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976년 5월 16일
5ㆍ16혁명 15주년 기념일이다. 15년 전 새벽, 이 나라의 젊은 군인들이 기울어 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구국의 햇불을 높이 들고 궐기했다. 오늘 새벽 동이 틀 무렵, 전차부대를 선두로 하는 1진의 혁명군 부대가 결사의 각오를 굳게 간직한 채, 새벽바람 찬이슬을 마시며 숙연히 한강대교를 도강했다. 고요히 잠든 수도 서울은 역사의 새로운 장이 바뀌는 이 순간까지 적막속에 초여름의 피곤한 잠을 이루고 있다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부패와 부정과 무능과 안일, 정체와 무기력으로 기식(氣息) 암암하던 이 사회에 새로운 활력소와 소생의 숨소리가 흘러 나오고 몽롱한 깊은 잠길에서 잠을 깨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 5시 국영방송을 통해서 혁명공약이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새 역사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1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혁명은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줄기차게 진행중에 있다. 가지가지의 고난과 저항과 훼예포폄(毁譽褒貶)을 들어가면서, 5ㆍ16의 완성은 우리나라를 선진공업국가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자주국방ㆍ자립경제를 달성하여 평화적 남북통일의 기반을 구축하여만 한다. 1980년대 초에는 이 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확신한다.
----1961년 5월 21일, 깡패들의 시가행렬
② 1978년 5월 16일
5ㆍ16혁명 제17주년이다. 오전 10시 반, 민족상 수상자 12명에 대한 수상식이 있었다. 오후 6시 반부터는 5ㆍ16민족상 이사 42명과 같이 만찬을 들면서, 지나간 17년간의 회고담을 나누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7년간 우리 사회는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으로 숙명처럼 생각하며, 체념속에 살아온 가난한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이 굴레를 벗어버리고 우리도 남들처럼 잘살아 볼 수는 없는 것인지,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었는데, 이제 잘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고, 얼마 안 가서 남부럽지 않은 잘사는 나라가 될 자신이 생겼다.
그 동안 많은 비판의 소리도 들었고, 비난의 소리도 수없이 들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의 시책에 협조해 주었고, 지지해주었다. 특히 제2의 5ㆍ16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10월유신은 능력의 극대화와 국력의 조직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제도였다고 확신한다.
10월유신 이후, 지난 6년 동안 우리 국력의 신장은 참으로 괄목할 만하다. 이대로 추진된다면, 1980년대 중반에 우리는 대국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도 이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반대하는 인사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탄불기(可歎不起).
다만 결과를 가지고 후세에 평가를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5.16 직후 박정희 의장 프로필.
③ 1979년 5월 16일
5ㆍ16 혁명 제18회 기념일이다. 1961년 5월 16일, 누란의 위기에 직면한 조국을 구하고, 아니 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가만히 좌시만을 할 수 없다는 우국의 일념으로 젊은 군인들이 궐기한 것이 5ㆍ16이었다.
뚜렷한 경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난마와 같이 헝클어지고, 부패ㆍ부정ㆍ무질서ㆍ부조리ㆍ정체ㆍ무기력...이러한 단어들이 5ㆍ16 당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단적으로 표시한 표현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회악과 부조리를 과감하게 척결하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신풍을 흡입하기 위해서 5ㆍ16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혁명을 단행하고 구정치인들로부터 전권을 인수한 혁명정부는 너무나 막중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민간정부를 전복하고, 구악에 물든 대표적인 인사들을 구속하며, 쾌도처럼 산적된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혁명정부에 대하여 다수 국민들은 쾌재를 부르고 박수를 보내 주기도 했으나, 구정치 세력들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은 외세를 빌려서 혁명정부를 빨리 종식시키고, 다시 자기들이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집념에 차 있었다. 혁명정부의 과감한 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 혁명주체세력 내부에도 다소의 내분이 없지 않아서, 고민을 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1963년 12월 17일, 민정이양을 위한 선거로서 제5대 민선 대통령으로 당선된 나의 취임식이 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되고 군정은 완전히 민정으로 이양되었다.
5ㆍ16혁명 18주년을 맞이하여 지나 온 18년간을 회고하니 감회가 무량하다. 조국근대화 과업도 이제 결실기에 들어섰다.
1ㆍ2ㆍ3차 5개년 계획이 대체로 순조로이 진행되어 우리의 국력도 괄목하리만큼 크게 신장되었고, 공업화도 착착 추진되어 5ㆍ16 당시와는 비교하기 어려우니만큼 나라의 모습이 변모하였다. 남들은 한국의 기적이니 한강의 기적이니 하고, 우리가 걸어온 도정과 결과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민족적인 긍지와 자주정신, 그리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어 있다.
자기들 스스로의 피땀으로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보람과 자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70년대초에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72년 가을에 단행된 10월유신은 우리의 과업을 촉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 작업이 열매를 맺으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더욱 분발하고 총화로써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1961년 11월 4일, 박정희 의장의 대장 진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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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1979년 10월 17일(마지막 일기)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史家)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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