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위서(魏書), 북사(北史), 통전(通典), 통지(通志) 같은 중국 문헌들에 나오고 mu ku
lü로 읽히는 낱말은 “대머리”를 뜻한다. 즉 사람의 머리에서 털이 나지 않는다. 이것과 평행하여 중국어-산스크리트어 사전에서는 kao li ~
gao li의 산스크리트어 상응어가 일본어 전사는 mo ku ri, 중국어 전사는 mu kü li로 이루어진다. 두 전사는 모두
그 뜻이 “모래투성이 나라”이다. 즉 나라의 토지가 모래투성이 사막이어서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첫째 것에서는 사람의 머리에서 머리털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둘째 것에서는 그 땅에서 식물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mo ku 또는 mu kü (일본어로는 baku) 기호들이 사용되는 것은
숙고할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11. 이제 쾰 티긴 비문과 빌개 카간 비문에 나오는 구절의 자역(字譯)과
전사를 제시하자:
: LiGLOC : iLKUB
|
B²ẄK²L²I : ČẄL²G²IL² :
|
bökli : čölgil :
|
: Cgbt
|
T¹B¹G¹Č :
|
t(a)bg(a)č :
|
: TOpUT
|
T²ẄPẄT² :
|
töpöt :
|
: rp
|
PR¹ :
|
p(a)r :
|
: mrup
|
PWR¹M :
|
(a)p(a) ur(u)m :
|
: zkrix
|
K¹IIR¹K¹Z
:
|
kırk(ı)z :
|
: nkirqCO
|
ẄČK¹WR¹IK¹N¹
:
|
üč korïk(a)n :
|
: rttztu
|
WT¹ZT¹T¹R¹ :
|
otuz t(a)t(a)r :
|
: ytix
|
K¹IT¹NY
:
|
kït(a)ny :
|
: ibtt
|
T¹T¹B¹I :
|
t(a)t(a)bï :
| 이 열두 종족 이름에서 오직
한국의 이름만 bökli čölgil 형태로 동의어로서 나온다. apa urum, üč korïkan 및 otuz tatar 종족 이름들은
형용사 수식 구문 구조로 표현되었다. öŋre kün : togsıkda : bökli : čölgil : t(a)bg(a)č
: töpöt : p(a)r : (a)p(a) ur(u)m : kırk(ı)z : üč korïk(a)n : otuz t(a)t(a)r :
kït(a)ny : t(a)t(a)bı bunça bod(u)n k(e)l(i)p(e)n : sïgtamïš : yoglamïš
: “동쪽에서 해뜨는 곳으로부터 bökli čölgil [한국], tabgač [중국], töpöt[티베트], par
[이란], (a)p(a) ur(u)m [大로마], kırk(ı)z [키르기스], üč korïk(a)n [3 새끼양], otuz
t(a)t(a)r [30 타타르], kït(a)ny [거란], t(a)t(a)bï [해(奚)] 이만큼의 백성이 와서 울었다 한다,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12. 끝으로 빌헬름 라들로프(Wilhelm Radloff)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루어진
다양한 독법 및 설명들에 대하여 내가 처음으로 여기에서 밝힌 나의 독법과 해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쾰 티긴 비문과 빌개 카간 비문에 나오는 구절
bök li ~ bük li는 중국어 낱말 *mo li 漠理의 mak ~ miek 또는 mê ~ mô 형태의 중국어 발음과 한국어에 있는 옛
발음을 튀르크 룬 글자들로 표기한 것임이 분명하다. 2. 중국어 구절 bök li ~ bük li 다음에 오는 낱말 čölgil은 구절 bök li ~ bük li의
“사막에 속하는, 사막의, 초원의”라는 뜻의 고대 튀르크어 대응어이다. 3. 구절 bök li čölgil ~ bük li
čölgil은 중국어 bök li ~ bük li + 튀르크어 čölgil 형태로 중국어와 튀르크어로 된 중복어(synonim
compositum) 이고 쾰 티긴 비문과 빌개 카간 비문에서 한국의 그 시대의 이름으로서
사용되었다.BÖKLI ~ BÜKLI ~ BÖK ILI ~ BÜK ILI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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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ettepe Üniversitesi Sosyal Bilimler Enstitüsü [하젵테페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Yayımlanmamış Doktora Tezi [발간되지 않은 박사학위논문], Ankara 1995,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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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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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ürşat Yıldırım [퀴르샤트 이을드름], “Tatar adının kökeni üzerine
[타타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하여]”, Türkiyat Mecmuası [튀르크학 학술지], 22, Güz [가을] 2012, pp.
171-190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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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ürşat Yıldırım, “Juan Juan adı üzerine [연연(蠕蠕)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Türk Kültürü incelemeleri Dergisi [튀르크 문화 연구 학술지], İstanbul 2013, pp. 1-10.
|
2013
|
Kürşat Yıldırım, “An Opinion on the Meaning of the Name
‘Ruanruan’”, Central Asiatic Journal, 56, Wiesbaden 2012-2013, pp.
35-40.
| 저자가 모르고 있는 논저로서 다음의 것이 있다:Yong-Sŏng
Li, “Zu QWRDNTA in der Tuńuquq-Inschrift [투뉴쿠크 비문에 있는 QWRDNTA에 대하여]”, Central
Asiatic Journal, 47/2 (2003), pp. 229-241; p. 236에서 이 낱말을 bök(kü)li (<
*bäkküli < *mäkküli 貊句麗) 또는 bök(kö)li (< *bäkköli < *mäkkoli 貊高麗)로 읽을 수
있다고 밝혔다. (Talat Tekin, 이용성 역, 『돌궐비문연구 – 퀼 티긴 비문, 빌개 카간 비문, 투뉴쿠크 비문』, 서울 2008에서도
p. 90의 역주 47, p. 221의 역주 42에서 다시 언급되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최근에 한국에서 나온 두 편의
논문이 있다:1) 김병호, 「오르혼 옛 튀르크語 비문과 한반도의 옛 이름 – 퀼 테긴 碑와 빌게 카간 碑에 나타나는 ‘Bökli’ 해석
-」, 『東北亞歷史論叢』 42 (2013年 12月), 동북아역사재단, pp.7-45. [김병호는 p.28이후에 bök(kö)li로
읽으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참고문헌에 Talat Tekin, 이용성 역, 『돌궐비문연구 – 퀼 티긴 비문,
빌개 카간 비문, 투뉴쿠크 비문』, 서울 2008가 있는데도, 이 번역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최초로 bök(kö)li 독법을
주장하는듯한 뉘앙스를 주고 있다.]2) 노태돈, 「고구려의 대외관계와 북아시아 유목민 국가」, 『東洋學』 第58輯(2015年
1月),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院, pp. 193-202. http://greatcorea.kr/sub_read.html?uid=661§ion=sc9§ion2= 치길(Čigil)은
아무다리야에서 북중국까지 사는 투르크족 (4부) 高句麗를 돌궐은 Mug
lig, 중국은 Gao Li로 불렀다 (3부) 황하의 서쪽에는 돌궐이,
남쪽에는 몽골이 거주 (2부) 돌궐비문에 새겨져 있는
高句麗의 이름 (1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