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교권침해에 관한 상진이 글에 답하여
나는 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80년 3월부터, 인천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가, 1981년 7월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사표를 낸, 어쩌면 교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때, 학교를 떠났던 사람입니다. 학창 시절의 꿈이 늘 언론인이었기 때문에, 4학년 2학기였던 1979년 10월 26일(10.26사태) KBS에 아나운서 시험을 치르고, 보기 좋게 낙방을 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한 차례의 취직 낙방이 있은 후, 내가 무엇을 하면 가장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 때, 교생 시절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교직이 천직인 것 같으니 이 다음에 반드시 교편을 잡으라던 권고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했지요. 첫 해에 고2 담임을 맡았는데, 한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오면서 흰 봉투를 던져 놓듯하고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신중함이 부족했던 초년 시절이었던지라, 그 날 종례 후, 부모님의 마음만 받겠다는 완곡한 거절의 편지를, 돈봉투와 함께 학생을 통해 부모님께 돌려보낸 적이 있답니다.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이니 뜯어보지 말고 갖다 드리라는 당부와 함께(여고 2학년의 수준도 모르고)......그 후, 그 학생은 내게 편지를 써서, 자기 어머니의 경박한 행동이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며, 선생님 보기가 너무나 창피해서 학교에 나오기도 싫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진정한 사도의 길을 걸어보려는 내 욕심(?)에만 급급하여, 학생이 감수해야할 어마어마한 상처는 미처 배려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나의 행동이, 평생의 후회와 한 인생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학생의 입장을 제일 먼저 헤아려서, 현명한 방법을 택했어야 했는데.....
제 1의 꿈이었던 언론인에로의 길이 좌절되고, 제 2의 꿈인 교직 생활은, 의외로 내게 커다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학교 생활이 너무 즐거워, 열악한 사학의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학생들과 함께 붙어 다니며, 늦은 퇴근을 자청도 하며, 교직과 천직 사이를 넘나들던 시절이었지요. 늘 학생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4년간 죽도록 연애해 온 남편과의 결혼으로 교직을 떠난 지 15년이 되던 1996년(40세), 막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주부로서의 가정 생활이 교직보다 훨씬 적성에 맞아 재미있다고 만족해 했던 나에게, 우연한 기회에 큰아들의 국어교사로부터 기간제교사 권유가 들어왔지요. 그렇게 시작했던 기간제교사 노릇을 10년째 하고 있습니다. 기간제교사라는 제도는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나같은 사람에게는 여러 면에서 대단히 매력있는 직종인 것 같습니다. 45세에 그만두겠다던 처음의 다짐과는 달리, 나는 지금까지도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처럼 늙은 기간제교사는 매우 드물지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했던 이 일이, 2004년 남편이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의 부도로, 1년 반 동안은 우리집의 생계수단이 되기도 했었답니다. 참으로 사람의 앞길은 알 수 없는 것이더군요. 그 때 나는 내가 일할 수 있다는 사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남편은 2005년 7월 다시 회사를 창업하여, 지금은 다행히도 제법 재기의 발판을 어느 정도는 마련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시련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나의 '기간제교사' 일이 큰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그래서 나를 참 기특하고도 고마운 아내라고 생각하는 듯도 합니다. 내게 그 동안 수고가 많았다며, 이제는 너무 늙어(?) 일하기 힘들테니 쉬라고 합니다만, 정작 그만 두려니 여간 서운한 게 아닙니다.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내겐 얼마나 활력이 되고 보람 있는 생활인지, 또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일인지 모릅니다. 또 우리끼리 얘기지만, 매달 받는 봉급의 매력도 만만치 않구요.
어제 종성이 사무실에서 보았던 나의 모습처럼(ㅋㅋㅋ), 요즘 나는 참으로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보람있는 일을 한다는 자긍심과, 나의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교단에 서고 싶습니다.
지난 15일 스승의 날은, 학생들이 많은 편지를 선물했습니다. 편지의 내용 중 가장 맘에 드는 표현은 '엄마와도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꽃 한 송이.... 교사로서 이것 외에 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요? 내 옆의 선생님과, 또 그 옆의 선생님이, 편지 한장 한장을 읽을 때마다, 얼굴에 스쳤던 행복한 미소는, 어느 장면보다도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이거야. 이런 맛으로 선생 노릇을 하고 있지."
여러분, 스승을 스승으로 대접하는 사회는 희망이 있고 건강한 사회입니다.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전부 검게 보이고,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차 보일 것입니다. 나는 감히 교육 현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대다수 교사는 진정한 사도의 길을 걸어가려 부단히 노력하는 분들이라고......
나는 또, 앞으로의 스승의 날은, 학교의 교사뿐만이 아니라, 내 주위의 스승들에게도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릴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싶습니다. '스승'이 어디 학교의 교사만을 지칭하는 것이랍니까? 내가 배울 만한, 존경스러운, 주위의 모든 분들이 내 인생의 스승인 것을.....
상진이 친구가 올려 준 글을 읽고, 요즘 세상에 참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 두서없이 몇 자 끄적여 보았습니다.
첫댓글 내가 배울 만한, 존경스러운, 주위의 모든 분들이 내 인생의 스승인 것을.....경애의 명언 일세 잘기억을~~~
오~예!! 우리의 멋진 친구 경애에게 난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어..!!
경애는 선생님 직업 잘 어울려. 더구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 더 보람있는 생활을 하겠군. 얼론이 선생님 모두를 매도하는 것 같아서...ㅠ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구가 생각나는구먼. 내 욕심만 부리다가 노추(老醜)를 보일까 걱정이라네. '이제는 선생답다'는 이미지보다는 '함께 청국장 먹고 싶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살아가려 하는데.....
5월은 선생님들한테는 잔인한 한달였을것 같아. 요즘은 또 교육계에 듣기에도 민망한 사건사고가 왜그리 많은지. 일부 지각없는 선생님들 때문에 경애친구처럼 여전히 존경스럽고 진정한 사도의 길을 걷는 대다수의 선생님들 마음고생이 많았을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야. 잘못된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선생님들 힘내십시
경애같이 휼륭한 선생님이 곁에 있으니깐 마음이 우선 뿌듯하고 아직도 우리의 교육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되네! 계속 힘내시고 우리나라의 100년대계를 위해서 열심히 열심히 더욱더 정진해 주시길, 아울러 건강도 꼭 챙기시고 건강해야 좋은 선생님도 될 수 있으니깐.
격려의 말을 들으니가 갑자기 힘이 팍팍 솟구치네. 나이롱(나 국어선생 맞어?) 선생이지만, 마지막 교단에 서는 날까지 나의 모든 열정을 쏟아, 귀하디 귀한 우리 미래의 주인공들을 가르쳐 보려네.
내가 볼때마다 집에서 쉬기에는 국가적인 낭비라고 누누이 말했었는데 내말은 쏘옥 뺐내?꿈도 이룰수 있었는데 아깝다. 그런데 지금이 더욱 보기좋은 모습이야. 얼마나 좋아. 부럽다. 화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