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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난 그를 사랑합니다. -6
당신 잘 지내나요? 아직도 날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니죠?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도망친 게 되어버렸어요.
그래도 당신이 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와버리니 조금은 편안하네요.
당신도 나처럼 편안해졌으면 해요. 그래줄 수 있죠?
6. 누구나 행복해질 자격은 있다.
잘 지내고 있지?
너야 뭐 내가 따로 신경 써서 걱정 안 해도 잘 지내겠지. 그동안 연락 못해서 걱정 많았지? 도착하자마자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이것저것 정리 좀 하냐고 정신이 없어서 이제서야 연락을 하게 되네. 삐졌다면 화 풀어라. (싫으면 말고 ^^) 너무 갑자기 오게 된 거라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온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나 핸드폰 생겼으니 앞으로 이 번호로 연락해. 혼자 사는데 집에 전화기 다는 것도 그렇고 별로 전화할 데도 없고 해서 전화 없이 지냈더니 회사에서 답답했는지 핸드폰을 해주더라고. 덕분에 공짜 전화도 생겼다. 근데 전화요금도 회사에서 내주는 거라 자주는 못할 것 같아. 국제전화요금 많이 나오면 눈치 보이잖아. 안 그래도 신입이라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것도 많은데 말이지.
여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 모든 곳이 다 영화 속 장면 같아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니깐......... 역시 사람은 넓은 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맞긴 맞나봐. 그동안 그 좁은 서울에서 27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는 게 무진장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좋아하는 비도 자주 내리고, 걱정했던 음식도 입에 맞고. 알고 보니 내가 서양식이더라고 ^^ 그래서 몇 달 만에 벌써 5킬로그램이나 는거 같다. 네가 항상 말랐다고 구박했었는데 이젠 뚱뚱해졌다고 또 구박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회사에서 구해준 방이 정말 맘에 들어. 창밖으로 리버플항이 다 보이거든. 아침마다 바다에서 해 뜨는걸 보면서 눈을 뜨고, 저녁이면 파도소리 들으면서 잠이 들고 그런다. 멋지지 않냐? 이런 곳에 있으니깐 다시 사랑이란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나 우습지? 힘들다고 찔찔 짜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또 사랑타령을 하고 있다니.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외로움을 많이 타잖아. 그래서 여기 영국 놈팽이라도 하나 건져볼까 하고 작업 중이시다. 행여 내가 한국 들어갈 때 백인으로 한 놈 옆구리에 끼고 들어가도 너무 놀라지 말도록!!! 히히
참, 그동안 나름대로 좀 바빠서 관광도 한번 못해봤거든. 오늘은 처음으로 길도 익힐 겸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는데 알고 보니 내가 지내는 리버풀이 그 유명한 비틀스의 고향이라서 비틀스 마을도 있고 그렇다더라. 너 비틀스 무지 좋아하잖아. 사방에 비틀스 관련 기념품이 넘쳐나고, 비틀즈맵이라는 지도를 따라 투어를 하는 코스가 있는데 굉장히 많은 관광객들이 그걸 하러오나 보더라고. 나도 조만간 한번 해볼 생각이야. 내가 팬은 아니더라도 네 덕분에 등 뒤로 주워들은 게 좀 있잖아. 나중에 너도 휴가 때 한번 놀러와. 이 형님이 가이드 한번 해줄게.
근데, 여기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영국 물가 비싸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영국으로 발령 났다기에 주말마다 뮤지컬이며, 박물관이며 찾아다니면서 문화생활 좀 즐겨볼까 했더니 쥐꼬리만 한 신입사원 월급 가지고는 문화생활 같은 건 어림도 없고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하니 이를 어쩌면 좋냐. 아직 여기 와서 제대로 극장도 한번 못가 봤다. 이 불쌍한 형님을 위해서 종종 먹을 것도 좀 보내고, 볼만한 영화 나오면 DVD도 좀 보내주고 그래라. ^^;;
그러고 보니 정신없이 내 얘기만 늘어놓은 거 같네. 넌 어때? 너야 뭐 워낙에 빈틈없는 녀석이니깐 잘 지내고 있겠지. 암튼 이 형님 없다고 너무 우울해 하지는 말고 씩씩하게 잘 지내라. 근데 넌 왜 연애를 안 하냐? 이제 그만 날 잊고 좋은 사람만나야지. 히히
자식아! 너도 다른 사람들 챙기는 일만 하지 말고 너 자신도 좀 챙겨라. 좋은 사람 만나서 찐하게 사랑도 해보고 그래야지. 내가 한국 돌아갈 때는 꼭 옆에 멋진 남자 한명 끼고 있도록!!! 이건 사랑하는 친구의 명령이니 흘려듣지 말고 명심하도록!!!!
아마도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릴 것도 같다. 원래 계획은 1년만 있다가 돌아가는 거였는데 회사에서도 더 남아 있으라고 하고, 나도 여기 일도 적성에 맞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마음에 들고 해서 조금 더 있다가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야. 아마도 3년 정도 더 있다가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자세한건 확실하게 정해지면 다시 연락해줄게.
종종 우리 엄마 좀 찾아가 줄 수 있지? 울 엄마 나보다 너를 더 좋아하는 거 알잖아. 좀 부탁할게. 안 그래도 걱정 많이 하시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으니 얼마나 걱정이 많이 되시겠어. 내가 찾아갈 수도 없고............ 늘 너한테 부탁만 하게 돼서 미안해. 너 없었음 나 어쩔 뻔했냐.
앞으로 자주 연락할게. 잘 지내. 그럼 이만.
멀리 리버풀에서
사랑스러운 친구(^^;) 나시은!
언제나 그렇듯 새해는 또 어김없이 찾아왔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혼자 맞이하는 새해 첫날은 항상 서글프기만 하다. 벌써 이곳에서 맞이하는 3번째 새해 첫날 아침이다. 어느새 나도 서른 살이 되어버렸다니. 영원히 눈부시기만 할 것 같던 내 이십대의 시간들도 이젠 그 지겨운 끝을 맞이한 것이다.
떠나온 지 3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난 이곳에서 이방인인 것만 같다.
얼마 전에 재혁이가 보내준 떡을 녹여서 떡국을 끓였다. 한국에 있을 때는 괜스레 나이 먹는 게 억울한 것 같아서 누가 끓여줘도 쳐다도 안 보던 떡국이었는데 여기 와서는 매년 꼬박꼬박 챙겨먹게 된다. 한국인들이 별로 살지 않는 지역인지라 음식문제가 항상 고민이다. 다행히 과장님 댁에서 김치를 보내주시는 덕분에 한국음식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장 적응하기 힘든 건 음식인거 같다.
오랜만에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오늘은 한국에 보낼 선물을 사러 중심가로 나가볼 작정이다. 이제 보름후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리운 것 들이 너무 많다. 엄마, 재혁이......... 그리고 그 사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를 만나 사랑을 한 3년의 시간. 꼭 그 시간만큼 떨어져있던 다시 낯선 사람으로의 3년의 시간. 이젠 나 같은 건 다 잊고 잘 살고 있겠지? 재혁이는 의식적으로 편지에 그 사람 소식은 전하지 않는다. 그와 한 회사에서 일하는 재혁이가 그 사람 소식을 모를 리가 없을 거고, 배려심 깊은 녀석이 내가 다시 흔들릴까봐 일부러 말하지 않는 거겠지. 물론 나도 묻지 않는다. 이제와 소식을 전해 듣는다고 무엇을 어찌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모르고 사는 것이 더 좋은 우리 관계인 것을.........
클레이튼광장의 쇼핑센터는 사람들도 북적인다. 리버풀이나 서울이나 이런 풍경은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오랜 시간 정상을 드려 선물을 골랐다. 예쁘고 영국느낌 나는 선물을 사기로 마음먹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는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조금 예쁘다 싶으면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서 망설여지고, 저렴한 건 거의가 중국산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이 먼 영국의 쇼핑센터에까지 중국산이 대부분인걸 보면 정말이지 중국이 큰 나라긴 한가보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마음에 딱 드는 물건이 없다.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은 엄마 선물로 티포원과 찻잔 세트를 골랐다.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너무 예쁘고 고급스러운 영국 고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게 엄마도 마음에 들어 하실 것 같아서 무리를 좀 해서 구입했다. 다음으로는 재혁이를 위해 아직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발매가 되지 않은 비공개 앨범이라고 점원이 설명한 비틀스 앨범 두 장과 체크무늬 바바리를 샀다. 이걸 받고 기뻐할 녀석의 얼굴이 떠올라 왠지 흐뭇해진다. 그리고는 주변사람들에게 선물할 조그마한 소품들을 몇 가지 사고 나니 어느새 돈이 바닥을 보인다. 넉넉히 가지고 나온다고 했는데도 결국은 카드까지 긁어버리고 말았다. 역시 상상초월 영국물가다.
쇼핑을 끝내고나니 갑자기 피로가 밀려온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을 뚫고 나와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서 햄버거를 하나 시키고 앉았다. 햄버거 값도 역시 만만치가 않다.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거리를 바라본다.
정신없이 어디론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한국이나 영국이나 다들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걷는 모습은 다 똑같은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저맇게 바쁘게 살고 있는 건지. 지난 3년 동안 나도 그를 잊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지금 난 그를 다 잊어낸 걸까?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의 소식을 듣게 될 텐데.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아직까지는 그럴 자신이 없다.
어느새 또 비가 내리고 있다.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거리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썰물 빠지듯 사라져버렸다. 요즘 들어서는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눈이 내릴 만큼 추운 날씨인대도 이상하게 눈이 아니라 비가내린다. 그 사람 처음 만난날도 비가 왔었는데. 그 사람이 내게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준 날도 비가 왔었는데. 그 사람과 함께 살기로 시작한 날도 비가 왔었는데. 그 사람을 떠나온 날도 눈이 아닌 비가 왔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 가죽장갑을 하나 샀다. 손이 큰 그에게도 잘 어울릴만한 큼직한 갈색 가죽 장갑을...........
어쩌자고 이러는 건지. 어차피 마주칠 일 없는 사람일 텐데.
날 어쩌면 좋죠? 아침에 눈을 뜨면 옆자리에 당신이 없다는 사실에 아직도 가슴이 매어오는 나를 어쩌면 좋죠? 아직도 그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렇게 허우적대는 나를 어쩌면 좋을까요? 시간이 치유해주지 못하는 상처는 없는 거라 믿었는데……. 아니었나봐요. 추억 앞에서는 시간도 힘이 없나 봐요.
Brake Time 그를 떠나기 전날 밤 - 우문현답
"그날 왜 날 사랑하게 됐어? “
그와의 관계 후에 어리석은 질문은 한다.
“널 처음 본 순간 난 완전히 너한테 빠져버렸어. 사랑하는데 이유라는 게 있던가? 나도 잘 모르겠어.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하더라고.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왜 처음 보는 너를 따라갔는지. 어쩌자고 다짜고짜 사랑한다고 말했는지. 많이 당황했지? 네 입술에 억지로 키스하면서 난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칠 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어.
그거 알아? 너 무진장 차가워 보인다는 거. 그런대도 난 그런 모습까지 다 좋았어. 널 가질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후회 없다고 느낄 만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널 쫒아갔었어.”
그는 따스하게 나를 안아주면 다시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참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사랑하는데 이유라는 게 있던가?
사랑하는데 이유라는 게 있던가?
사랑하는데 이유라는 게 있던가?
이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쿵쾅거린다.
“그럼 말이야. 내가 죽으면 자긴 어떻게 할 거야?”
그의 가슴에 뺨을 묻은 채 묻는다.
“또 쓸데없는 소리한다. 죽긴 누가 죽어? 죽어도 나이 많은 내가 먼저 죽겠지 네가 먼저 죽겠냐? 무섭게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너 죽게 내버려둘 거 같아?”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그냥 재미삼아 물어보는 건데 뭐............”
“당연히 따라 죽는다고 해야 정답인건가? 그래도 나 그런 상상하는 것도 싫어. 그러는 넌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건대?”
정말 상상만으로 무섭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 그가 되묻는다.
“난 아주 잘 살 거야. 당신 죽더라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살 거야. 당신 섭섭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깐 당신도 나 없어도 잘 살아줘야 해. 어디서든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나 보란 듯이 더 잘 살아줘야해. 약속해줘 그래 줄 수 있지?”
나는 단호한 표정과 확고한 목소리로 다짐을 받으려고 한다.
“너 오늘 좀 이상하다. 너 지금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가버릴 사람처럼 구는 거 알아? 왜 누가 너 죽는다고 그러든? 그런 거야? 장난이라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난 주말에 며칠 너 못 보는 것만으로도 보고 싶어서 죽을 거 같은데 아주 너 못보고 내가 어떻게 사냐? 그러니깐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알았지?”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 등을 돌려 누웠다. 그가 등 뒤에서 포근히 감싸 안는다.
그는 참 따듯한 심장을 가졌다.
쿵. 쾅. 쿵. 쾅. 쿵. 쾅.
그는 참 튼튼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 계 속 -
P.S.
항상 다른분들이 써주신 글을 읽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소설입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고, 디테일이나 에피소드도 거의 없는 그냥 감정가는대로 따라가는 허접한 글입니다.
사실은 처음부터 완결까지를 다 써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자꾸 조금씩 고쳐가다 보니 마음에 안들어져서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다음편 올리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어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행여라도 제글 기다리는 분이 한분이라도 있다면 죄송합니다 ^^; 꾸벅!
첫댓글 님의 글을 기다리는 1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