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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未堂) 시의 원형적 공간과 영원주의
이언 김 동수
I. 서정주의 시적 관심
미당 서정주 시인은 1915년 5월 18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2000년 작고하기까지 1000여 편의 시를 남긴 한국 최고 최대의 시인이라 일컫고 있다.
그의 주요 관심은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불안한 현상 속에서도 변치 않고 지속될 수 있는 보다 본질적인 항상성(恒常性)에 있었다. 그것은 일제침략기와 6.25라는 암흑기에 생사를 넘나드는 불안의 정국 속에서 보다 근원적이고도 영구적인 것,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통합되는 ‘현상 속의 법신관(法身觀)’이라는 시적 세계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시적 관심은 구체적으로 그의 시 속에서 추상적인 관념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땅·길과 같은 구체적인 공간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드러난다.
특히 그의 언어 운용 능력과 시적 성취에 대해 당대 최고의 지성들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미당은 정히 부족 방언의 요술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유종호
● 인간이 만든 것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짜르트의 음악과 미당의 시다.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이남호
● 미당의 시야말로 의미 이전의 옹알이 같은 태초의 언어, 미당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자체가 행운이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 서정주는 시의 정부(政府)다.
- 시인 고은
이러한 평가를 가능케 한 서정주 시의 미학은 현상을 뛰어 넘어, 단절에서 지속을, 일시적 존재에서 끊임없이 순환되는 영속성((identity)을 찾아 인간의 유한과 한계성을 초월하여 유불선이 육화된 동양적 정신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II. 미당 서정주 시의 원형적 공간
1. 동일성의 탐구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영원성의 시적 공간
서정주는 광주학생 사건과 관련된 사상 문제로 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두 차례 퇴학을 당한 뒤 상경하여, 한동안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넝마를 주우며 빈민가를 떠도는 삶을 살았다. 이 시기의 체험은 단순한 개인적 빈곤을 넘어, 자신이 세계 속에 속할 자리를 상실한 사회적 빈곤이) 존재론적 소외와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도시에서의 방황 속에서 서구적이고 근대적인 가치에 매혹되기도 했으나, 그러한 지향은 오히려 자기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그 결과 미당은 극심한 소외와 단절의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그는 고향으로 귀환함으로써, 단절된 자아를 회복하고 존재의 근원을 재탐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귀향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원형적 자아’와 접속하려는 시적 탐색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절된 현실 속에서 지속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며, 부재하거나 공허한 현재를 매개로 하여 과거와 미래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층위에서 공존하는 ‘영원성의 시간’이라 하겠다. 이때의 시간은 서로 의존하며 생성되는 관계적 시간으로서, 불교의 연기 사유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시간 의식은 극단적 단절이나 동일성의 고착을 넘어서려는 중도적 균형 감각을 내포한다.
따라서 미당 시의 원형적 공간은 단순한 회귀의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분열을 통합하고 존재의 동일성을 재구성하는 시적 모색의 공간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인간과 세계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이어지는 하나의 유기적 질서를 이룬다. 이러한 원형적 공간의 특성은 실제 작품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흰 무명옷 갈아입고 난 마음
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면
(......)
아스럼 눈 감었던 내 넋의 시골
별 생겨나듯 돌아오는 사투리
등잔불 벌써 키어지는데……
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았구나
샤알 보오드레―르처럼 섧고 괴로운 서울 여자를
아조 아조 인제는 잊어버려
선왕산 그늘 수대동(水帶洞) 十四번지
장수강 뻘밭에 소금 구어 먹던
증조할아버지 적 흙으로 지은 집
오매는 남보단 조개를 잘 줍고
아버지는 등짐 설흔 말 졌으니
여기는 바로 十年 전 옛날
초록 저고리 입었던 금녀, 꽃각씨 비녀 하야 웃던 三月의
금녀, 나와 둘이 있던 곳.
머잖어 봄은 다시 오리니
금女 동생을 나는 얻으리
눈썹이 검은 금녀 동생,
얻어선 새로 수대동(水帶洞) 살리.
-서정주, 「수대동 시(水帶洞 詩)」 일부 , 1938년
괴롭고 힘든 서울 살이를 떠나 고향 수대동으로 돌아와 금녀와 같이 살겠다는 소망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의지는 단순한 귀향의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회복하려는 시적 결단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미당은 서울이라는 단절의 공간을 떠나 고향 수대동으로 돌아오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미당의 시적 공간에서는 과거·현재·미래가 하나의 연속체로 통합되어 분열된 자아를 극복하고 존재의 동일성을 회복하려는 지향이 나타난다.
머리를 상고로 깎고 나니
어느 시인과도 낯이 다르다.
꽝꽝한 니빨로 웃어 보니 하눌이 좋다.
손톱이 귀갑(龜甲)처럼 두터워 가는 것이 기쁘구나.
솥작새 같은 계집의 이얘기는, 벗아
인제 죽거든 저승에서나 하자.
목아지가 가느다란 이태백이처럼
우리는 어째서 양반(兩班)이어야 했드냐.
포올 베르레-느의 달밤이라도
복동이와 같이 나는 새끼를 꼰다.
파촉巴蜀의 울음소리가 그래도 들리거든
부끄러운 귀를 깍어 버리마
-서정주, <엽서 - 동리東里에게> 전문
이 시에서도 서정주는 ‘솟작새 같은 계집’, ‘목아지가 가느다란 양반’의 길을 버리고, ‘꽝꽝한 니빨’, ‘두터운 손톱’의 ‘복동이와 같이’ 투박하고 토속적인 존재로 돌아가 ‘새끼를 꼰다’고 한다. 이는 포올 베르레느나 이태백으로 상징되는 이국적이고 병약한 감수성을 벗어나, 생명력 있는 토속적 존재로 전환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생활 방식의 전환이 아니라, 도시적 자아를 해체하고 토속적 존재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머리를 깎는’ 행위는 훼손된 자아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결단이자 자기 회복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2. 불치(不治)의 그리움의 구조
서정주 시인이 그리는 이상적 여인상에는 으레 ‘초생달 같은 눈썹’의 미인이 등장한다. 그것은 아마 늦나이에 입학하여 만난 소학교 시절의 ‘이쁜 내 여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된다. 고창 선운리에서 서당을 다니다 부안 줄포로 이사 와 초등학교를 다녔고, 3학년(12세) 때 요시무라 여선생이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해 여름 병을 앓아 여러 날을 누워 있자, 요시무라 선생은 미당의 집을 찾아와 문병을 해 주었다.
이후 미당은 여선생님을 사모하여 그 얼굴을 그려 보게 되었는데, 특히 마음을 쏟았던 것은 그 눈과 ‘눈썹’,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손톱 속의 이쁜 반달들’이었다. ‘손톱이 까만 에미’(「자화상」)와는 달리, 여선생님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이쁜 반달’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반달의 이미지는 단순한 신체의 묘사를 넘어,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순수성의 상징으로 내면화된다. 그리하여 이 최초의 만남은 평생 그의 가슴 속에 원형적 여성상, 곧 ‘아니마(anima)의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되고, 미당 시 전반을 관통하는 정조인 ‘불치의 그리움’을 형성하게 된다.
그 분홍빛 손톱들 속의 이쁜 반달들, 그걸 드려다 보며 조용히 깜박거리던 눈과 눈썹들이 내게 분명 문병 위문품으로 준 그 다섯 개의 귤 냄새와 함께 병(病)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어린 느낌에 제일 소중하게 사진 찍혀 있었다.
이랬었기 때문에 나는 물론 지금까지 어느 철에도 그녀를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고 왔다. 그녀는 단 한 해 동안 내 잃었던 명예를 복원시켜 놓고는 딴 데(일본)로 가버렸지만 나는 그녀와의 작별 때 그녀가 타고 가는 합승차 앞에 아이들과 함께 가로막아 서 보았던 것을 비롯해서 지금도 몇 몇 가끔은 꿈속에서도 보고 있다. -서정주, ‘손톱의 반달’, 『미당 수상록』,(민음사:1976), 337면
감수성이 예민하던 어린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선녀처럼 나타나 미당에게 부푼 꿈과 사랑을 심어 놓고 또 어디론지 손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 소학교 시절 요시무라 아야코 선생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억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환기되며,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원형적 이미지가 심화되는 과정으로 구체화 된다.
우리 여선생이 가끔 사무실로 나를 불러서 들어가 보면 그녀는 그때마다 쬐그만 크롬의 휴대용 소독기에서 알콜에 적신 하이얀 탈지면을 아주 얌전히 꺼내 그걸로 그녀 두 손을 조용히 늘 닦고 있었고,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그 짓은 그녀 열 개의 손가락의 손톱 끝까지 가만 가만 파급되어 가고 있었는데
-서정주, ‘손톱의 반달’, 『미당 수상록』,(민음사:1976), 337면
그날 사무실에서 마주한 하얀 손끝과 손톱 속 반달의 인상은 이후 그의 시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근원적 이미지가 되어, 「내 영원은」, 「나의 시」, 「동천」 등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이후 여러 작품 속에서 반복·변주되며, ‘도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지향’이라는 구조를 형성한다. 곧, 어린 시절의 체험 속에서 형성된 이상적 여성의 이미지는 현실에서는 결코 완전히 회복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평생 지속되는 결핍과 그리움의 원형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구조가 바로 미당 시의 근간을 이루는 ‘불치(不治)의 그리움’이다.
‘내 永遠은 ∽ 소학교 때 내 女先生님의 / 키만큼한 굴헝이 있어’(「내 永遠은」),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아 줄 이가 땅 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나의 시」)라는 심층 이미지는, 이와 같이 ‘도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영원한 결핍과 지향’을 드러내는 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親戚의 부인을 모시고 城안 冬栢꽃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部分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흥근한 落花가 안씨러워 줏어모아서는 부인의 펼쳐 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쉬임없이 그 짓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뒤 나는 年年히 抒情詩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서다가 드리던 -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아줄 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주워 모은 꽃들은 저절로 내손에서 땅 위에 떨어져 구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밖에는 나는 내 詩를 쓸 수가 없습니다.
-서정주, 「나의 詩」 전문, 1955.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결핍의 정서는, 대상을 향한 지향이 끝내 충족되지 못하는 구조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결핍의 정서는 「동천」에 이르러 보다 초월적인 이미지로 승화된다.
내 마음 속 / 우리 님의 / 고운 눈썹을 / 즈문 밤의 꿈으로 / 맑게 씻어서 /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천(冬天)」 전문
그리하여 미당은 그 누구도 영원히 손닿을 수 없는 ‘절대의 영지(靈地)’, 곧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놓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과 그리움을 형상화한다. 이는 ‘만남’의 충만이 아니라 ‘이별 이후’에 남는 결핍과 그리움의 사랑이며,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의 비움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정서이다.
이처럼 도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지향은 「견우의 노래」에서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의 구조로 확장된다.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 서정주, 「견우의 노래」일부, 1948.
이처럼 미당의 사랑은 ‘만남’이 아니라 ‘이별’이며, ‘육신적 결합’이 아니라 ‘정신적 지향’에 가깝다. 그에게 사랑은 어떤 대상을 소유하거나 완성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도달할 수 없음 속에서 지속되는 정서적 긴장 상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사랑의 구조는 ‘만남 → 충족’이 아니라, ‘접촉 → 이별 → 그리움의 심화’라는 역설적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서 더욱 선명하게 형상화된다. 또한 「국화 옆에서」에 나타나는 ‘족두리 쓰고 시집가는 누이’가 아니라,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의 모습 역시 성취된 사랑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곧 상실 이후의 정서를 보여준다.
따라서 미당의 사랑은 설렘과 격정의 성취로 완결되는 사랑이 아니라, 만남 이후 곧바로 이별로 이행되거나, 혹은 끝내 도달하지 못한 채 되돌아오는 결핍의 구조 속에 자리한다. 이 결핍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상에 대한 지향을 발생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불치의 그리움’이 생성된다.
결국 미당에게 사랑이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을 비움으로써 오히려 더 깊어지는 정서적 울림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비워진 자리에는 다시 맑고 정결한 감정이 샘물처럼 고여 오며, 이와 같은 순환 구조 속에서 그의 시적 영감이 지속적으로 생성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치의 그리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미당 시 전체를 관통하는 존재론적이며 미학적인 원리라 할 수 있다.
3. 영원주의와 사랑의 형이상학
- 아름다운 것은 슬픈 것이니라.
이처럼 충족될 수 없는 그리움은 결국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원성’의 사유로 나아가게 된다. 미당의 사랑은 현실적 성취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욱 지속되는 그리움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을 지향한다.
따라서 그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슬픔과 애잔함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비애에 머물지 않고, 이를 견디게 하는 미학적 근거를 동시에 지닌다. 이는 한국적 ‘한(恨)’이 승화된 애이불상(哀而不傷)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미학은 사랑을 현실의 성취가 아니라 시간의 초월 속에서 지속되는 넉넉한 관조적 관계라 하겠다. 따라서 시공을 초월하여 지속되는 사랑의 구조, 곧 영원한 사랑의 형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영원성에 대한 인식은 미당 자신의 산문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문학 소년이 되면서부터 이내 그 영원성이라는 것에 무엇보다도 더 많이 마음을 기울여 온 것만은 사실이다. ∽ 그럴러면 한 시대의 한계 안에서 소멸되고 말 그런 내용이 아니라 어느 때가 되거나 거듭거듭 문제가 되는 그런 내용만을 골라 써야 한다. 일테면 이별, 상봉, 질투, 비애와 절망과 희망, 또 生과 死, 이런 어느 시대에나 공통될 인생의 문제, 이걸 나는 영원 속에 이어서 독자에게 작용할 수 있는 내용,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작품의 영원성이다.
-서정주, ‘내가 아는 영원성’, 『미당수상록』, 1976, 107-108면.
이 진술은 미당이 지향하는 ‘영원성’이 단순한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반복적으로 환기하는 보편적 차원에 있음을 보여준다. 곧 이별, 상봉, 질투, 비애, 절망과 희망, 그리고 생과 죽음과 같은 문제들은 특정 시대를 넘어, 영원 속에서 끊임없이 재현되는 삶의 본질적 문제로 이해된다.
이 같은 영원성의 사유는 그의 시 「춘향유문」에서 구체적이고 극적인 형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사랑은 ‘한 시대 안에서 소멸되고 말 그런 사랑’이 아니라, 시공과 생사를 초월하여 지속되는 영원한 관계이다. 이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울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서정주. 「춘향유문」 일부 , 1948
옥중의 춘향이 죽음을 앞두고 이도령에게 남기는 이 유언은 단순한 이별의 정서를 넘어선다. ‘천 길 땅 밑’이나 ‘도솔천’에 이르더라도 결국 ‘도련님의 곁’에 있다는 인식은, 사랑을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형이상학적 도약을 보여준다. 특히 ‘구름’이 되고 ‘소나기’로 되돌아오는 이미지에서 드러나듯, 존재는 소멸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지속되는 순환적 생명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의 사랑은 현실에서 성취될 수 없는 결핍을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시간 속에서 지속시키려는 시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현실의 단절을 영원성의 시간 속에서 극복하려는 시적 인식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인식은 미당의 후기 산문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된다.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은 영생(永生)이야(......) 자기 자신을 육체로만, 일상과 현실에 묶인 몸뚱아리로만 보지 말고 영원한 정신적 생명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나. (......) 인생은 선악의 시비로만 따지면 불행해져. 선악 시비 이전의 순수상태가 중요한 것이지. - 서정주, 『문예중앙』 1998년 여름호에서
이 진술은 미당의 시적 사유가 육체적이고 현실적인 존재를 넘어, 정신적이고 영원한 생명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당의 시적 상상력은 불교의 인연설과 윤회관을 바탕으로 생명의 원환성(圓環性), 곧 영원성을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문태준, 「영통의 감각」, 『미당문학』 08호, 2019. 7.1.) 이러한 미당의 낭만적 기질이 불교적 영원주의와 결합되면서, 그의 시는 자연스럽게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결국 미당에게 사랑이란 현실적 성취가 아니라, 도달할 수 없음 속에서 영원으로 이행되는 정서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미당의 슬픔은 미적·형이상학적 깊이를 획득한다. 이러한 미당의 낭만적 기질이 불교의 영원주의로 굳어지면서 그의 시는 자연스레 현실과 거리를 두게 된다.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미당 서정주 시인 생가
-서정주 시인과 부인 방옥숙 여사
-우하정(又下亭)에서 서정태 시인과 필자(2014.12.2.)
-미당시문학관 ‘동천’시비제막식 날(2015.11.2)

첫댓글 미당 서정주를 알게한 이 평론은 더이상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이 강의를 쉽고 재미있게 열강하신 그 시간 모두의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절대 잊을 수없는 미당 에 대한 모든것을 배웠습니다.
감사 드립니다요. ^^*
극단의 평가를 지니고 있는 대상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이자 단초가 될 것 같습니다.교수님의 시선을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