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본 동호회에 리뷰 기사를 소개했던 기억이 있는 라디오인데, 해외 판매처를 통해 구입하는 것은 35~40불 가량인 라디오 자체의 가격 정도의 배송료가 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고 국내에서는 적당한 판매처를 찾지 못해 구입을 미루고 있다가 얼마 전 임학님께서 제공하신 정보를 보고(임학님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극동방송을 통해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겉 포장은 골판지를 사용한 종이 박스이며, 박스 내부에는 발포 비닐이 라디오를 감싸고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성물은 라디오 본체 및 매우 썰렁한 한장짜리 영문 매뉴얼이 전부이며 리뷰나 텍선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캐링 파우치는 물론이고 아답타나 헤드폰 등의 액세서리 등도 없습니다(가격을 생각하면 없을 법도 합니다..-_-). 매뉴얼을 열람하고 싶은 분이 혹시 계시다면 제공된 매뉴얼은 아닙니다만 Eton 사의 홈페이지( http://www.grundigradio.com/US/resources/product_specs/Grundig_FR200_specs.pdf )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저도 박스에 담겨져 온 매뉴얼이 부실해서 위의 매뉴얼을 상당부분 참고했습니다.
이 라디오의 핵심이 자가 발전기를 통한 전원 공급인데, 공급 전원은 크게 3가지로 나뉘어집니다. 3.6V Ni-MH 충전지와 3*AAM 건전지 그리고 4.5V 외부 전원인데, 전원 셀렉터 스위치를 통해 3*AAM는 독립적으로 선택이 가능합니다만 3.6V Ni-MH 충전지와 4.5V 외부 전원은 다른 라디오들과 유사하게 병렬적(외부 전원 잭에 플러그가 꽂히면 내부의 충전지는 끊어지는 타입)으로 작용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아답타들이 대개 5mm 타입인데 반해 이놈의 외부 전원용 잭은 특이하게 3.5mm 타입이라 구멍이 맞는 것을 찾을 수 없어 결국 차량용 시거 잭에 물려 사용하는, 1.5V에서 12V까지의 다양한 전압을 역시 다양한 형태의 플러그 팁을 통해 제공해 주는 변환기를 좀 개조해서 13.8V짜리 햄용 전원 공급기에 연결한 후에야 외부 전원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3.6V Ni-MH 충전지를 충전시키는 방법은 따라 온 매뉴얼에는 발전기 레버를 마구 돌리는 방법만 소개되어 있는데, 외부 전원을 통한 충전 역시 가능하지 않나 생각되어 상기 Eton의 매뉴얼을 참조하니 그 방법 역시 명시되어 있더군요. 왕서방 아저씨들, 매뉴얼 좀 잘 만들지 않고... 여담입니다만, 매뉴얼 만들기의 대가들은 역시 미국인들로서, 한국의 업체들도 기술은 대체로 수준급인데 특히 중소기업 쪽으로 갈수록 logistics쪽은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아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수신 밴드는 FM, MW, SW1, SW2로 구성되며 FM과 중파는 무난한 정도의 수신 성능이라 느껴지며, 내장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음질 역시 무난한 정도라 생각됩니다만, 스테레오 헤드폰 잭을 사용해도 FM 방송이 모노럴로 수신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싸구려 라디오 등에서 특히 AF 부분이 부실한 경우에 자주 나타나는 hiss noise 등은 별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단파 밴드는 SW1과 SW2로 나뉘어져 있으며, 공칭 수신 범위가 각각 3.2~7.6MHz와 9.2~22.0MHz로서 120m 밴드와 11m 밴드를 제외한 전 국제 방송 밴드의 수신이 가능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방송 밴드 전용의 아날로그 라디오와는 달리 수신 범위가 넓기 때문에 동조 조작이 좀 어려운데 다행히 튜닝 다이얼이 Fast와 Slow의 2중으로 되어 있어서 혼잡한 밴드의 경우에도 Slow 노브를 돌려 동조를 비교적 정확히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다이얼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방송을 수신한 결과 이미지 신호의 위치로서 상측 헤테로다인을 사용하는 중간 주파수 455kHz의 싱글 컨버전임을 알 수 있었고, 국부 발진 주파수를 다른 수신기로 수신함으로써 정확한 수신 범위를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공칭 수신 범위보다 약간 넓음을 알 수 있습니다.
SW1 : 3.082~7.760MHz
SW2 : 9.017~22.435MHz
단파대 수신 감도(Sensitivity)나 안정도(Stability)는 측정 장비가 없는 관계로 여러 가지 조건에서 수신을 해서 다른 수신기들을 사용했을 때의 경험과 비교한 느낌으로 말씀드릴 수 밖에 없는데, 455KHz IF의 싱글 컨버전 수신기로서는 대강 무난한 수준인 듯 합니다. 저가형 라디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디오에 손을 가까이 대면 동조 주파수가 약간 변하는 현상을 보여 주긴 하나 70년대 초반의 전형적인 싱글 컨버전 형식의 단파 라디오인 Sony ICF-5800보다는 약간 떨어진다는 느낌이고 최근 옥션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흥전자의 DH-919보다는 확실히 우수한 성능을 보여 주었습니다. 선택도(Selectivity) 특성 역시 근접주파수 혼신시에 귀로 듣는 감으로 대충 느끼건대 대략 15kHz 내외의 대역폭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되며 감도와 안정도를 고려하면 대충 3S의 밸런스는 맞는다고 사료됩니다.
한편, 아날로그 수신기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다이얼 명판의 주파수 정확성인데 역시 약간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편의상 명판에 새겨진 주파수의 소숫점 부분과 수신 주파수를 맞추어 보았는데 한 밴드 내부에서 약간 들쑥날쑥한 면이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명판을 다시 해 넣고 싶기도 합니다만 어차피 비상용 라디오로서 DX국을 정확한 주파수에 맞추어 듣는 상황보다는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강력하게 수신되는 방송을 찾아 듣는 상황을 상정한다면 사용에 큰 지장은 없는 듯합니다. 아울러 다이얼 명판에 익숙해질 수만 있다면 주파수 맞추는데 귀신이 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 경험에서 본 제 소견입니다...^^
이상은 일반적인 단파 라디오로서의 성능이며, 이 라디오 고유의 비상용 라디오로서의 특징을 보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전력 소모가 되겠습니다. 이를 위해 소비 전류를 측정해 보았는데, 전원 셀렉터 스위치를 3*AAM 건전지로 놓고 건전지 홀더에 4.5V 정전압 전원을 연결한 다음 스테레오 헤드폰 잭을 통해 9ohm의 더미 저항을 좌/우 채널에 각각 연결하고 잘 들리는 방송에 다이얼을 맞춰 놓은 상태를 기본 측정 조건으로 잡았습니다. 이런 경우의 측정에 있어 디지털 멀티미터는 음성의 변화에 따라 전류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측정이 어려운 점이 있어 전류계는 일반적인 아날로그 테스터를 사용했습니다.
소비 전류의 측정 결과는 평균치로서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최소 볼륨
AM : 5mA
SW1 : 5mA
SW2 : 5mA
FM : 7mA
50% 볼륨 회전각(작은 방에서 스피커를 통해 혼자 듣기에 적당한 정도의 음량입니다.)
AM : 12mA
SW1 : 10mA
SW2 : 10mA
FM : 12mA
100% 볼륨 회전각
AM : 90mA
SW1 : 80mA
SW2 : 80mA
FM : 80mA
수신기로서의 소비 전류 측정에 이어 일종의 플래쉬 역할로서 부착되어 있는 백색 고휘도 LED를 점등시켜 소비전류를 측정하니 약 43mA 정도였습니다. 아마 50mA 급의 고휘도 LED가 사용된 듯 보이네요. 고휘도 LED와 반사경의 사용으로 일반적인 랜턴에 비해서 빛의 집중도가 좀 높기는 하나 상당히 밝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내장 3.6V Ni-MH 충전지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외부 전원을 약 10시간 정도 공급(Eton의 매뉴얼에는 약 8시간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초충전인 관계로 좀 길게 했습니다.)하여 충분히 충전시킨 상태에서 50% 볼륨 회전각으로 FM 방송을 틀어 놓았습니다. 연속해서 대략 10시간 정도 만충전시와 비슷한 음량으로 청취할 수 있었고 그후에 점점 음량이 줄어 들어 2시간 정도 더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매뉴얼에 보면 충전지의 용량이 3.6V 600mA라 되어 있는데 이걸 600mAH라 본다면 결과가 좀 애매합니다. 추후에 한번 더 테스트해 봐야 하겠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에서 본다면, 2만원 이하급의 가격에서는 현재 그다지 보기 힘든 All Wave(全波, 단파대의 상당 부분을 연속해서 수신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한 표현) 수신기로서의 수신 성능은 그런 대로 무난하다 할 수 있겠는데, 험한 환경에서 사용될 개연성이 높은 비상용 수신기로서는 만듬새가 그다지 견고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덩치 큰 외국인들의 리뷰에서는 산 지 1주일만에 발전용 레버를 부러뜨린 사례도 볼 수 있었는데, 제 경험으로도 "마데 인 피알 차이나" 저가품의 한계인지 발전용 레버와 밴드 셀렉터 스위치 및 튜닝 다이얼의 노브가 확실히 좀 약한 것으로 보이고 튜닝 다이얼을 돌릴 때에는 케이스에 살짝 닿는 듯한 약간 불쾌한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주로 비상시에 활약을 할 충전지는 팩 형태라 뜯어 보지는 않았지만 외관상 표준적인 크기로서 수명이 다 된 경우에 배터리 전문 취급점에서 대치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追記)
VOA에서 나오는 미국의 태풍 피해에 대한 뉴스를 듣고 있으니 예전에 해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동남아 지역과 이번에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미국 남부 지역의 이재민들이 과연 이 라디오를 요긴하게 사용했고 또 사용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아울러 각종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續 追記)
나름대로 리뷰에 필요한 부분 몇 가지를 빼먹은 것이 있어서 첨가합니다. 역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1. 경량의 플라스틱 케이스를 채용한 덕분인지 AAM 전지 3개까지 넣은 상태에서의 무게는 예상 외로 가볍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는 않지만, 휴대용이라고는 하나 휴대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육중(?)한 ATS-803A나 ICF-2001D에 비하면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차이입니다.
2. 로드 안테나의 길이는 약 64cm 정도로 좀 짧은 듯한 느낌.
3. 깜깜한 곳에서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명판을 읽을 때, 플래시 대용으로 사용하는 LED는 너무 밝아 오히려 방해가 되어 손바닥으로 대부분의 빛을 차단하고 아울러 일부의 빛은 명판쪽으로 반사시켜 이곳을 비추는 조명으로 해야만 하는 점은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여담을 한 마디 드리자면, 10여년쯤 전에 제가 자작을 생각했던 비상용 라디오의 아이디어가 굴러다니던 핸드드릴에 자전거 발전기를 물리고 Ni-Cd 등의 충전지를 충전시켜서 당시에 가지고 있던 아날로그 단파 라디오의 전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만...
허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솔라셀은 예전에 RC 비행기의 날개에 솔라셀을 붙여서 라디콘 수신기의 전원으로 사용하려는 것을 옆에서 거들어 주었던 경험에 의하면 역시 말씀대로 가격이 만만치 않은 점이 있고 생각보다 약해서(종류에 따라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잘 깨집니다..) 취급이 불편하다는 결점이 있었습니다.
첫댓글 강우영 선생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강선생님의 사용기를 보니 여러가지 작은 문제는 있지만 가격대비 성능이 괜찮은것 같네요. 그리고 충전장치를 솔라셀을 이용하면 어떨까요?(가격은 좀 높아지겠지만....)집에서 추가로 제작이 가능할것 같네요. 아무튼 여러가지를 생각하게하는 수신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저도 그 물건을 두 개 주문해서 파키스탄에 계시는 선교사분들께 선물했습니다. 보내 기 전 10분 쯤 들어 봤는데요, 감도는 제대로 비교를 못 해 봐서 모르겠지만 무난 한 듯 했습니다. 음질 또한 별로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LED 램프는 생각보다 제법 밝았구요, 미세 조정 튜닝 놉도 꽤 편리했습니다. 강우영님의 말씀대로 실제 주파수와 명판의 숫자가 좀 어긋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값을 생각하면 충분히 봐 줄만 합니다.
여담을 한 마디 드리자면, 10여년쯤 전에 제가 자작을 생각했던 비상용 라디오의 아이디어가 굴러다니던 핸드드릴에 자전거 발전기를 물리고 Ni-Cd 등의 충전지를 충전시켜서 당시에 가지고 있던 아날로그 단파 라디오의 전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만...
허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솔라셀은 예전에 RC 비행기의 날개에 솔라셀을 붙여서 라디콘 수신기의 전원으로 사용하려는 것을 옆에서 거들어 주었던 경험에 의하면 역시 말씀대로 가격이 만만치 않은 점이 있고 생각보다 약해서(종류에 따라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잘 깨집니다..) 취급이 불편하다는 결점이 있었습니다.
쏘니의 자가발전 라디오는 전에 카탈로그를 통해서 본 적이 있는데, 쏘니의 전반적인 이미지 즉 "high-tech"와 겹쳐서인지 비상시에 걸맞는 "ruggedized"한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