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다시 기리빠시 시다바리 아키바리의 어원
빙혼 같은 노털 한국인들은 말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일본식 한국어를 사용한다.
일제 식민을 벗어난 지 70년이 넘어가는데도 일상생활에 일본말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언어가 사라지면 민족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노털 : 늙어 쓸모가 없는 털.ㅠㅠ
고구려 멸망 후 당에 끌려갔던 고구려 유민 20만 명 후손들과
백제 멸망 후 낙양에 끌려갔던 백제 유민 8만 명 후손들을
아직도 고구려인/백제인이라고 할까? 짱께라고 할까?
아마 후손들은 그들이 고구려나 백제후손들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독립군 자손들을
한국에서는 한국인이라고 할까? 조선족이라고 할까?
작금의 대한민국 매중매체나 일상생활에서는 외국어가 넘쳐나고 있다.
회사명, 상호명은 이미 외국어가 반절 이상 외국어가 점령하였고
이제는 사람명(특히 가수 쉐이들), 언어에서 고유 한국어 대신 외국말들이 대체되고 있다.
100년 후에 과연 한반도에 한민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국인들이 남아 있을까?
19세기에 사용하던 한국어 대신에 외래와 축약어로 변절된 한국어가 남발을 할 터인데
그런 이상한 한국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인들을 한민족이라고 해야 할지 걱정스럽다.
레전드, 웰빙, 힐링, 마트, 테크, 프로세스, 이슈, 리스크, 캠페인, 테마, 쉐프, 엘리트 등
이미 한국어를 점령해 버린 외래어를 늘상 사용하는 분들은 한국인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100년 후 한국어사전은 어떻게 변할지 너무나 궁금할 따름이다.
<스키다시>
“스키다시(수키다시)”라는 말은 횟집에 가면 본 메뉴가 나오기 전에 그 식당만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정성들인 음식들이 먼저 나온다.
일본의 활어횟집(일본은 활어횟집이 거의 없다)을 갔다. 그런데 스키다시를 얘기했더니,
일본인도, 일본인 선생님도 못 알아들었다. 처음 듣는 말이라고.
일본어에는 “츠키다시(突き出し 또는 쯔키다시)” 라는 말이 있다. 일본요리에서 술안주 등으로
처음에 나오는 간단한 음식을 가리키는데, “오토오시(お通し)”라고도 한다.
츠키다시의 “츠”는 한국의 “ㅊ”과 “ㅉ”의 중간 정도(?)의 발음으로, 한국인들에게 어려운
발음이다. 하여 츠키다시가 스키다시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리빠시>
건설현장 관리자로 있는 한 친구가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연장이나 도구, 건설용어가
대부분 일본어라고 한다. 그런데 건설현장에 가끔 일본인 전문가가 오는데 그 용어를 이해
못하기에 통역사가 다시 재통역을 해준다고 했다.
샷시업계에서 조각, 자투리, 토막이란 용어로 자주 사용하는 “기리빠시” 라는 단어는
“키레파시(切れ端, 키렛파시)”의 잘못된 발음이 아닐까 한다.
기리빠시와 동일한 의미로 키레파시를 일본에서는 사용하고 있다.
<시다바리>
시중을 들거나, 밑에서 여러 잔일을 하는 사람의 의미로 “시다바리” 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무척 많이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에겐 통하지가 않는다.
시다바리(下張り) 라는 말은 벽지를 바를 때 초벌도배를 말한다.
일본어에서 신분이나 지위가 낮거나 말단의 의미로 “시타파(下っ端, 또는 시탓파)”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단어가 변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옷을 만드는 업계(미싱업계, 미싱은 머신(machine)에서 유래됨)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자신의 업무에 보조를 해주는 사람을 “시다”라고 한다. “시다”라는 말은 시타(下)에서 온
말인데, 밑에 사람(下の人)처럼 뒤에 명사가 붙어야 하지만, 생략한 상태에서 그 업계의
일반용어가 되어 버렸다.
<아키바리>
좋은 쌀, 최고급 쌀의 의미로 사용되는 아키바리는 족보를 찾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쌀 품종의 이름 정도는 되겠지만, 지인이나 주위의 많은 일본인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 와 “처음 듣는다.”였다.
그래서 빙혼이 인터넷을 뒤져 찾아냈다.^^
1970년대 가난했던 대한민국 정부는 쌀 증산을 위해 다수확품종 개발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1970년대 초중반부터 개발된 신품종이 통일벼와 유신벼이다. 통일벼는 대표적 다수확품종으로
기존 품종에 견주어 수확량이 거의 2배에 이르렀다. 그 대신 품질이 낮아 밥맛이 없다하여
소비자들이 기피하였다. 유신벼도 통일벼 계통의 다수확품종으로서 1976년 정부의 강권으로
전국적으로 재배하게 됐는데, 자주 흉년이 들어 농민들 원성이 높았다.
유신정권이라는 암흑시절, “유신이 실패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언론을 통제하는 바람에 언론은 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통일벼와 유신벼는 값은 싸지만 밥맛이 없어 살림에 여유 있는 소비자들은 잘 찾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속칭 ‘아끼바리’라 불리는, 밥을 하면 그야말로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일반미를
찾았다. ‘아키바리’는 일본에서 개발한 쌀 ‘아키바레’(秋晴れ)가 와전된 것으로, 한자 그대로
‘맑은 가을 하늘’이란 뜻이다. 농민들은 정부 수매에 통일벼나 유신벼 등 다수확 품종 쌀을
내고,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아끼바리’는 직접 판매하였다. 이리하여 정부미는 저품질의
맛없는 쌀, 일반미는 고품질의 맛있는 쌀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됐다.
빙혼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