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7월 20일 고종은 아들 순종에게 황제 자리를 넘겨주었다. 원래는 19일에 행사를 치르기로 했는데 담당자인 '박영효'가 출근하지 않고 사보타주를 해버린것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협박하고 총리 대신 이완용이 닦달하는 바람에, 고종은 강제로 정계 은퇴를 하게 되었다.
'헤이그 특사 사건' 때문이었다. 1905년 11월 , 이토 히로부미가 조정 대신을 윽박잘러 을사조약을 체결할 때 고종은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1907년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릴 때 일본 몰래 특사를 보냈다. 일본 측은 이를 계기로 오히려 자기네 좋은 쪽으로 써먹었다.
고종의 퇴위를 주장한 이완용은 20일 당일에 성난 군중의 습격으로 집이 홀랑 불탔다고 한다. 1909년 이재명 의사의 칼에 중상을 입기도 한다. 사건 배후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는다. 반면 1907년에 작은 용기를 보여주었던 박영효는 나중에 친일로 돌아섰다. 고종은 1909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일본 측에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있다.
*사보타주:고의적인 사유재산 파괴나 태업등을 통한 노동자의 쟁의 행위[ 사보는 프랑스어의 사보 (sabot:나막신)에서 나온 말로 중세 농민들이 영주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 하여 수확물을 사보로 짓 밟은 데서 연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