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 내 삶의 한 순간
나는 딸 다섯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무척 많이 아팠다. 나는 아프고 싶지 않은데 몸 지가 늘 아팠다.
어린날 병원은 무섭고 싫다는 기억 때문에 커서도 병원 다니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대신 한의원을 선호했으며 이곳저곳 오만 곳 다 기웃거렸다.
정법 공부는 2017년 7월 1일경 미국에 사는 언니가 “한번 들어라.” 하는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듣기 시작했다. 밤낮없이 밤새도록 어떤 날은 새벽 5시까지 들으며 울고 또 울었다. 나의 잘못이 낱낱이 파헤쳐졌으나 언니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드디어 9월 22일 스승님께서 창원에 오신다는 정보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너무나 절박하여 용감하게 손을 들어 2번이나 질문했다. 언니들과의 관계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신 싸움이다.] 스승님의 답을 듣고 평생 나를 괴롭혔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했다.
수어 배운 목적도 [이 세상에 진리가 나오면, 법이 나오면 전하라고 수어 배웠다.]
[우리 농아인들 사회적 약자들 하나님이 미워서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고 하셨습니다. 통쾌했다. 감동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웃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데 내가 아주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2018년 동안거 입제에 내 눈에 거슬리는 것을 밉상으로 보는 나의 모순과 고집, 한번 틀리면 끝까지 꽁~하는 성격, 수어 제일 잘 하고 싶다는 욕심, 언니들에 대한 분노, 원망을 줄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2월 1일 울산에 스승님 오신다는 정보를 듣고 우리 농아인 정법가족 이상우씨와 함께 달려갔다. 안 갔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정도로 법문이 좋았고, 동영상도 다 찍어 올렸다. 그런데 그날 밤부터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아팠던 오른쪽 옆구리가 등뒤까지 심하게 아팠다. 병원 가기 무섭고 싫어하는 나는 몇날 몇밤을 버티고 버티다가 “한번 검사해 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 또한 너무 궁금하여 작은 종합병원에 입원하여 검사했다. 담석이 몇 개 발견되었고,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떨어졌다. 우리 어머니가 담석이 있었는데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의 담석
담석아 담석아 자연으로 돌아가 주렴... 오래 전 적었던 글도 몇 년만에 꺼내 읽었다.
내가 하는 일 마무리하고 수술 날짜 잡으려니 쉽지 않았다. 며칠 전,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담석 제거 수술해야 된단다.” 고 말했는데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야야, 니 어느 병원 갈끼고? 큰 병원 가래이 해운대 백병원 가라.”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아~ 지랄’ 했다. 왜냐하면 지난 입원했던 병원 의사 선생님들과 친해졌고 그 병원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현듯 스승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 앞의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라. 설령 틀린 말을 하더라도 우선은 내 앞 사람이 하는 말을 받아들여라.] 그랬다. 맞다. 작은 병원보다 큰 병원이 의료 장비도 좋고 당연히 낫다 싶어 해운대 백병원을 결정했다.
정말은 내가 맡은 방송 마치는 수요일 가려고 했으나 마음이 급해서 1월 14일 월요일 백병원에 갔다. 이 결정 또한 “큰 병원은 수술 날짜 잡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는 주변의 말에 귀 기우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담석 관련 선생님이 휴진이었다. 수요일 오라고 해서 수요일 예약을 잡았다. 그런데 내가 병원에 온 김에 머리 MRI 찍고 싶었다. 왜냐하면 한 2주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뒷골이 땡기고, 목 뒤가 뻗뻗하고 귀에서 쿵쾅쿵쾅 소리가 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뭐지? 뭐지? 뇌가 이상한가?’ 혼자서 느끼며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료과 선택을 돕는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이비인후과를 소개하는데 “아니오, 저는 신경과 가고 싶어요.” 했다. 신경과에 가서 MRI 찍고 싶다고 하니 담당 간호사가 “예약이 다 차서 안됩니다. 며칠, 어쩌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간호사에게 “저가 뇌 혈관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가다가 혈관이 좁아지면 어째요?”라고 말했다. 온 김에 MRI찍도록 해 달라고 다시 부탁하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 참 후에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며 “2시 예약 환자가 취소를 했는데 그 시간에 찍고 가실래요?” 물었다. 나는 바로 OK했다. “결과는 빨리 안 나오니 목요일 와서 MRI 결과 보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수납 창구에 가서 목요일 예약을 잡았다.
2시 넘어 MRI 찍고 여성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는데 밖에서 “강주수님 옷 갈아입고 여기 영상실에 들렸다 가세요.” 소리가 들렸다. “예~” 대답하며 ‘뭐가 발견 되었나?’ 영상실에 가니 2층에 가라고 했다.
“뭐가 안 좋아요?”
“의사 선생님께 여쭈세요.”
2층 올라가니 아까 그 간호사가 신경외과를 가리키며
“저기 신경외과로 가세요.”
“뭐가 안 좋아요?”
“교수님과 말씀 나누세요.” 했다.
신경외과 방에서 내 이름 부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내 이름 소리가 들려 “예”하고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의사선생님께서 “뇌출혈입니다. 오늘 저녁 수술해야 합니다.”
“예? 한번 보여주세요.” 했더니 책상 위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려주는데 호두처럼 생긴 양쪽 뇌 오른쪽 사진의 오른쪽 옆 면이 쭈굴쭈굴한 뇌 모양은 보이지 않고 까만색으로 덮혀 있었다. 역삼각형 모양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혈압계에 혈압을 재라고 했다. 141이었다. 오전에는 정상이었는데... 10분 후 다시 재니 151이었다.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않은 척?... 했으나 “뇌출혈, 오늘 저녁 수술” 소리에 혈압이 껑충 올랐던 것이다. 순간 내 말에 혈압 올랐을 사람들이 스쳤다. 나 역시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혈압이 오르락 내리락했을 것이다.
병실이 없어 한동안 기다렸다.
856호 병실 배정 받아 병실 도착하니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빨리 수술복 갈아 입어라 해서 수술복 입자마자 한 의사가 펜으로 내 왼쪽 이마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수술 과정을 설명했다. ‘엄마야, 이마를 째나...’
이동식 침대에 나를 눕히고 수술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머리 언제 부딪쳤어요?” 묻는다.
“아니오. 그런 적 없습니다. 부딪쳐서 그래요?”
“예”
수술실 도착
TV 뉴스나 드라마에 나온 그 광경 그대로 파란 수술 가운 입은 선생님들이 수십명? 있었고 내가 거기 누웠다. 산소 호흡기 꽂고 심장에도 뭐를 달고, 혈압계도 끼우고 뭐라고 뭐라고 설명을 한다. 눈 가리고 천으로 얼굴 머리 전체를 덮어씌우고 머리카락을 면도한다고 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저기요, 선생님 저가 TV에 나가거든요. 탈모도 많이 진행되었어요.”
“TV요? 뭐해요?”
“예, 수어 수화 통역합니다.”
“네, 많이 짜르지 않을게요.”
그러자 옆의 한 의사가 “그러면 불편해.” 소리도 들렸다.
“부분 마취이기 때문에 소리가 많이 나고 망치 소리도 납니다. 많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많이 괴로우면 오른손 드세요.”
집도할 의사선생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왼쪽이야?”
“예” 하는 소리도 들렸다.
‘엄마야, 아니 수술할 의사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모른단 말이가?’
순간 불안과 의심이 또 일어났다.
오만 생각이 다 났다.
내가 정말 잘못 살았구나. 얼마나 잘못 살았으면 이리 뇌수술을 한단 말이고?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뇌 출 혈 이게 가능하단 말이가?
오만 생각을 다 접었다.
“마취 주사를 놓습니다. 따끔할 수 있습니다. 참으세요.”
그러자 3군데가 따끔따끔했다. 바로 “매스” 소리가 들리며 죽~ 찢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지나니 콘크리트 벽 뚫는 드릴 같은 소리가 아주 크게 났다. 드드드드... 너무 괴로웠다. 망치 소리도 탕탕 2번 났다. 의료진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하는 말 소리도 들렸다.
수술하는 내내 나는 홍익사행도 3번 읊고, 천부경을 외웠다. 평소에 줄줄 잘 외웠는데 중간에 자꾸 막혀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외우고 외웠다. 순간 또 의심이 들었다. ‘엄마야, 벌써 뇌가 이상한가? 아닌데?...’
“수고하셨습니다.” 목소리가 들리고 환자분 뭐라고 뭐라고 했는데 무슨 말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나는 무조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만 연발했다. 꿰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아팠다. 5바늘 같았다. 수술실에서 나오기 직전 머리에 꽂힌 튜브를 내게 보여주며 “머리에 있는 피를 이 관으로 뽑아 냅니다. 2박3일 걸릴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뺍니다.” 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 꽂았는지 왼팔에 링거도 꽂혀 있었다. 아~ 아까 병실에서 꽂았지...
CT 촬영하고 병실에 간다고 했다. 정신 차려 몇신지 물으니 “7시 28분”이란다.
10시 30분 경 해운대 백병원에 도착하여 수술까지. 하루가 훌쩍 흘렀다. 잊지 못할 하루다.
아~ 스치는 한 생각
지난 11월 말경 불교 행사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되어 다른 사람의 차에 동승했는데 탈 때 내릴 때 차 천정에 세게 부딪쳐 머리핀이 부러지고 많이 아파서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뇌출혈
자기 발로 들어와 수술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며 치료하러 들어오는 의료진 모두 천복이란다. 나도 얼결에 한 이틀 동안은 그런가?... 했다. 그러나 한 3일 쯤에 정신이 번쩍 들어 “아니오, 정법, 정법강의 덕분입니다.” 라고 말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1주일 만에 실밥 뽑고 퇴원을 며칠 앞두고 있다.
스승님의 법문 중
[0.1mm의 오차도 없다.]고 하신 말씀.
이번 저가 그랬습니다. 0.1mm의 오차 없이 나에게 찾아온 뇌출혈.
01.mm의 오차 없이 연결, 연결, 연결, 하필이면 수술하신 진성철 선생님은 뇌수술 전문가로 부산 경남에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시 받은 이 생명, 나를 먼저 바르게 갖추며, 이웃을 위하고, 사회를 위해 할 일 하라는 자연의 선물인지? 아니면 가불인지?... 알 수가 없어 두렵기까지 합니다.
스승님!
천지대자연 아버지, 부처님, 하나님
고맙습니다.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입원해 보니 의료진들의 노고와 고마움을 가슴으로 마구마구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 왔는데 작은 병원에 입원 결정할 때부터 고마움만 눈에 가득 담겼습니다. 여러 번 훌쩍였습니다.
스승님의 말씀 [만 중생의 피와 땀, 만 중생의 노고]가 맞았습니다.
환자는 물론이고 보호자, 의료진, 간병인 등 하루 수백명이 오가며 함께 생활하는 이 공간에 우리 [민족의 대서사시]와 [스승님 법문]이 병원 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지... 들어가도록 축원합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진정 고맙습니다.
2019년 1월 24일
정법가족
홍익인간 강주수 드림.