리게 된다.
완전한 누림은 천국에 가서겠지만
지금도 부분적으로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 고통의 근본 원인은 마귀다.
마귀가 없었다면 아마 사람들은 지금도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마귀의 궤계와 미혹으로 인해
인생이 죄 가운데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마귀가 근본 원인인 것은 천년왕국의 모습에서도 불 수 있다.
천년왕국은 예수님 재림 후에
마귀를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음으로 시작이 된다.
계시록 20장,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그 천년동안 이 세상은 완전한 평화의 모습을 갖게 된다.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 왕국이 실현된다.
완전한 평화다.
그런데 천년이 지난 후에는 마귀가 다시 풀려나게 되고,
마귀는 풀려나자마자 이 세상을 다시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다.
7.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마귀는 이러한 존재다.
세상 고통의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오심은 그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이셨다.
요일 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창세기에서부터 이미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창 3:15,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렇게 마귀의 권세를 파하시고,
마귀가 가져다 놓은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셨다.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는 마귀의 훼방에서 벗어나
본래 예비되었던 것들을 누릴 수가 있다.
물론 완전한 누림은 천국에 가서다.
지금은 여전히 회복된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귀가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마귀는 직접적으로는 못할지라도
간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여전히 어렵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그 마귀의 일들로 인해 우리에게 고통으로 와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
예수님은 친히 그것들을 감당해주셨다.
1. 첫째는 죄로 인한 심판의 문제다.
우리는 죄로 인해 지옥심판의 권세 아래 있던 자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
거기에서 우리를 건져내셨다.
본문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와 그로 인한 심판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반응하고,
믿음으로 취하는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 해당이 되는 것이다.
2. 둘째로 질병의 문제를 감당해주셨다.
채찍에 맞으심으로 감당해주셨다.
5절,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벧전 2:24에서도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한다.
우리의 치료를 위해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건강을 회복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치료받게 되는 게 아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취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렇게 나도 치료받고,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치료받도록 믿음으로 기도해주는 것이다.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물론 치유 역시 완전한 누림은 재림 후에다.
그때는 완전히 회복이 된다.
이사야 35장,
5.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 이렇게 모든 육체가 완전히 회복된다.
그렇지만 지금도 100%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 치유를 누릴 수가 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취하면 누릴 수가 있게 된다.
3. 세 번째로 가난과 부족함의 문제를 감당해주셨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하게 되심으로 감당해주셨다.
고린도후서 8장,
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역사를 위해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집으로 오셨다.
머리 둘 곳 없이 사셨다.
우리의 가난을 감당하시고,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누구나 자동적으로 부요하게 되는가?
아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취하는 사람에게다.
기도하고 선포함으로 취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부요함을 누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누리도록 기도하고 베풀고 하는 것이다.
특히 고후 8:9 본문은 어려운 성도를 구제하는 문맥에서 주신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셨으니
너희도 어려운 형제를 그렇게 부요케 하라는 것이다.
고후 8: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나도 부요케 되고,
다른 형제들도 부요케 되도록 베푸는 것이다.
물론 이 땅에서 누구나 완전한 부요함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부요함은 천국에서 가서 누리게 된다.
황금길을 거닐며 어떠한 부족함도 없이 부요함을 누릴 것이다.
물론 지금도 부분적으로
우리는 그 부요함을 누릴 수 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누림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해주셨기 때문이다.
이 모든 누림을 한 마디로 묶어 표현하면
그게 바로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의 그 함께하심과 역사하심을 누리는 것이다.
누림이 있어야 전파자도 될 수 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취하여서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풍성함을 누리게 되기를... ***
- 복의근원교회 주일 낮 설교(설교: 백경수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