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군 국립공원 주왕산을 다녀와서!
2018년11월4일 일요일 인터넷 카페 "아름다운5060" 산행동호회
방장 알마니 대장님의 안내로 산행 트랙킹(tracking) 장소로 정한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에 있는 주왕산헹(周王山行)을 하기위해 새벽 04:30분에
기상하여 여장을 준비하고 05:20분에 집에서 출발 버스로 전철로06:40분에
종로3가역에 도착 국일 앞 버스 정류장에서 미즈관광버스에 승차하여 07:10
에 출발 두 곳의 후게소를 거쳐 주왕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된 시간이 11:30분
옛날 보부상들이 걸었던 객주길에 진입하여 제1 용추폭포와 제2 절구폭포,
제3 용연폭포로 가는 길은 거대한 바위가 산정(山頂)을 이루고 기암절벽으로
된 계곡을 이룬 길을 걷는 마음에 거대한 바위의 형상에 압도(壓度)된 느낌
이기도 했지만 정작 구경꺼리가 될 절구폭포와 용추폭포 용연폭포는 가을
가뭄으로 유량(流量)은 작았지만 폭포를 이룬 작은 물 줄기가 그 나름의
볼꺼리 였습니다.
용연폭포 위에서 계속 이어지는 둘레길을 15.4km만 더 가면 옛 규수방 아씨들이
즐겨 걸을 것 같기도한 외씨버선길이 이아진다는데 폭포를 관람하고는 가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서 14:20분경 주차장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겸한 뒷풀이를
마치고 15:30경에 주산지를 경유하려 했으나 몰려든 관광차량의 정체로 길이
막혀 대체지를 경유하며 귀경길에 올라 집에 돌아오니 22:20분이었습니다...
주왕산(周王山)
태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하는 주왕산(721m)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石屛山) 또는 주방산(周房山)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진나라에서 주왕이 이곳에 피신하여 왔다
고 해서 붙은 것으로 산봉우리,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다.
주요 명소로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한 고찰 대전사(大典寺)를 비롯해 주왕
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백련암(白蓮庵),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汲水臺),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치렀다는 기암(旗巖),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 구경
을 했다는 망월대(望月臺), 동해가 바라다보이는 왕거암, 주왕이 숨어 살다
가 죽었다는 주왕굴(周王窟) 등이 꼽힌다. 그밖에 자하성(紫霞城:일명 주방
산성),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武藏窟)·연화굴(蓮花窟) 등의
명소가 있다. 연꽃 모양의 연화봉과 만화봉,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
와 선녀탕,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산이 깊고 지질이 우수하여 다양한 동·식물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특히
회양목, 송이버섯, 천연이끼, 산철쭉(수달래 혹은 水丹化라고 부른다) 등은
주왕산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소나무 군락을 비롯해 망개나무·복장나무·
자작나무·난티나무 등 희귀식물의 군락도 볼 만하다.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
절벽과 폭포가 많아 자연경관이 빼어난데, 특히 주왕암과 별바위에 이르는
㎞의 숲이 유명하다.
1976년 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7년에는 국민관광지로 설정
되었다. 2003년 10월 31일 명승 제11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명칭은 청송
주왕계곡 일원이다.
출처 : (두산백과)
대전사(大典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세웠다는 설과 919년(고려 태조 2) 눌옹(訥翁)이 창건
했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
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대전사라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의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
(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
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주요 건물로는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과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은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맞춘 것이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
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
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淸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浮船形)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송주왕산계곡(靑松周王山溪谷)
기암 속에 숨은 아름다운 풍경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위치한 주왕산은 높이 721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6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12개나 솟아 자못 웅장하고,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서로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주왕산은 화산폭발로 인하여 생긴 돌부스러기(화산쇄설물
: 火山碎屑物)들이 쌓여 당당하게 굳은 응회암 지대가 풍화. 침식작용을 받아 형성
되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주왕산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마치 병풍과 같다고 해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하는데, 특히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에는 연꽃 모양을 한 연화봉과 떡을 찌는
시루모양을 했다는 시루봉,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병풍바위 외에 중국 주왕(周王)이
깃발을 꽂은 자리로 전해지는 기암(旗岩)과 절벽위 군사들이 물을 길어먹었다는
급수대(汲水臺) 등 전설이 깃들어 있는 암봉들이 계곡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암봉들과 함께 경승지로서의 가치를 더하는 것이 깊은 계곡과 맑은 물. 줄지어 선
암봉들을 모두 구경하며 올라가면 그 끝나는 곳에 제1폭포를 시작으로 제2폭포와
제3폭포가 상류에 위치하는데 폭포마다 층을 이루어 떨어지는 모습이 '절세가경'이라
할 만 하다. 기암이 만들어 내는 시원한 풍광과 기암
속 숨어있는 아름다운 계곡을 감상해 본다.
출처:(문화유산채널, 한국문화재재단)
▲ 주왕암
2018-11-5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